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231화
동천이 허탈감에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마차를 타고 되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미쳤지. 그런 건 숨겨놓고 갔어야 했는데…….’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더군다나 단환을 얻었을 당시, 아무 곳에나 놓아두었다가 누군가가 훔쳐가면 어떻게 할까 싶어 품속에 간직하고 돌아다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동천은 후회할 자격조차도 없었다.
‘아가씨. 그게 그리도 탐이 나더이까? 정화야. 그게 그리도 탐이 나더냐? 이년아, 그게 그리도 탐이 나디? 탐이 나?’
동천은 마차 안에서 벌떡 일어났다.
“으아아악! 죽여버릴 테다! 죽여버려!”
그러자 마부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살려줍쇼! 빨리 가겠습니다!”
미리 앞서간 마부의 애원이었으나 의외로 동천의 발작을 멈추게 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불만의 대상을 깔고 앉듯 풀썩 주저앉은 동천은 아랫것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자신이 이러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의식했다.
‘음. 내가 그동안 저 마부 녀석을 좀 심하게 대했었구나. 이제부터는 잘 대해줘야겠다.’
자신이 사정화에게 당하고 보니, 그간의 잘못을 조금 뉘우친 것이었다. 동천은 아직도 겁에 질려있을 마부를 향해 말했다.
“이봐, 괜찮아. 내가 혼잣말을 한 거니까 천천히 몰라고.”
동천이 관대한 마음으로 대해줬으나 정작 마부는 두려움을 씻어내지 못했다. 예전에 천천히 몰다가 얻어맞고 비몽사몽간에 마차를 몰았던 끔찍한 기억이 있었던 것이다.
“소전주님! 괜찮습니다. 최대한 빨리 몰아서 약왕전에 당도하겠습니다.”
“나 참. 괜찮다니까? 천천히 몰아.”
“아닙니다. 빨리 몰겠습니다.”
“어허! 정말이야. 빨리 안 몰아도 돼.”
마부는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키웠다.
“아닙니다! 빨리……, 케엑? 아악!”
“이 씨발 새끼야! 내가 천천히 몰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들어? 엉? 죽어 이 새끼야! 죽어!”
결국, 마부를 기절시킨 동천은 주위에 지나가는 무사 한 명을 붙잡아 마차를 몰게 해 돌아왔다.
“쓰벌, 그 마부 새끼가 봐주니까 자꾸 기어들고 지랄이야!”
동천은 투덜대며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왔다. 안에는 화정이가 의미 없는 손 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동천의 분노는 화정이를 대함과 동시에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동천의 내부에서 울적함이 밀려들어왔다. 화정이는 그런 주인의 마음을 모르는지 생긋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안녕.”
음의 높낮이가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갑자기 눈물이 솟아나려고 했다. 자신의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동천은 화정이의 품에 안겼다.
“흑흑! 화정아 나 죽고 싶다.”
그러자 화정이가 말했다.
“죽어.”
순간 동천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죽으라니, 다른 사람도 아닌 화정이가 자신보고 죽으라니. 동천은 얼른 화정이의 품에서 떨어졌다.
“뭐? 죽어? 네가 지금 나보고 죽으라고 그런 거야?”
화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그녀는 의아한 마음으로 ‘죽어? 왜 죽어?’라고 말을 했었는데 아직 말의 높낮이가 없었기 때문에 ‘죽어?’를 ‘죽어.’라고 했던 것이다. 화정이는 자신이 잘못 말한 줄 알고 애써 다른 말을 꺼내려 노력했다.
“주우거. 주거. 죽거.”
그러나 동천은 그러한 화정이의 노력을 알아주지 못했다. 동천은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다.
“이럴 수가! 저 년까지도 이 몸을 우습게 보다니! 어찌 이런 일이!”
그사이 자신이 제일 처음에 했던 단어가 맞다는 것을 깨달은 화정이는 큰 주인님에게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
동천은 생각지도 못한 정신 공격에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나서 제일 만만한 그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뭘 죽어 이년아! 이 몸은 천년만년 살 거다! 꺼져! 가서 소연이하고 놀아!”
화정이는 호된 꾸중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슬픈 눈으로 동천을 응시했다. 마치, 자신은 결백하다는 것처럼. 이렇게 되자 약해지는 동천이었다.
“야, 왜 그따위 눈으로 나를 보고 지랄이야. 쩝! 알았어. 좋은 뜻으로 말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예전처럼 웃어.”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본 동천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에휴!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다 사정화 그 년이 나쁜 년이지.”
동천은 심히 낙담한 얼굴로 마지막 남은 단환을 꺼내들었다. 종이를 까고, 냄새를 맡아보자 의외로 향긋한 향기가 풍겼다.
“꿀꺽!”
방금, 침을 삼키는 소리의 근원은 동천이 아니었다. 동천은 화정이를 힐끗 보았다.
“너, 이거 먹고 싶냐?”
끄덕끄덕.
동천은 화정이를 요리조리 살펴보다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히히! 그렇게 먹고 싶어? 자!”
화정이는 기뻐하며 손을 움직였다. 동천은 그녀의 손이 단환을 가로챌 찰나 킬킬거리며 정 반대쪽으로 피했다. 눈살을 찌푸린 화정이는 다시 단환을 잡으려 했다.
“뺏어봐! 뺏어봐, 뺏어봐! 이히히!”
화정이는 동천의 말을 착실하게 들었다. 전광석화같이 손을 움직인 그녀는 동천이 어찌할 새도 없이 단환을 빼앗아 단번에 삼켰다.
“꿀꺽!”
“…….”
청뇨로명단은 화정이가 사탕을 빨 듯 혀를 굴려 몇 번 빨기도 전에 사르르 녹았다.
“맛있다.”
“…….”
화정이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더 줘.”
“…….”
동천은 잠깐 사이지만 유체이탈을 경험했다. 이왕 몸체를 떠난 김에 영영 떠나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가기에는 너무도 억울했다. 다시 몸 안으로 돌아온 동천은 부들거리는 두 손을 들어 화정이의 목을 감쌌다. 그리고 거세게 흔들었다.
“이 미친 년! 지, 진짜로 처먹냐? 뱉어 이년아! 뱉어!”
“크, 끄윽!”
화정이는 점점 거세게 조여오는 손길에 숨이 막혔다. 그러나 가만히 있었다. 반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지치는 것은 동천뿐이었다. 한동안 화정이의 목을 계속 흔들어대던 동천은 마침내 제풀에 지쳐서 손을 놓았다.
“흑흑, 싸가지 없는 년. 그동안 재워주고 입혀 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화정이는 울어대는 큰 주인님에게 소심스레 다가갔다.
“도옹천.”
동천은 화정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왜 불러 이년아.”
“더 줘.”
“…….”
동천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으아악! 뭐? 더 줘? 이런, 크! 혀, 혈압이…….”
혼자 발광을 떨다 혼자 픽, 쓰러진 동천은 쭈그리고 앉아서 자신을 쳐다보는 화정이를 보았다. 다시 혈압이 올라감을 느꼈다.
‘어서, 어서 이 자리를 피하자. 안 그러면 저 년을 보다, 크윽! 혀, 혈압이 올라가 죽을지도 모른다. 헉헉! 이 창창한 나이에 죽을 수는 없다.’
동천은 다리가 잘린 무사가 험난한 길을 헤쳐가듯 두 팔을 사용해 힘들게도 기어갔다. 화정이는 그런 동천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것을 눈치챈 동천은 문 앞에 도달하자마자 후다닥 일어나 밖으로 나간 뒤 몸으로 문을 막았다.
“헉헉, 너 나오면 죽어! 알았어?”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화정이는 조용히 침대로 가 앉았다. 힘이 빠진 동천은 그제야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지금 동천의 얼굴은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인생이 허망하구나.”
동천은 지금 자신이 한 말이 예전에 죽었던 동남당주(東南堂主) 만추(晩秋)가 읊조렸다는 것을 알고나 있을까? 당연히 모를 것이다. 허나, 상처만 없다 뿐 얼굴 표정만큼은 판에 박은 듯 똑같았다. 동천은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찾았다. 그리고 무심히도 푸른 하늘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늘님. 잘못했슈. 다시는 안 그럴게요. 흑흑!”
동천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반나절도 못 되어 다시 하늘님을 믿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최후의 웃는 자는 단환에 관련된 모두가 아니었을런지…….
물론, 동천만 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