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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197화


동천은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흑흑, 나도 말해주고 싶어 이년아. 하지만 말해주면 죽는데 너 같으면 말해주겠냐? 부탁이니까 그만 해라. 응?’

쫙!

“으엑! 아이고, 아가씨! 한 개만 벗겼다니까요? 흑흑! 정말이에요. 발등에다 한 대 놓고, 발바닥에 세대. 그리고, 단전에 두 개. 마지막으로 양쪽 팔에 각각 두 개씩 놓았을 뿐이에요. 정말이라니까요?”

동천이 겉옷을 한 개 벗겼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옷고름을 확인해보니 자신이 매는 방식과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속옷이었다. 속옷은 등 뒤로 끈을 묶는 방식이라서 사정화는 귀찮은 나머지 한 번만 묶는 버릇이 있었다. 확인 결과 별 이상이 없었지만 그녀가 의심을 풀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겉옷의 옷고름도 한 번만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말해. 봐줄 테니까.”

싸대기에 굴복해서 사실대로 말했다간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동천이 미치지 않은 이상 제대로 말할 리 없었다.

“아후, 정말이에요. 만약 제가 거짓말을 하면 천벌을 받아요. 천벌을!”

사정화는 진실 여부를 확인하려는지 무려, 한식 경(30분) 동안 동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덕에 동천은 눈길을 피하지도 못하고 눈알이 아파서 눈물만 찔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크윽! 도연이보다 더 독한 년! 어떻게 지금까지 눈동자도 흐트러트리지 않고 나를 꼬나볼 수 있는 거지? 눈알이 빠개질 것만 같애. 시부랄! 개부랄! 차라리 죽여라 이년아!’

다행히 죽일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사정화는 고개를 돌리고 탁자에서 의자를 빼와 동천의 앞에 앉았다.

“믿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동천은 허물어지듯 쓰러지며 통곡 비슷한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고!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흑흑! 제 진실을 믿어주시니 감격에 눈물이 차오르네요. 이 은혜는 평생! 평생 잊지 않고 가슴에 담아두겠습니다!”

역시 믿음이 안 가는 동천의 행동에 사정화는 다시 갈등을 느꼈으나 그녀 성격에 한번 내뱉은 말을 정정할 리 없었다.

“네가 나의 내상을 치료할 정도로 의술 실력이 늘었다는 것에 나는 기뻐.”

속으로는 코방귀를 뀌었으나 동천은 눈시울을 적시며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흑! 이게 다 아가씨의 관심과 격려 덕분입니다.”

사정화는 딱 잘라 말했다.

“난 관심과 격려를 해준 적이 없어.”

‘거 더럽게 따지고 드네. 치켜세워주면 좀 먹혀 들어가 봐라. 네가 그러고도 인간이냐?’

동천의 관점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괜히 토를 달았다가 한 대 맞을 것을 방지하고자 동천은 말없이 굽실거리기만 했다. 그때 화정이에 대한 의문점이 떠올랐던 사정화는 마침 잘 됐다 싶어 동천에게 물어보았다.

“네 강시 말이야. 어떻게 무공을 익힐 수 있었던 거지?”

금시초문의 이야길 듣고 동천은 깜짝 놀랐다.

“예? 그게 무슨 소리세요? 화정이가 무공을 익혀요? 헤헤. 뭘 잘못 아신 거겠죠.”

“몰라?”

동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처음 듣는 소리지만요. 아무리 화정이가 진도가 빨라도 아직 무공은 못 익혀요.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거든요. 하하. 농담도 심하셔라.”

사정화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덕에 지레 겁먹은 동천은 급히 두 손을 저어가며 사정화의 질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요. 가끔 예외라는 게 있거든요? 헤헤. 어쩌다가 익혔나 보죠. 예. 익힐 수 있어요. 그렇고 말고요.”

때릴 생각이 없었는데 어떻게든 안 맞아보려고 열심히 떠들어대는 동천을 보니 정말로 때리고 싶어졌다. 사정화는 동천에게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가서 소연이를 불러와.”

“예! 아가씨!”

동천은 이 위기를 무사히 모면한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칭찬하며 일층으로 내려갔다. 소연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소연은 아직까지도 억울해서 울고 있는 수련을 토닥여주고 있었다. 동천은 수련에게 승리자의 미소를 띄워준 후 소연을 무작정 끌고 올라왔다.

“아가씨, 데려왔습니다.”

소연은 사정화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치자 오금이 저렸다.

“괘, 괜찮으세요?”

사정화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연에게 다가갔다.

“금나수 다음엔 경공이야. 어찌된 일인지 설명해봐.”

동천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래! 설명해봐!”

덕분에 동천은 따귀 한 대를 더 맞아야만 했다.

“넌 빠져.”

생각 없이 나섰다가 소연 앞에서 창피를 당한 동천은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사정화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동천을 바라보는 소연을 재촉했다.

“빨리!”

아가씨의 언성이 높아지자 소연은 울상을 지으며 어떻게 된 일인지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실은, 제가 몇 달 전부터 심심하면 화정이 앞에서 자랑하듯 무공을 선보였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걔가 제 무공을 보고 따라한 것 같아요. 저도 몰랐었는데 그 사실을 안 것은 며칠 전 아가씨와 대련 때였어요. 그뿐이에요.”

앞서 동천의 말을 들어보면 화정이는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단계였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당했던 사정화는 소연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 그건 그렇다고 치고 다른 걸 물어보겠어. 화정이가 펼친 무공은 결코 삼류가 아니었어. 그러니까, 네 스스로 익힐 정도의 무공이 아니라는 말이야. 누구에게 사사받은 무공이지?”

결코 밝혀서는 안 되는 사항이었기에 소연은 주인인 동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동천은 또 맞을까 봐 못 봤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궁지에 몰리게 된 소연은 최소한의 비밀을 지키며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약 11개월 전에 주인님께서 산삼을 캐러 올라가셨다가 길을 잃어버리시고 헤매셨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거기에서 운 좋게도 부부인 은거 기인들을 만나셔서 같이 내려오셨는데 그분들 중 부인이신 제 사부님께서 저를 예쁘게 보셨는지 주인님의 허락을 맡고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정화는 시간적인 여유를 주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네 사부의 이름은?”

소연은 정말 난감한 질문이라 다시 한번 동천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다행히 이 문제는 동천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동천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나서야만 했다.

“아가씨.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들은 원래 우리 교내의 사람이 아닌데 사정상 영수산 근처에 머물러 계시다가 저 때문에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같이 내려왔던 거거든요? 한데, 그분들 중 부인께서 소연이의 자질을 높게 평가하셨는지 제자로 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잘 됐다 싶어 허락했던 겁니다. 나쁜 분들은 아니고요. 성함은 송영과 민희입니다.”

사정화는 동천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보냈다.

“그 얘기는 나도 수련이에게 들었어. 하지만 같이 내려온 건 힘없는 늙은 부부라고 하던데 설마, 우리 교와 적대 관계의 사람들을 감싸고도는 건 아니겠지?”

‘귀, 귀신 같은 년!’

동천은 심장이 벌렁거리는 것을 억누르고 과장스러운 몸짓을 섞어가며 말했다.

“그럴리가요! 다만 교내의 사람이 아니라서 조용히 빠져나가려고 하신 것뿐이에요! 정말 사실대로 말하자면 영수산 근처에 산삼이 많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혹여, 천년삼왕(千年蔘王)이 있을까 싶어 몰래 잠입해 들어오셨다가 못 빠져나가셨던 거래요.”

“천년삼왕? 어째서 그것을 찾는 거지?”

얼음 덩어리 같은 게 더럽게도 많이 물어본다고 생각했지만 어쩌겠는가? 힘이 없는걸.

“확실히는 모르겠고 무슨 신단(神丹)을 만들기 위해서 찾는 거래요.”

대충 질문을 끝마친 사정화는 마지막 질문에 들어갔다.

“넌, 무슨 일로 이곳에 찾아왔지?”

동천은 쉬운 질문이었기에 환하게 웃었다.

“헤헤헤! 그건요. 만검전의 혈귀옹 어르신께서 아가씨께 장검 한 자루를 가져다 드리라고 하셔서 이곳에 온 겁니다.”

사정화는 동천의 몸뚱이를 이리저리 훑어본 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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