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17화
동천에게 도망갈 때도 이렇게 빨리 뛰진 못했다. 소연은 옆구리가 땅기는 것을 참으면서 사정화의 방에 당도했다. 잠시 숨을 고른 소연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들어와.”
다시 한번 숨을 고른 소연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면 곧바로 창문이 보였다. 이번에는 사정화가 보이질 않았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소연은 고개를 숙이고 음식물이 엎어진 부분을 찾아 바닥을 쓸었다. 소연은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깨끗이 닦아야 했으므로 세심하게 닦았다.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사정화가 말했다.
“동천은…”
소연은 고개를 들었다. 그 덕에 사정화와 눈이 맞았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사정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너에게 잘해주니?”
소연은 바로 대답했다.
“예. 아주 잘 대해주세요.”
사정화는 다소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소연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알지 못했다. 곧이어 사정화의 얼굴이 본래의 냉정함을 되찾았다.
“수련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지?”
이번에는 약간 뜸을 들인 후 대답했다.
“예전에 주인님께서 숙취(宿醉)에 고생을 하실 때 수련이 만든 순죽을 먹고 싶다고 저를 보냈는데,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사정화는 더 이상 물어볼게 없는 듯 신형을 돌렸다. 소연은 그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곧이어 질문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다시 걸레질에 신경을 쏟았다. 마침내 얼마 안 가 바닥이 깨끗해지자 소연은 미련 없이 일어섰다.
“청소가 다 끝났으니 이만 가겠습니다.”
사정화는 승낙했다.
“그래. 알았어.”
문을 닫고 나온 소연은 그제서야 힘이 쭉.. 빠졌다. 피곤해진 그녀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왔다. 일층에는 수련이 서성거리고 있다가 언니가 내려오자 쪼르르.. 다가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예?”
소연은 말하기도 귀찮았지만 동생이 물어보는 것을 매정하게 거절할 정도로 독하지 못했다.
“응.. 아까….”
약간의 시간을 쪼개서 설명해 준 소연은 수련의 임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련은 ‘그게 뭐야..’ 하더니, 쫑알대며 언니를 따라 들어갔다.
초저녁이 지나가고 깊은 밤이 찾아왔다. 그에 따라 모두들 순리에 맞춰 잠이 들었다. 여기에는 사정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정화는 오랜만에 곤한 잠에 들 수 있었다. 수련동 안에서는 한랭석화석(寒冷石火石)으로 만든 침대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몹시도 배겼었다. 아무리 내공 증진에 효험이 있어도 수시로 뜨거웠다 차가워지는 고통은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사정화가 쉬고 싶어 했던 이유 중에 이 부분이 가장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강한 척을 해도 아직 애였던 것이다.
산뜻한 공기가 창문을 타고 들어와 휘돌아서 사정화의 고운 뺨을 때렸다. 아울러 그와 같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찍찍…”
어둠 속에서 붉은 두 눈만이 반짝였다. 계면서과의 쥐는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쥐는 사정화와 일장 거리에서 잠시 멈추었다. 아마 상대를 살피는 듯했다. 그때 쥐의 후각에 군침이 돌 만한 냄새가 감돌았다. 냄새를 따라 움직이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바닥에서 구수한 고기 냄새가 풍겼다. 쥐는 혀를 내밀어 그곳을 핥아보았다. 순간 쥐가 몸서리쳤다. 그 정도로 맛이 있었던 것이다. 쥐는 개가 핥듯이 혓바닥을 내밀어 구석구석을 열심히 핥았다. 얼마 안 가 고기의 냄새는 사라졌다.. 쥐는 입맛을 다셨다. 하루 종일 굴 속에 피해 있느라고 배가 고팠었는데 약간의 간을 보니 더욱 배가 고파서 미칠 지경이었다. 오늘 자신의 친구를 잃어서 약간 슬펐지만 친구의 죽음은 식욕(食慾)보다 못했다.
쥐는 내려가서 부엌이나 들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실 그들은 한 곳에 정착하는 습성이 없었는데 어느 날 이곳을 지나치다가 수련이 버린 찌꺼기를 맛보고 너무나 맛이 있어서 아예 눌러앉은 것이었다. 처음 이곳에서 먹었던 그 맛이 떠오르자 쥐의 침샘에서 침이 샘솟듯 흘러 나왔다. 쥐는 지금 자고 있는 인간의 밑을 지나서 그곳에 뚫어 놓은 구멍을 타고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정화의 침대 밑으로 들어가려던 쥐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선가 방금 전에 핥아먹었던 냄새와 동일한 냄새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서서 그 근원지를 찾아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 냄새가 나는 곳을 파악했다.
“새-액…쌕…..”
지금 자고 있는 인간의 입이었다. 쥐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감히 접근하기를 꺼려했다. 어제 그 인간처럼 날카로운 나뭇가지를(칼.) 휘두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쥐는 신중하게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침대 주위를 서성이던 쥐는 사뿐히 뛰어올랐다.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인간을 살펴보니 별 반응이 없었다.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향긋한 고기 냄새가 쥐의 후각을 마비시켰다. 쥐는 냄새에 취해서 정신이 없었다. 쥐가 정신을 차린 것은 자신의 코에 무언가가 닿아서였다. 그것은 인간의 입이었다.
“으.. 응….!”
사정화는 무언가가 자신의 입술을 핥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약간 썩은 냄새를 풍겼다. 사정화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쓰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한동안 잠잠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그 무언가가 고개를 돌린 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쩝쩝거리며 또다시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사정화는 짜증이 났다. 모처럼의 달콤한 잠을 깨우려는 그 무언가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얼굴에 달라붙은(?) 물체를 일직선으로 내리쳤다. 자신도 모르게 내공을 썼다.
-퍽-!
“찍-!”
사정화는 꿈속에서 ‘찍소리도 못 낸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찍소리가 있었으니 그런 말이 나왔겠지만 그녀는 그런 소리는 단연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꿈속일지라도 그런 소리가 들렸다. 신기했다. 그래서 그녀는 귀찮더라도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꿈에서 맡았던 썩은 냄새가 현실에서도 풍겼다. 자리에서 일어나 코를 막았다. 입술에서는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혀로 핥아보니 찝찔했다. 심히 기분이 나빴다.
“퉤.. 퉤퉤…!”
고개를 돌려 침을 내뱉은 사정화는 한 손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컹…
“흑?”
손안에 무언가가 만져졌다. 소름이 쫙.. 끼쳤다. 사정화는 얼른 침대에서 뛰어내렸다. 내공을 운용하니 빠르게 시야가 환해졌다. 곧이어 물컹거렸던 장본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정화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귀를 기울여보니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정화는 소리죽여 검은 물체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쥐 같아 보였다. 그때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그게요. 보통 쥐하고는 차원이 틀린 놈이거든요. 얼마만큼 크냐 하면요, 왜 밤마다 돌아댕기며 음식 찌꺼기 쳐먹는 도둑 고양이들 알죠? 그 정도라니까요?>
사정화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입술을 매만졌다. 갑자기 욕지기가 일어났다.
“욱! 우-욱!”
그녀는 문을 박차고 재빨리 일층으로 내려갔다. 거실에서 물독을 찾은 사정화는 거기에 얼굴을 처박고 한 손으로 입술을 비볐다. 그녀의 그런 행동은 숨이 찰 때까지 계속되었다. 얼마 후 그녀의 고개가 들려졌다.
“푸하… 하아.. 하아…”
사정화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물독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들 때문에 물독 안은 수없이 많은 파문들로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그녀의 손이 호선을 그었다.
-파악..!
물독이 깨지며 그 속에 숨어있던 물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녀는 어느새 멀찌감치 물러서 있었다. 바닥은 터진 물들로 난장판이었다. 그래도 못 참겠는지 사정화는 욕실(浴室)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서둘러 옷들을 벗었다. 하나둘씩 흘러내리는 옷들을 챙길 새도 없이 이미 마련된 욕통 속으로 몸을 담갔다.
-촤아-악… 촤아….
욕통 안의 물들이 새로 들어찬 부피를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사정화는 숨을 들이키고 머리끝까지 물속에 담갔다. 그 안에서 그녀는 꿈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되새겨 보았다.
<무언가가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 귀찮아서 내리쳤다. -> 깨어보니 자신의 옆에 큰 쥐가 죽어 있었다.. -> 그렇다면 자신의 입술을 핥은 것은….>
“부들부들…”
몸이 절로 떨렸다. 아울러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분에 못 이겨 몸 안의 전 내공을 밖으로 방출시켰다.
콰지-직..! 퍼엉! 쏴아아….
욕통이 부서지자 사정화의 희고 깨끗한 육체가 드러났다. 아직 어려서 감흥은 없었지만 옥(玉)같이 매끄러운 피부였다. 사정화의 몸을 파아란 기류가 감돌았다. 내공을 운용하고 있는 까닭이었다. 다리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있던 사정화가 서서히 얼굴을 들었다. 보기에도 섬뜩한 표정이었다. 어두운 정적 속에서 그녀의 두 눈동자만이 불타올랐다.
“으-응…!”
평소 잠귀가 밝았던 수련은 천근 같은 눈썹을 들어 올렸다.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러나 천근의 무게가 명성을 자랑하듯 수련의 눈꺼풀을 눌러 내렸다.
“에이.. 몰라. 몰라…”
수련은 다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