랜덤 이미지

눈물을 마시는 새 : 8장 – 열독 (8)


밤이 충분히 깊은 것을 깨달은 카린돌은 몸을 일으켰다.

침대 옆에 놓아둔 점화통을 집어든 카린돌은 그대로 침대 옆으로 내려섰다. 카린돌은 허리를 숙인 채 잠시 바닥을 더듬었다. 잠시 후 어둠 속에서 그녀의 손자국이 드러났다. 차가운 금속 화로에 그녀의 손이 닿자마자 미약한 열에 의해 손자국이 남았던 것이다. 화로를 어루만져 뚜렷해지게 만든 카린돌은 점화통을 집어들었다.

잠시 후 화로에 불이 붙었다. 카린돌은 화로에 몸을 가까이한 채 참을성 있게 체온이 상승되기를 기다렸다.

체온이 충분히 상승했다고 판단한 다음에도 카린돌은 더 기다렸다. 잠시 후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복도를 가로질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소드락도 훔쳐둘걸.’ 카린돌은 아쉬워하면서 몸이 뜨거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몸이 뜨거워졌을 때 카린돌은 몸을 일으켰다.

방 안의 공기는 이제 뜨거워져 있었다. 카린돌은 사이커를 허리에 찼다. 그리고 기름병과 따로 골라둔 열쇠를 집어든 다음 방문을 나섰다.

그녀의 예상대로 복도는 차갑고 어두웠다. 카린돌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미약한 열류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남는 그녀의 뜨거운 발자국도. 그것은 그녀가 지금부터 저지르려는 범죄의 움직일 수 없는 증거처럼 보였다. 두려워하던 카린돌은 자신도 모르게 배를 어루만졌다.

다음 순간 카린돌은 복도를 내달렸다.

‘누가 소리를 듣고 깨어나라!’ 카린돌은 광기에 가까운 환희를 느꼈다. 그녀가 태어난 이래로 죽 살아온 집이었지만 어둠 속에서 카린돌은 몇 번 모퉁이에 부딪혔다. 하지만 카린돌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카린돌은 고함을 내지르고 싶은 욕망까지도 느꼈다. ‘살인귀를 태워 죽이려 지금 내가 달려가고 있다!’

숨 가쁠 정도의 질주가 끝나고 카린돌은 비아스의 방문 앞에 도달했다.

카린돌은 멈춰서서 잠시 호흡을 가누려 애썼다. 호흡이 정상으로 되돌아옴에 따라 잠시 잊었던 공포도 되돌아왔다. 카린돌은 열쇠를 꽂아 넣을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열쇠를 꽂는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그 뒤편에서 차갑게 웃는 비아스가 나타나······

‘그 얼굴에 기름을 뿌려주지!’

카린돌은 열쇠를 찔러 넣었다. 비아스는 이미 열쇠를 바꾸었지만 그런 것은 카린돌에게 상관이 없었다. 그 멍청한 비아스는 카린돌이 집 밖에서 남자만 찾는 줄 믿고 있었지만,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카린돌의 자유였다. 그리고 카린돌은 비아스가 열쇠를 주문했던 열쇠장이의 집을 방문하는 데도 그 자유를 할애했다. 열쇠는 매끄럽게 돌아갔다.

문이 열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카린돌에게는 심장이 없으니까. 하지만 정신적으로 그와 동일한 긴장감이 카린돌을 굳어 버리게 만들었다.

일곱 번 심호흡을 한 다음 카린돌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비아스의 침대가 어디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몸을 돌린 채 일곱 걸음, 그리고 다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세 걸음. 비아스가 늘어놓은 실험 도구를 피하려면 그런 식으로 걸어가야 했다. 걸음을 멈춘 카린돌은 아래를 주의 깊게 내려다보았다.

변온 동물이 주위의 온도와 완전히 똑같은 체온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 내부에서는 생명 활동이 유지되고 있고 따라서 주위와는 작은 온도차가 있게 마련이다. 카린돌은 별 어려움 없이 비아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누워 있는 어떤 남자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카린돌은 남자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았다.

그 남자는 비아스와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함께 불타 죽게 되는 것이다. 남자 한 명 따위 죽어도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자신이 태워 죽일 남자를 바라보는 것은 카린돌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일 아침에 눈을 뜰 것을 의심치 않으며 잠들었을 저 남자를 그녀의 생존을 위한 번제물로 삼아도 되는 걸까?’ 어쩌면 지금 그녀의 배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기도 남자일지 모른다.

카린돌의 몸에서 비늘이 곤두섰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녀의 방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었다. 기름병과 점화통을 도로 숨겨놓고 그녀의 침대에 들어가 쉴 수 있다면, 그저 조용히 잠들 수 있다면 카린돌은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린돌은 입술을 깨문 채 생각했다.

‘너는 죽어야 해. 비아스. 너는 죽어야 해. 비아스. 너는 죽어야 해. 비아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다.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처럼 계속 되뇌이던 카린돌은 마침내 기름병의 마개를 뽑아내었다.

카린돌은 침대에 기름을 직접 뿌리지는 않았다. 침대가 젖은 것을 느낀 비아스가 깨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린돌은 계획했던 대로 침대 주위를 돌며 기름을 뿌렸다. 비아스가 혹 열기에 깨어나더라도 그때는 이미 침대가 불구덩이로 바뀌어 있도록 주의 깊게 고려하며, 카린돌은 한 병의 기름을 모조리 쏟아 부었다. 그것은 꽤 많은 양이었고 카린돌은 하마터면 기름을 밟고 미끄러질 뻔했다. 침대를 짚을 뻔했던 카린돌은 자신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간신히 균형을 회복했다. 뻣뻣하게 변한 근육은 뼈보다 더 단단한, 그리고 생기 없는 것으로 바뀐 듯했고 그 때문에 팔 속에서 뼈가 춤추는 것 같았다. 카린돌은 단단한 원통 속에 든 가느다란 막대기가 흔들거리며 원통을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자신의 팔다리가 그 지경이었다.

눈앞이 환해졌다. 카린돌은 어떤 초현실적인 시간의 가속에 의해 벌써 새벽이 다가온 건 줄 알고 기겁했다.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열류 때문에 공기가 뜨거워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카린돌이 정신적 비명을 내지르기 직전의 일이었다. 카린돌은 이를 악물며 점화통을 부여잡았다.

“그러면 곤란합니다. 카린돌 마케로우.”

니름 그대로 심장이 멎을 뻔했다. 카린돌은 심장탑에 보관되어 있는 자신의 심장이 멎어 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비현실적 공포 속에 카린돌은 침대를 응시했다. 남자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비아스가 깨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모습이었다. 남자가 침대에서 내려서 침대 주위를 돌아 그녀에게 걸어올 때까지 카린돌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남자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러면 곤란합니다. 카린돌 마케로우.”

“어, 어떻게?”

“어떻게 당신이 온 것을 알아차렸느냐는 질문이십니까? 당신은 굉장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더군요. 저는 소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왜, 왜?”

“그건 당장은 설명드리기 곤란하군요. 저를 무시하려 애쓰셨으니 제 이름도 모르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일단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그로스라고 합니다.”

그로스의 침착한 태도에 카린돌 또한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카린돌은 허리를 펴며 강압적으로 말했다.

“여기서 나가라. 그로스, 나가서, 본 것을 모두 잊어라.”

그로스는 그 말에 즉시 복종하는 대신 고개를 돌려 비아스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나가면 비아스 님을 불태울 생각이십니까?”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그 말씀은 좀 납득하기 어렵군요. 사람이 사람을 태워 죽이려는데 상관하지 말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이십니다.”

카린돌은 비늘을 부딪치며 그로스를 쏘아보았다. 그로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카린돌에겐 지금 그를 설득할 시간이 없었다. 그로스의 입을 막아놓고 돌아가는 것이 최선책이긴 했지만 기름을 이미 뿌린 후인지라 그것 또한 곤란했다. 침대에 기름 얼룩이 잔뜩 남아 있는 것을 본 비아스가 무슨 생각을 할지 카린돌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카린돌은 사이커를 잡아 뽑았다. 그로스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마케로우.”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라. 여기서 목이 잘린 다음 비아스와 함께 타 죽든, 그렇잖으면 네 몸을 온전히 가지고 나가든. 네 선택은 어느 쪽이지?”

“쓸데없는 협박이십니다.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비아스를 깨울 수 있습니다.”

“시험해 보겠어? 네가 비아스를 깨우는 것과 내가 네 목을 자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빠를지. 내가 비록 고명한 검법가는 아니지만 사이커는 예리하지. 몸이 차가워져 있는 너는 피하지 못할걸.”

그로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카린돌의 몸을 살폈다. 그 몸은 자신의 몸보다 훨씬 뜨거웠다.

“네게 운이 있어 비아스를 깨운다 해도 상황이 바뀌진 않아. 나는 비아스도 벨 테니까! 자, 선택해 보시지?”

“사람의 목을 일격에 자르는 건 사이커로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카린돌.”

“그래서?”

“당신은 저를 상처입히는 것이 고작일 겁니다.”

“내가 얼마나 필사적인지 알고 싶어?”

“알려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기름과 불과 칼을 들고 오신 지금의 모습만 보아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예를 들자면, 지금 당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는 철퇴 같은 것.”

카린돌은 기절했다.

두개골이 으스러질 정도로 내려친 철퇴에는 카린돌의 살점과 비늘이 묻어났다. 그것을 쥔 남자는 헐떡거리며 그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로스 역시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기분 나쁘게도 그로스의 손에는 기름이 묻었다. 그로스는 그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제기랄, 좀 더 빨리 올 수 없었나? 시간 끄느라고 미치는 줄 알았어.”

철퇴를 내려친 남자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여자를 공격했다는 사실 때문에 받은 정신적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카린돌의 뒤통수만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른 세 남자들도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정을 깨달은 그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철퇴를 든 남자의 어깨를 툭 쳤다.

“잘했어. 고마워, 보트린.”

보트린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껌뻑거리다가 겨우 미소를 지었다.

“이 여자가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따라오긴 했지만, 공격해야 된다고 결정한 이후로 이 여자가 하는 말은 거의 듣지 않았어.”

“카린돌은 비아스를 사형(私刑)할 생각이었어. 침대 주위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를 참이었지. 정말 박력 넘치는 여자야. 그 끔찍한 점화통부터 치워. 지금 내 몸은 기름투성이야. 나는 그걸 줍기도 싫군.”

남자들 중 한 명이 카린돌의 손에서 점화통을 집어 들었고 곧이어 보트린이 사이커를 집어 들었다. 보트린은 그것을 그로스에게 넘겼다. 사이커를 받아든 그로스는 카린돌을 내려다보았다.

“행운이었어. 이 여자는 우리가 목소리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지. 우리가 먼저 목소리를 내었다면 카린돌이 들었을지도 몰라.”

다섯 남자들은 저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카린돌과 비아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카린돌이 온 것을 보니 스바치와 함께 자고 있던 것은 아닌 모양이군.”

“맞아. 스바치는 오늘 혼자 자고 있어.”

“카린돌이 이 거사를 위해 스바치를 쫓아 보낸 모양이군.”

“그 녀석과 카루를 붙잡자. 그리고 카린돌과 함께 데리고 간다.”

“카린돌과 스바치와 카루를 함께?”

“그래. 스바치와 카루가 카린돌을 납치한 거지.”

“이봐. 스바치와 카루가 왜 카린돌을 납치할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 설명해 주겠어? 그게 설명되지 않으면 엉성하게 급조된 계획이라는 평을 피하기 어려울 텐데.”

“이건 어떨까. 마케로우 가문에서 살아남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카린돌이 스바치와 카루와 함께 자기 가문을 만들려고 키보렌 숲 어딘가로 도망쳤다.”

“솔직히 그건 더 엉성하군. 그냥 납치로 하지.”

“그렇다면 이유는?”

“사람들은 비아스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지.”

“흐음. 비아스가 남자들을 시켜 경쟁자인 동생을 납치하게 한 것이군. 그건 괜찮은데.”

“그래. 납치자가 둘이니 계획적인 것으로 보이겠군. 그렇다면 증거는 뭐로 하지?”

“카루와 스바치의 방에 ‘계획대로 되었습니다. 비아스.’라고 씌어진 양피지를 남겨두면?”

“농담하지 마. 보트린. 특별히 증거를 남기지 않아도 돼. 조만간 사람들은 우리들의 말을 무시할 수 없게 될 테니.”

“아니, 잠깐. 더 좋은 방법이 있다.”

그 말을 꺼낸 것은 그로스였다. 나머지 네 사내는 그로스를 응시했다.

“일단 지금부터 전부 소드락을 복용한다. 그리고 넌 지금 카린돌을 데리고 심장탑으로 가라. 그리고 나머지는 나와 함께 스바치와 카루를 잡으러 간다.”

“그 다음에는?”

그로스는 계획을 설명했다. 나머지 네 사람은 그 계획에 만족했다. 잠시 후 급가속된 나가들이 다섯 줄기의 바람처럼 움직였다.

이튿날 아침, 비아스는 격분하여 손에 잡히는 것을 모조리 박살 내었다.

침대 주변에 뿌려진 기름은 그때까지도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비아스는 탁자 위에 놓인 실험 도구를 모조리 탁자 아래로 밀어 버린 다음 겨우 호흡을 고르고서는 난장판 가운데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그로스!>

<불을 붙이기 직전에 제가 카린돌 마케로우 님에게 덤벼들었습니다. 하지만 카린돌 마케로우 님은 사이커를 가지고 계셨고 저는 맨몸이었지요. 카린돌 마케로우 님은 제 가슴을 벤 다음.>

그로스는 가슴의 베인 상처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동료가 베어 준 상처라는 사실은 니르지 않았다.

<도망쳤습니다. 저는 그녀의 뒤를 쫓았습니다. 당신을 깨울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걱정이 더 컸습니다.>

<그래, 잘했어! 그 미친년은 어쩌면 이 집을 태워 버렸을지도 몰라!>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녀는 스바치와 카루와 함께 저택을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그녀가 어디로 도망치는지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에 그들의 뒤를 추적했습니다. 그들은 심장탑으로 도망쳤습니다.〉

<심장탑이라고!〉

<그렇습니다.>

비아스는 창밖의 심장탑을 돌아보았다.

<그 년이 수호자들에게 보호를 요청할 생각이군. 그래서 그놈들도 데려간 거야. 어림없는 짓을!〉

어느 가문에도 소속되지 못한 나가 남자들이 범죄에 휘말리거나 할 경우, 누구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는 그 남자들을 위해 심장탑이 나서서 보호자 노릇을 맡곤 한다. 수호자들이 남자를 보호하고 변호하는 일을 맡는 것이다. 하지만 여자의 경우에는 가문에 소속되어 있기에 그런 보호를 할 필요도, 권리도 없다. 비아스는 카린돌이 수호자들의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 남자인 카루와 스바치를 내세웠다고 판단했다.

<그로스!>

<예. 마케로우.>

<당장 심장탑으로 가거라. 내 서신을 가지고.>

그로스는 이해력이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비아스가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방 안으로 뒤져 재빨리 양피지와 필기구를 찾아내었다. 그로스가 벼루에 먹을 가는 동안에도 비아스는 분노를 참지 못하며 몇 개의 물건을 더 박살 내었다. 그로스가 간신히 먹을 다 갈아 놓자 비아스는 한달음에 달려와 붓을 집어 들었다.

비아스는 카린돌 마케로우가 방화 기도자이며 살인 미수범임을 강력히 주장한 다음 두 남자에 대해서는 알 바 아니지만 카린돌은 마케로우 가문의 방식으로 처벌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양피지 위에 써 놓은 글씨는 그녀 자신의 분노를 담아 거칠었고 그 난폭한 글씨는 다시 비아스를 분노하게 했다. 비아스는 양피지를 그로스의 얼굴에 팽개치며 말했다.

<가서 카린돌을 잡아와라! 한 번 놓친 걸로 충분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주었는데 또 놓친다면 가만두지 않겠다!>

그로스는 목숨을 구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할 것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속으로 씁쓸하게 웃으며 그로스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몇 시간 후, 비아스는 그로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서 기막힌 기분까지 느껴야 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