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34화
그의 변신은 무죄 1.
마당에 앉아 해지는 노을 녘을 바라보던 문정은 곧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사부인 동천을 데리러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은 동천이 황룡신단을 날린 지 꼭 한달 째가 되는 날이었다. 그때 동천을 보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나간 이유를 몰랐지만 오직 그만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황룡신단의 존재여부는 비밀이었던 탓에 도연에게만 가르쳐주었다.
“확실히 충격이 컷을 거야. 쳇, 그래도 밥은 잘 처먹는 게 신기하단 말야?”
그렇다. 넋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하면서도 밥만 들이대면 잘도 집어먹었다. 처음 한 노사는 수련하러오지 않는다고 방방 떴지만 동천의 상태를 보자 수긍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밥 먹는 것을 보곤 수상하다는 눈빛을 지우지 않았다. 또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다시 넋 나간 인간이 되기에 한 노사로서도 마땅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하고 떨어져나갔다.
그리고 기절했다가 깨어난 중소구는 장도가 나타났다고 떠들어서 제갈세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 소동은 잠잠해졌다. 놀라긴 놀랐는데 떠든 인간이 워낙 신빙성이 없는 인간인지라 금새 시들해졌던 것이다. 중소구로서는 그가 기절했을 때 장도가 떠났으므로 자신의 주장할 뒷받침해줄 만한 껀덕지가 없었다. 그나마 도연이 증인으로 거들어주긴 했지만 한 노사가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던데?’ 라고 말하는 바람에 그의 주장은 철저히 묵살되어 버렸고, 그로 인해 한 노사만 보면 이를 갈았다.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던 중소구는 결국 장도를 잡아오겠다며 제갈세가를 뛰쳐나갔다.
“그래도 점점 정신을 차리는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완전히 회복되면 또 때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 당시 죽도록 맞았던 기억이 되살아나자 소름이 다 돋았다.
“하지만 인간이 좀 바뀌었으니 그럴 염려는 없겠지.”
양손으로 팔을 부비며 한림서원으로 찾아간 그는 땀에 흠뻑 젖은 동천을 볼 수 있었다. 문정은 재빨리 우물로 달려가 한바가지 떠다 주었다.
“목마르실 테니 좀 드시고 쉬시지요.”
동천은 조용히 미소하며 받아들었다.
“고맙다.”
동천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충격을 먹고 나더니 확연히 달라진 그의 모습이었다. 실지로 문정이 확인해본 것이라 확실하긴 했지만 사람의 본성이 어디 쉽게 달라지겠는가. 물론, 달라질 수도 있었지만 동천은 예외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니 좀더 두고봐야만 할 것 같다. 문정의 낌새를 알아 챈 한 노사는 문을 열고 손을 내저었다. 이만 가보라는 뜻이다. 동천은 깍듯이 인사를 올렸다. 그런 뒤 문정의 안내를 받아 거처로 되돌아왔다. 그는 뒷마당에서 혼자 비지땀을 흘리며 수련을 하고있는 도연에게 다가갔다.
“도연아,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아? 오셨군요.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도연은 문정이 준비해준 수건으로 얼굴과 목 언저리를 닦은 뒤 주군을 모셨다. 그 바람에 지체는 됐지만 동천의 얼굴에는 전혀 불쾌감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동천은 품위를 갖추며 천천히 하나하나 집어먹었다. 확실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들 당황해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이제는 제법 익숙해져있었다. 도연과 문정은 오히려 만족할 지경이었다. 동천은 다 먹은 듯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흡수한 내공들은 다 네 것으로 만들었니?”
내공 이야기가나오자 도연은 약간 굳어진 얼굴로 대답했다.
“도련님이 생각해주신 덕분에 거의 제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동천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하하, 참 다행이로구나.”
이어 그는 문정에게 물었다.
“제자는 혈도의 위치와 흐름을 다 익혔느냐.”
문정이 혈도에 관한 제반사항이 없자 역심무극결을 잠시 뒤로 미루고 그것을 먼저 익히게 하고있는 것이다. 심법을 익히려면 혈도의 위치와 명칭을 정확히 알고있어야 하는데 가르치는 것이 처음이었던 동천이 미처 그것을 생각 못해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사부에게 배웠던 것처럼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었다. 문정으로서는 이러한 동천의 변화가 행운이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웃음 진 얼굴로 답했다.
“제자의 자질이 부족하여 정경십이맥(正經十二脈) 중 수태양소장경(手太陽少腸經), 족태양방광경(足太陽膀胱經), 수소양삼초경(手少陽三焦經), 족소양담경(足少陽膽經) 등은 아직 외우고있는 중입니다.”
알아들었다는 듯 동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익혀도 된다. 급하면 돌아가라는 말이 있느니라. 조급해한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이 얼마나 문정이 바랬던 사부의 표본인가. 그는 이 순간만큼은 기꺼운 마음이 들어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 사부님.”
문정의 대답을 끝으로 식사를 마쳤다. 그 동안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었던 도연은 다함께 있는 자리에서 주군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 허리띠는 어째서 계속차고 계시는지요.”
동천은 도연의 말뜻을 금새 알아차렸다.
“위험한 물건이란 말이냐?”
도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황룡신단의 기운을 흡수한 것도 그렇고 주군께 내상을 입힌 것도 그렇고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후후, 그렇지가 않다.”
“위험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동천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애매 모호한 표정을 보였다.
“글쎄, 어떤 때에는 위험하지만 알고 보면 도움을 주는 부분이 더욱 많다. 내공을 순수하게 걸러주는 것도 그렇고, 내공의 일정 분량을 제어해 남들에게는 그리 뛰어나지 않게 나를 보호해주는 것도 그렇다. 위험한 부분은 이 허리띠를 차고있을 때 고수에게 공격을 받으면 치명타를 입는다는 것이지만 나에게는 감지력과 예지력이 있기 때문에 그것은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 당시 내가 허리띠를 차고 황룡신단을 섭취할 때 예지력이 발동하지 않은걸 보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예지력이 고장났을 수도 있지만 감지력이 살아있는 것을 가끔 확인하는 지금에는 그것이 잘못됐을 리 없다고 단정하고있지. 그리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인데 ‘흡수를 했으면 나중에 돌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하고 있다. 뭐, 그러한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로 이것을 벗을 수는 없어.”
도연은 주군이 그 나름대로 상당한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가서 딴 짓 말고 푹 쉬거라.”
다들 보내고 혼자만 남게된 동천은 가볍게 운기조식을 끝낸 후 부진한을 통해 구비해놓은 서적들 중 하나를 꺼내 읽었다.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열중하던 그는 시간이 꽤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불을 끄고 잠이 들었다. 확실히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반 시진동안 운기조식을 마친 동천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아침식사를 하고 문정의 도움으로 한림서원에 당도했다.
“노사님, 동철이 왔습니다.”
한 노사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나왔다. 매일 안에서만 지도하던 그로서는 의외의 행동인 것이다.
“오늘부터 1단계를 벗어나 2단계로 진입하겠다.”
1단계니 2단계니 오늘 처음 들어보게 된 동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단계도 있었는지요.”
한 노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있으니까 말한 것이 아니냐.”
동천은 약간 당황한 얼굴을 했다.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신경쓸 것 없다. 그보다 본 노사가 이렇게 밖으로 나왔으니 치우도법의 1초식인 소불승강(少不昇降)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펼쳐보거라. 물론, 내공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2단계에 들어가기 앞서 흡족하지 않게 펼치면 생각을 고쳐먹겠다는 한 노사의 심중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말이었다. 동천도 눈치를 챘는지 평소에 배운 대로 심호흡을 가다듬고 초식을 펼쳤다.
‘소승불강은 총 33식(式). 하나 하나가 모두 힘있게 뻗는 것을 위주로 한다. 그러나 너무 과하면 기혈이 흐트러지고 도법은 깨어지고 만다. 가히, 전혀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다는 초식의 이름과 걸 맞는 것이다. 올라가고 올라가면 얻은 것만 못하고, 내려가고 내려가면 잃은 것만 못하다(昇昇不得, 降降不失). 초식을 행함에 있어 언제나 명심해야하는 것은 중용(中庸)의 미(美). 강함에 매료되어도 안되고 약함에 기울어져서도 안 된다. 정신을 집중하고 내가 행하는 바를 깨닫는다면 무난히 시전 할 수 있는 것이다.’
느린 그림이 움직이듯 천천히 치우도법을 전개한 그는 단 한번의 시전만으로도 땀에 흠뻑 젖었다.
“푸하, 제대로 되었는지요.”
그의 움직임 하나 하나를 홀린 듯 바라보고 있던 한 노사는 정신을 차린 뒤, 있는 그대로 말해주었다.
“훌륭했다.”
“과찬이십니다.”
마음에 들었는지 한 노사가 본격적으로 2단계를 실행하고자했다.
“좋다, 이제 총 33식 중 1식을 행함에 있어서만 내공을 주입시켜보아라.”
“예?”
언뜻 이해가 안 갔나보다. 하는 수 없이 한 노사가 다시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평소처럼 소승불강을 시전 하되 총 33식 중에 오직 1식만을 내공을 사용하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동천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면서도 한 노사의 말을 따랐다. 그렇게 소승불강을 대여섯 번 시전 했을까? 돌연 한 노사가 소리쳤다.
“이놈, 마지막 33식의 끝 부분부터 1식으로 이어질 때 내공을 주입했지 않느냐!”
동천은 헐떡이며 말했다.
“그, 그렇지만 아주 조금이었지 않았습니까.”
“바보 같은 놈! 내공의 시전과 회수란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해야하는 법이거늘, 하물며 너같이 상승의 무공은 더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을 어찌 모르느냐!”
찔끔한 동천은 심신을 추스린 후 한 노사의 질책을 받아들였다.
“거기 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이후로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치우도법을 시전하자 반 시진 가량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 노사가 다시 한번 호통을 때렸다.
“맺고 끊고만 생각한 나머지 초식의 흐름이 틀어지지 않았느냐! 집중과 긴장은 엄연히 다르다! 다시!”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보름이 지나자 한 노사는 자신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33식 중 아무거나 불렀다. 그러면 동천은 그 부분에서만 내공을 주입해야했다. 어떤 때는 두 부분을 요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다섯, 많게는 스물 두 군데나 요구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실수를 거듭한 동천은 꾸중을 들어야만했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했다. ‘노력’ 이라는 단어가 뭔지도 몰랐던 동천이 말이다. 그러는 가운데 다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동천이 한 노사의 밑에서 배운지 3달이 다 되어갔다.
“헉, 헉헉. 다아…, 전개했습니다.”
하루종일 내공을 시전 했다 거두기를 반복했으니 어찌 지치지 않겠는가. 그런 동천이 기특할 만도 하건만 어찌된 일인지 한 노사의 얼굴을 밝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냐.”
동천은 한없이 수그러드는 고개를 겨우 끌어올렸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요. 헉헉.”
“너는 오늘 처음으로 치우도법의 일초 33식을 완전히 전개했다. 내공을 사용해서 말이다.”
“헉헉, 맞습니다.”
한 노사의 얼굴이 차츰 일그러졌다.
“그런데 어째서 본 노사가 생각했었던 위력이 나오지 않냐는 것이다. 혹, 역심무극결을 익힌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것인가?”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동천이 펼친 것을 보면 확실히 강력하고 뛰어난 도법이었는데, 치우철경 내에 기재된 위력과는 천지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동천은 곧 무슨 말인지 깨닫고 주저하며 대답했다.
“그 말씀을 하시니 아뢸 말이 있습니다.”
한 노사는 눈을 번뜩였다.
“이유를 알고있는 듯 하구나. 말해보거라.”
“실은 제게 귀의흡수신공이라는 뛰어난 내공심법이 있는데, 이 심법은 시전자 자신에게 이로운 기운이라면 모조리 흡수하여 혼합하는 성질을 가지고있어 제가 역심무극결을 운기하고 나면 모조리 흡수하는 턱에 제 단전에는 오직 귀의흡수신공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치우도법을 시전할 때 귀의흡수신공을 끌어냈는지라 제대로 된 위력이 발휘 안 되는 모양입니다.”
한 노사는 기가 막히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 난형난제(難兄難弟)라 더니, 지금이 바로 그 꼴이지 않는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잠시 여유를 갖고 생각에 몰두하던 한 노사는 동천을 바라보았다.
“동철아, 그 귀의신공이라는 것은 혼합 외에 흡수한 것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성질 또한 갖고있느냐?”
‘아?’
한 노사의 말을 듣는 순간 동천은 자신이 무언가 아주 중대한 사실을 잊고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흡수(吸收). 혼합(混合). 변종(變種). 생성(生成). 사멸(死滅). 활용(活用). 발현(發顯)…….’
동천이 멍한 표정을 짓자 한 노사가 다시 물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그러나 동천은 자신만의 생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그의 습관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 기억이 난다. 예전에 도연이 무의식중에 발휘된 내 독무를 들이마셨던 때였을 거야.’
“그 당시 저는 주인님께서 누워서 쉬시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주인님의 몸에서 푸른색의 공기가 퍼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뭔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하고 주인님께 다가갔는데 그 푸른 공기를 마시자 숨이 턱 막히고, 구토가 치밀어 오르며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놀란 저는 뒤로 황급히 물러섰는데 별 소용이 없었는지 잠시 후에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깨어보니 여기였습니다.”
말을 다 듣고 난 역천은 자기혼자 생각에 잠겼다가 곧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동천은 사부가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을 않자 궁금해했다. 역천은 제자를 보고 따라오라는 시늉을 한 뒤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주위의 이목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동천은 얼른 따라갔다. 약전을 나온 동천은 인내심이 다했는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부님! 어째서 제가 내공을 운용했는데 독무가 뿜어져 나온 거예요?”
주위를 두리번거린 역천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말해주었다.
“제자야. 이건 순전히 이 사부의 생각인데 아마도 항광이 너를 환골탈태 시켜준다고 깝쭉거렸을 때 본문의 귀의흡수신공과 항광의 만독혼원공이 섞여져서 변종(變種)을 일으킨 것 같다.”
동천은 변종이란 말이 께름직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나쁜 건가요?”
역천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다. 그건 니가 앞으로 내공을 어느 쪽으로 써나갈지에 따라서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단다.”
“예?”
“그러니까, 아직은 본문의 심법과 항광의 심법이 비슷한 수준의 상태이지만 니가 한 방향을 선택해서 익히지 않고 어정쩡하게 익힌다면 나중에 너에게 커다란 타격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동천은 갑자기 떠오르는 의문점이 있었다.
“사부님. 제가 항광 할배의 심법을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독공 쪽으로 익히는 게 가능해요? 말이 안되지 않아요?”
간만에 질문다운 질문을 한 동천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그럴 듯 하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천은 의외로 터진 제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놀라하다 곧이어 안정을 되찾고는 대견한 듯 동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오! 그래, 말 한번 잘했다. 역시 내 제자로다. 좋다. 말해주마. 지금 너의 몸 속에는 현재 최고의 독공고수라 할 수 있는 만독노조 항광의 진원지기(眞元之氣)가 무려 삼 갑자나 들어차 있다. 그중 일 갑자 반만이 활용되고있고, 나머지 일 갑자 반은 니가 꾸준히 격발시켜 네 것으로 만들어야 하지. 내공이라는 놈이 참으로 오묘해서 어떠한 성질을 어느 정도 가지고있으면 얼마든지 그것을 키워 나갈 수 있단다. 즉, 니가 본문의 심법을 운용할 때마다 마음속으로 독기를 생성시키도록 노력한다면 얼마든지 네 심법의 성격을 바꿀 수가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본문의 심법은 여타의 심법들 보다 정신적인 부분이 강하기 때문에 좀더 수월할 수 있단다. 알겠느냐?”
동천은 감탄의 표정으로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런 제자의 시선에 우쭐해진 역천은 신이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정도인들은 독공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마도에서 조차 그런 경향이 없지 않지. 하지만! 강호의 세계는 냉정하다. 입만 가지고 나불대다가는 언제 뒈질지 모른다는 얘기다. 독공은 익히긴 어렵지만 일단 익히기만 한다면 거의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사부의 말을 잘 새겨듣고 니 몸 속의 독기를 사장(死藏)시킬지 활용(活用)할지 잘 생각해 보거라.”
동천은 사부의 말을 들으면서 무언가 흥미 있는 걸 발견했는지 눈을 가늘게 모았다.
‘호오? 익히기는 어렵지만 일단 익히기만 하면 거의 천하무적이라고? 음. 나는 역시 운이 좋은 아이라니까? 항광 할배. 고마워요. 비록, 할배가 모자라서 나를 환골탈태 시켜주진 못했지만 할배가 남겨준 내공으로 잘 활용해 볼께요. 히히히!’
드디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잊고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젠장, 어느 순간부터인지 독공을 생각하며 귀의흡수신공을 운용해야한다는 것을 까먹고있었어. 사부님께서는 어중간히 익히면 큰일난다고 하셨는데 여태껏 잊어먹고 본래의 귀의흡수신공을 익혔던 거야. 그렇다는 것은 그 동안 귀의흡수신공을 독공에 대항하도록 키웠다는 소리가 아닌가. 더군다나 이제는 역심무극결까지……. 으으, 내공이 균열되지 않는 것이 신기하구나. 어, 어떻게 하지?’
당황해 안절부절못하던 동천은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자 땀에 젖은 얼굴로 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 무슨 말씀이 있으셨습니까?”
한 노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 귀의신공이라는 것은 혼합 외에 흡수한 것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성질 또한 갖고있냐고 물었었다. 그런데 대답이 없어 너를 몇 번 불렀을 뿐이다.”
동천의 입에서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셨군요. 불행히도 혼합하여 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노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그게 불행하다는 것이냐.”
동천은 어두워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것은 제가 그 동안 잊고 있었던 또 하나의 존재가 방금 에야 생각났기 때문이죠.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지금 제 몸 속에는 도합 세 가지의 내공이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귀의흡수신공이라는 이름 하에 긴밀하게 섞여서요. 아시겠습니까? 무려 세 가지라서, 언제 어디에서 균열 내지 폭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동천의 목소리가 거칠게 올라가자 한 노사는 자중하라는 듯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진정해라. 본 노사도 한 공간에 서로 다른 내공들이 존재하면 안 좋다는 것쯤은 알고있다. 세 가지라……. 확실히 상황이 안 좋군. 지금에야 생각난 내공은 무엇이더냐.”
“독공입니다. 그것도 제일 영향력이 강한 것이죠. 그 다음이 귀의흡수신공이고, 마지막이 역심무극결입니다.”
“골치가 아프군. 독공을 버리자니 내공이 급격히 줄어들 터인데.”
동천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독공을 사용하지 않는데 어째서 내공이 줄어듭니까? 저는 여태껏 독공을 의식하지 않고도 전 내공을 사용해올 수 있었는데요.”
“그것은 본 노사의 이론인 무의식적 목적성향과 비슷하다. 너의 무의식적인 내면세계가 독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내공을 끌어올려야 상대에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 만약 네 말 대로라면 너는 타인과 상대함에 있어 무의식적으로 독공으로 변한 귀의흡수신공을 끌어올렸다는 소리이다.”
동천은 이해가 간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전 어떻게 해야하는지요.”
“너는 세 가지의 내공들 중 원하는 것만을 따로따로 끌어올릴 수 있겠느냐?”
머리를 긁적인 동천은 쉽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예전에는 심법을 운용할 때 가능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좀.”
한 노사는 냉정해진 얼굴로 동천을 대했다.
“몇 일이 걸려도 상관없으니 가능해지면 다시 오너라.”
그리곤 휙 돌아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멀뚱히 서서 한 노사의 방문을 쳐다보던 동천은 한숨을 푸욱 내쉰 뒤 한림서원 근처를 서성였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해가 지려면 한참 걸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시간을 때우다간 문정을 기다리다 지칠 거라는 이야기이다. 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하는 수없이 바닥에 앉아 독공을 끌어올리며 귀의흡수신공을 운용했다. 한 시진동안의 운기를 끝으로 눈을 뜬 동천은 주위의 식물들이 말라 죽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일단은 성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멀쩡한 상태에서 독공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을 집중해 전 내공을 끌어올린 동천은 오로지 독공만을 생각했다. 잠시 생각 후 허리띠까지 풀었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전 내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푸스으으으.
마침내 동천의 전신에서 연녹색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예전에 보았던 것과는 한참이나 모자랐다. 그래도 성공은 성공이었다. 희열을 느낀 그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진땀을 쏟아가며 독공을 뿜어냈다.
‘거의, 거의 다 성공했다. 이제 조금이면 독공이 차지한 비율을 알 수 있겠어. 조금만 더……, 윽?’
갑자기 진기가 요동을 치고 전신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황한 동천은 다급히 진기를 억눌러보았으나 소용없었다. 내부가 진탕되고 식도를 경유해 핏물이 올라왔다. 그러나 동천은 삼켜야만했다. 지금 핏물을 뱉어내면 그 속에 함유된 내공을 날려버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눈앞의 시야가 흐려지는 가운데 엉성하게 주저앉아 가부좌를 튼 그는 머리가 어지러운 가운데 오른쪽 허벅지 부근에서 희미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뭐지? 이 청량한 기운은?’
그것은 동천의 몸 속으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단전이나 등 뒤의 명문혈이 아니라, 허벅지의 혈도 부근에서 진입시켜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 기운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주화입마에 이른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있었다.
우우우우웅. 퍽!
돌연, 자신이 한 것도 아닌데 허벅지 한 부분이 터져 버렸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대량의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휘몰아치듯 밀려들어온 그것은 날뛰는 망아지처럼 요동을 치는 내부를 차근차근히 제압해나갔다. 전신이 상쾌해지고 나른한 오후의 포만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천은 꿈을 꾸었다. 텅 빈 공간. 그 속에서 서있는 그에게 갑자기 두 사람이 튀어나왔고, 그들은 전신이 녹색인 자와 검은색인 자였다.
“어? 너희들은……. 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