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162화
바로 그 시각.
구장로와 살각의 살수들은 동천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동천이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구장로는 멈춰서서 살각의 인물들 중 선두의 사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이번 일에 특별히 차출된 교관이었다.
“악붕(嶽鵬). 진법인가?”
악붕이란 사내는 지체 없이 끄덕였다.
“예. 장로님. 아마도 환상대미로진(幻想大迷路陣)인 것 같습니다.”
진법에 문외한이었던 구장로는 흰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골치 아픈 것인가?”
악붕은 고개를 살며시 저었다.
“아닙니다. 조잡한 진법일 뿐입니다.”
구장로는 마음에 든 듯 씨익 웃었다. 그것을 신호로 알았는지 악붕은 여섯 명의 수하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신속하게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다소 신기해 보였는지 구장로는 살수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러던 중 한 살수가 움직임을 멈추더니 악붕을 응시했다. 구장로는 악붕에게 말했다.
“찾았는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악붕은 대답 후 파해진(破解陣)을 찾은 십육호에게 다가갔다. 그는 길게 베인 바위를 바라보다 십육호에게 물었다.
“이건 뭔가?”
십육호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파해 점과는 상관없는 흔적인 듯합니다.”
“알겠네. 그럼, 길을 터보게.”
“존명.”
십육호는 해가 저무는 방향으로 몸을 틀어 바위 옆에 자라고 있는 나무를 아예 부수어버렸다.
콰지직!
그러자 정 반대쪽에서 작은 초가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살수들은 그곳으로 신속하게 움직였다. 구장로와 악붕은 그들이 동천과 도연의 흔적을 찾을 때까지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 후 영준하게 생긴 청년이 구장로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구장로님. 소전주님과 도연이란 아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악붕은 직감적으로 이 추적이 마무리 단계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구장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구장로님. 가시죠.”
순간 구장로의 일그러진 한쪽 얼굴이 심하게 비틀렸다. 웃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악붕에게 흰 이를 드러냈다.
“그러자꾸나.”
순식간에 감송의 집 앞에 당도한 그들은 집 주위를 포위하듯 감쌌다. 악붕은 수하들의 행동에 만족한 표정이었다. 모든 포진이 끝나자 구장로가 소리쳤다.
“게 있느냐?”
벽면에 살짝 뚫어놓은 구멍으로 밖을 살펴본 감송은 구장로와 악붕. 그리고 그 옆에 포진해 있는 두 명의 사내들을 날카롭게 주시했다. 또한 집 주위를 감싸고 있는 네 명의 인기척도 감지했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불안을 느꼈는지 감 부인은 소리를 낮춰 조심스레 물었다.
“그 아이들을 찾아온 자들인가요?”
주르륵!
어느새 감송의 이마를 타고 한 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감송은 악붕은 몰라도 구장로의 신분을 알아챈 것이다.
“제길. 암흑마교 구장로야.”
‘헉?’
감 부인은 하마터면 크게 헛바람을 들이킬 뻔했다. 다행이 그녀의 경악성은 폐부에서만 맴돌았다. 헌데 놀랍게도 감 부인의 용모는 처음에 보았을 때보다 십 년 이상이나 젊어져 있었다. 아마도 무슨 수법으로 젊어진 것 같았다. 한편, 구장로는 안에서 분명히 인기척이 있는데 뻐팅기는 두 인간들 때문에 짜증이 났다. 그는 악붕에게 고개짓을 하였다. 끌고 나오든 모셔 나오든 결과적으로 데리고 나오라는 의미였다. 눈치 빠른 악붕은 검을 빼들고 조용히 문 쪽으로 움직였다. 방에서 안 되겠다고 생각한 감송은 재빠르게 나오며 소리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악붕은 상대를 베려다 주춤 멈추고는 뒤로 훌쩍 물러섰다. 구장로는 부부인 듯한 두 남녀에게 소리쳤다.
“있으면서 왜 어물쩡거렸느냐?”
찔끔한 감송은 고개를 조아리며 짐짓 떨리는 말투를 사용했다.
“제, 제가 거, 겁이 많아 무서워서 그랬습니다요. 나리, 살려 주십시오.”
순간, 구장로가 눈을 번뜩이더니 섬전(閃電)과도 같은 지풍을 감송의 어깨로 날렸다.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감송은 이를 악물며 갈등을 했으나 맞아주기로 마음먹고 가만히 있었다. 곧이어 불에 지져지는 듯한 통증이 그의 어깨를 마비시켰다.
“크으윽! 어이쿠! 나리들, 왜. 왜?”
“아악! 여보!”
감 부인은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남편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구장로는 확신을 가졌던 자신의 생각이 무너지자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혹여나 하는 마음에 상대를 바꾸어 지풍을 날렸다. 감 부인의 다리였다.
“아악!”
그러나 이번에도 구장로의 기대는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렸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닌가?’
처음에 그는 이들 부부를 숨어있는 반역도라 생각했다. 자신이 알기로 이 부근에는 은거기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이 나있는 자들이었으면 자신이 벌써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르는 자들이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생각이 날 듯 말 듯한 부부였다. 그것이 더욱 의심스러워 시험 삼아 지풍을 날려본 것이었는데 이들이 의외로 힘없이 맞고 쓰러져 구장로는 결국, 이들이 우연히 흘러든 노부부라 결론을 내렸다.
“악붕. 지혈시켜 주어라.”
“존명.”
악붕은 서로들 울먹이며 어쩔 줄 몰라하는 감송과 그 부인에게 다가가 지혈을 시켜주었다. 감송은 난데없이 나타나 병 주고 약 주고 하는 구장로에게 처절한 안색으로 소리쳤다.
“어째서 우리 부부에게 이러는 것입니까! 으흑.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구장로는 죄책감이라고는 없는 듯 냉랭히 말했다.
“며칠 전. 이곳에 아마도 어린아이 두 명이 찾아왔을 것이다.”
다친 어깨를 부여잡고 부인의 상태를 살펴보던 감송은 구장로의 물음에 흠칫했다. 그러나 그는 곧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예. 그럼요! 며칠 전 분명히 약, 약 뭐더라 하는 아이와 도연이라는 아이가 찾아왔었습니다.”
감송의 말에 구장로의 하얀 눈알이 번뜩였다.
“어찌되었느냐?”
어찌되었냐는 말의 저의를 잘 몰라서 주춤거리던 감송은 이내 깨닫고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그 애들은 며칠 분의 식량을 얻어서 저, 저쪽으로 갔습니다요.”
말을 하면서 식은땀을 닦아내는 감송의 모습에서 구장로는 한 치의 거짓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그 사이 주위를 샅샅이 뒤졌던 살수들에게 눈을 돌렸다.
“다른 흔적은?”
대표로 한 살수가 고개를 저었다.
“흔적은 있었으나 소전주님과 도연분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지하로 통하는 문을 찾아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문은 다름 아닌 바닥에 있었으므로 좁은 부엌에서 벽면만 대충 훑어본 살수들은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만약, 악붕이 직접 나서서 찾았더라면 발견될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악붕은 수하들을 믿고 나서지 않았다. 구장로는 인상을 찡그리며 감송에게 물었다.
“언제 떠났느냐?”
눈알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셈을 해보던 감송은 생각난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한 일주일 사이였습니다.”
구장로는 악붕에게 재차 확인을 했다.
“맞는가?”
“옛. 대충 시간을 잡아보아도 저 노인의 말과 일치하는 듯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구장로는 떠나기에 앞서 감송에게 마저 물었다.
“네놈 집 앞에 쳐져있던 그 진은 무엇이더냐?”
감송은 찔끔했지만 막힘없이 풀어나갔다.
“우, 우리 부부는 예전에 암흑마교 내에서 밭일을 하면서 살아가다 우연히 이곳으로 흘러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오 년 정도 지났을 때였죠. 하루는 어떤 기인께서 밥 한 술 얻어먹어도 되겠냐는 물음에 저희가 흔쾌히 받아들였더니, 그분께서 다음 날 떠나실 때 만일에 대비해 조용히 살라고 그것을 밖에 만들어 주시고 가셨습니다요.”
“한 치의 거짓도 없겠지?”
감송은 이마가 땅에 부딪힐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럼요. 그럼요. 만약, 거짓일 시에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집니다요. 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