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18화
동천은 쉽사리 선기를 되찾지 못하고 그녀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소연아, 진정해. 원래 너는 착하고 순진했잖아. 좀 진정해라. 응?”
소연은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도리도리 돌렸다.
“몰라요, 책임져요! 흑흑!”
‘에이 씨, 영문을 알아야 책임을 지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동천은 뭘 책임지라는 건지 몰랐지만 우선 그녀를 안정시키기 위해 뭔지도 모르는 요구를 받아주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자신의 귀를 의심한 소연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콧물을 들이키며 미심쩍은 눈으로 동천을 응시했다.
“훌쩍! 정말이에요?”
사태가 급진전을 보이자 동천은 신이 나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어? 책임질게. 책임진다고.”
소연은 대개 아랫것들이 이렇게 당하면(?) 비참하게 버려지는 꼴을 어렸을 적 의부 밑에서 종종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도 이젠 버려지는 줄 알고 이판사판 개겼던 건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쉬이 믿을 수 없었던 그녀는 다시 물어보았다.
“저, 정말요?”
“정말이라니까? 거짓말이 아냐.”
울 듯 말 듯 기묘한 표정을 짓던 소연은 마침내 안도한 나머지 동천의 품에 안겨 다시 울어댔다.
“엉엉, 저 잘할게요. 더 말 잘 듣고요. 흑, 화정이도 더욱 잘 가르치고, 요리도 배우고, 바느질도 배우고……. 어쨌든 모든 일에 더 잘 할게요! 엉엉엉!”
결과로 보면 잘 된 것 같은데 그 과정을 생각하면 머리가 빠개질 것만 같은 동천이었다. 그러나 동천은 감히 소연에게 물어볼 엄두를 못 냈다. 물어보았다가 또다시 발광을 한다면 그 뒷감당이 전적으로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근질거리는 주둥이를 함구시킨 동천은 그저 소연의 등을 토닥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자자, 진정해. 그만 울어.”
동천의 달램에 흥분을 가라앉힌 소연은 울음을 그치고 훌쩍거리기만 했다. 소연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잘 할게요. 저 잘 할게요.”
동천은 소연의 중얼거림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래그래. 못하기만 해봐. 넌 죽을 줄 알어.’
몇 번 더 잘할 거라며 중얼거리던 소연은 동천의 품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쿠울…….”
소연이 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동천은 있는 대로 얼굴을 구겼다.
‘자? 그렇게 지랄을 해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잠을 자? 어우, 뻔뻔한 년! 열받는데 콱, 한 대 칠까 보다!’
속으로 온갖 욕을 다 퍼부어 댄 동천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대로 숨을 죽이며 소연을 바르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런 후 조심조심 걸어가 화정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동천은 화정이를 자신의 방에다 놓아두고 암한문을 뛰쳐나왔다.
“으아악! 싸가지 없는 년! 지가 감히 이 몸께 개겨? 그것도 하녀 주제에? 이건 모반이야! 모반!”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난 동천은 자신의 사정권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감지해 그쪽으로 순식간에 도착했다. 그러자 땔감 창고에서 문틈으로 동천을 살펴보고 있던 뚱땡이는 기겁을 하며 뒤로 나자빠졌다.
콰앙! 콰지직!
문짝이 부서지며 그 조각조각들 사이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동천의 모습이 드러났다.
“너 말야! 모반이 얼마나 나쁜 건지 알아? 그건 있어서도 안 되고 있으면 죽어야 마땅할 그런 죄야! 알아? 죄라고! 근데 어떤 년이 모반을 했어. 감히 이 몸에게 모반을 했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년이야! 그년은 죽어도 싸! 씩씩, 이 몸의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은 어떻지? 응?”
오줌을 지린 뚱땡이는 무조건 동천에게 좋은 말만 해댔다.
“무, 물론 입쇼. 모반은 아주 죽을 죄지요. 그럼요.”
동천은 조금 수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 죽을 죄지?”
“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뚱땡이의 말에 의외로 안정을 되찾은 동천은 히죽 웃더니 곧이어 사악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케엑! 전, 아닌데! 으엑!”
뚱땡이를 거의 반쯤 죽여 놓은 동천은 가뿐해진 마음으로 땔감 창고를 나왔다. 손을 탁탁 털어대던 동천은 푸르른 하늘을 보고 감탄에 마지않았다.
“캬! 날씨 한번 좋다!”
억눌렸던 화기(火氣)를 때리는 것으로 풀어버린 동천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도 피곤했던 것이다.
잠이 들었던 동천이 깨어났을 땐 초저녁이었다.
“으하아암!”
옆이 물컹거려 살펴보니 화정이가 누워있었다.
“잘 주무셨어요?”
“엥?”
화정이가 또랑또랑하게 말한 줄 알고 깜짝 놀랐던 동천은 다시금 들려온 목소리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밥 차릴까요?”
황급히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동천은 화사하게 웃고 있는 소연을 볼 수 있었다.
“호호, 아직 잠에서 덜 깨어나셨나 보네?”
동천은 눈을 비벼보았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떠들어대는 게 아까 그 소연이었는지 확인해 보려는 것이다. 동천은 소연의 눈치를 보면서 물어보았다.
“너, 아까 그 소연이 맞냐?”
동천의 말하는 바를 깨달은 소연은 얼굴을 붉혔다.
“아이, 지나간 일은 왜 들춰요.”
동천은 신경이 확 곤두섬을 느꼈다.
‘아, 아이? 저게 왜 안 하던 짓을 하는 거지?’
그렇다. 애교스럽게 구는 소연의 행동 때문에 당황했던 것이다. 갓 시집온 새색시의 행동이 이러할까? 소연은 주인님이 자신을 빤히 보고만 있자 더욱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밥……, 가져올까요?”
동천은 얼떨결에 허락을 내렸다.
“그, 그래. 가져와.”
다소곳이 나가서 음식들을 들여온 그녀는 생글거리며 동천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덕분에 동천은 밥을 먹으면서도 소화가 안돼서 속이 다 느글거릴 정도였다.
“뭐, 뭘 그렇게 쳐다봐. 나 밥 먹는 거 처음 봐?”
소연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해요. 밥을 드시는 모습이 보기에 너무 좋아서 그만…….”
서늘한 한기를 느낀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러트렸다.
‘으으, 저년 아무래도 좀 이상해.’
동천의 변화를 눈치챈 소연은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혹시, 맛이 없어요? 제가 나가서 다른 걸로 만들어오라고 시킬까요?”
“아냐! 아냐 됐어! 맛있기만 한걸? 아구아구!”
정신이 번쩍 든 동천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몸소 실천해주었다. 겉으로는 맛있게 먹고 있었으나 실상 지금 동천의 속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흑흑, 이건 내가 아냐. 동천아 너 왜 이러니?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