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386화
도연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고 난 뒤였다. 그러나 도연은 크나큰 충격과 절망감에 물들어야만 했다. 내공이 모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동천은 병신 짓 하다가 그렇게 된 거라며 혀를 찼고, 중소구는 안타까워하며 잘 될 것이라고 위로를 해 주었다. 객점에 머물게 된 도연은 내공의 상실감이 이리도 클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하루하루를 소비했다. 그런 도연의 내공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였다. 어느 순간 미약하게 진기가 모이더니 점차 예전의 힘이 모이기 시작했다. 동천은 도연의 상태를 알아차린 후 이게 다 내 덕분이라며 으스댔고, 중소구는 축하의 말을 건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동천의 귀를 잡아끌었다.
“아야야! 아프니까 그만 좀 당겨요!”
중소구는 밖으로 나와서야 순순히 놓아주었다.
“네놈의 그 헛소리가 줄지 않으니 본 대인은 실로 가슴이 아프다.”
동천은 은근히 중소구를 꼬라보았다. 그의 눈은 ‘네가 왜 아픈데?’라고 묻는 듯 보였다. 이렇듯 동천이 꼬라볼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중소구가 말을 늘어놓으며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린놈이 자신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문을 이었다.
“그리하여 본 대인이 너에게 기(氣)로서 신(身)을 보호하는 수법을 가르쳐주겠노라.”
동천은 노려보는 것을 멈추고 눈을 반짝였다.
“그게 정말이에요?”
중소구는 눈썹을 치켜떴다.
“본 대인은 거짓말을 모른다.”
동천 입장에서는 그가 거짓말쟁이인지 아닌지 알 바 아니었다. 다만 가르쳐주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빨리 가르쳐 주세요!”
중소구는 말해주기에 앞서 귀한 것을 가르쳐주는 것 마냥 폼을 잡았다.
“험! 본시 기라 함은 생명의 기운을 뜻한다. 그리고 그 기운을 무형(無形)에서 유형(有形)으로 바꾼 것이 바로 내공이다. 내공의 힘은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타점에 맞게 유형화했을 때 더욱 그 힘을 발휘한다.”
그때 동천이 끊고 들어왔다.
“잠깐만요. 타점에 맞게 유형화한다는 게 무슨 소리예요?”
중소구는 말이 중단되자 다소 얼굴을 구겼다. 허나, 대인의 풍모를 유지하기 위해 조용히 답변해 주었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내 너를 때릴 때 손바닥으로 쳤다면 너는 내 손바닥의 크기만큼 내공을 유형화시켜 맞게 될 부분에 옮겨다 놓으면 된다는 소리이다.”
동천이 다시 물었다.
“옮겨다 놓다니요?”
마침내 그는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역시 머리가 모자라구나. 잘 들어라. 아까 말했듯이 기라 함은 생명의 기운을 뜻한다. 그 생명의 기운이 몸 구석구석 자리해야만 우리가 이렇게 멀쩡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기운은 끊이지 않고 흐른다. 내공은 그 기운을 잠시 빌리는 것일 따름이지. 그러니 전신에 퍼져있던 기를 내공으로 유형화하여 맞게 될 부위로 생성시키라는 소리였다. 알겠느냐?”
동천은 금세 깨달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내심 투덜댔다.
<뭐야, 그런 거였어? 쳇, 하여간 무식한 것들이 말을 어렵게 한다니까?>
중소구는 잠시 다물고 있던 입술을 열었다.
“그리하여 때리는 쪽의 힘과 막는 쪽의 힘에 차이가 났을 때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너는 내공을 유형화시킬 수 있느냐?”
당연히 할 수 있었다. 동천만큼 내공을 익힌 자 치고 내공을 한곳으로 집중시키지 못하는 자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동천이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은 역천이 가르쳐주기도 전에 톡 튀었기 때문이었다.
“물론이죠! 헤헤, 그러니까 저에게 가해지는 타점의 크기에 맞게 내공을 생성한 다음 그 부위에 집중시키면 된다는 거죠?”
중소구는 그렇다고 말한 뒤 추가로 보충설명을 해 주었다.
“네놈의 신법은 변화에 강한 것 같아 회피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니 지금 네 수준에서는 막는 것보다 피하는 법을 강구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동천은 처음 무공을 배울 때 들었던 것이라 수긍하는 눈치를 보였다. 이제 가르칠 것을 다 가르쳤다고 생각한 중소구는 좌우로 번갈아 가며 어깨를 풀었다.
“자아, 이제 실전에 들어가 보자.”
“예? 실전이요?”
“그렇다. 들어가마!”
동천은 눈을 크게 떴다. 뭘 들어간다는 말인가? 그 궁금증은 금세 풀렸다.
쫘악!
멍청히 서 있던 동천은 얼떨결에 왼쪽 뺨을 얻어맞았다.
“으악!”
중소구는 바닥을 뒹구는 동천을 향해 꾸짖었다.
“본 대인이 간다고 했지 않더냐! 무림이란 본 대인처럼 경고를 해주지 않는다! 언제 어디에서 일격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공격한다 언급을 해줘도 맞다니, 네놈은 정말 잘 하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뺨을 부여잡고 있는 동천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었다. 그도 그 나름대로 내공을 끌어올려 방비를 했던 것이다.
<흑흑, 망할 놈의 새끼… 하나 안 하나 똑같잖아!>
이때 중소구도 모르고 동천도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중소구가 동천이 끌어올린 내공과 똑같은 수준으로 후려쳤다는 것이다. 이해가 안 간다면 똑같은 속도로 당신의 양 손뼉을 강하게 마주쳐 보라. 그리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저기요. 흑흑, 피나요.”
피를 보여주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동천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이었다.
“에이, 덜 떨어진 놈!”
중소구는 지극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신형을 돌렸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못마땅한 사람은 당연히 동천이리라.
<감히 이 몸을 때려? 두고보자. 언젠가 크게 후회하게 해줄 테다! 으으, 그건 그렇고 되게 아프네.>
그래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은 아주 효과가 없진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덜 떨어진 놈이라고 한 중소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바닥으로 쳤을 때 강한 반탄력을 느꼈으니까. 중소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방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자마자 때렸던 손을 부여잡았다.
<어이구 아파라. 저놈은 딴 건 몰라도 내공만큼은 가히 일절이로다.>
체면상 괜찮은 척했던 모양이다. 아쉽게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동천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야야야…”
볼이 화끈거리고 따가웠다. 동천은 분명 뺨에 손자국이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입안이 터질 정도인데 자국이 없겠는가? 새삼스레 눈물이 솟아 나왔다.
“흑흑, 사부님이 보고 싶다.”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 옆에서 쪼그리고 앉은 동천은 무릎 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한참 동안 그러고 울었다. 동천이 울음을 멈춘 것은 점심이 돼서였다. 중소구와 같이 먹기 싫었던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혼자 점심을 시켜 먹었다.
“우걱우걱,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식사를 거르지 말아야 해. 그래, 난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복수를 위해서 이러는 거야.”
갖다 붙이기는 잘했다.
“끄윽! 잘 먹었다. 근데 좀 속이 메스껍네?”
기름진 음식들을 잔뜩 먹어서 속이 좀 울렁거렸다. 동천은 지나가는 점원을 불렀다.
“이봐, 여기 입안이 개운해지는 차 한잔 부탁해.”
점원은 어깨에 올려진 수건으로 땀을 닦아대다가 흥겨운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요!”
차가 도착한 것은 금세였다. 이런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해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동천은 점원의 싹싹한 말대로 맛있게 드시려고 했다. 허나 그러기에는 좀 문제가 있었다.
“이봐, 난 뜨거운 것은 별로거든? 차가운 것으로 부탁해.”
점원은 약간 안색을 굳혔다. 싸구려 공짜 차를 마시면서도 꽤나 까다롭게 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매상을 톡톡히 올려준 관계로 참기로 했다. 실실 웃으며 차를 가져간 그는 곧 동천이 원하는 차가운 차를 대령했다.
“원하신 대로 가져왔습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동천은 거만하게 고개를 까딱이고 단숨에 쭉 들이켰다. 허나 마시지는 않았다. 다만 입안을 부비기만 하고 다시 뱉어냈다.
“아아, 이제야 살 것 같네.”
입가심용으로 찾았던 모양이다. 바로 그때 투박한 손이 동천의 컵을 집었다. 언놈인가 하고 고개를 든 동천은 상대가 중소구라는 것을 알아챘다.
“오셨어요? 헤헤.”
중소구는 차로 추정되는 것을 단숨에 마시고 동천과 마주 앉았다.
“그래. 본 대인이… 으음, 이거 맛이 좀 이상하다?”
“그, 그러세요?”
중소구는 뭔가 넘어 올 것 같은 괴이한 느낌에 오만가지 인상을 썼다.
“뭔가 끈적하고 미지근한 게 기분이 영…”
동천은 시치미를 딱 떼고 말했다.
“원래 이런 촌구석이 다 그렇잖아요. 싸구려 공짜 차니까 대충 만들어서 가져왔기 때문일 거예요.”
중소구는 예전에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네 말이 옳다. 그래서 내 이런 곳은 피하는 성격이지만 도 소형제의 몸 상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머물렀던 게지.”
방금 전까지 속으로 실실거렸던 동천은 기분이 무척이나 상했다. 자신에게는 이놈, 저놈 하는 자식이 도연에게는 소형제, 소형제 하고 있으니 그 누군들 기분이 좋으랴. 동천은 이 기회에 단판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인! 어째서 제게는 이놈 저놈 막말을 하면서 도연에게는 소형제라고 하는 겁니까?”
중소구는 미간을 급격히 좁히고 동천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기분이 더럽냐?”
동천의 입장에서 단판은 단판이고 쪼는 건 쪼는 것이었다.
“헤헤, 그게 아니라요. 제가 명색이 도연의 주인인데 제가 그런 수준 낮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겠냐는 말이었어요. 그렇다는 소리니까 언짢으셨으면 그만 푸세요.”
정말로 언짢았지만 어린놈이 굽히고 들어오는지라 그는 대인답게 너그러이 용서했다.
“그러도록 하겠다. 그리고 네놈이 굳이 이유를 알고 싶으면 도 소형제의 인품과 강직성을 먼저 배우도록 해라. 네놈이 진실로 그렇게만 된다면 본 대인도 대우를 달리 할 것이니라. 본 대인은 나이에 상관없이 인격을 받아들이는 분이시니까.”
도연이 자신을 보고 배우면 배웠지, 그 반대는 전혀 생각도 못해본 동천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겨우 억눌러야만 했다. 동천은 다시 ‘기분이 더럽냐?’라는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먼저 수긍하는 척했다.
“그, 그럴게요. 그럼 전 들어가서 도연의 그 인품과 강직성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식사하시러 오신 듯한데 많이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