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9장 – 북부의 왕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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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9장 – 북부의 왕 (3)


의도와 행위 사이의 불일치가 빚어내는 불쾌한 결과를 가리키는 말로 실수는 것이 있다. 그 말을 따른다면 조타 중대사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어쨌든 티나한은 키준 산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을 방법을 열성적으로 모색하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케이건의 경우에도 여전히 그 설명은 들어맞지 않았다. 케이건 드라카는 찢어지려는 자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몸 일부분은 앞으로 달려나가 륜의 몸을 산산조각 내고 그 피를 몸에 뒤집어쓰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그런 일부분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내며 자리에 앉아 조용히 륜을 바라보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후자의 요구에 따라 케이건은 륜이 그를 속인 나가가 아님을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전자는 케이건에게 그저 눈을 뜨고 똑바로 바라볼 것을 요구했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가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케이건은 그 나가를 갈기갈기 찢어 놓기를 원했다.

원추리, 그녀가 좋아했던 꽃.

다른 것이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나 그녀가 좋아했던 날씨. 그 어떤 것이라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케이건이 닻 · 덮개 · 장애물 · 접근 금지 표시로 사용했던 것은 그녀가 좋아했던 꽃이었다.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 이상, 지나치게 두껍게 쌓여 있는 시간의 바닥으로 갑자기 끌려 내려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바꿔 말한다면 단단한 현재를 디딘 채 계속 ‘길잡이’로 서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티나한이 그 꽃의 이름을 말했고 기억의 누락이 보충된 순간 케이건은 그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 침몰은 겉으로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며,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케이건 자신조차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잠시 현재를 살며 과거를 살았다. 어리둥절한 상태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가가 그를 세 번째로 속였을 때 케이건은 그 깊은 바닥에서 위로 솟아올랐다. 잊고 있었던 과거와 연결된 상태로. 케이건이 느끼고 있는 몸이 찢어질 듯한 갈등은 바로 그런 부상(浮上)의 여파였다. 과거의 그가 원하는 것과 현재의 그가 원하는 것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케이건은 한 번에 두 가지 역할은 수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것을 천천히 시험하고 있었다.

서두르지도, 흥분하지도 않으면서.

돌이킬 수 없이.

케이건은 륜을 바라보았다.

륜은 원무를 추는 두억시니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저 먼 남쪽 밀림 속의 피라미드에 있는 ‘그것’은 일의 경과에 대해 몹시 실망하고 있는 듯했다. 케이건은 니름을 들을 수 없었지만 두억시니들의 움직임에서 묘한 실망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니름을 들을 수 있는 륜은 그 실망감을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너희 동족은 정말로 괴악하구나. 륜 페이.>

<할 니름이 없습니다.〉

<신을 잃고 이렇게 슬퍼하는 나와 나들도 있다. 우리 존재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신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고 그런 흉한 일을 벌이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구나. 신을 억류한다고? 그래서 무엇을 얻는다는 거냐? 여신의 증오?>

<저는 중도 포기한 수련자일 뿐이라서 신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는 명징하게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하기로, 그들은 물의 힘을 자유로이 쓸 수 있게 된 듯합니다.>

<설명해 다오.>

〈물, 불, 바람, 흙은 세상을 이루는 힘의 근원들입니다. 그것들은 서로 엉겨 세상을 이룹니다. 그리고 신들은 그 힘들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의 힘을 통제하는 여신을 억류함으로써 그들은 그 통제권을 훔칠 수 있게 된 듯합니다.>

<어떻게 해서?>

<신명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오직 발자국 없는 여신만이 신명을 허락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이런 끔찍한 배신이 일어난 것이겠지요.>

<너도 신명을 가지고 있잖아.〉

<네?>

륜은 놀란 눈으로 주위를 도는 두억시니들을 바라보았다. 유해의 폭포는 다시 닐렀다.

<너 또한 신명을 가지고 있다고 닐렀다. 그렇다면 너도 네 신부의 힘을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 니름이 맞군요. 하지만 그건…… 여신을 배신한 다른 신랑들의 행위에 동참하는 일이 되는 것 같군요. 그 힘의 주인은 제 신부입니다.〉

유해의 폭포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닐렀다.

<미안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해 줬으면 좋겠다. 너희 나가들 중에 여신과 가장 가까운 것은 신명을 받은 너희 신랑들이라고 생각되는데, 맞는가?>

<협의적으로, 맞습니다.>

<그렇다면 너 이외에 누가 신부의 것을 사용할 수 있지?>

<아무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 힘의 주인은 여신입니다. 신명을 받은 저희들이 비록 여신에 대해 보다 가까운 관계를 주장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설마?>

<륜. 그렇다. 나는 네가 여신의 힘을 이용해서 두억시니의 신에게 일어난 일을 확인해 주었으면 하는데.>

안타깝게도 륜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륜은 두억시니들을 향해 닐렀다.

<죄송합니다! 우선 제가 먼저 시도해 볼 일이 있습니다. 대화는 다음에 하면 안 되겠습니까?>

륜은 유해의 폭포가 보내어 오는 정신에서 뚜렷한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천년의 세월을 흘러내린 그 폭포가 함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미덕은 참을성이었을 것이다. 유해의 폭포는 주저하지 않고 접촉을 끊었다. 두억시니들의 원무가 멈췄다.

그리고 륜은 두억시니들 사이를 빠져나가 마루 위로 뛰어올랐다.

축대 위에 엎드려 있던 마루나래가 흠칫하며 일어났고 처마에 앉아 있던 아스화리탈 또한 고개를 홱 들었다. 케이건은 손을 등 뒤로 돌려 바라기의 자루를 움켜쥐며 일어났다. 하지만 두억시니들을 관찰하고 주위를 둘러본 케이건은 어디에서도 위험을 느끼지 못했다. 마루나래와 아스화리탈 또한 같은 결론에 도달한 듯 경계 태세를 풀었고 케이건은 고개를 갸웃한 채 륜이 들어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륜은 사모 페이가 누워 있는 방에 뛰어들었다.

그 자신이 만든 상처는 이미 아물어 있었다. 하지만 사모 페이는 살아 있지 않았다. 륜이 보내는 어떤 니름에도 대답하지 않는 그 정신은 엄격하게 닫혀 있었다. 그 곁에서 륜이 보내어야 했던 시간들은 황폐하고 어둡고 차가웠다. 하지만 이제 륜은 그런 시간들을 부정하며 사모의 곁에 무릎을 꿇었다.

륜은 뚜렷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륜은 침착해지려 애썼다. 마침내 만족할 만한 정신 상태에 도달했을 때 륜은 차분하게 닐렀다.

<라르간드.>

륜은 불과 조금 전 유해의 폭포에게 ‘힘은 여신의 것’이라고 닐렀던 것을 잊지는 않았다. 륜은 자신을 합리화해 보려 했다. 여신의 힘은 무엇인가, 여신의 의지는? 신들은 자신의 선민 종족들을 보살핀다. 발자국 없는 여신이 원하는 것은 나가의 복지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모두 헛니름이다.

륜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 시도하는 자기 합리화는 니름도 안 되는 웃기는 짓거리다. 어쨌든 신은 ‘전일 근무 가능한 무 보수 만능 하인’이 아니다.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 누나를 되살린다는 극히 개인적인 욕구를 위해 여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은 부도덕하다.

그 힘을 탐내어 여신을 배신한 다른 신랑들만큼이나.

그러나 륜은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의 시야는 계속 축소되어 마침내 그의 우주 속에 륜과 사모를 제외한 모든 것을 삭제했다.

전 우주에 존재하는 하나의 의미를 향해 륜은 닐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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