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58화
도연은 불안한 마음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본 다음 들어가자고 하려 했으나 동천이 이미 저만치 달려간 뒤라 어쩔 수 없이 그를 따라갔다. 동천이 도착한 집은 오장 남짓한 길이의 작은 집이었다. 오직 방 하나에 부엌이 하나인 것 같은 이 집은 한눈에 보아도 엉성하게 지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집이 오른쪽으로 갈수록 크게 기울어져 갔기 때문이었다. 왼쪽 끝부분의 높이가 오른쪽 맞은편 부분의 반 정도나 될까? 여하튼 이상하게 지어진 집이었다.
“누구 없어요?”
기척이 없어 요리조리 둘러보며 사람을 불렀던 동천은 잠잠하자 한번 더 불러본 뒤 방문을 열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필요한 생필품이 있는 걸 보니, 사람은 사는 것 같았다.
“쳇, 아무도 없잖아?”
동천이 크게 실망해서 문을 닫고 돌아서는 순간 언제 나타났는지 칼을 든 노인이 동천의 뒤에서 서 있었다. 얼마 없는 밋밋한 눈썹에 칼을 든 무표정한 노인의 모습은 깜짝 놀라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히익? 뭐, 뭐예요?”
동천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노인은 곧이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어이쿠! 이런, 이런. 몇십 년 만의 꼬마 손님들인데 내가 내 생각만 하고 있었구만?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세. 여보! 이리 좀 나와 보구려! 오랜만의 손님이야!”
늙은이의 부름에 부응을 하듯 동천보다 키가 약간 큰 할머니가 피 묻은 칼을 들고 나왔다.
“뭐라고요? 그게, 정말 이예요?”
어느새 다가온 도연과 동천을 보던 할머니는 포근한 미소를 띄워주며 두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이고, 귀엽기도 해라. 어떻게 해서 이런 산중에 다 왔을꼬? 호호. 어쨌든 반갑구나. 얘들아.”
동천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예에. 저도 반가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동천의 눈은 시종일관 두 늙은이들의 칼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특히, 그중에 시선이 많이 가는 곳은 할멈의 손에 들린 칼이었다. 아래로 늘어뜨려진 그 칼에서는 진한 핏물이 두어 방울씩 뚝뚝 떨어지며 동천의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동천의 노골적인(?) 눈빛에 대해서인지 그 할머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쥐고 있던 피 묻은 칼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아아? 이거? 영감이 잡아온 들짐승을 요리하려고 잡고 있는데 손님이 왔다기에 나도 모르게 이 칼을 쥔 채로 달려 나왔던 거란다.”
그제야 자신이 너무 경계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동천은 의심을 풀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칼을 할머니에게 건네주며 도연에게 말했다.
“예야. 너는 말이 없구나?”
할아버지의 물음에 도연은 예의 그 묵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원래 그렇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마주 보며 이상한 애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을 때 동천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저기요. 근데, 두 분께서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아이쿠? 그러고 보니, 우리 소개를 못 해주었구만? 나는 감송(甘松)이고, 옆에 있는 나의 내자는 민소희(旼少希)라 하네. 뭐, 이름은 따질 거 없고 편하게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불러라. 헐헐헐!”
이름은 귀여운데 생긴 게 영 아닌 할멈의 얼굴에 동천은 넘어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다. 동천의 능글거리는 속을 알아챘는지 그때 도연이 나섰다.
“이분의 성함은 동천으로서 약왕전의 소전주님이시고, 저는 이분의 수하인 도연이라 합니다.”
순간 두 노부부는 흠칫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이내 안색을 풀고는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허허, 이제 보니 아주 귀하신 손님이었네 그려. 자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안으로 들어들 가시게나.”
동천은 노인에게 이끌려 방으로 들어가면서도 이들의 신분이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신분을 알았으면서도 존대를 안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들이 정말로 산속에서 밭이나 갈고, 사냥을 하면서 근근이 살아가는 노부부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까 도연이 자신을 설명할 때 분명히 그들은 놀라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 노부부가 자신이 암흑마교 내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잘 안다는 얘긴데…
“두 분. 은거 기인이시죠? 맞죠?”
방안으로 들어와 여태껏 제일 궁금했던 물음을 펼쳐낸 동천은 그들의 반응을 날카롭게 주시했다. 그러나 동천이 기대했던 반응은 나타나질 않았다. 할머니는 손을 휘휘 저으며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웃어넘겼다. 할아버지는 그새 구석에 놓아두었던 곰방대를 찾아 뻐끔뻐끔 피워대며 어떻게 이런 곳까지 흘러 들어왔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순간, 동천은 고개를 숙이고 약간의 폼을 잡더니 그간에 자신들이 겪었던 고난과 역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아울러 동천은 그 위기 속에서 절대 좌절하지 않고 도연을 격려(?)한 자신의 훌륭한 지도력을 강조했다. 할아버지는 동천의 이야기에 푹 빠졌는지 곰방대를 피울 생각도 안 하고 동천의 주둥이만 열심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침내 장장 한 시진에 걸친 동천의 삼일야화(三日夜話)가 끝이 나자 할아버지는 열렬히 박수를 쳐댔다.
“오오, 그래서 네 팔이 다친 거였구나?”
하도 떠벌려대서 침이 마른 동천에게 언제 준비했는지 할머니가 다가와 물을 건네주었다. 그 물을 단숨에 들이킨 동천은 오랜 설명으로 인해 약간 상기된 얼굴로 할머니에게 물었다.
“근데, 밥은 안 주나요?”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게 된 그들은 단 둘이서만 방안에 누워있었다. 처음엔 좁은 방에서 네 명이 잔다는 사실에 은근히 얼굴을 구겼었지만 동천은 다른 방에서 잔다는 사실을 알고 환하게 웃었다. 알고 보니, 집의 뒷부분에 방 하나가 더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거처에서 잘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잠자리였지만 동천은 너무나도 피곤한 나머지 불평할 새도 없이 골아떨어졌다. 도연은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지만 그도 피곤했던지 얼마 안 가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는지 모른다. 동천은 이상한 느낌에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러나 이내 편안해져 꿈결인 양 넘기고 잠을 마저 청했다. 시간이 흘러 잠에서 깨어날 때쯤 동천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끈적거리는 느낌이었다. 그가 꿈속에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희미한 목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잘 몰랐으나 좀 더 귀를 기울이니 자세히 들렸다.
“주군.”
동천은 도연이 자신을 부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시했다. 그렇게 한 일각이 지났을까? 도연이 하도 자신을 지속적으로 불러대는 통에 동천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몸을 약간 비틀어보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신의 몸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못했다.
“응?”
동천은 이상하다는 생각에 급히 눈을 떴다.
“뭐야. 아직도 밤이야? 욱! 그런데 이건 무슨 냄새지?”
처음에 동천이 눈을 떴을 때에는 어두워서 사물이 잘 보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자신은 냄새나는 물이 담긴 통 속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었다. 그 물은 동천의 목 부근까지 차 있었다. 황당하게 몸조차 움직여주질 않아 눈알만을 떼구르르 굴리며 주위를 살피던 동천은 역한 냄새가 자꾸만 코를 찌르는 바람에 고통스러워 안면을 구겼다.
“뭐, 뭐야? 야! 도연아!”
황급히 도연을 찾는 동천의 외침에 바로 옆에서 대답이 들렸다.
“여기 있습니다.”
동천은 소리가 들린 쪽으로 눈알을 돌렸다. 그러나 고개가 안 돌아가는 상황에서 눈을 돌린 것만으로는 도연이 있는 곳을 볼 수 없었다. 동천은 답답한 마음에 크게 소리쳤다.
“어, 어디야? 우웁! 씨발. 무슨 냄새가 이따위지? 야! 이상하게 내 몸이 안 움직여져!”
다시 옆에서 도연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저도 그렇습니다. 아마도 제압 당한 것 같습니다.”
동천은 깜짝 놀라 물었다.
“뭐? 누구한테?”
다급한 동천의 물음에 도연 대신 대답을 해준 이가 있었다.
“으흐흐. 바로 나란다. 아이야.”
“히익?”
바로 옆에서 들린 음침한 소리에 동천은 솜털이 쭈뼛! 일어서는 느낌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오줌을 지렸다. 그러나 물 속에서 싼 거라 티가 날 염려는 없었다. 동천은 그 상황에서도 물이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 누구시죠?”
상대편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대신 어느 순간 허공에서 하나 둘씩 불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사방을 합쳐 켜진 불꽃이 여섯 개가 넘어갈 때쯤 동천은 불을 붙이고 있는 상대를 바라볼 수 있었다. 곧이어 상대를 알아본 동천은 벌어지는 입을 쉽사리 다물지 못했다.
<억? 저, 저 늙은이는 감송인가 감 똥인가 했던 늙은이 아냐?>
동천의 표정이 가관이었던지 감송은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웃어댔다.
“크하하! 새끼가 웃기는구나!”
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동천은 불안하고도 공포스러운 마음에 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할아버지. 왜 이러세요. 풀어주세요.”
감송은 주도적인 입장에서 동천의 애원 섞인 부탁에 연신 의문을 표했다.
“풀어 줘? 네놈을? 내가? 내가 네놈을 풀어 줘?”
동천은 고개짓 대신 눈알을 아래위로 끄덕이며 울먹였다. 평소의 동천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네,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어서 풀어주세요.”
감송은 돌연 냉랭한 모습으로 얼굴을 굳히더니 딱 잘라 말했다.
“싫다.”
그 모습이 어찌나 무서웠는지 동천은 오금이 저려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하긴, 의외로 겁이 많은 동천이 이 상황에서 당당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때 여태껏 침묵을 고수하던 도연이 말을 꺼냈다.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감송의 눈알이 재빨리 도연에게로 옮겨졌다.
“원하는 게 무어냐고?”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분을 알면서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언가 단단히 준비했다는 뜻이라고 봅니다.”
어린애의 생각치고는 제법 돌아갔다고 생각했는지 감송은 저도 모르게 낮은 휘파람을 불렀다. 그는 히죽 웃었다.
“큭큭! 예전이었으면 모르나, 지금의 나는 신분 따윈 안 따져. 더군다나 암! 흑! 마! 교! 의 신분 따위는 말이야. 알겠냐 꼬마야?”
감송이 암흑마교를 발음할 때 특히 힘을 주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암흑마교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할아버님. 이러지 말고 원하는 것을 말씀해 보세요.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은 되걸랑요? 원하시는 게 뭐죠? 예?”
사근사근히 말하는 동천이 마음에 들었는지 감송은 동천에게 다가갔다. 그는 동천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물속에 잠겨있는 동천의 손을 꺼내들어 그 손을 끈적이는 혀로 낼름 핥았다.
“으히힉? 무, 무슨 지, 짓이예요?”
기겁을 하는 동천을 보고 입맛을 다시던 감송은 능글맞게 웃으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으흐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해 줘?”
동천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켜가며 떨리는 음성을 말했다.
“예에. 마, 말해주세요. 헤헤. 그, 그래야 협상을 하죠.”
감송은 물에서 풍기는 역한 냄새도 아랑곳 않는지 차분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네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