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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22화


팔장로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휴우..그럼, 어서 하죠. 이 아이의 상태도 위험하니….”

육장로는 진기를 서서히 주입시키면서 자신의 사제를 보았다.

“사제, 내가 자네에게까지 부담을 주는군. 지금이라도 그만둘 수 있네. 결정하게.”

팔장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됐습니다. 우리 사이에 부담이고 뭐고 있겠습니까? 저도 같이하겠습니다.”

육장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팔장로도 서둘러 진기를 주입했다. 그들의 진기는 위아래로 각기 하나씩 통로를 맡아 거대한 내공의 힘으로 막힌 혈들을 뚫어댔다. 막혀있던 혈들이 뚫리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드디어 도연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우득..우두둑!

도연의 몸과 얼굴이 흉측하게 비틀리면서 뼈가 분리되었다가 다시 맞춰지는 작업이 반복되었다. 기절한 도연의 입에서 검은 피들이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그 바람에 도연의 상의는 피로 흥건히 젖었다. 종래에 붉은 피가 섞여 나오자 출혈이 서서히 멈추었다. 제일 끝 반대쪽에서부터 서로 밀고 들어오던 육장로와 팔장로는 진기가 점점 다가와 부딪힐 정도로 가까워지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눈짓으로 모든 것을 주고받았다. 뼈와 근육들이 쉴새없이 재구성되는 가운데 도연의 임독이맥 부근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꽝!

“울컥…!”

도연이 선홍색 피를 약간 내뿜었다. 바르르..떨리던 도연의 눈꺼풀이 힘겹게 올라갔다.

‘여..여기는…아? 저 할아버지는….그리고 이 느낌은…..’

-콰광!

“컥? 으웩!”

내부가 터지는 고통에 도연은 한 사발의 피를 다시 쏟아냈다. 혼미해져 가는 그의 귓가에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리거라! 네놈은 고작 이 정도였더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들린 목소리는 아까 자신을 해코지한 노인의 음성이었기 때문이다. 도연의 중부혈에 두 손을 얹고 있던 팔장로도 창백한 안색으로 전음을 보냈다.

『참아라..!』

도연은 명치 부근으로 거대한 힘이 치고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콰-앙! 콰아아아……

“큽! 끄으으으….”

갑자기 온몸이 상쾌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신은 혼미해졌다. 눈앞의 노인이 두세 명으로 불어났다가 원상태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가물거리는 도연의 의식 속으로 하나의 음성이 파고들었다.

“후우. 성공이다…”

그것으로 도연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육장로는 도연이 쓰러지는 것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그는 자신의 뜻을 별말 없이 따라준 사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수고했다.”

대형의 음성에 힘에 겨워 숨을 고르던 팔 장로는 고개를 들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이 가졌던 의문이 아니었다.

“호법을 서겠습니다.”

육장로는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서서히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들끓던 진기가 어느 정도 사그라지자 육 장로는 운기조식을 멈추었다. 팔장로는 그 즉시, 가부좌를 틀었다. 사제를 지켜봐 주던 육장로는 쓰러져 있는 도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도연은 숨을 고르게 쉬며 편안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군데군데 벗겨진 살갗들이 보였다. 환골탈태가 성공했다는 간접적인 증거였다. 육장로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상념(想念)은 얼마안가 깨졌다.

“사형.”

육장로는 눈을 떴다. 사제는 다소 굳은 얼굴이었다.

“많이 궁금하겠지.”

팔장로는 대형을 마주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렇습니다.”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앉아서 뚫어지게 자신의 사제를 바라보던 육장로는 이제, 말해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육장로의 입술이 무겁게 열렸다.

“어느 날, 나의 사부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사십여 년 전…

일혼은 사부의 부름으로 사부가 은거하고 있는 장소로 찾아갔다.

“부르셨는지요.”

제자의 인사를 건네받은 그의 사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다.”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사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놈은 여전히 감정을 닫고 있구나.”

“죄송합니다.”

“쯧쯧..어리석은 놈. 허나, 나중에라도 깨닫게 될 터이니 상관은 않겠다. 내 너를 이렇게 부른 것은 중대한 내용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하명하십시오.”

그의 사부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자신이 할 말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너도 알다시피 우리 사혼대는 여러 전대의 가주님들을 보필해오면서 엄청난 진보(進步)를 거두었다.”

일혼은 수긍했다.

“익히 알고 있습니다.”

일혼의 대답으로 잠시 끊겨졌던 사부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그렇다. 그래서 19대조 사혼대님들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대 전의 사혼대님들은 엉뚱한 상상을 하시게 되었다.”

‘엉뚱한 상상?’

일혼은 그 다음 말을 듣고 싶었으나 사부가 말하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저하자, 할 수 없이 자신이 물어보아야 했다.

“무슨…”

일혼은 사부의 이마에서 한 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 땀방울이 떨어져 옷소매를 적시자 그제서야 사부의 말문이 트였다.

“휴..좋다. 이미 말하기로 된 것이니 서슴없이 말해주마. 그분들은 이런 상상을 하셨다. 과연, 자신들은 얼마나 강한가? 그리고 자신들의 무공은 주군을 얼마만큼 곤혹스럽게 할 수 있을까.. 아울러…음. 아울러 주군을 능가하지는 않을까…..”

“…….”

일혼은 마지막 말에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자신들의 무공이 주군을 능가할 것이라는 생각을 품다니…. 감히, 생각조차 가당한 일인가? 이는 반역과도 같은 행위였다. 일혼은 갑자기 정신이 혼란해졌다. 한껏 얼굴을 구기는 제자의 모습에 사부는 아랫입술을 자근자근 깨물었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꽤나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신중히 일을 처리해 나갔다. 우선 각기 자신들의 무공을 하나씩 극한의 무공으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허나 일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그분들은 주군과 손속을 겨루기도 전에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야 말았다.”

일혼은 자신도 모르게 질문했다.

“무엇입니까?”

사부의 안색이 약간 풀렸다.

“서로의 무공을 극한까지 함축 시켰으나 그분들의 무공이 서로 섞이지 못한다는 문제가 벌어진 것이다. 그분들은 낙담했다. 그러나 이렇게 끝낼 수가 없었다. 그분들은 마지막까지 하나의 무공을 만들려고 노력하셨다. 하지만, 끝내 그 무공은 미완의 무공이 되고야 말았지. 세월이 흘러 하나둘 생을 마감하자 제일 마지막까지 남으셨던 일혼님은 극도의 허탈감에 그 무공기서를 미완으로 남겨둔 채 무덤까지 가지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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