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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08화


청뇨로명단(淸尿露命丹).

그런 일이 있은 후, 동천은 통원치료를 받으며 남는 시간에는 감송에게 독물과 독초 등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들을 섭렵했다. 감송은 만독문에서 한 가닥 했던 인물답게 독에 관련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지식은 용독경에서조차 거론되지 않은 것들을 가르쳐줄 정도였다. 물론, 항광의 용독경은 자신의 후예나 제자가 어느 정도 지식을 쌓은 후 새로운 차원의 지식을 필요로 할 때 보여주기 위하여 만든 것이니 만큼 자잘한 것들은 빼 놓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용독경에 있는 것들이 다라고 생각했던 동천의 입장에서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지만 동천은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연히 전혀 내색을 안 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동천의 사부인 역천이 제자에게 독에 관련된 서적을 안 보내준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 보내준 것들을 합하면 백여 권 이상은 너끈히 나갈 정도였는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동천은 오로지 용독경만 읽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그 책들은 소연의 방 한 구석을 당당하게 차지하고있는 실정이었다. 뭐, 덕분에 지금 그것들은 소연의 머릿속으로 하나둘씩 흡수되고있는 상태였다. 소연이 심심하면 그 책들을 읽었던 것이다. 동천은 감송의 일을 계기로 생각의 전환을 바꾼 김에 그 동안 사부가 읽으라고 가져다 준 독경에 관한 책들을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아, 그러니까 연수홍(蓮水紅)이란 연꽃 계 식물은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종래에는 목숨까지 앗아갈 정도지만 군초(君草)라는 잡초로 해독시킬 수 있다는 말이지?”

곧바로 감송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지요. 하지만 주의하실 점은 군초의 성질이 너무 강하여 극히 미량만을 사용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일이 잘못되셔서 상태가 더욱 악화되면 그에 따른 해독제. 아니면 다면양류라는 특이한 버들잎으로 중화시키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만 워낙에 구하기 힘든 것이 그것이라 해독 시 분량 조절에는 특히, 신경 쓰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의문을 토해냈다.

“어? 다면양류?”

소문주의 뭔가 아는 듯한 행동에 감송이 물었다.

“들어보셨습니까?”

동천은 생각날 듯 말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해서 말야. 흐음. 어디서였더라? 에이 씨. 그건 그렇고 그게 그렇게 구하기 힘들어?”

감송은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연수홍과 군초가 드물긴 하지만 비교적 구하기 쉬운 것들인 반면에 다면양류는 적어도 300여 년을 지낸 버들나무가 차고 음습한 기운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자라야만 겨우 생성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서 끝난다면 상관없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버들나무가 300년을 전후로 죽어버린다는 점에서 구하기가 참으로 힘든 재료입니다. 허허, 그러니 그것으로 중화를 시킨다는 건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라고나 할까요?”

듣고 보니, 그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구하기 힘든 것이면 당연히 비쌀 것이 분명했고 그런 만큼 신중히 사용해야하는 재료이기에 동천 같으면 중독된 사람에게 그냥 뒈지라고 말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렇다면 그것의 효능은 어떠한데?”

감송은 어린 소문주에게 약간 미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 부분에 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면양류의 완전한 효능은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음(陰)한 성질을 중화시켜주는 효능만이 전해질뿐이지요. 허나, 잘 하면 문주님께서 집필하신 용독경에는 제가 말씀드린 것보다 더욱 자세하게 써 있을 게 분명하니 추후에 읽어보시지요.”

용독경 이야기가 나오자 동천은 잡힐 듯 아리송했던 문제가 점차 확연히 떠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당장 그 문제를 확인하고 싶었던 동천은 그만 일어나기로 했다.

“감 노인. 난 이만 가볼 테니까 나중에 그 해독제의 주성분을 가르쳐주는 거 잊지마. 알겠지?”

감송은 바삐 일어나는 동천에게 확답을 해주었다.

“허허, 언제라도 오십시오. 제 한도 내에서라면 미약하나마 뭐든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알았어. 그럼, 갈게.”

“살펴 가십시오.”

동천은 감송의 배웅을 뒤로하고 한쪽 발로 성큼성큼 잘도 뛰어갔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강시(死 屍)들처럼 콩콩 뛰어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러진 발가락은 거의 다 낳았다고 할 수 있었으나 동천이 워낙 엄살이 심했던 탓에 아직도 다친 발 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도 뛰기는 잘 뛰었다.

“히히, 한발 뛰기로 나보다 더 잘 뛰는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아마 없을 걸? 으히히히!”

자기만족 하에 낄낄거리던 동천은 무슨 일인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아련한 표정을 지었다.

“그 누가 이 천재의 고뇌를 알랴. 아아, 맞수가 없음이 한스러울 뿐이로다.”

근처에 아무도 없는 게 다행이었다. 들어봤자 대놓고는 못해도 어디론가 동천의 눈을 피해 내심 혀를 찰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혼자 감상에 빠져있던 동천은 방으로 들어가 용독경을 꺼내들었다.

“어디 보자. 다면양류라. 아마도 식물 편 중 나무의 장에 들어있겠지?”

휘리릭,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동천은 익숙한 솜씨로 빽빽하게 들어찬 글씨들 중에서 다면양류를 찾아갔다.

“다. 다. 다면. 다면양류. 아? 여기 있다! 다면양류. 버들나무의 변태 종으로서 지속적으로 음하고 냉한 성질의 토양에서 300년을 자란 버들나무가 살아남아야 대할 수 있는 나무. 이 나무의 특징은 무려 300년 동안 자랐음에도 크기는 고작 어른만 하다는 것이다. 이 나무 그 자체는 쓸모가 없으나 잎사귀만은 다르다 할 수 있다. 음 한 성질의 토양에서 자란 것과는 반대로 다면양류의 잎사귀는 양의 성질을 가지고있어 내력을 북돋아주는 단환이나 수많은 종류의 독초들을 중화시키는데 탁월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가만? 단환이라고? 아아, 이제야 알겠다! 그, 그 뭐시기. 뭐더라?”

애써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그 단환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동천은 단환 편을 샅샅이 뒤져낸 끝에 마침내 그 단환의 이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찾았다! 청뇨…로명단! 씨발. 여전히 발음하기 되게 힘드네. 히히!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만사 땡 아니겠어?”

내용을 죽 읽어보니 역시나 단환을 제조하는데 있어 다면양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예전에 저만치 날아가 있었던 동천의 기억을 도로 끄집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으응? 계면서?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저번에 이걸 만들려다 말았지? 가만 있자. 내가 그 쥐새끼의 간땡이하고 심장분말을 어디에다 두었더라?”

작은 분량이었으므로 동천이 버리지 않는 이상 놓아둔 곳은 한정되어 있었다. 평소에 동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은 모두 침대 머리맡의 삼단 서랍장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천은 맨 위에서부터 차례로 하나씩 뒤적였다.

“단도. 이쑤시개. 붓 2자루. 먹통. 과자……. 햐! 지금 보니까 별의 별 것이 다 들어가 있네? 응? 그런데 이건 뭐지?”

동천은 여러 가지 물건들 중에서 하얀 천 조각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요리조리 둘러 본 동천은 곧이어 그것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었다.

“뭐야, 화정이 속옷이잖아? 이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킁킁! 우웩, 찌린내!”

헛구역질을 하면서 속옷을 냅다 집어던진 동천은 죽일 듯이 이를 갈아댔다.

“아우, 짜증나. 이게 지 서랍장이야? 더군다나 깨끗한 것도 아니고, 찌린내나는 속옷을 넣어? 아주 죽는 줄 알았네. 하여튼 이 계집에 오기만 해봐라!”

동천은 마구 지껄이면서도 찾을 건 다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실이 맺은 것은 마지막 세 번째 서랍에서였다.

“히히! 여기에 있었네? 내용물도 그대로 있고. 흐응. 이제 재료만 갖추어지면 된다는 말씀이지?”

다시 책을 들여다 본 동천은 자신의 수중에 고작, 계면서의 간과 심장. 그리고 백년 근 산삼 1뿌리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에 동천은 쉽게 생각하기로 했다. 산삼 1뿌리는 그때 약재 창고에 맡겨 두었으므로 창고지기가 죽고싶지 않은 이상 그것을 건드릴 리 없었다. 미늘버섯과 동작풀은 당연히 약초 창고에 있을 것이고, 백년 근 매화약주는 창고지기 놈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면양류였다. 어떻게 보면 산삼보다 구하기 힘든 것이 그것이었으므로 실로 난감했던 것이다.

“설마 약초 창고에 없기야 하겠어? 그래, 있을 거야. 아암! 그렇고 말고!”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마음만 앞선 동천은 생각이 난 김에 마차를 타고 약초 창고로 한숨에 내달려 도착했다. 창고지기는 어떻게 알았는지 동천이 도착하자마자 냉큼 달려나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올렸다.

“소전주님을 뵙습니다!”

그의 재빠른 인사는 동천 만족하기에 충분했다.

“잘 있었는가? 물론, 이 몸의 산삼도 잘 있겠지?”

“그러믄입쇼! 어느 분의 명인데 그것을 처리했겠습니까.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면 아직까지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고 있을 겁니다요.”

동천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껏 폼을 잡았다.

“그래그래. 내 자네를 믿겠네. 그건 그렇고 자네는 모든 일을 여기에서 끝마칠 셈인가?”

조용조용한 말투였으나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창고지기는 등줄기가 서늘해짐을 느끼며 급히 행동을 취했다.

“어이쿠! 제가 멍청한 까닭에 존엄하신 소문주님을 세워두었습니다. 자자, 누추하지만 우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가 자신을 한참 깎아 내린 것이 효과가 있었다. 동천이 화는커녕, 더욱 진한 미소를 뿌렸기 때문이다. 창고지기의 내실로 들어가 고급스런 의자에 앉은 동천은 긴 말 필요 없이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뭐 좀 물어볼 것이 있는데 불만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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