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116화


식탁에 음식물을 올려 놓은 소연은 조심스레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발소리가 나지 않게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걸어서 일층으로 내려왔다. 그곳에는 수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 잘 갖다 줬어요?”

다소 땀이 맺혔는지 소연은 이마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응. 별말 없으셨어.”

수련은 한 손을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곤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안도의 한숨이었다.

“휴…! 다행이다. 평소 같으면 내가 갔을 텐데 오늘따라 혼자 드신다고 하셔서 언니가 힘들었겠네요. 호호. 언니, 이젠 됐으니까 그 보답으로 제가, 녹연육탕을 맛보게 할 영광을 누리게 해줄 테니까 어서 먹으러 가요.”

소연은 동천 일은 잠시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래! 어서 가자. 호호호!”

일층 거실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식탁의 한가운데에는 사슴 요리가 담겨진 큰 쟁반이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먹기 좋게 잘 잘려져 있었다. 소연은 국자로 자신이 먹을 수 있을 만큼 퍼서 앞에 있는 그릇에다 올려놓았다. 그녀가 국자를 내려놓자 이번에는 수련이 국자를 집었다.

“자… 먹자고요! 아마, 맛있을 거예요.”

“그래.”

수련이 말한 것처럼 사슴 고기는 입안에서 살살.. 녹을 정도였다. 소연은 너무나 맛있다고 그녀에게 칭찬해 주었다. 그리고 수련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둘이서 사이좋게 식사를 하던 중 수련은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언니.”

“왜?”

“그,, 왜 있잖아요. 그 강시… 야휴! 이름이…”

소연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화정이?”

그제서야 화정이의 이름이 생각난 듯 수련은 기쁜 듯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래요. 화정이!”

소연은 수저를 놓으며 물었다.

“근데, 걔는 왜?”

“그러니까, 화정이도 먹을 것을 먹나요?”

소연은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물론이야. 걔가 명색이 활강시. 즉 살아있는 강시인데 먹을 것은 먹어야 살지.”

수련은 언니의 말을 신비롭게 들었다. 마치, 딴 나라 얘기인 것 같았다. 강시가 먹을 것을 먹다니…

“후아.. 그럼. 먹을 건 그렇다치고 배설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요?”

소연은 안색을 찌푸렸다. 비록 먹을 거는 다 먹었지만 더러운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울러 어두웠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화정아, 뭐 하니?

-씨익…

-응? 이게 무슨 냄새지?

-씨익..

-앗? 또… 오옹….. 꺅-! 으읍! 우웩!

-씨익…

“부르르르…..”

소연은 생각하기도 싫은 과거를 떠올리자 몸서리를 쳤다. 덕분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물이 올라올 것 같았다. 바로 앞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수련은 언니의 이상한 행동에 걱정스레 물었다.

“언니,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소연은 간신히 욕지기를 참으며 손을 저었다.

“아.. 아니야.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고… 그리고 배설은 어떻게 처리했냐면 활강시는 먹이는 정도에 다소 차이가 있는데 대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싸게 돼 있대.. 화정이는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를 다 먹었기 때문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일을 봐.”

“오줌은요?”

“그건, 이틀에 한 번 꼴이야. 그래서 오줌은 간단하게 요강에 뉘고 큰 거는 내가 사흘에 한 번씩 뒷간에 데려가서…. 앗?”

소연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수련은 깜짝 놀라 물었다.

“왜 그래요? 뭐가 잘못됐어요?”

사색(死色)이 된 소연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그래… 오늘이.. 화정이 큰 거 보는 날인데…. 깜빡했어. 어쩌지?”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리는 언니에게 다가간 수련은 불안해하는 언니를 달랬다.

“걱정 마요. 걔가 꼭 오늘 싸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안 그래요? 평소보다 조금 먹어서 안 쌀 수도 있잖아요. 좋게 생각해요. 언니는 뭐든지 너무 깊게 생각하는 나쁜 버릇이 있다고요.”

원래 소연에게 그런 세심함은 없었다. 그러나 동천과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레 생겨난 본능적인 습관이었다. 소연은 동생의 말을 듣고 좋은 쪽으로 생각을 기울였다.

“그렇겠지?”

수련은 언니가 드디어 마음을 놓자 기뻐했다.

“그렇다구요! 이제 됐으니까, 그 일일랑은 싹! 잊어버려요.”

소연은 그러기로 했다. 부디, 화정이가 일을 벌여놓지 않기를 바랐다.

“알았어. 이제 이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자.”

“예.”

수련은 그 말을 끝으로 소연에게 떨어져 음식들과 다 먹은 그릇들을 날랐다. 소연도 이번에는 거들었다. 설거지가 거의 끝나갈 무렵, 수련이 말했다.

“아차? 언니, 아가씨께 가서 다 드신 그릇들 좀 부탁해요.”

소연은 사정화와 대면하기가 좀 어색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 덕분에 오늘 살아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 않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사정화의 방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다 드셨나요?”

안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소연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사정화는 아까 보았을 때와 같은 자세로 창가에 서 있었다. 아까는 칙칙한 어둠만 내려앉아서 뭐 볼 게 있기에 저러나… 했는데 지금은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둘씩 반짝이고 있어서 그럭저럭 볼만은 했다. 그녀가 별을 보던.. 별을 따던 소연이 상관할 일이 아니었으므로, 소연은 조심스럽게 그릇이 놓여 있는 식탁으로 갔다. 여러 가지 반찬들은 조금 남겨져 있었지만 녹연육탕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소연은 희미하게 웃었다. 사정화같이 지체 높은 아가씨도 자신과 같이 맛있고 맛없는 것을 구별한다는 게 묘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 곁에 동천이 있었지만 동천은 윗사람 같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느껴질까…? 소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미쳤다. 잠시 후 그녀의 볼이 다소 붉어졌다.

“왜 안 가고 있지?”

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 아. 죄송합니다. 가겠습니다.”

당황해서 부산을 떨던 소연은 빨리 가려다 발이 엉켜 넘어지고야 말았다.

우당탕탕… 쨍그랑…….

“아-윽! 이.. 이걸 어째…!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소연은 넘어진 아픔도 잊고 사정화에게 엎드려 빌었다. 사정화는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왜, 나를 무서워하는 거지?”

“예?”

다시 물었다.

“어째서 나를 무서워하지?”

소연은 이런 질문이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멍~하니 사정화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긴 해야겠고…

“그게.. 무.. 무표정 하시니까….”

소연은 사정화의 눈썹이 꿈틀거리자 얼른 입을 다물었다. 사정화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안 치워?”

“예! 예, 치워요. 잠시만요…”

소연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서 이 자리를 피하고만 싶은 심정 밖에 없었다. 손으로 긁어 부서진 식기들을 주워 담은 소연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은 곧, 걸레로 닦아드리겠습니다.”

소연은 쟁반을 들고 일층으로 내려와서 걸레를 찾았다.

“수련아! 걸레!”

한가하게 앉아서 자신의 고운 손(?)을 바라보던 수련은 급한 표정으로 걸레를 찾는 언니에게 의문을 표했다.

“왜요?”

소연은 급했기 때문에 설명해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네가 이층에 올라갈래?”

당연히 올라갈 리가 없었다. 수련은 걸레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빨아서 부엌에다 말려놓고 있어요.”

“고마워!”

소연은 부리나케 달려가서 부엌에 있는 걸레를 찾았다. 눈에 띄게 놓아서 그런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쉴 새도 없이 이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수련은 놀람을 표했다.

“빠르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