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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94화


냉현은 급작스럽게 변하는 동천의 얼굴을 보고 철소에게 마차를 멈추라고 명했다. 철소는 그 즉시, 산관에게 전음을 띄웠다. 마차는 재빨리 멈추었다.

“자네의 목적지에서 지나쳤나 보군.”

동천은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억누른 후 차분히 말했다.

“조금 넘었습니다. 제가 좀 바쁘니 이만 내려도 되겠는지요.”

냉현은 그 무슨 섭섭한 소리냐는 듯 동천을 붙잡았다.

“아닐세. 내가 바래다줘야지. 어딘가? 말해보게.”

동천의 눈에는 지금 냉현의 태도가 마치, 크게 선심 써주는 것처럼 비추어졌다.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한 동천은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그 정도도 못 찾아갈려고요. 하하. 만나 뵈어 즐거웠습니다.”

냉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리하도록 하게.”

동천은 결국 참지 못하고 안면을 있는 대로 구겼다. 그러나 긴 머리카락이 숙여지는 동천의 얼굴을 가린 덕택에 상대는 보질 못했다.

‘씨발 놈! 한번 더 잡으면 어디가 덧나냐? 어떤 새끼가 네 똥꼬에 종기라도 난대? 저걸 팰 수도 없고… 아우, 열받아!’

숙였던 허리를 곧게 펴며 동천은 씽긋 웃었다.

“그럼, 편안히 가십시오.”

냉현은 마주 웃으며 말했다.

“정 뭣하면 혼천부에서 마차를 얻어가게나.”

“그러도록 하지요.”

귀에 솔깃한 이야기였다. 동천은 입에 귀가 걸리는 것을 참느라 굉장히 힘들어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마음껏 웃으려는데 냉현이 좀 더 좋은 제안을 해왔다.

“그럴 게 아니라. 이 마차를 타고 혼천부까지 바래다주겠네. 내리지 말고 잠깐 같이 가세나.”

사실 동천의 입장에서는 여기에서 내려도 혼천부를 찾아가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천은 아까 전처럼 한번 튕겨보려다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소교주 자식이 붙잡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각 후 혼천부에 도착한 동천은 소교주의 덕분으로 혼천부에서 마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동천은 마차 안에서 한시름 놓았다.

‘휴우! 하마터면 재수 없는 변태 새끼 때문에 큰일 날 뻔했네. 아무튼 그 새끼하고 나하고는 뭔가 안 맞는단 말야?’

마부에게 물어보니, 이곳에서 사정화의 거처는 꽤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동천은 간편히 생각하고 잠이 들었다. 뭔가 허전했지만 졸음이 오는 마당에 동천이 그런 걸 따질 리 없었다.

“쿨…”

얼마큼 잤을까? 동천은 누군가가 자신을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고 상대를 바라보니 못 보던 얼굴이었다.

“뭐냐?”

마부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소전주를 깨웠다가 황당한 소리를 듣고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예? 그, 그러니까 마부인데요.”

동천은 그제야 현 상황을 제대로 인식했다.

“아아, 다 왔어?”

마부는 조마조마했던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해주었다.

“예, 소전주님. 내리셔도 됩니다.”

“그래? 히히! 수고했어.”

재빨리 마차에서 내린 동천은 룰루랄라 두 팔을 가볍게 휘저으며 긴 소로를 걸어갔다. 애꿎은 나무에게 이단 옆차기를 선사한(그냥) 동천은 문 앞에 당도해서 문을 두들겼다.

“야! 문 열어!”

그러나 아무런 낌새가 없었다. 눈살을 찌푸린 동천은 손 대신 발로 두들겼다.

쾅쾅쾅!

“이 계집애야! 이 몸이 몸소 찾아왔으면 빨리 문을 열어야 할 거 아냐! 문 열어!”

효과가 있었는지 위에서 누군가가 후다닥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히히. 진작 내려올 것이지.”

동천의 잡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엥?”

“아…?”

잠시 묘한 침묵이 흘렀다. 이 기묘한 침묵을 깬 것은 바로 동천이었다.

“너 오늘 자주 본다? 놀러 왔냐?”

소연은 대답하기에 앞서 동천에게 안겼다.

“주인님! 아앙!”

얼떨결에 안아버린 동천은 꼬옥 안아주었다가 자신의 어깨에 콧물이 묻을까 봐 급히 소연을 떼어냈다.

“야. 왜 울고 그래. 누가 죽기라도 했어?”

“흑흑! 비슷해요.”

동천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누군데. 수련이야? 쳇! 그 계집애는 보나마나야. 무공수련 한다고 지랄을 하다 이층에서 떨어진 거지? 그렇지?”

소연은 울먹이며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걔가 아니라 바로, 바로 아가씨께서 많이 다치셨어요. 흑흑흑!”

“뭐어?”

순간 동천의 모든 사고가 멈추어버렸다.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눈을 부릅뜬 동천은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만세! 만세!”

소연은 어이가 없었던지 우는 것도 잃어버리고 동천의 팔을 흔들었다.

“주, 주인님 정신 차리세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동천은 보통 인간이 그러하듯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디에 계셔! 어디야! 약왕전이야?”

드디어 정상으로 돌아온 주인님에게 다급한 얼굴로 말했다.

“이층에 계세요. 수련이 마차를 몰고 가긴 했지만 좀 늦어요.”

동천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젠장! 빨리 안내해!”

허겁지겁 이층으로 올라간 소연은 사정화가 누워있는 방으로 동천을 안내했다. 소연을 따라 들어간 동천은 좌측 침대 위에 파리한 안색으로 누워있는 사정화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생각했던 것보다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야?”

소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입술을 고통스럽게 열었다.

“흑흑, 죄송해요. 화정이하고 대련을 하시다가 제가 모자란 탓에 화정이를 급히 제지시키지 못해서 가격당하시고 피를 토하셨어요.”

순간 동천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뭐? 화정이가?”

소연은 두려운 마음에 엎드려 빌었다.

“주인님 죽을죄를 졌어요. 잘못했어요.”

동천은 소연을 벌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착하다고 등을 토닥여주고픈 심정이었다.

‘화정이가 정화년을 때렸다고? 킬킬킬! 내가 언젠가는 한몫 할 줄 알았다니까?’

쉽사리 속마음을 드러낼 수 없었던 동천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사정화의 팔목을 잡았다. 꼴에 약왕전 소전주라고 폼 한번 잡아보려는 것이었다. 동천은 눈을 감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소연에게 물어보았다.

“어디를 맞으셨지?”

“가슴 부위를 맞으셨는데 정통으로는 아니고 두 팔로 교차해서 막으셨어요. 그런데 아가씨의 상태는 어떠세요?”

동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르니까 나가서 수련이나 기다려. 너 때문에 정신이 산란하잖아.”

할 말이 없었던 소연은 순순히 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전 밖에서 동생을 기다릴게요.”

“그래.”

소연이 나간 후 동천은 사정화를 다시 진맥했다. 이번에는 건성이 아닌 진지하게 했다. 맥이 흐렸다 선명했다 불규칙하게 뛰었다.

“얘 이러다가 진짜로 죽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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