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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29화


“이, 이게 바로 청뇨로명단이야?”

감송은 4개의 단환을 들고 말을 더듬고 있는 소문주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습니다. 다 완성된 것들이지요.”

동천은 흰 종이에 각각 곱게 쌓여있는 단환들을 바라보며 벅차오르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감 노인, 그동안 수고했어! 정말이야!”

동천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감송의 얼굴은 그리 밝은 편이 아니었다.

“감사합니다만……, 좀 걸리는 게 있습니다.”

단환에서 시선을 뗀 동천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응? 걸리는 거? 그게 뭔데?”

감송은 손을 들어 동천이 가지고 있는 단환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잘 보시면 두 개는 하얗고, 한 개는 노랗고, 나머지 하나는 붉게 보이실 겁니다.”

종이를 펴 요리조리 잘 살펴보던 동천은 곧이어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이네? 미세하기는 한데 자세히 보면 색깔을 구분 지을 수 있겠어.”

동천의 확인이 끝나는 순간 감송의 말이 이어졌다.

“하얀색인 두 개의 단환은 마지막 날 만들어진 진정한 청뇨로명단입니다. 그리고 노란 것은 둘째 날 만들어진 겁니다. 헌데, 문제는 첫째 날 만들어진 붉은색 단환입니다.”

“이게 왜 문제인데?”

감송은 웬만하면 그때의 일을 넘겨버리려고 했었으나 붉은색이 감도는 단환 때문에 부득이하게 말해주어야만 했다.

“……그렇게 되어서 복면인이 뿌린 가루들을 제가 거두어들였으나 완전히 거두어진 것은 아니었나 봅니다.”

동천은 불안해진 눈으로 붉은 단환을 보았다.

“결과적으로 이게 어떻다는 거야?”

“모릅니다.”

“모른다고?”

감송의 고개가 미미하게 상하 운동을 했다.

“예, 가루의 성분을 모르기 때문에 그 단환이 어떠한 작용을 할지 미지수입니다. 다만, 그 단환이 청뇨로명단의 기본 골격은 갖추고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확신을 드릴 수 없습니다.”

동천은 애매한 표정을 보였다.

“잘못 만들어진 거면 만들어진 거지, 기본 골격을 갖추고 있다는 소리는 또 뭐야?”

감송은 어린 동천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제가 확인해 본 바로는 그 단환이 청뇨로명단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루의 성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루가 몸에 해로운 것이라면 그 단환을 복용할 시 내공이 높아지는 효과를 보면서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 죽을 수도 있습니다.”

동천은 미련이 남는 듯, 붉은색 단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으으, 그럼 이건 복용해서는 안 되는 거야?”

감송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절대로 복용해서는 안됩니다. 허나, 제가 이것을 소문주님께 드린 것은 복용 외에는 중독이 되지 않을뿐더러 나중에 이 가루의 정체를 밝혀보시라는 뜻에서 드린 겁니다.”

못 먹는 건데 정체는 무슨 개뿔. 심히 낙담하다 못해 절망감까지 느낀 동천은 감송에게 아무 말도 않고 떨어져 나왔다. 감송은 그런 동천의 행동을 이해했다. 밖으로 나와 터벅터벅 걸어가던 동천은 천천히 움직임을 멈춘 다음, 멀거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님. 결국, 저보고 1개만 드시라는 겁니까? 그런 겁니까? 휴우! 이것이 운명이라면…….’

동천은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이 씨발 놈아! 절교다! 안 믿어! 인연 끊어!”

침을 하늘이라고 생각한 동천은 있는 힘껏 바닥의 침을 발로 짓이겼다.

“에이, 은혜도 모르는 놈! 그나마 내가 믿어줘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놈이 까불고 있어. 행여, 꿈속에서라도 날 찾기만 해봐라! 콱!”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가 사부님께 찾아가려고 했던 동천은 뒷마당 쪽에서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도연이 자식인가? 쳇! 꼴에 열심히구만?”

짜증을 내며 방 쪽으로 걸어가던 동천은 갑자기 신형을 멈추었다. 문득, 기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가만? 저 녀석에게 한번 실험을 해봐?”

번들거리는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동천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래서 동천은 뒷마당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여어, 열심히구나?”

도연은 주군의 의외의 행동에 잠깐 멈칫했을 뿐 곧바로 인사를 올렸다.

“칭찬 고맙습니다. 한데, 경공 수련은 언제부터 하실 건지요.”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서 살짝 주먹을 거머쥐었던 동천은 실험을 앞둔 실험체를 상하게 할 수 없어서 재빨리 주먹을 폈다.

“곧 해야지. 그런데 말야. 너 요즘에 내공 때문에 고민되지 않디?”

도연은 안색을 굳혔다. 아마도 정곡을 찔린 것 같았다.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도연은 환골탈태를 한 몸이기 때문에 2년 사이에 내공이 급성장을 해, 지금은 근 40년에 가까운 내공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태강즉절 중 태(太)를 시전하기에도 벅찼다. 어느 정도였냐면 내공을 사용해 3초식 이상을 뿌리면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도연은 자존심 때문에 확실한 답변을 꺼렸다. 하지만 동천이 누구인가? 4살 때부터 시작해 장장 3년 동안 황룡미미에게 눈칫밥을 얻어먹고 자란 아이가 아니었던가?

“짜샤. 너하고 나 사이에 뭘 숨기고 그래. 솔직히 말해봐. 내공이 딸리지? 그렇지?”

잠시 침묵을 고수하던 도연은 마침내 실토를 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턱없이 부족합니다.”

순간, 동천의 눈빛이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반짝였다. 다르게 설명하면 작전에 들어가는 무사의 눈빛이 이러할까? 여하튼 자세를 바로잡은 동천은 개폼을 잡고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종이에 둥글게 말려있는 작은 물체였다. 그것을 살짝 들여다본 동천은 이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다른 것을 꺼냈다. 다행히도 두 번째로 꺼낸 것은 동천이 원했던 거였다.

“험험! 많이 기다렸지? 자, 이것을 복용해라.”

도연은 주군이 건네주는 것을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이게 뭡니까?”

동천은 근엄하게 수염을 쓰다듬는 척을 하다가 자신에게 수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음, 뭐긴 뭐겠느냐. 그것이 바로 내공 증진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청뇨로명단이란 것이다.”

도연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찌하여 이렇게 귀한 것을…….”

‘왜 너에게 주냐고? 히히! 그걸 처먹으면 네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그런다. 이제 알겠냐? 이히히히!’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아낸 동천은 더욱 멋있게 보이려는 듯, 뒷짐을 지고 고개를 45도 각도로 돌려 먼 산을 내다보았다.

“사실 이 단환을 만드는 목적 중 하나가 너의 내공을 높여주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네가 내공이 모자라 진도가 더디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지. 그러나 이제는 걱정 말아라. 그 단환이 너의 경지를 조금이나마 끌어올려 줄 것이다. 아아, 사양 말고. 당연히 내 몫도 챙겨놓고 너를 주는 것이니.”

너무도 감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도연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소리쳤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동천은 도연의 기세에 찔끔 물러났다. 그사이 도연은 앞뒤 가릴 것 없이 주군이 하사한 단환을 꿀꺽 삼켰다.

‘히야, 저 자식. 거절도 않고 그냥 받아먹네? 쟤가 급했기는 급했구나.’

동천이 내심 미안한 감이 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화살은 이미 떠난 뒤. 가부좌를 틀고 운기조식을 취한 도연은 단환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쾌한 기분이 들 뿐 진기의 흡수는 없었다. 그러나 반각여가 지나기 시작하자 단환의 기운이 뭉게뭉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도연은 재빨리 흡수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 느낌은 뭐지? 마치 내 내공이 흩어지는 듯한……. 이런!’

도연의 단전에 흡수된 단환의 기운은 마치 산공 독과 같은 작용을 했다. 도연의 내공을 흐트러트리는 것이었다.

부르르르!

도연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아울러 급속히 사라지는 내공 때문에 안면이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당황한 것은 도연뿐만이 아니었다.

‘어, 얼레? 저 자식 저러다가 죽는 거 아냐?’

동천은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시작한 거였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다급해진 동천은 도연의 등 뒤로 다가가 명문혈에 자신의 진기를 주입해주었다.

콰아아아.

거세고 음유하고 뜨겁기까지 한 진기였다. 동천의 내공 덕분인지 도연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그러나 뒤에 있어서 이를 알 수 없었던 동천은 무조건 내공을 쏟아붓고 보자는 식으로 퍼부어대기에 바빴다. 안정을 되찾은 도연은 주군의 진기를 이용해 자신의 내공을 야금야금 소멸해 가는 단환의 기운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반항을 해보려던 단환의 기운이 너무도 거대한 힘에 휩쓸려 그 기운을 잃어버렸다. 기회라고 생각한 도연은 온 신경을 집중해 내공을 끌어올렸다. 다행히도 사라졌던 내공들이 기다렸다는 듯 생성되기 시작했다. 도연은 이 여세를 몰아 몸 안에 산재한 단환의 기운을 흡수해 들어갔다. 아까와는 다르게 손쉽게 흡수되었다. 도연은 자신의 내공이 불어나는 느낌에 희열을 느꼈다. 아울러 도연의 몸에서 미약한 반탄지기가 생성되었다.

“엇?”

동천은 도연의 몸에서 생성된 반탄지기 때문에 깜짝 놀라 손을 떼었다.

“이제 괜찮은 건가?”

살며시 몸을 일으켜 도연의 얼굴을 바라본 동천은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다 말았다.

‘가만? 그럼, 먹어도 괜찮은 거였단 말야? 으음! 아직 속단은 이르다. 이 녀석이 깨어나면 그때 물어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제발 실패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던 동천은 도연이 눈을 뜨자마자 재빨리 물어보았다.

“어때? 효과가 있어?”

도연은 대답을 못하고,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싸! 실패했구나! 히히히, 그러면 그렇지.’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주군! 감사합니다! 적어도 10년 이상의 증진을 보았습니다!”

“무어라?”

주군도 기뻐서 되물은 줄 착각한 도연은 눈시울을 붉히며 다시 말했다.

“10년 이상 증진을 보았습니다.”

동천은 부들부들 떨었다. 숨이 막혀왔다. 하늘까지 노랗게 보였다. 그런 동천을 도연이 불렀다.

“주군, 왜 그러십니까.”

정신을 차린 동천은 안면 근육을 꿈틀거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냐. 나, 나는 이제 사부님께 가봐야 하니까 계속 운기조식이나 해. 지금 완전히 흡수하지 않으면 나중엔 히, 힘들 테니까.”

도연은 충성심이 가득한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동천은 은근히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꼈다.

‘알겠고, 지랄이고 우, 우선 여기부터 벗어나자.’

다리에 힘이 빠지려는 것을 애써 곧추세운 동천은 도연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소리쳤다.

“씨발 놈의 감송 새끼! 뭐? 부작용? 개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저게 부작용이야? 아이고, 아까워라! 10년! 자그마치 10년의 공력을 날려버리다니! 아이고 못살아!”

사실, 도연이 먹은 단환은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천갈초의 기운이 서려있어서 도연이 단환의 기운을 흡수할 때 천갈초가 도연의 내공을 적이라 생각해 파괴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동천의 내공이 가세하면서부터 양상이 달라졌다. 두 힘의 차이가 너무도 극명히 드러나자 제아무리 천갈초라도 버티지 못하고 동천의 내공에 휩쓸려 사라진 것이다. 결국, 자기가 도와줘서 도연의 내공을 증진시켜줬으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동천이었다.

“아이고 억울해! 아이고!”

동천은 속이 시원해질 때까지 목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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