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마시는 새 : 9장 – 북부의 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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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 9장 – 북부의 왕 (4)


티나한은 케이건을 보곤 손을 흔들었다. 케이건은 가볍게 목례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학당 앞을 지키고 있는 초현실적인 호위병들을 죽 둘러본 티나한은 철창을 나무에 기대어 놓고는 케이건 옆에 섰다.

“나 떠날 거야.”

“그러시오?”

“응. 대사원에서 받은 임무는 벌써 오래전에 끝냈고,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이 안전하다는 것도 확인했으니 이제 본래 하던 일로 돌아가야지. 가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어.”

“무엇이오?”

“네가 해 보였던 하늘치 도발 말이야. 만일 내가 그걸 흉내 내서 하늘치를 땅에 내려오게 한 다음 그 등에 올라타겠다면, 그거 괜찮은 생각일까?”

“죽을 거요.”

자르듯 말하는 케이건의 태도에 티나한은 머쓱한 기분을 느꼈다.

“살아서 그 등에 올라탈 방도가 전혀 없을까?”

“딱정벌레를 타고 있다면 도망치는 것은 가능하오. 나와 비형이 그랬듯이. 하지만 딱정벌레는 도망치는 것 외에는 다른 도움을 줄 수 없소. 절대로 접근하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맨몸으로 요동치는 하늘치에 뛰어오를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봐도 미친 짓이오. 저들에게 물어보면 아마 확인할 수 있겠지.”

케이건이 가리킨 것은 두억시니들이었다. 티나한은 아랫부리를 쓸어 만지며 말했다.

“그렇다면 역시 연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인가.”

“다른 방법도 있소.”

“뭐지?”

“인간의 신체를 찾아서 그 영을 빼 버림으로써 어디에도 없는 신을 봉인해 버리는 것. 그러면 승려들은 바람의 힘을 자유로이 쓸 수 있을 거요. 당신은 그들이 일으킨 바람을 타고 영광의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 거요.”

티나한은 약간 당황했다. 케이건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조금 생각한 티나한은 그것을 차가운 농담이라고 판단하기로 했다.

“나가들은 정말 고약한 짓을 했어.”

케이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티나한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도대체 그렇게까지 해서 세상의 나머지 반을 손에 넣고 싶은 걸까? 지금도 이미 반을 가지고 있잖아. 그리고 나는 나가들이 영토 부족에 헐떡인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

케이건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티나한은 부리를 살짝 부딪치고는 말했다.

“네 계획은 뭐야?”

“계획?”

“그래. 너도 일 끝낸 거잖아. 이제 어떻게 할 건데? 집으로 돌아가서…………, 그걸 계속할 거야?”

“나가를 잡아먹는 것 말이오?”

티나한은 벼슬을 조금 경직시켰다.

“뭐, 그래.”

“여기 있을 거요.”

“왜?”

“쥬타기 대선사가 다음에 요청할 것을 짐작하니까.”

“그게 뭔데?”

케이건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발자국 없는 여신을 구출하라는 요청을 할 거요. 정확하게 말한다면 발자국 없는 여신이 갇혀 있는 신체를 구출하는 일이 되겠지만.”

티나한은 크게 놀랐다.

“말도 안 돼! 그 신체가 어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나가들의 도시 가운데 엄중하게 격리되어 있을걸?”

“아마도 하텐그라쥬의 심장탑일 거요. 현재로서는 그보다 더 그럴듯한 장소를 떠올릴 수 없군. 모든 일이 일어난 곳이 그곳이니까.”

“그런가? 그렇겠군. 어쨌든 그건 륜을 구출하는 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려운 일이야. 륜은 우리를 만나려고 스스로 찾아왔어. 하지만 그 신체는 하텐그라쥬 가운데 갇혀 있을 텐데, 그럼 너는 하텐그라쥬까지 들어가야 하잖아? 불가능해!”

“그렇겠지.”

“그럼 거절할 건가?”

“아니오.”

티나한은 격노했다.

“왜! 저 중들의 요청이 있으면 개죽음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제기랄, 굳이 따지고 보면 이건 그 땡중들이 멍청하게 속아 넘어가서 일어난 일이야. 나가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허겁지겁 신명을 가진 사자를 모셔오고, 만다라를 그리고, 여신을 불러내 줬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그 놈들이 책임지라고 해! 네가 책임질 필요는 없어.”

“나는 그렇게 할 거요. 티나한.”

“무엇 때문에!”

“그래야만 내가 원하지 않는 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

티나한은 무슨 선문답이냐는 듯이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케이건이 더 이상 설명할 생각이 없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욕구 불만을 느낀 티나한이 다시 뭔가를 따져 보려 할 때였다. 머리 위로 세찬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티나한은 깜짝 놀라 위를 바라보았다. 한순간 티나한은 비형이 돌아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은 나늬에 비하면 훨씬 작은 딱정벌레였고 사람을 태우고 있지도 않았다. 함께 그 모습을 올려다본 케이건이 말했다.

“하인샤 대사원의 딱정벌레요.”

“대사원의?”

“그렇소. 즈믄누리는 세상의 몇몇 중요한 장소와의 긴밀한 연락을 위해 품종이 좋은 딱정벌레를 파견하곤 하오. 저것도 그중 하나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무래도 도깨비들의 사육 실력을 따를 수 없다 보니 저런 왜소한 놈으로 키울 수밖에 없는 모양이오. 연락용으로만 쓰이니 사람을 태울 필요는 없고, 그래서 작아도 상관은 없겠지만.”

“사람을 태우지 않으면 어떻게 연락을 한다는 거야?”

“긴 내용이라면 서신을 가지고 있을 테고 짧은 내용이면 수화로 전달하오.”

“아하, 그렇군. 그렇다면 저건 즈믄누리로 날아가는 건가?”

“그럴 거요. 아마도 작금의 사태를 전달하기 위해서 날아가는 것이겠지. 나가 잡는 것은 도깨비라고 하니, 바우 성주의 조언은 도움이 될 거요.”

“조언보다는 도깨비 수백 명을 보내 주는 쪽이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네가 하텐그라쥬로 쳐들어가는 것을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도깨비들에게는 요청할 수 없는 일이오. 티나한.”

“그렇다고 해서 혼자 갈 수는 없잖아.”

“사제들이 요청하면 혼자라도 갈 거요.”

티나한은 험악한 표정으로 케이건을 바라보았다. 그의 견해로 케이건의 말은 ‘자살하겠다’는 말과 완전히 동의어였다. 나가 도시 한가운데의 인간이라니, 그보다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케이건은 하텐그라쥬에 도달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티나한에게 설득의 재능은 언제나 낯선 것이었다. 티나한은 케이건을 도통 설득할 수 없었다. 결국 티나한은 케이건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티나한은 륜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두억시니들과 마루나래는 티나한이 무학당에 접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티나한은 몇 번 고함을 질러 보았지만 륜은 나오지 않았다. 케이건은 륜이 청각에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을 거라고 설명했다. 결국 티나한은 케이건에게 인사를 당부한 다음 떠났다.

그러나 티나한에게 있어 하인샤 대사원을 떠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일주문을 향해 내려가는 티나한에게 다가서는 사람들의 숫자는 엄청났다. 그들은 티나한에게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내려고 애썼고 결국 티나한은 화가 났다는 표시로 깃털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문이 가까워졌을 때 티나한은 괄하이드 변경백에게 걸음을 멈출 것을 요구당해야 했다.

“케이건 드라카와 동행 맞으시오?”

티나한은 빳빳하게 곤두선 깃털들 사이로 괄하이드 변경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렇다. 티나한이라고 한다. 너, 케이건과 싸웠다는 그 인간이냐?”

“그렇소. 괄하이드 규리하라 하오. 여기를 떠나는 길이시오?”

“그래.”

“괜찮으시다면 산 아래까지 함께 걸어도 되겠소?”

티나한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티나한은 용감한 사내를 존중했고 깃털을 빳빳하게 곤두세운 레콘 앞에서 태연할 수 있는 남자는 용감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티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그들은 함께 오솔길을 걸었다.

엄숙한 나무들 사이로 숲내음이 흘러넘쳤다. 희미한 흙냄새는 티나한을 기분 좋게 했다.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의 힘이 땅이라고? 티나한은 레콘이 왜 모종의 액체를 싫어하는 건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모종의 액체는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그보다 더 낮은 것이 있다면 땅이 거기에 해당한다. 조각난 채 오솔길 위에 흩어져 있는 햇빛을 밟으며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한 채 걸었다.

“케이건 드라카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겠소?”

괄하이드의 조용한 질문에 티나한은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케이건 드라카에 대해 무엇이 궁금하지?”

“여러 가지. 그는 정말 북부의 왕이 될 작정인 거요? 그렇다면 그는 그에 합당한 자요? 합당하다면 어떤 점에서 그렇고 합당하지 않다면 그 부족한 것들은 보완될 수 있는 거요?”

“케이건은 왕이 될 생각이 없어.”

“그렇다면 역시 그건 나를 싸움에 끌어들이기 위해 한 말이군.”

“아마 그럴 거야.”

괄하이드는 조금 침묵했다가 말했다.

“만약 내가 그를 북부의 왕으로 추대한다면, 그건 망령된 짓이겠소?”

티나한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괄하이드는 눈썹을 곤두세운 채 티나한을 노려보았다. 티나한은 손을 내저었다.

“어, 아냐. 너를 비웃는 것이 아냐. 네가 케이건에게 그렇게 말하면 케이건이 어떻게 대답할지가 떠올라서 말이야.”

“뭐라고 대답할 것 같소?”

“미안하지만 너를 박살 낸 다음 이렇게 말할 거야. 잔치는 모두 끝났소. 집으로 돌아가시오.”

변경백은 당연히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티나한은 변경백에게 그들이 여행하는 동안 만났던 제왕병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괄하이드는 이해했다.

“그런 시답잖은 작자들에게라면 나 또한 그렇게 말해 줬을 거요. 만약 규리하 영지 내에서 그런 자를 만났다면 참살을 명령했을 테고. 하지만 케이건이 그런 시답잖은 자들에 속하는 사람이오?”

티나한은 인간들이 나가 잡아먹는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알 수 없었다. 결국 티나한은 그것을 언급하는 대신 질문을 하기로 했다.

“왕을 그렇게 되찾고 싶은가?”

“그것은 우리 가문의 사명이나 다름없소. 물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왕이 돌아올 때까지 그 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오.”

괄하이드는 잠시 침묵했다.

“어쩌면 나는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소.”

괄하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왕의 땅을 지키기 위해 왕의 백성이 될 자들을 때려 죽여야 한다는 모순에 말이오.”

티나한은 깊은 인상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군. 그건 모순이군. 키탈저 사냥꾼들의 저주처럼.”

변경백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혜로운 분이시군. 내가 알기로 레콘들은 자신의 평생 숙원에 관련이 없는 지식에는 별 관심도 없다던데. 혹 역사학자가 되는 것이 평생 숙원이시오?”

“아냐. 케이건이 가르쳐 줬어.”

“그렇군. 어쨌든 그것은 내 평생을 바쳐 이룩한 것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모순이오. 케이건은 내 인생이 ‘과부와 고아 생산에 바쳐진 인생’임을 지적했소. 그것은 무사가 당연히 걸머져야 하는 숙명이오. 그러나 내가 가진 모순은 그보다 더 끔찍하오. 나는 지러쿼터 산맥을 넘어오는 왕의 백성들을 죽여 그들의 피로 산맥을 물들였소. 물론 그것은 변경백의 권리요. 왕이 변경백의 것을 함부로 할 수 없듯 왕의 백성들도 변경백의 것을 탐할 수 없음은 마찬가지이니. 하지만……. 아시겠지만 나는 정통 변경백이 아니오. 나는 왕에게 평가받고 싶소. 내가 왕에게 돌아갈 것을 지켜 온 자인지, 그렇잖으면 왕이 주지 않은 권리를 남용하여 왕의 백성을 함부로 죽인 자인지 알고 싶소. 어느 쪽이라도 좋소. 하지만 대답을 얻지 못한 채 죽는 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오.”

티나한은 동정심을 느꼈다.

“무슨 말인지 알겠군. 네가 가치 있게 살았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왕밖에 없는 것이군?”

“무가치하게 살았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도 그 분뿐이오. 티나한.”

“스스로 만족할 수는 없나?”

“그래 보려고 노력했소. 그리고, 죽을 날이 가까운 지금 그런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내 생전에 영웅왕의 검이 돌아온 모습을 보고 싶소.”

씁쓸히 말했던 하이드는 티나한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을 깨달았다. 티나한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영웅왕의 검? 그건 이미 봤잖아. 너 케이건과 싸웠다면서.”

“음? 무슨 말이오?”

“케이건이 가지고 있는 바라기 말이야. 그게 영웅왕의 검인데.”

괄하이드는 60년의 세월 동안 그토록 놀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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