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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230화


“오오! 이게 바로 그 말로만 듣던 청뇨로명단이냐?”

사부의 흥분된 물음에 동천은 입맛을 다시며 대답해주었다.

“예, 사부님. 맞습니다.”

동천과는 또 다른 의미로 입맛을 다시던 역천은 제자의 얼굴이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을 깨달았다.

“어라? 그런데 네 눈덩이가 왜 그리 부었냐? 울었어?”

동천은 뜨끔했지만 상황에 맞게 잘 처신했다.

“별거 아니고요. 헤헤, 제가 이 단환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고, 또 너무도 감격스러워서 조금 울었어요.”

역천은 감송이 뻔히 도와주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해주었다.

“그래, 그러면서 크는 거다. 푸헤헤! 이 사부는 네가 자랑스럽다!”

아무리 사부가 자신을 추켜세워 줘도 도무지 흥이 안 났다. 그래도 동천은 사부의 앞이라 최소한의 예의는 차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크헤헤헤!”

“하, 하하.”

“크헤헤헤헤!”

“하, 하…….”

“크헤헤헤헤헤!”

“…….”

다그닥! 다그닥!

사부에게 아까운 단환을 하나 드리고, 사정화의 거처로 방향을 튼 동천은 마차 안에서 떼굴떼굴 굴렀다. 물론, 배가 아파서 말이다.

“으으! 사부님께 드린 것은 그렇다 치고, 도연이 그 자식에게 준 단환이 아까워서 미치겠다. 미치겠어.”

지금 동천의 두 손에는 각기 하나씩 단환이 들려있었다. 동천은 처량한 모습으로 그것들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왼손에 쥐어진 단환을 품속에 넣었다. 그런 다음, 오른손에 쥐어진 것을 응시했다.

‘이게 불완전한 청뇨로명단. 으으! 정화년에겐 이것도 아깝지만 어쩌겠는가? 계속 붙들고 있으면 나만 울화통이 터질 테니, 얼른 주고 돌아가서 완전한 청뇨로명단을 복용해야겠다.’

동천은 불완전한 단환을 허리춤에 보관했다.

“야! 다 갈려면 멀었어?”

마부는 살고 싶은 욕망에 급해 대답했다.

“일각이면 됩니다요!”

동천은 뭐라고 한 소리 더하려다 그것도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쳇! 저 새끼도 언젠가 갈아야지.”

일각이란 시간은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마차에 내려서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긴 동천은 우선 수련을 찾아갔다.

“야! 문 열어!”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켈켈켈! 이게 누군가? 약왕전의 소전주가 아닌가?”

순간, 동천의 고개가 90도 각도로 꺾여졌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참으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원은 예의 그 누런 이를 드러냈다.

“오오, 예의도 바르지. 켈켈! 수련을 찾는가?”

“그렇습니다, 태상 림주님.”

정원은 기분이 좋아졌는지 더욱 크게 웃어 제꼈다.

“켈켈! 그렇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좋으이. 그냥, 평소대로 부르게나.”

동천은 정원을 향해 미소를 떠올렸다.

‘미친 늙은이. 내가 정신 나갔냐? 너한테 할머니라 부르게?’

정원은 동천의 속내도 모르고 자기가 편한 대로 해석을 했다.

“그럼, 그렇게 알겠네. 켈켈켈! 수련은 아가씨께 가 있으니 그리고 가보게.”

사정화에게 가는 길을 안내받으려고 수련을 찾아온 건데, 자신보고 그 수련을 찾으러 사정화의 동굴로 찾아가라니……. 기도 안 찰 따름이었다. 그러나 눈앞의 할망구가 지독히도 싫었던 동천은 토를 달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켈켈켈! 잘 가게나.”

정원의 켈켈거리는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소름이 끼쳤다. 특히, 동천에게는 말이다. 대충 방향을 잡은 동천은 되도록 빨리 정원의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무작정 걸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가 동굴이 보였다.

“오옷! 내가 이렇게 쉽게 찾다니! 드디어 나도 방향치에서 벗어난 것인가?”

흥분한 동천은 왜소한 어른 한 명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동굴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안은 시원했다. 그런데 시원하다 못해 춥기까지 했다. 곳곳에 설치된 횃불 때문에 시각적으로 지장은 없었다.

“뭐, 이리도 춥지?”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동천은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야채와 과일들을 발견하고, 뒤통수를 긁어댔다.

‘얼레? 정화년이 언제부터 과일을 이렇게 좋아했지?’

곰곰이 머리를 굴려본 동천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여기가 아닌게벼?”

결국, 투덜대며 밖으로 나온 동천은 예전에 수련이 벽을 따라가면 아가씨가 계신 동굴이 나온다고 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작은 문제가 있었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그러한 문제였다. 자신이 왼손잡이라서 왼쪽을 택한 동천은 한참을 걸어가다가 지랄 발광을 떤 다음,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으아! 드디어 찾았다. 동천아! 인간 승리다!”

동천은 동굴 위쪽에 음각으로 수련 동이라 새겨진 글씨를 바라보며 감격에 젖었다.

“얼른 들어가야겠다. 히히!”

자신의 힘으로 동굴을 찾았다는 생각에 이때만큼은 단환이고 뭐고 즐거웠다. 그런 기분으로 무작정 들어가다 수련과 우연히 마주친 동천은 사정화에게 당도할 수 있었다.

“아가씨,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여전히 차가운 대답에 동천은 한 번 더 안부 인사를 드렸다.

“헤헤, 그동안 찾아뵙지도 못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동천은 사정화의 이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칫! 얼음 덩어리 같은 년!’

이때 수련이 끼어들었다.

“호호, 아가씨! 동천이 기특하게도 그 청뇨로명단을 드리려고 왔대요.”

사정화는 의외의 표정을 지었다.

“동천, 정말이야?”

동천은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우선 대답을 하고 봤다.

“그, 그럼요. 아가씨를 위하는 제 충성을 직접 보여드리기 위해 어렵사리 만들었습니다. 헤헤헤!”

사정화는 수련에게 말했다.

“전에 두 개밖에 못 만든다고 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중 1개는 역천을 주기로 했고.”

수련은 아가씨께 대답을 해주면서도 동천에게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워주는 걸 잊지 않았다.

“호호! 맞아요. 하지만 동천이 그때 저 보고 그러더라고요. ‘이건 아가씨를 위해 만드는 거니까 너한테는 국물도 없어.’라고요. 동천, 안 그래?”

“응? 그, 그래.”

얼떨결에 수긍을 하고 난 동천은 잠시 후,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 뭐야? 그럼, 그때 수련이 년이 한 말이 다 개뻥이었단 말이야?’

갑자기 심장이 운동 저하 현상을 보였다. 그리고 숨이 막혀왔다.

‘크윽, 당했다!’

확실한 대답을 받아낸 사정화는 동천이 머리를 굴릴 시간을 주지 않았다.

“동천, 고맙게 받겠어. 이리 가져와.”

숨이 막혀 죽으나 사정화의 말을 거역해 죽으나 그게 그거였지만 적어도 동천은 사정화에게 거역해 죽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동천은 허둥지둥 허리춤의 단환을 꺼내서 재빨리 다가갔다.

“여기에 있스, 앗? 아이쿠!”

동천은 급히 주려다 그만 발이 엉켜 앞으로 고꾸라졌다.

콰당! 툭, 떼구르르르.

넘어질 때 동천의 상의 속에서 무언가가 굴러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정화의 발치까지 굴러가다 회전력을 잃고 멈추었다.

“…….”

정적과 더불어 모두의 시선이 그 물체로 모아졌다.

‘으헉? 저, 저것은? 안돼!’

그것의 정체를 확인한 동천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것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움직인 여인이 있었었다.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고 쌓여있는 종이를 벗겼다.

“동천, 이게 뭐지?”

동천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와 더불어 의식이 흐려져 가는 것을 느꼈다.

‘도, 동천아. 침착해라. 침착해. 아직 저 년은 저게 청뇨로명단인지 모른다. 후우, 후! 지, 진정해라. 넌 할 수 있다.’

그때 사정화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동천이 쥐고 있던 불완전한 단환을 집어 들었다. 손 한 번 못 쓰고 정말로 황당하게 단환을 빼앗긴 동천은 필사적으로 일어났다.

“헤헤, 그것은 사부님께 드리려고 간직하고 있던 또 다른 단환입니다. 그러니 주시지요.”

말없이 동천을 응시하던 사정화는 동천에게서 빼앗은 단환의 종이도 벗겨보았다. 둘을 대조하자 하나는 하얗고 하나는 노랬다. 사정화는 노란 게 싫었다. 그녀는 노란 단환을 동천의 손에 쥐어주었다.

“고마워.”

“예? 아니 그, 그게 아니라 그것은…….”

“고마워.”

동천은 울상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게…….”

“동천. 고맙다고 했어.”

‘흑흑흑! 씨부랄 년. 그게 어떤 건데. 아이고 하늘님 아부지!’

뒤늦게 하늘님을 찾아서 어쩌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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