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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331화


결국엔 그랬다.

다음날 아침, 주군과 함께 식사를 하던 도연은 문정이 주군을 부르는 소리에 기겁을 했다.

“지, 지금 뭐라고 했지?”

웬만해서는 눈 하나 깜짝 않는 도연인데 그가 놀란 것이다. 문정은 창피한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도연의 물음에 답했다.

“사부님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이 침착해진 도연이 주군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 아이가 도련님에게 사부님이라니요.”

동천은 입안의 내용물을 오물거리다 태연히 대답해주었다.

“뭘 그리 놀래. 어제 이 몸께 무공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기에 ‘그럼, 이 몸을 사부로 모셔라.’ 하고 말했더니 승낙해서 그러기로 한건데.”

“하지만 이건!”

“아아, 걱정하지마. 정식 제자는 아니라고. 이 몸도 사부님이 계신데 어찌 그분의 허락도 없이 제자를 받아들이겠냐. 그저, 이 몸께서 한 수 가르쳐주면 배우는 정도인데 기왕이면 그냥 가르쳐주는 것보다 사부소리 들으면서 가르쳐주는 게 훨씬 낫잖아? 안 그래?”

반쯤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다소 안심은 되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언짢은 도연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도 할말이 없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신 도련님께서 벌써 제자를 들였다고 소문나면 건방진 아이라는 둥 생각이 없는 아이라는 등의 안 좋은 소문이 들릴까싶어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 소리에 동천은 벌컥 화를 냈다.

“뭐? 어떤 놈들이야! 누가 감히 이 몸을 뒤에서 욕한다는 거야?”

도연은 전혀 위축됨 없이 말했다.

“예를 들어 그렇다는 겁니다.”

동천은 금새 수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쳇! 이게 그렇게 욕먹을 짓인가?”

문정은 자신을 흘겨보는 동천이 갈등을 때리고있자 급히 나섰다.

<그, 그건 다들 사부님의 진정한 실력을 몰라서 그러는 걸 겁니다. 그들이 사부님의 실력을 안다면 감히 그럴 수야 있겠습니까? 자고로 영웅은 질시하는 자들이 따르게 마련이니 이럴 때일수록 의연하게 대처하십시오.>

순간 도연은 주군의 귀가 쫑긋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진정한 실력’과 ‘영웅’이라는 단어들이 동천의 심기를 어루만져주었던 것이다. 곧이어 그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어렸다.

“후훗, 그렇지. 이 몸께서 어찌 무지한 자들의 질투 어린 시선에 넘어가겠는가. 제자야, 잘 지적해주었구나. 역시, 내 제자로다.”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한 문정은 내심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수그렸다.

“황송하옵니다.”

그러자 도연은 과연 눈앞의 문정이 이제껏 자신이 보아온 그 아이였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봤다. 찔끔한 문정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과정에서 도연에게 슬며시 말했다.

“놀라셨죠? 하지만 저도 제 나름대로 무공을 배우고싶어 저분의 비위를 맞춰주는 거니까 너무 엄한 눈초리로 보진 마세요.”

도연이 납득할 정도의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지만 도연에겐 그런 것보다 적당히 말하고 사연이 있는 듯 들려주는 게 효과를 보는지라, 문정은 이쯤에서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과연, 도연의 안색이 풀렸다.

“일이 이렇게된 이상 너를 탓하진 않는다. 그러니 내 눈치를 볼 것 없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나 혼자서는 도련님이 벅찼는데 너로 하여금 조금은 짐을 덜겠구나. 내가 없을 때라도 시중을 잘 들거라.”

“물론입니다, 형님.”

이래저래 비위를 맞추느라 문정이 진땀을 빼는 사이, 비비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동천은 그의 안내를 받아 한림서원으로 향했다.

“제자야, 도연에게 뭐라고 한 것이냐?”

“예?”

“뭘 그리 놀라느냐. 그러니까 본 사부의 말씀인즉슨 아까 도연을 따라가서 무슨 대화를 나누었냐고 묻고 계시는 것이다.”

문정은 동천이 별 생각 없이 묻는 것이자 대충 둘러댔다.

“아아, 그것 말이죠? 다름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정하신 일이니 너무 감정적으로 나서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동천은 만족의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너무 까불지 말라고 했다고? 과연, 너답구나!”

‘나답다고? 나다운 것을 본인조차 모르는데 네가 안다니 참으로 사부로구나. 제발 그런 솜씨로 나를 가르쳐주겠느냐?’

내심 비아냥거린 문정은 동천을 데려다준 뒤 거처로 되돌아와 다시 모시러갈 때까지의 무료함을 달래려 아무 책이나 집히는 대로 읽었다. 예전의 사고이후 이렇게 책을 접한 것은 근 2년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저녁때가 되어 동천을 데려온 문정은 그가 무공을 가르쳐줄까 싶어 내심 두근거렸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피곤하다며 신경질을 내고 자빠져 잤던 것이다. ‘지도 사람인 이상 조만간 가르쳐주겠지.’ 하는 마음에 참고 또 참았지만 2주라는 시간이 물 흐르듯 흘러가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사부님!”

동천은 싹싹한 제자 놈이 오늘따라 눈알을 치켜 뜨자, 잠깐 귀여워해준 뒤 쌍코피를 흘리며 울먹이는 제자에게 다정스레 물었다.

“이 씨팔 놈이 기어오르네? 죽고 싶어?”

“흑흑, 아니요. 잘못했어요. 하도 조급한 바람에……. 요, 용서해주세요.”

동천은 화를 풀고 의아한 얼굴을 했다.

“조급해서 그랬다고? 뭐가 그렇게 조급했는데?”

문정은 동천의 눈치를 봐가며 입을 열었다.

“그, 그게요. 가르쳐주신다던 무공이 여태껏 깜깜무소식이라 제가 잠시 어떻게 되었던 겁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동천은 그제야 2주전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아하? 그러고 보니 본 사부가 너무도 무심했구나. 좋다, 오늘 가서 본격적으로 본 사부의 비전절기를 전수해주마.”

문정은 기뻐서 다시 눈물을 흘렸다.

“흑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저녁을 기약하고 한 노사에게 시달리다 돌아온 동천은 평소보다 더욱 싹싹한 문정의 태도에 너그러운 마음이 일어났다.

“제자야, 우선 앉거라.”

문정은 드디어 올게 왔다는 것을 깨닫고 긴장된 어조로 대답했다.

“예, 사부님.”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사부님 소리에 기분이 좋아지는 동천이었다. 그는 이렇게 좋은 것을 왜 진작 제자를 들이지 않았나 후회스런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사부가 어째서 그 많은 제자들을 들였는지 십분 이해가 됐다.

“네 반짝이는 눈빛을 보니, 어릴 적 이 사부를 보는 것만 같구나. 그런 의미에서 이 사부는 참으로 기분이 좋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무공이나 가르쳐 줘!’

문정의 다급한 마음을 읽었는지 동천이 드디어 무공을 들먹였다.

“본 사부가 가르쳐주려는 것은 철경상의 내용에 기재된 심법이다. 이름하야 역심무극결(逆心無極缺)이라고 하지.”

동천이 말하는 동안 그의 심중을 살펴본 문정은 다 알면서도 그를 띄워주기 위해 깜짝 놀라는 척했다. 물론, 실지로 놀란 것도 무시 못했지만 말이다.

“아니? 철경이라면 사부님께서 비밀리에 익히시던 것이 아닙니까? 어찌 그러한 내용을 본 제자에게.”

문정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던 동천은 돌연 싸늘히 말했다.

“이씨, 네 능력으로 벌써 다 알고있으면서 웬 시치미야? 너 한 대 맞을래?”

문정은 재빨리 고개를 저어댔다.

“아, 아닙니다. 제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없어 자세한 말씀을 듣고자 했을 뿐 절대로 사부님의 심기를 건드리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던 동천은 언제나 그렇듯 쉽사리 마음을 바꾸었다.

“히히, 그랬어? 난 또 뭐라고. 에헴! 잘 듣거라. 본 사부는 지금 두 가지 심법을 익히고 있다. 한데, 지금 너에게 가르치려는 심법을 익힐라치면 다른 심법이 모두 흡수하는지라 이 역심무극결의 진정한 위력을 알 수가 없구나. 그래서 너로 하여금 그 위력이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전수하고자하는 것이니, 이것을 기회라 생각하고 네 몸이 가루가 되도록 열심히 익혀보도록 하거라. 알겠느냐?”

동천이 말한 대로 문정에게 이것은 확실한 기회였다. 그래서 그는 굳은 의지로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얻게되는 과정이 어떠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을 잘 배우고 익혀서 내 것으로 확실히 소화만 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기회가 아닌가.’

그는 흥분하여 소리를 높였다.

“명심하겠습니다!”

“큭큭, 좋아. 그런데 요즘 도연은 무엇을 하고있지? 좀체 이 몸을 만나러오지 않는구나. 제자는 알고있으냐?”

점수를 딸 기회이자 문정은 주저 없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제가 사부님을 잘 모신다는 것에 안심을 하셨는지 뒷마당에서 소구자식과 함께 대련을 하고 계십니다.”

동천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다 이내 평소대로 돌아갔다.

“흐응, 이 몸의 뒤를 쫓아오기 위해 그놈도 제법 애쓰고있나 보군. 이제부터 제자 너도 본받아야 할 것이야.”

“옛, 알겠습니다. 헤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도연 형님이 글쎄 사부님을 따라하고 있지 뭡니까?”

갑자기 동천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뭐? 뭘 따라해?”

문정은 뭔가 잘못 말한 듯 싶었지만 이제와 무를 수도 없어 조심스레 말했다.

“왜 있잖아요. 사부님처럼 뒷짐지고 하는 거요.”

“뭐시기? 그 자식이 그걸 따라한다고? 이런 싸가지 없는 자식을 봤나! 당장 가서 그 시키 불러와!”

무언가 일이 벌어질 태세이자 말 한번 잘못 놀려 사태를 악화시킨 문정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천을 진정시키려 무진장 애를 썼다.

“진정하세요. 너그러운 사부님께서 참으셔야죠.”

그 말에 잠깐 주춤했지만 그 효력은 순간일 따름이었다.

“이건 너그러운 본 사부라도 못 참아! 얼릉 가서 불러와!”

“하,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사부님은 순금이고 도연 형님은 도금한 가짜일 뿐인데 이렇게 흥분하시면 오히려 속 좁은 분으로 소문이 난다고요.”

이건 좀 효과가 있었는지 일어서서 방방 뜨던 동천이 슬그머니 주저앉았다.

“제자야, 좀더 자세히 말해보려무나.”

문정은 이마의 땀을 쓸어 내린 뒤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요. 한 노사님의 밑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는 사부님께서는 진정한 오의를 깨닫고 계시지만 사부님을 뵈러 잠깐 잠깐 들렸던 도연 형님은 아무리 사부님을 흉내내려고 해도 오르지 못할 나무라 이거죠.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해서 고수가 된다면 세상천지에 고수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사부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도연 형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다면 그분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시고 아마도 사부님을 우러러볼걸요?”

동천은 크게 감탄하여(언변에 넘어가) 문정을 칭찬했다.

“오오, 듣고 보니 그러하구나. 너는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본 사부와 똑같더냐. 순금과 도금의 차이라……. 푸하하! 과연 그렇도다!”

신이 난 동천은 그날 좋아라 히히거리며 놀았고, 덕분에 문정은 무공의 무 자도 꺼내지 못한 채 동천의 비위를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다음날 저녁부터 문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문정을 가르치기 시작한지 나흘이 지났을 때였다. 아직까지 구결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냐 면서 문정을 귀여워 해주던 동천은 부진한의 방문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차를 마시는 상태에서 그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그간 나름대로 바쁜지라 찾아 뵙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먼저 찾아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부진한은 껄껄 웃었다.

“그 사이 말재주가 상당히 늘었네, 그려. 화를 내려해도 도무지 허점이 없어. 하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거 좋지. 응? 그런데 문정의 얼굴이 엉망이구나. 누구와 싸웠느냐?”

이젠 스님이 아니어서 말을 놓는 것이었다. 문정은 어설픈 웃음으로 부진한의 물음을 때웠다.

“헤헤, 싸우긴 요. 스승님께 배우는 과정에서 약간 다쳤을 뿐입니다.”

“저게 무슨 소리인가?”

부진한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동천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기다렸다는 듯 강하게 말했다.

“별 것 아닙니다. 저는 무엇보다 기초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대련을 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초식이 흐트러지면 손속에 인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실 지도 모르지만 기초가 튼튼한 자야말로 생사의 순간에 살아남는 것이기에 그러는 것이니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직 심법의 구결에서 헤매고있는 문정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아무 것도 몰랐던 부진한으로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군. 어린 나이에 그 이치를 깨닫고있었다니 말야. 하긴 요즘 것들은 기초를 너무 우습게 보고있어. 아무래도 오늘부터는 단단히 틀어잡아야겠네. 단단히, 아주 단단히 말야.”

이날의 결심으로 부진한의 부대는 상당히 고된 훈련을 받게된다. 오죽했으면 훈련자들 사이에서 ‘너희가 기초를 아느냐.’ 라는 작자 미상의 서적이 널리 읽혔을까. 하지만 훗날, 제갈세가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게될 부대가 부진한의 부대가 되리라는 것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훗날의 일일뿐이다.

“그나저나 아까 밖이 분주하던데 누가 왔습니까? 아침식사중이라 알아볼 틈이 없었는데, 마침 진한님께서 오셨으니 물어보는 것입니다.”

동천이 바깥상황을 묻자 부진한은 정작 중요한 것을 미루고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엇? 내 잠깐 깜빡했네. 자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려고 왔는데 기초에 대해 이야기하다 애꿎은 시간만 소비했군. 다름이 아니라 황룡세가에서 자네가 원하던 것이 온 모양이야.”

“제가 원하던 것이라면…….”

“그새 잊었는가? 황룡신단 말일세.”

“예에? 그게 왔단 말입니까?”

부진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하, 바로 그걸세. 자네가 직접 찾아가야 하는 것인지라 지금 당장 가봐야 한다네.”

기대도 안 했던 것이 거론되자 절로 흥분이 되는 동천이었다.

“그렇다면 어서 가시지요.”

“어서 가야할걸세. 빨리 오지 않으면 자신이 꿀꺽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계시는 분이 있으니까. 하하하!”

“무슨 소리입니까?”

부진한은 나이답지 않게 짓궂게 웃었다.

“가보면 안다네.”

동천은 고개를 갸웃하며 뒤따라갔다. 흥분되는 가슴을 안고 부진한을 따라간 동천은 가주대리인 제갈공이 어느 초라한 늙은 거지와 대화를 나누고있는 것을 보게되었다. 그들을 발견한 부진한은 재빨리 달려가 고개를 숙인 뒤 동천을 소개했다.

“이 공자가 바로 동철입니다.”

제갈공은 이미 알고있어 차분히 눈인사를 한 것으로 끝냈지만 동천을 처음 대했던 늙은 거지는 가까이 다가와 이모저모를 살펴보다 돌연 두 눈을 부릅뜨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오, 멋지도다. 이, 이렇게 뛰어난 수가.”

동천은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늙다리가 기분 나빴지만 그렇다고 추켜세워 주는데 마다할 그가 아니었다.

“하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늙은 거지는 그 무슨 소리냐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어댔다.

“그렇지 않아. 머릿결…. 그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뛰어난 머릿결이야.”

“…….”

분노가 치솟는 말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라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대신 당황한 부진한이 나서주었다.

“자자, 신분이 확실하고 둘째 어르신께서도 이 자리의 증인이시니 그 물건을 인계해주시지요.”

부러운 듯 동천의 머릿결을 바라보던 늙은 거지는 옆에서 귀찮은 것이 짹짹거리자 부진한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만히 있어봐! 요 꼬마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단 말야!”

그거하고 인계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다면 아무 상관도 없었다. 늙은 거지로서는 그간 가지고 다녔던 것을 막상 건네주자니 아쉽기도 하고 아깝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번 본적이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내가 요 꼬맹이를 어디에서 보았더라? 분명 요 근래에 한번쯤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말야. 흐음, 나 취불개도 늙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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