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82화
중소구는 동천이 멈추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 신형을 늦춘 상태였다. 그는 여유롭게 다가와 동천의 뺨을 때렸다.
쫙!
“으엑? 아이고 동천 죽네!”
“이놈 봐라? 그 정도 내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엄살을 부려?”
중소구의 말뜻은 동천 정도의 내공이라면 외부의 충격에도 몸을 보호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동천은 그런 방법을 몰랐다. 그러니 기본 충격은 흡수해도 그 이상의 충격에서는 자지러지는 것이었다.
“흑흑, 진짜로 아파요. 이거 봐요. 피, 피가 나오잖아요. 엉엉!”
중소구는 눈살을 찌푸렸다. 동천이 손가락을 입안에 넣다 빼자 진짜로 흥건한 피가 묻어 나왔던 것이다.
“이놈아. 왜 내공으로 보호하지 않았느냐.”
동천은 겁에 질린 눈빛으로 중소구의 눈치를 보며 계속 흐느꼈다.
“흑흑, 내공으로 뭘 보호해요. 전 뭔 소린지 몰라요.”
중소구는 대뜸 황당한 표정을 보였다.
“뭐야? 그럼 할 줄 아는 건 경공술밖에 없다는 소리냐?”
왜 그것밖에 없겠는가. 욕 잘하지. 사악한 짓 잘하지. 잠도 퍼질러 잘 자지. 기타 등등.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러나 동천은 그런 자신의 주특기를 내세우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예. 훌쩍, 여지껏 사부님께 제대로 배운 건 그거 달랑 하나예요.”
중소구는 때마침 자신이 원하던 쪽으로 화제가 바뀌었는지라 대뜸 물어보았다.
“그래? 그렇다면 네놈 사부의 존함은 무엇이더냐?”
동천은 좀 곤란한 질문을 받게 되자 요리조리 말을 돌렸다.
“그게요. 하늘처럼 위대하시고, 땅처럼 무게가 있으시고, 바다처럼 마음이 넓으시고, 때로는 하늘도 거역하시고, 땅을 뒤집어엎기도 하시고, 바다에서 개울물로 옮겨가시기도 하시고… 에 또, 그게 그러니까.”
동천이 대답하기를 꺼려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잘 들어보면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동천이 보는 역천은 하늘처럼 위대하고, 때로는 땅처럼 무게가 있고, 바다처럼 마음이 넓을 것이다. 또한 이름이 역천이니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고, 땅처럼 무게가 있지만 반대로 실실거리기도 했고(물론 실실거리는 것이 거의 9.9할이었지만), 가끔 쪼잔함을 보여 바다에서 개울물로 옮겨 다니기도 했으니 와전된 것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중소구가 원하는 것은 당연히 그게 아니었다. 그가 말없이 손을 들자 또 얻어맞을 것을 염려한 동천은 그에게 매달려 애원했다.
“대인! 다른 건 몰라도 그것은 절대 가르쳐드릴 수 없어요! 흑흑, 사부님께서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제가 그걸 말하면 어찌 제자라고 하겠습니까. 예?”
좀 찜찜하기는 했지만 사부가 비밀로 하라고 했다는데 그가 더 무엇을 캐내겠는가. 그것은 한때 자신도 사부를 섬겼던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사유였던 것이다. 그는 귀찮게 자신의 바지를 늘어 잡고 있는 동천을 떼어내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그 손 좀 놔라. 어? 놓으라니까?”
이때 동천이 바지를 놓을 리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기회냐. 바로 혈도를 눌러 제압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었다. 동천은 원독에 찬 눈빛을 내면 깊숙이 숨기고 때를 기다렸다.
<찌르면 된다. 찌르면…>
중소구가 움직임을 멈춘 것은 동천의 손가락이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그는 의심에 가득 찬 눈으로 동천을 노려보았다.
“너 뭐하냐? 설마 그 손가락으로 내 혈도를 치려는 건 아니겠지?”
“예?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동천은 실로 귀신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며 급히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후볐다.
“그, 그게 아니라요. 방금 맞은 것 때문에 귀가 멍멍해서 귀를 좀 후비려고요. 헤헤.”
중소구는 동천의 손이 느슨해진 틈을 타 손을 뿌리친 후 한 걸음 물러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세한 것은 차차 알 수 있을 터이니 우선은 되돌아가기로 하자.”
더 캐물을 줄 알았던 동천은 여기에서 끝낸다는 소리에 얼른 맞장구를 쳤다.
“제 말이 그 말이었다니까요? 으… 헤헤.”
중소구는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잘도 쫓아오는 동천을 흘겼다.
“으히히하고 웃던 거 마저 웃어보지 그러냐?”
동천은 비굴하게 웃으며 고개를 수그렸다.
“헤헤, 이젠 그런 나쁜 습관은 버려야죠. 대신 방금처럼 헤헤거리는 건 괜찮지요?”
중소구는 귀찮아하는 얼굴로 말했다.
“왠지 재수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아까 그것보다는 덜 재수 없어 보이는구나. 네놈 마음대로 하거라.”
동천은 이마에 핏대가 설 정도로 화가 났음에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헤헤, 그럼 이제부터는 이렇게 웃을게요.”
이제 동천의 웃음에 별 관심이 없어진 중소구는 문득, 무엇이 생각났던지 속도를 늦춰 동천과 나란히 달렸다.
“그런데 말이다. 네놈은 네 사부에게 몇 년 동안 배웠느냐.”
“그거요? 그러니까 말이죠. 일년, 한 달, 일주일, 하루…”
동천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시늉을 했다. 생각할 것도 없는 일이었으나 원체 생각이 없는 놈이라 그냥 셈하는 척했던 것이다. 어쨌든 곧 정리하고 말했다.
“근 2년인데 그건 왜 물어요?”
중소구는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을 했다.
“2년? 너 지금 본 대인과 장난 하냐? 어떻게 2년밖에 못 배운 놈이 내공은 그 지랄로 많더냐! 누군가가 네놈 몸뚱이에 내공을… 아? 그렇구나. 그런 거냐?”
동천은 중소구의 기세에 눌려있어서 제대로 못 들었다.
“예? 뭐가 그래요?”
중소구는 화가 뻗쳐 저도 모르게 동천의 뺨을 후려쳤다.
“아악! 자, 잘못했어요. 흑흑, 근데 왜 또 때려요. 이 피 좀 봐요.”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잘못했다고 빌었는데 나중에 가서는 정신이 되돌아왔는지 울면서도 피를 앞세워 그 이유를 물었다. 동천의 수준을 잠시 망각했던 중소구는 이번만큼은 미안한 기색을 떠올렸다.
“험! 본 대인이 실수를 했구나. 허나, 남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안 듣는 네놈에게도 문제가 있느니라. 그러니 이번 일은 그것으로 무마하자꾸나.”
“씨이…(팔놈).”
중소구는 동천이 받아들이려 하질 않자 위협용으로 손을 들었다.
“반항이냐?”
이런 상황에서 동천이 어쩌겠는가.
“아, 아니요. 쌤쌤이라고요? 헤헤, 그렇게 하지요.”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컸던 고로 울음까지 그친 동천이었다. 중소구는 만족의 웃음을 짓고 다시 경공을 전개하며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해 주었다.
“그러니까 고작 2년을 배웠으면서도 내공이 그렇게 뛰어난 것은 어느 고인이 네놈에게 내공을 전수해 주었냐는 것이다. 혹, 네놈의 사부냐?”
동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대인 말씀대로 어느 고인이었죠. 하루는 제가 잘 가고 있는데 동굴 속에서 절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왜 부르나 갔더니 글쎄 내공을 전수해 주겠다지 뭐예요? 제가 의심을 한 것도 아니었지만 사정을 들어보니까 절로 수긍이 가더라고요. 얘기인즉, 제 근골이 천하제일인지라 운명의 힘에 이끌려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어쩌겠어요? 그분이 그렇다는데. 제가 밑지는 것도 아닌지라 냉큼 받아들였죠. 그랬더니 제 내공이 높아진 이유는 보시는 바와 같은 거예요.”
“흐음, 아무래도 그 고인은 독공을 익혔을 게다. 맞지 않느냐?”
동천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중소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신나게 떠들어댔다.
“왜냐하면 독이 골수까지 치고 들어와, 미쳐버린 나머지 너 같은 놈에게 내공을 전수해 준 것이다. 으하하! 본 대인이 추리해 놓고도 정말 절묘하구나!”
이때 동천이 해줄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싸가지 없는 새끼…>
안타까운 것은 그것을 직접 말로서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동천이 그렇게 욕을 하고 있을 때 어느새 그들은 도연이 머물던 곳으로 당도하게 되었다. 그때 도연은 묘한 얼굴로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중소구는 그의 안색이 창백한지라 급히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그러나, 운기조식 중에는 신체를 건드릴 수 없었다. 때문에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그간의 지식으로만 도연의 상태를 가늠해야 했다.
“흐음,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중소구는 특이한 증상이 없는데 왜 안색이 이런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그때 동천도 그 나름대로 도연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경악을 했다.
“헉? 이, 이건 분명히 심마(沈魔)에 사로잡힌 증상?”
언젠가 사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동천도 처음 듣는 소리라 흥미 있게 들었던 걸로 기억했다. 바로 심마(心魔)와 심마(沈魔)가 다른 점이었다. 앞서 심마는 육체적 진도의 막힘으로 인해 기혈이 엉켜 주화입마의 초입에 들어서는 단계이고, 동천이 생각하는 심마는 의식을 가라앉히는… 즉, 정신적 몰입으로 인해 식물인간의 초입에 들게 하는 단계라 했다. 두 가지 심마가 결국은 식물인간, 또는 사망으로 접어든다는 점에서 같지만 사뭇 다른 점이 있다면 심마(心魔)는 신체를 해하고, 심마(沈魔)는 정신만을 해한다는 점이었다. 그때 중소구가 동천의 중얼거림을 들었다.
“심마? 그게 뭐더냐. 그런 종류도 있더냐?”
동천은 중소구의 물음을 무시하고 안절부절못했다.
“신기(身氣)가 안정되어 있지만 안색이 창백하고, 곤혹스러워하다 풀린 듯 미소를 짓다 무심으로 돌아가는 상태… 으으, 아무래도 맞나 벼. 어, 어쩌지? 이 자식 이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영영 못 깨어날 텐데?”
도연은 무아지경에서 흐르듯 멈추듯 유속(流速)의 흐름에 맞추어 정신을 흘리고 있었다. 이런 상태가 된 데에는 일각 전 3인의 도움이 컸다. 아니, 그중 눈매가 놀랍도록 가는 사내의 덕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