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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56화


그로부터 삼일이 흘렀다. 그동안 동천과 도연은 산을 내려가 인가(人家)가 있는 곳이면 아무 곳이나 찾으러 돌아다녔었다. 쉽진 않아도 어쨌든 산을 내려가 약왕전에 돌아갈 수 있었으나 그들이 계속 산을 헤매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애새끼가 있었다.

“아냐, 거기가 아닐 거야. 이리로 가자.”

바로 동천이었다. 처음 하루 동안은 여러 맹수들에게 공격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동천이 돌을 던져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인 맹수의 고기를 구워 먹으며 끼니를 때운 그들은 이틀이 다 지나갈 때쯤 영수산 영역을 벗어났다는 걸 실감했다. 더 이상의 공격이 없었던 것이다. 살았다고 생각한 동천은 도연의 말을 무시하고 자신이 가고픈 곳으로 무턱대고 걸어갔다.

그렇게 해서 바로 오늘이 삼일째.

“음. 여기도 아닌게벼…”

이쯤이 돼서야 슬슬 미안해지기 시작했는지 동천은 말끝을 흐리며 도연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늘 그렇듯 도연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도대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동천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에 따라 절로 욕이 튀어나왔지만 동천은 그것을 속으로만 떠벌렸다.

‘에이, 씨발놈.’

도연은 주군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쳐다본다는 것을 알았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그제야 동천은 자신이 도연을 너무 오랫동안 꼴아봤다는 것을 깨닫고 자연스레 시선을 거두었다.

“아무 것도 아니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 임마.”

동천은 괜히 길도 나 있지 않은 숲을 헤치고 들어갔다. 도연은 수풀 속으로 사라진 동천을 얼른 쫓아가며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이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방향치인 동천이라 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동천도 잠깐만 들어갔다가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도연의 말을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지금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었다.

“야. 니가 뭘 모르나 본데 나에게는 늘 하늘님의 가호가 맴돌고 있어. 즉! 내가 가면 아무리 늪이라 해도 길이 되는……우엑?”

뻔질거리며 주저리를 늘어놓던 동천은 갑자기 푹 꺼지는 무른 땅에 기겁을 했다.

“사, 살려줘! 으악! 점점 빠진다!”

도연은 허우적거리다 어느새 하반신이 잠겨버린 동천에게 검집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주군! 잡으십시오!”

“그, 그래! 휴, 살았다!”

동천은 다급한 마음에 검집을 잡고 확 땡겼다. 별 대비 없이 동천을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검집을 내밀었던 도연은 자신의 몸이 앞으로 쏠린다고 생각했다. 아니, 앞으로 쏠리는 게 확실했다.

“크윽?”

그는 본능적으로 검집을 비틀며 동천의 손을 떼어내곤 뒤로 자빠졌다. 당연히 그에 따른 잡음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왔다.

“끄에엑? 니, 니가? 살류~!”

검집을 놓쳐서 반동으로 더욱 깊게 빠진 동천은 고개와 성한 팔 한쪽만 내밀며 허우적댔다. 아무리 내공이 강하다 해도 늪 속에서는 무용지물인 것이었다. 한편,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던 도연은 재빨리 몸을 추스린 후 이번에는 엎드려서 검집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방금 전은 저도 빠질 우려가 있어서 그랬던 겁니다! 이번에는 그럴 염려가 없으니 어서 잡으시지요!”

“씨, 씹쌔꺄! 줄려면 빨리 줘!”

허둥대다가 도연까지 늪으로 빠지게 할 뻔했던 동천은 겨우겨우 기어 나왔다.

“어이구, 죽을 뻔했다. 헥헥!”

“위험할 뻔했습니다.”

동천은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다 말고 고개를 획 쳐들었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입 닥치고 있어!”

도와주려다 주군을 더욱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도연은 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동천은 몸이 질퍽하고 끈적거리는 게 심히 기분이 나빴다. 더군다나 부목을 한 팔까지 아파왔다.

“제길, 하도 힘을 썼더니 다친 팔이 다 저리네.”

늪 얘기를 하다가 정말로 늪에 빠져버렸던 동천은 어느 정도 한숨을 돌리고 나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지 도연에게 길잡이를 시켰다.

“야. 니가 앞장서서 걸어.”

“예.”

도연은 군말 없이 동천의 앞에 섰다. 발이 빠지는 것을 조심하기 위해 검집으로 땅을 쳐대며 늪지를 벗어난 도연은 이만하면 안정권이라 생각해서 동천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동천은 도연이 자신을 왜 보았는지 알지 못했다.

“뭐야, 앞에 뭐가 있어?”

도연은 고개를 저었다.

“늪지를 벗어난 것 같은데 계속 제가 앞장서도 되겠습니까?”

‘으음. 어떻게 하지? 물론, 내가 나서면 쉽게(?) 산을 벗어날 수 있겠지만 저 녀석에게 한번 기회를 줘볼까? 그래 볼까?’

자신이 다시 앞장설까 말까. 갈등을 때리던 동천은 결국 도연을 앞세우기로 했다.

“이곳을 빠져나갈 자신 있어?”

“없습니다.”

순간 동천의 주둥이가 욕을 하고 싶었는지 꿈틀거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의외로 거친 욕은 튀어나오질 않았다.

“끄응. 알았으니까 앞장서.”

도연은 주군의 허락을 받은 뒤라 거침없이 나아갔다. 그래도 동천이 앞장섰을 때에는 생각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걸어갔지만, 도연은 아예 무턱대고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동천은 불안했다.

“야. 제대로 가긴 가는 거냐?”

“예.”

도연이 자신 있게 말했지만 동천이 듣기에는 그게 아니었다. 그에게는 생각 없는 놈이 생각 없이 대답하는 것 같아 보였다. 더욱 불안했다.

“그으래? 그럼, 어떻게 이곳을 벗어날 건지 설명해봐.”

주군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도연은 자신이 가고 있었던 쪽으로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이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트인 곳이 나타나면 안전한 곳을 골라 그곳으로 내려간 뒤 평지로 걸어가며 인가를 찾을 예정입니다.”

제법 그럴듯한 설명이기에 수긍을 하던 동천은 갑자기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었다.

“잠깐. 만약에 트인 곳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나올 때까지 걸어가는 겁니다.”

“뭐? 지금 그걸 뚫린 입이라고 지껄인 거야?”

동천이 화가 나서 광분을 했지만 도연은 어디까지나 중심을 잡았다.

“그 방법 외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심쩍은 눈으로 도연을 째려보았지만 방향치인 지가 그래봤자 어쩌겠는가? 동천은 눈을 딱! 감고 도연을 믿어보기로 했다.

“몰라. 몰라! 니가 알아서 해. 대신 잘못 가기만 해봐. 주~글줄 알어!”

도연은 주먹을 불끈 쥐는 동천에게 알겠다고 말한 뒤 자신이 할 일을 했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났을까? 아무리 도연이라도 그 정도 걸었으면 몸이 노곤해지는 게 당연했다. 지치고 힘이 빠져 자신의 의무를 망각한 채 무작정 걸어가던 도연은 앞쪽에서 희미한 빛이 자신의 망막을 자극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울창한 숲 속에서 드디어 나갈 길을 찾은 것이었다. 흥분한 그는 주군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주군! 드디어 나갈 만할 길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동안 힘이 들어 헥헥거리며 도연을 쫓아온 동천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동천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이야? 어디? 어디야?”

“앞쪽을 보십시오! 빛입니다!”

도연의 말을 듣고, 정면을 바라본 동천은 희뿌연 빛이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보았다.

“오오! 빛이다! 드디어 나갈 수 있다! 하늘님 감사합니다! 이야호!”

너무나도 기뻤던 동천은 무의식적으로 신법을 발휘해 빛이 흘러드는 곳으로 쭉쭉 뻗어 나아갔다. 점점 다가갈수록 강렬해지는 빛살이 동천의 시야를 아프게 했다. 그래도 동천은 좋았다. 이곳을 빠져나가는데 이 정도 아픔은 얼마든지 겪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아라. 좋아라. 너무 좋아라! 좋아…어엇?”

한 발짝만 더 디디면 강렬한 햇살과 자유의 공기를 온몸에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동천은 난데없이 뒷골이 땡기는 바람에 급히 멈추었다.

치이이익!
달려오던 속도가 있었던지 신발이 끌리면서 아프다고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순간 동천은 발밑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서, 설마?’

밑을 내려다보니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냇물이 너무 아래에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순간이나마 공중에 머물렀던 동천은 인력의 법칙에 따라 밑으로 하강했다.

“으아아악!”

족히 칠팔십 장 정도는 되어 보이는 이곳에서 떨어지면 사망 아니면 식물인간이었다. 당연한 거겠지만 운이 좋으면 중상 정도(?)로 마무리를 지을 수도 있었다. 기겁을 한 동천은 손안에 집히는 거면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움켜쥐었다. 그러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동천은 다친 팔로도 잡으려다 딱딱한 암석에 금이 간 팔을 찍어버렸다.

“꾸에에에!”

동천의 입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동천의 비명소리를 들었는지 멀리서 도연이

‘주군!’

하며 달려오고 있었으나 도움이라곤 눈꼽만치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작은 나뭇가지라도 잡았었는데 다친 팔의 아픔으로 인하여 허무하게 놓쳐버렸다.

“아, 안돼엣!”

동천은 아픔이 가실 새도 없이 다시금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그는 내공을 쓰며 암석에 손을 박아 넣었다.

푹! 그그그…극!

“으욱! 더, 더럽게 아프네…”

한순간에 모인 내공인 만큼 손가락이 약하게 들어갔는지 점점 빠져 나오려고 했다. 손에 힘을 주자 새끼손톱이 파삭!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다.

“으악! 살려줘!”

동천이 겁에 질려 오줌까지 지릴 뻔한 그때, 믿음직한 손이 검집을 내려보냈다. 그 와중에도 꿀리는 건 싫었던지 동천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그, 그거 안 놓을 거지?”

아까 늪지에서 한번 뿌리쳤던 경력이 있기에 불안해서 해본 말이었다. 다급했던 도연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순간에 왜 그따위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의 주군을 안심시켜야 잡을 것 같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안 놓습니다! 어서 잡으시지요!”

동천은 기다렸다는 듯 검집을 잡았다. 순간 도연의 두 팔이 생각 외의 무게에 놀라했다.

“욱!”

도연은 어깨가 쏘옥 빠지는 고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을 퍼뜨렸다. 허공에 매달려 검집 하나에 목숨이 달랑거리는 상황에 처해진 동천은 자신의 몸이 위로 올라갈 생각을 안 하자, 두려운 마음에 얼른 도연을 응원했다.

“도연아! 넌, 할 수 있어! 짜식아! 힘을 내!”

동천의 응원이 도움이 됐는지 입술에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악물고 힘을 주던 도연은 엎드렸던 자세에서 엉성하게 다리를 구부려 일어났다. 어느새 동천은 상반신까지 끌려 올라와 있었다. 힘이 거진 빠져있던 도연은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이를 악물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으야압!”

혼신의 힘을 다해서인지 동천은 별 탈 없이 올라올 수 있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앞서 절벽 근처가 불안했던지 동천은 벌떡 일어나 삼사오 장을 달려간 뒤 자빠져 버렸다.

“헉헉. 하, 하늘님이 보우하사…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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