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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12화


그의 괴성은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도연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도 충분했다. 도연이 한 거라고는 고기 한 점 들이댄 것뿐인데 갑자기 저리 날뛰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장 어르신,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장춘이 미친 사람처럼 두 팔을 마구 휘둘러댔다. 마치 휘두른 영역권 안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듯이 말이다.

“시, 싫어! 저리 가! 서, 서억 꺼져라!”

만한상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급히 일어나 장춘의 어깨를 거머쥐었다.

“도대체 왜 이러나!”

염려하는 만한상의 마음이 전달되었음인지 장춘의 눈빛이 차츰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아? 좌태상 어르신.”

장춘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는 근처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후 피곤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저는 본가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후우, 정신적으로 너무도 피로하여…….”

만한상은 주저 없이 허락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게. 자네의 문제인지라 말해주기 전까지는 나도 물어볼 수가 없어 답답할 따름이지만 자네라면 충분히 이겨낼 거라 믿네.”

장춘은 힘없이 웃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습니다. 가능하겠는지요.”

한순간에 십몇 년은 늙어버린 듯한 장춘의 모습에 동천은 내심 혀를 찼다.

‘보아하니 저 인간 무슨 사고 쳤구만? 쯧쯧, 죄짓고는 못 살지. 아암.’

장춘을 저렇게 만든 원흉이 저따위 생각을 해도 되는지 원……. 물론, 자신이 저지른 짓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장춘은 자신의 짐을 챙길 여유조차 없이 황룡세가로 떠났고, 멀거니 주시하던 손님들도 그제야 각자 하던 식사에 열중했다. 그리고 먹을 만큼 먹었던 동천은 중소구 쪽을 기웃거리려고 했지만 괜히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봐, 지 혼자 삐져서 식사가 끝나는 내내 입을 한 자나 내밀고 있었다.

“아아, 잘 먹었다. 끄윽. 이제 아침도 해결했으니 떠나 볼까나?”

중소구가 이야기를 마치며 만한상을 바라보자 시선을 느낀 만한상은 동의해주었다.

“그렇게 하지. 추연아, 올라가서 짐을 챙겨 오너라.”

“예, 어르신.”

쪼르르 올라간 추연은 특실과 7호실에서 간소한 행랑 세 개를 발견하곤 양손으로 나누어 들고 내려왔다. 이미 식대를 지불한 사람들은 객점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추연이 들고 온 행랑을 각기 나누어 들었다. 동천 일행의 짐은 당연히 도연이 맡았고, 장춘과 만한상의 행랑은 만한상에게 허락을 맡은 추연이 하나로 모은 뒤 어깨에 짊어졌다. 그러나 한참을 걸어 추연이 힘들어하는 것 같자 보다 못한 동천이 선심을 베푸는 척하면서 추연에게 인계받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최단거리만을 골라 걸어가던 일행들은 나지막한 산을 넘은 뒤, 전방에 새로 보이는 마을을 발견하자 새로운 기운을 뽑아내 단숨에 내려갔다. 만한상은 마을에 거의 가까워졌을 때 웃는 낯으로 말했다.

“저기 보이는 마을을 지나서 조금만 간다면 제갈세가의 영역권에 들어가게 되니, 그곳에서 연락을 취한다면 금세 제갈세가의 선두들과 조우할 수 있을 걸세.”

만한상의 말에 의문이 생긴 동천은 재빨리 물어보았다.

“만 어르신. 만약에 마중 나오는 제갈세가가 이미 우리들을 지나쳤으면 어쩌죠?”

“그런 것에 대비하여 이런 시국에 마중을 나간다면 자신의 세력권 안쪽이나, 정확히 중간 지점을 정해놓고 먼저 온 쪽이 기다리는 방법이 쓰인단다. 오십 리 밖이 바로 그 중간 지점이지. 그러니 서로 지나칠 염려는 없느니라.”

중소구는 동천을 바라보며 ‘네놈의 대가리가 그렇지. 그게 어디가?’라는 얼굴로 말했다.

“멍청한 놈, 상식적인 것을 물어보지 말고 좀 더 배울 만한 것을 물어봐야지!”

동천은 괜히 나서서 까대는 중소구의 쌍판을 짓이겨놓고 싶었지만 그게 어디 생각처럼 쉽던가? 동천은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했다.

‘참아야 한다. 어차피 우리와 같이 다니는 게 싫증나면 떨어져 나갈 놈이 아닌가.’

그걸로는 약했다고 생각했는지 뒤이어 강도를 높였다.

‘귀찮게 자꾸 들러붙기만 해봐라. 독살시켜 버릴 테다. 큭큭큭, 으히히히!’

그제야 마음에 들었다. 독살(毒殺). 참으로 매력적인 단어가 아닌가. 직접 손을 쓰지 않고도 간접적으로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방법. 시전자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힐 필요가 없는 방법. 아울러 들킬 확률도 낮은 방법. 그 외에 여러 가지 장점들이 많았지만 단점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독 하기 전에 상대가 눈치챈다면 개 쪽이 날뿐더러, 독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이 없다면 상대를 죽여놓고 자신도 중독되어 죽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 만큼 독을 다루는 문제는 상당한 고난이도의 실력을 요구했다.

그렇기에 독을 연구하는 자들은 상대적으로 무공을 연마할 시간이 모자라, 정상적인 문파의 무림인과 비교하면 한 수 처지는 실정이었다. 허나, 그만큼의 모자람을 메꿔주는 것이 독이란 존재였기에 독을 다루는 사람들은 만일을 대비하여 항시 충분한 독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각설하고, 키득거리던 동천은 일행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몰렸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표정을 지운 뒤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왜들 그리 보십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일행을 대표하여 중소구가 말했다.

“됐으니까 입 다물고 따라오기나 해.”

그 말을 끝으로 사람들은 마을의 입구를 향해 걸어갔고, 속으로 투덜대며 따라가던 동천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어 만한상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기, 또 물어볼 것이 있는데요.”

만한상은 중소구와는 다르게 언제나 웃음 진 얼굴로 대꾸해주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응당 물어봐야지. 그래, 이번에는 또 무엇이 궁금하더냐.”

동천은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물었다.

“다름이 아니라 미미 아가씨의 일은 어떻게 된 겁니까?”

“응?”

“찾으실 생각을 안 하시는 것 같아 이상해서요.”

만한상이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그것이 궁금했더냐? 말은 안 했다만 아가씨의 행적은 이미 간파했단다. 일 리 정도 떨어진 곳에서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중이지. 내 진작에 확인은 했다만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어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네 질문 덕택에 기어코 말하게 되었구나.”

동천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아아,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전 또 어떻게 되셨으면 큰일이니까 그동안 무척이나 궁금했었거든요.”

그리곤 뒤를 바라보는 척하며 안면을 구겼다.

‘쳇, 납치되어 고문당하는 줄 알고 좋아했었는데.’

생각은 생각이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며 다행이라는 얼굴을 보여준 동천은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을 미미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걸어갔다.


제갈세가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쪽에서 연락을 취하기도 전에 그들이 찾아온 것이었다. 천마도해의 문제가 상당히 촉각을 세울 만한 가치가 있었던지, 제갈세가에서는 무사들을 변장시켜 생각 이상으로 분포시켜놓은 것 같았다.

“이거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마중 나온 사람들은 총 다섯 명이었는데 한 명의 노인을 빼고는 전부 중년들이었다. 그리고 노인이 이들의 지휘자인 듯 선두에 서서 만한상을 맞아주었다. 인사를 받은 만한상으로서는 당연히 응답을 해줘야 하는 법.

“수고라면 소 장로 자네도 우리들 못지 않았을 텐데 그 무슨 말인가.”

두뇌의 상징인 제갈세가가 아니랄까 봐 소 장로의 얼굴은 누가 봐도 학자풍이었다. 눈매를 굳히면 대쪽같아 보이고 살짝만 웃어도 기품이 느껴지는 그러한 인상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지금의 소 장로는 활짝 웃으며 기품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허헛, 과찬이십니다. 그보다 가주께서 친히 오셨으니 서둘러 뵙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한상은 깜짝 놀랐다.

“이곳에 직접 말인가?”

상대의 표정이 재미있었던지 소 장로는 웃음의 강도를 살짝 높였다.

“하하, 그렇습니다. 토목계 장인도 같이 데려오실 정도로 상당히 흥미로워하시더군요. 여하튼 이곳에서 이틀이나 기다리고 계셨으니 어서 가서 그분의 목마름을 풀어주시지요.”

“이틀이라면 많이도 기다리셨군. 내 그렇게 하지.”

제갈세가의 가주가 궁금해할만도 할 것이 급서(急書)를 보냈을 때 ‘천마도해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 귀가에서 최고의 토목 기술 관계자 요망. 자세한 것은 파견된 좌태상님과 육 장로님에게 듣길 바람. 만일을 위해 귀가의 인력을 요청함.’이라고 쓰여져 있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갈 가주인 제갈운(諸葛雲)의 입장에서는 궁금하고 초조해서 밤잠을 설칠 정도였던 것이다.

가주에게 안내해주려던 소 장로는 갑자기 주춤한 뒤, 동천 등을 바라보며 만한상에게 물었다.

“저들은…….”

육 장로는 어디 가고 어찌하여 어른 하나와 어린애 떨거지들이 함께 왔냐는 의미로서, 적절한 대답을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만한상도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다름이 아니라 육 장로는 오는 도중 심기가 불편하여 되돌아갔고, 여아를 뺀 저들은 한림서원의 원주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네. 오는 길이 같아 동행한 것이지. 그리고 저들이 바로…, 자세한 것은 직접 제갈 가주님을 뵙고 말씀을 드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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