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22화
한편, 거처를 향해가던 동천은 중소구가 축하하는 의미에서 점심을 사겠다고 말하자 심한 불신을 느꼈지만 겉으론 신나 하는 얼굴을 보였다.
“무슨 음식을 사줄 건가요?”
동천의 물음에 중소구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흐흐, 오늘은 본 대인의 전 재산을 털겠으니 기대해도 좋다.”
제갈세가 밖으로 나와 반듯한 객점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중소구의 전 재산을 털어 소면을 즐겨(?) 먹게 되었다.
“후룩, 후루룩! 커어, 맛 좋다. 응? 왜 그리도 깨작거리지? 팍팍 좀 먹어!”
모래가루를 씹듯 먹는 둥 마는 둥 겨우겨우 씹어 삼키고 있던 동천은 수중에 독 가루만 있다면, 중소구가 먹고 있는 소면에 팍팍 뿌려대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힘을 키우기 전까지는 참아야 하는 입장인지라 가까스로 화를 억누를 뿐이었다.
“저는 속이 좀 거북해서요. 아? 그보다 도연이가 잘 먹네요.”
“그렇군! 한 그릇 더 하겠는가?”
도연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배가 부릅니다.”
그것을 본 동천은 ‘저놈도 어지간히 실망했나 보구나.’라고 생각했다. 개떡같았던 점심 식사가 끝나자 동천은 서둘러 일어나길 원했고, 그들은 다시 세가로 돌아왔다. 헌데, 도연과 긴히 할 말이 있었던 동천은 중소구가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자 넌지시 그를 떼어 놓으려 했다.
“혹시, 오줌이나 큰 게 마렵지 않으세요?”
중소구는 전혀 마렵지 않다고 했으나 사람의 속성상 같은 소리를 두어 번 듣다 보면 반응이 오게 마련이었다. 그는 간격을 두고 세 번째 물어오는 동천의 물음에 드디어 걸려들고야 말았다.
“으흠! 그러고 보니 쪼까 마려운 것도 같구나.”
기회를 포착한 동천은 재빨리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세요? 그럼, 얼른 다녀오세요. 참으면 몸에 안 좋다고 하니까.”
“그렇지. 네 말이 맞다. 방귀도 참으면 몸에 해롭듯 오줌이나 똥도 참으면 몸에 안 좋은 것이지. 그래, 다녀와야겠구나.”
‘더러운 새끼.’
우선 욕부터 하고 난 동천은 웃는 낯으로 지당하신 말씀이라 말했다. 중소구가 나가고 그가 사라지는 것을 문틈으로까지 확인한 동천은 도연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말야. 잠시 사부님께 갔다 오는 척 좀 해야겠다.”
난데없는 이야기에 도연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왜 입니까?”
“실은 한 노사가 이러저러해서 난감하다 하길래, 그렇다면 이러저러해서 도연을 보내면 어떻겠냐고 이 몸이 말씀하시니까 그 영감이 감격을 하며 ‘오오, 역시 너는 천재구나!’하더라고. 그래서 니가 가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도연이었지만 뒤이어 중소구의 존재가 떠오르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중 대인께서 아시면 분명 동행하시겠다고 고집 피우실 터인데……, 그건 어떻게 합니까.”
동천은 뭐 그리 어렵게 생각하냐는 식으로 답해주었다.
“그냥 며칠 데리고 놀다가 약간 허술하고 그럴싸한 곳에 이 몸께서 주신 서찰을 숨겨놓은 뒤, 이곳에 놓아두면 누가 알아서 가져간다고 해. 그럼, 지가 어쩔 거야. 같이 돌아올 건데 확인을 해보겠어? 더군다나 그 사이 다른 인간이 보고 버리면 나중에 확인하러 와도 찾을 수 없을 것 아냐.”
그렇게 수긍할만한 답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영 아니올시다.’도 아니었다. 이런 문제를 처음 겪어보게 된 도연은 신중히 생각해볼까도 했으나, 특별히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주군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언제 떠날까요?”
요리조리 눈동자를 굴리던 동천은 급하게 보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뭐, 지금 당장에 떠날 필요는 없고 내일이나 모레. 둘 중에 니가 가고 싶은 날 가봐.”
“그럼, 내일 떠나 일주일 정도의 여유를 잡고 다녀오겠습니다.”
자신이 직접 고르라고 했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러던지. 아참? 그래도 서찰은 써줘야겠지? 가만있자. 이 몸께서 붓을 어디다 뒀더라?”
도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조금 있으면 중 대인께서 오실 터이니 잠시 늦추시지요. 그분께서 돌아가시거든 그때 쓰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중소구가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신중을 기하자는 뜻이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 그 의미를 파악한 동천은 맞는 말이라 생각하여 도연의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그래?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그러지 뭐. 그나저나 이 새끼는 왜 이리 늦어? 에이, 하여튼 나잇살 처먹고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동천이 그거 기다리는 것도 못 참아 버럭 화를 내고 있는데 멀리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곧이어 다소 멋쩍은 얼굴의 중소구가 들어왔다.
“험! 그새 아무 일 없었지?”
동천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환히 웃었다.
“그럼요. 여기가 어딘데.”
“하긴, 이곳이 제갈세가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하하하!”
중소구가 호탕하게 웃자 기회를 엿보고 있던 동천은 이때다 싶어 말을 꺼냈다.
“저기, 중 대인님. 실은 도연이가 제 사부님께 서찰을 전하러 잠시 외부로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애 혼자 보내기엔 세상이 너무 험한지라 중 대인께서 동행해주심이 어떨는지요.”
동천의 이야기에 도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려도 시원찮을 판에 자신과의 동행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중소구가 눈치채지 못하게 입가를 쓰다듬는 척하며 전음을 시전 했다.
『주군, 어찌하여…….』
『시끄러워!』
동천에게도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었다. 어차피 골치 아픈 자식이 간다고 우길 게 뻔하니, 그새 생각을 바꿔 처음부터 비위를 맞추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중소구는 호탕하게 허락했고, 동천은 앓던 이가 빠진 듯 시원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후후, 요 며칠간은 편히 살겠군.’
모처럼 폼을 잡던 동천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는지 두 손을 모아 하늘님에게 간절히 빌었다.
‘하늘님, 가다가 뒈져버리게 해주세요. 올 때 객사시켜도 무방해요. 예? 걱정 말라고요?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만세! 하늘님 만세!’
“……뭐하냐?”
만세를 부르고 있던 동천은 급히 정신을 차렸다.
“헤헤, 별것 아니라 도연이 무사히 다녀올 수 있도록 소원을 빌었던 거예요.”
“그으래?”
“예.”
당사자가 그렇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중소구는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도연과 중소구를 문 앞까지 바래다준 동천은 중소구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올렸다.
“도연을 잘 부탁합니다.”
“험! 본 대인만 믿고 걱정 말아라.”
중소구와의 대화를 끝마치고 도연에게 다가간 동천은 품속에서 밀봉된 서찰을 꺼내 주었다.
“이거 잘 간직하고, 절대 펴보는 일이 없도록 잘 간수해.”
도연은 조심히 받아들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막상 알겠다고 했지만 도연은 심히 궁금했다. 주군이 서찰 안의 내용을 자신에게도 비밀로 부쳤기 때문이다. 어젯밤, 혼자 서찰을 휘갈겨 쓸 때 사악한 표정을 짓던 주군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덤으로 ‘이히히!’거리며 웃기까지 했다. 너무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참아야 했다. 거기까지가 자신에게 할당된 영역이었으므로.
“이제 다녀오겠습니다.”
도연이 마무리 인사를 하자 중소구를 의식한 동천은 차분히 대꾸해주었다.
“그래, 멀리 배웅하지 않으마.”
큰맘 먹고 떠나는 이들에게 손까지 흔들어 준 동천은 그들이 인파 속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자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고 킬킬거렸다.
“큭큭큭, 이제 이 몸의 세상이로다. 으히히히!”
방정맞게 허리를 젖히며 웃어대던 그는 두 명의 위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두 눈에 번쩍 신광을 터트린 동천은 점잖게 물었다.
“뭔가?”
“예? 무슨 말씀이신지…….”
위사들이 당황하는 듯하자 동천은 태연히 대꾸했다.
“아니면 됐네. 흐음, 날씨 좋다.”
“…….”
동천은 떨떠름한 표정의 위사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마지막 보루인 도연마저 없자, 돌아가는 길이 막막했던 것이다. ‘훗!’하고 웃음을 지어 보인 그는 다시 문 앞으로 되돌아왔다.
“여보게들.”
때마침 동천을 씹어대고 있었던 위사들은 도둑이 제발 저리듯 깜짝 놀라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행동했다.
“말씀하시지요.”
동천은 자신의 질문에 대꾸한 왼쪽의 위사에게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 혹시, 뜻깊은 일을 해보지 않겠나?”
왼쪽의 위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뜻깊은 일이 무엇인지요.”
“음, 다름이 아니라. 아직 이곳의 지리에 적응하지 못하여 가는 길이 막막하이.”
동천의 결론은 갈 길을 모르니 데려다 달라는 뜻이었다.
“푸웃!”
절로 기가 막혀진 위사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직이 웃고야 말았다. 동천의 입장에서는 화딱지 날만도 했으나 이곳은 암흑마교가 아니라 제갈세가였다.
“그리 웃지들 말고 안내해주게나.”
겨우 웃음을 추스린 위사들은 잠깐 한 명이 빠진다 하여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기에 알겠다고 말했다. 그리곤 대화를 주고받았던 왼쪽의 위사가 동천을 바래다주게 되었다.
“따라오시지요.”
“흐음, 고맙네.”
동천은 뒷짐을 지고 따라갔다. 그리고, 일각 정도를 지나 방향치인 동천의 눈에도 낯익은 건물들이 보일 때쯤 잠자코 안내하던 위사가 입을 열었다.
“이제 다 왔습니다. 저기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시면 그 다음부터는 눈 감고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동천은 만족해했다.
“그렇구만. 이제 이 몸 혼자서도 충분하겠어. 가만있자. 이렇게 고마운데 줄 것은 없고……, 대신 이 몸이 의술을 좀 배웠으니 자네에게 좋은 약을 선사하겠네.”
위사는 별 기대도 않았기에 사양했다.
“아닙니다. 제 도리를 다했을 뿐이니 받을 수 없습니다.”
“아니야. 자네에게 꼭 필요해서 하는 말이야. 자네 혹시, 요 근래에 무엇을 잘못 먹고 변비 증상이 심하지 않은가?”
위사는 깜짝 놀랬다. 그렇지 않아도 일주일 전, 같이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친구와 상한 고기를 먹고 난 뒤 대변이 안 나와 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 그걸 어떻게!”
기가 산 동천은 더욱 폼을 잡았다.
“어허! 내 그러게 의술을 좀 배웠다 하지 않았는가. 안색이 누렇고, 입술이 매말라 있는 것이 아무래도 중증(重症)이야. 웬간해선 고치기 힘들어. 혹, 정력까지 감퇴되지 않았던가?”
위사가 소리쳤다.
“쪽집게이십니다!”
때려 맞췄던 동천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을 했다.
“당연한 게야. 한곳이 막히면 그 영향을 받아 다른 곳도 덩달아 막히는 법이지. 하지만 걱정 말게. 다 방도가 있으니. 따라오겠는가?”
동천에게 넘어온 마당에 어딘들 따라가지 못하랴. 당연히 위사는 따라갔고, 자신의 거처에 당도한 동천은 가져온 물품들을 뒤적이다 마침내 원하던 것을 찾자 옅은 미소를 뿌리며 엄지 구슬만한 단환을 위사에게 건네주었다.
“이것을 받게. 내 예전에 있던 곳에서 초향이란 계집에게 어렵사리 구한 것인데 그 효과가 ‘직빵!’일세.”
직빵. 왠지 가슴에 와 닿는 단어였다. 특히, 큰 것이 안 나와 밤새도록 뒷간에서 보내야 했던 위사로서는 더욱 그랬다. 단환을 받아들고 감격에 몸을 떨던 그는 갑자기 같이 고생하던 친구가 떠오르자 혼자만 먹기가 미안해졌다. 그래서 그는 송구스러움을 무릅쓰고 동천에게 간청했다.
“공자님. 죄송하지만 여유가 있으시면 하나 더 구할 수 있는지요.”
동천은 짐짓 곤란한 모습을 했다.
“으응? 어째서인가.”
“다름이 아니라, 아까 보았던 위사도 저와 같은 증상을 겪고 있어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저만 낫는다는 게…….”
동천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환한 미소를 띄웠다.
“하하, 우정이란 참으로 좋은 것이지.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어디 보자. 아? 마침 마지막 하나가 남아 있구만. 여기 있네.”
단환을 받아든 위사는 고개가 땅에 처박힐 정도로 숙이며 좋아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잊기만 해봐라. 그 똥꼬를 찢어줄 테다.’
생각과는 달리 동천은 정중히 위사를 물리쳤다.
“됐네. 이 몸은 바쁘니 이제 가보게.”
“예예! 그럼, 이만.”
신나게 달려간 위사는 왜 이리 늦게 왔냐는 친구 위사에게 희소식을 들려주었다.
“아니? 이게 정말로 그렇게 효험이 있단 말인가?”
단환을 건네준 위사는 의기양양하게 폼을 잡았다.
“물론이네. ‘직빵!’이라 했네! 이제 고생은 끝난 것일세. 나는 오는 도중 먹었으니 자네도 얼른 먹게나.”
친구는 희색이 만면하여 냉큼 집어 먹었다. 그러자 싸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위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먹어보니 벌써 효과가 있는 듯하구먼!”
“그렇지? 거 보라니까. 내 말이…….”
“왜 그러나?”
위사는 갑자기 묘한 표정을 짓더니 엉거주춤한 자세를 잡았다.
“아무래도 효, 효과가 오는가 보네.”
친구가 반색했다.
“그것 기쁜 소리구먼!”
그러나 위사의 안색은 점점 탈색되어갔다.
“그, 그게…, 그게!”
창자가 꼬이는 가운데 ‘헉?’하고 헛바람을 들이킨 위사는 그동안 쌓아두었던 숙변을 비단 자락 펼치듯 쏟아내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
“으으, 나도 모르겠네! 크헉? 또, 또!”
엉덩이를 한껏 뒤로 빼낸 위사는 본능적으로 뒷간을 찾아 달렸는데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바지를 타고 흐르던 그것들이 십여 장 밖까지 이어져 꼬리를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리를 이탈할 수 없어 멀뚱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위사는 참으로 보기 흉한 모습에 내심 혀를 찼다. 하지만 그는 불현듯 깨닫는 것이 있어 경악을 하고야 말았다.
‘나, 나도 먹었는데…….’
그렇다. 그도 먹었던 것이다. 아까 친구의 말이, 오는 중간에 먹었다 하니 발동이 걸리려면 아직까지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다 자리를 이탈하는 것은 중죄였다. 더군다나 가주님이 돌아오시지 않은 이 시국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간 어떠한 처벌을 받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아직 아침이었고 교대 시간은 까마득했다. 더군다나 짜기라도 한 듯 근처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 비쳤다.
‘큰일났구나.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어린애가 준 것을 냉큼 받아먹은 것이 새삼스레 후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먹은 것을 어떻게 물린단 말인가. 그때 반갑게도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상춘(賞春)은 어디 갔는가.”
밤새 술을 마시다 되돌아온 부진한이었다. 평소 엄하기로 소문난 그가 나타나자 반가움은 곧 절망으로 물들었다. 잠시 자리 좀 맡아달라고 할 상대가 아닌 것이다. 그는 애써 괜찮은 얼굴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옛, 잠시 뒷간에 갔습니다!”
골이 좀 띵해 고개를 흔들던 부진한은 이해한다는 듯 표정을 풀었다.
“으음, 생리 현상은 어쩔 수 없지.”
그 말에 용기가 솟아난 것일까? 위사는 마른 침을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저기…, 저도 큰 것이 마려운데요.”
부진한은 싸늘히 말했다.
“어쩌라고.”
“예? 그, 그러니까 잠시 맡아주시거나 다른 순번의 위사에게 연락을 해주십…, 크억!”
쌓인 게 많았던 부진한은 술기운까지 겹치자 위사의 배를 걷어찬 뒤 고함을 질러댔다.
“이놈, 정신이 썩었구나! 내 당장에 너를 쫓아내고 싶지만 그동안의 정을 생각하여 한 달 감봉에 일주일간 교대 없이 위사를 서는 것으로 벌을 다하겠다! 알겠느냐?”
위사는 아픈 배를 움켜잡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잠시 위사를 노려보던 부진한은 팩 돌아섰다.
“인생이 뭐 이러하더…, 응? 이게 뭐야. 똥 아냐?”
부진한이 투덜대며 사라지자, 위사는 괜한 입놀림 덕에 감봉을 당한 것이 억울해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보다 억울할 일은 따로 있었으니.
“강(崗)가.”
어여쁜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달 그와 혼약을 앞둔 미란(美蘭)이라는 여인이었다. 경직된 얼굴로 고개를 돌린 그는 가슴에 한아름 꽃다발을 들고 있는 미란이를 볼 수 있었다.
“어…, 와, 왔어?”
반응이 시원치 않자 그녀는 샐쭉 입을 내밀었다.
“치! 뭐예요. 전 가가를 위해 밖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꽃다발을 사 왔는데.”
“미, 미안해.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 하면 그……, 으음.”
“어머머? 할 말이 없으니까 말끝을 흐리는 것 봐?”
‘그, 그런 게 아냐! 크흑? 버, 벌써!’
드디어 창자가 뒤틀리는 증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발동할 때가 아님에도 부진한의 발차기로 인해 약효가 급속도로 퍼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알 리 없었던 미란은 너무도 미안하여 저러는 줄 알고 봐주기로 마음먹었다.
“좋아요. 이번만은 봐주지요. 자, 받아요.”
그녀는 한아름 꽃다발을 선물했지만 그는 한아름 숙변을 선물했다.
‘뿌지직! 뿌직!’
“꺄악, 꺄아아아!”
후일담이지만 그의 엄청난 대변에 충격을 먹은 그녀는 혼약을 당장에 취소했고, 실의에 빠진 위사는 몇 달 동안 술기운으로 살아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