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02화
민묘희의 오산.
어느덧 열 여섯이 된 소연은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아름답게 자라났지만 그녀의 눈가에는 왠지 모르게 그늘이 잡혀있었다. 이유는 요 일년 반 동안 내내 피해망상증에 시달려야했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사각거리는 소리.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심각성을 모르는 것이다. 물론 대처해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견디다 못해 방을 바꾸어보았지만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또다시 그 소리에 시달려야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사고인 민묘희가 같이 있을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지는 것이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멀쩡한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은 정말로 한순간인 셈이었다. 한때는 정말로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도 해보았지만 역시 아닌 건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마련한 대책이 있다면 소리가 들렸을 때 다른 방으로 옮기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일년 반을 지내오자 성숙한 육체에 비례해 정신적으로는 심각한 타격을 받게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있는 것이었다.
힘없이 세수를 하고 난 그녀는 약간 거칠어진 피부를 매만지며 신세 한탄을 했다.
“불면증, 불면증 하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지금의 내가 딱 그 꼴이로구나. 에휴.”
한숨을 내쉬고 잠깐 선잠을 잔 그녀는 상체를 기우뚱하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 해야할 일이 산더미인데 자서는 안되지.”
처음 정체 모를 소리에 시달리며 분주했을 때만해도 졸음을 쫓기 위해 운기조식을 택했었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쌓이고 쌓이자 효과는 2주일을 넘지 못했고 나머지부터는 잠깐 동안만 정신이 상쾌해지는 그런 정도였다. 방을 옮길 때만큼은 며칠 혹은 몇 주일 동안 멀쩡했지만 작금에 와서는 들리지도 않던 환청이 들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빨래해야지, 청소해야지, 민낭에게 진법을 배워야지, 무공을 익혀야지. 아아, 할 일은 너무도 많은데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지니…….”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졸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품속에 만기진여총역본을 갈무리하고 뒤이어 빨랫감인 몇몇 옷가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화정이만 남게된 방안은 썰렁했다. 원래 동굴 안이 차가운 탓도 있었지만 소연이 나가고 나자 살갗에 소름이 다 돋을 정도였다.
사각사각.
다시금 소리가 들리고 방안을 울리는 기분 나쁜 소음은 정기적으로 울려 퍼졌다. 소연이 나가고 나면 본격적으로 작업에 착수하는 그것이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었다. 처음에 그것은 목표물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뻤다. 그래서 벽 너머에서 굴을 파고 전진해 들어왔다. 독을 내뿜어 한순간에 녹일 수도 있었지만 목표물이 도망치면 말짱 도루묵이기에 나름대로 신경을 써가며 소리 죽여 다가갔다.
하지만 거의 다 뚫었을 무렵 어떻게 알았는지(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다 알 수 있다) 자리를 옮기는 것이 아닌가. 분하고 화가 치솟는 그런 감정은 없었다. 솜씨가 미숙해서 목표물이 눈치채고 자리를 옮겼을 뿐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것은 남는 게 시간이었으니까.
사각, 사각사각.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목표물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간혹 몇 번 움직이긴 했지만 언제나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몇 천년을 살아온 그것에게 일년 반이라는 시간은 ‘간혹’으로 통하는 것이다. 파는 속도를 배가시키자 단단하기로 소문이 난 현철(玄鐵) 덩어리들이 무 베듯 숭덩숭덩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소연에게는 다행이고 그것에게는 좀 귀찮을 뿐인 현철의 존재는 우연찮게도 동굴 벽 너머를 둘러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것이 벽 하나 파는데 그렇듯 시간을 소비할 수 있으랴. 여담이지만 민묘희는 현철의 존재를 파악하고 금값이나 다름없는 현철로 생활하고있는 것이었다.
사각사각, 프스스스.
현철 층이 끝나고 현무암 층이 시작되자 벽을 뚫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곧이어 천장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리자 그것은 지체 없이 줄을 타고 내려갔다.
“츠츠츠츠.”
여덟 다리들을 꼼지락거리며 사람 형상의 얼굴을 하고 기괴하게도 눈알을 빙글거리는 그것은 인면지주(人面蜘蛛)였다. 얼굴이 사람 형상과 거의 축소판이고 놀랍게도 머리카락까지 자라난 것으로 보아 적어도 4천년은 되었음직한 놈이었다. 아니, 여성체이니 암컷이라고 해야하나? 어쨌든 정확하게 화정이의 가슴팍에 내려앉은 인면지주는 그 부근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만족한 듯 고개를 치켜세우고 괴이한 울음 소리를 자아냈다. 그 울음 소리가 어찌나 날카로웠던지 소연이나 민묘희에게까지 들릴(동굴에서라면 듣고싶지 않아도 들린다) 정도였다. 소연에게 진법을 가르쳐주던 민묘희는 그 날카로운 눈을 번뜩였다.
“이게 무슨 소리지?”
소연은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모, 모르겠어요. 호, 혹시 그 소리의 주범이 아닐까요?”
근자에 와서는 무슨 일만 생겨도 의문의 소리로 연결시키고있는 소연이었다. 물론 이번만큼은 맞아떨어지는 소리였지만 말이다. 민묘희도 이번만큼은 무시 못하겠는지 확률적으로 가장 의심이 되는 소연의 방으로 몸을 날렸다. 뒤늦게 화정이를 의식한 소연도 부리나케 달려갔다. 고수답게 순식간에 당도한 민묘희는 방안에 은사(銀絲) 같은 것이 흩날리고있자 불길함에 한발 물러섰다.
“안에 무, 무슨 일이 있나요?”
민묘희는 들어가려는 소연을 급히 제지시켰다.
“움직이지마!”
“예? 예에.”
소연이 멈추자 인면지주를 발견한 민묘희는 중얼거리듯 이어 말했다.
“한순간에 토막 나고싶지 않으면…….”
왠지 모를 불길함에 사고의 뒤로 다가가 방안을 살펴본 소연은 나직한 탄성을 자아냈다. 가는 우윳빛결 실들이 아름답게 반짝이며 너울너울 방안을 뒤덮고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공중 위에 매달려있는 커다란 고치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그녀는 방금 전까지와는 대조적인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방안에 뛰어들어가려고 했다.
“화, 화정이가! 화정아!”
당연한 것이었지만 민묘희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래도 뿌리치려고 하자 하는 수 없이 소연을 기절시켰다. 그녀를 안아들고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만 하던 민묘희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구나! 탈피를 하려는 게야! 탈피를 하려면 막대한 음기가 필요하게되고, 여성형 초혼강시는 음기 그 자체니까 그 음기를 빨아들이려는 것이었어!”
인면지주는 처음 1천년간은 총 스무 번의 탈피를 한다. 그리고 탈피를 통해 비대하게 커져버린 그놈은 이후 천년에 두세 번 꼴로 탈피를 하며 급속도로 몸체를 줄인다. 그렇게 4천년이 지나면 더 이상의 탈피가 필요하지 않게 되지만, 수명을 늘리려면 막대한 음기를 축적하여 그 힘으로 탈피를 해야만했다. 그래야 노쇠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탈피가 필요한 때이고 말이다.
“으음, 전설로만 여겨졌던 인면지주를 실제로 대하고 보니 실감이 나지 않는군.”
그 작은 몸체에서 끊임없이 실을 뿜어내던 인면지주는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화정이의 몸에 올라타 있는 자신의 몸까지 뒤덮기 시작했다. 가는 은사들이 인면지주의 몸을 다 뒤덮었다고 생각한 순간 인면지주의 입에서 희뿌연 액체가 튀어나갔다. 그것이 민묘희에게로 날아오자 기겁을 한 그녀는 간발의 차이로 신형을 옮겼다. 액체가 떨어진 자리는 소리도 없이 녹아내리고있었다. 그녀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구나! 실로 천하삼대독물 중 하나로다!”
방해할 생각은 말라는 위협용인 듯싶었다. 감히 자신의 일을 방해할 생물은 없다고 생각했는지 인면지주는 그것을 끝으로 조그마한 구멍도 없이 모든 부분을 거미줄로 감아버렸다. 당장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민묘희는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 일단 물러서서 대책을 강구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소연을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왔다.
“인면지주는 천하의 보물이다. 어떻게든 생포하여 잡아들여야 하지만 그 포악성과 모든 것을 녹여버리는 독액으로 인해 만만치가 않으니…….”
뚜렷한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긴 시간이 흐르자 기절해있던 소연이 깨어났다. 우스운 얘기지만 간만에 생각 없이 자게된 그녀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깨어난 것을 발견한 민묘희는 조용히 말했다.
“깨어났느냐.”
어리둥절한 얼굴로 사고를 바라보던 소연은 그제야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급히 침대를 박차고 달려왔다.
“화, 화정이는, 화정이는 어떻게 됐어요? 예?”
민묘희는 소연의 마음을 다 이해했지만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신경에 거슬리는지 먼저 차가운 눈빛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호들갑떨지 말거라. 아직은 무사하니까.”
소연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훔친 그녀는 말없이 민묘희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다음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민묘희는 그간의 정리된 사항을 일러주었다.
“너도 어느 정도 배움이 있다면 인면지주라는 독물을 알고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면지주가 어떻게 커나가는지도.”
용독경을 통해 읽어본 적이 있었던 소연은 조그맣게 예, 라고 대답했다. 세세한 부분들까지 설명해줄 필요가 없어진 민묘희는 다소 풀린 얼굴로 말했다.
“언뜻 보아하니 4천년 이상을 자라온 놈으로서 탈피를 위해 이곳의 독물이나 독충들을 노리고 왔다가 강시라는 최적의 먹이 감을 발견하고 화정이를 노린 것 같다.”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하죠? 빨리 구해내야 하잖아요!”
민묘희는 흥분한 소연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다.
“진정해라. 당장에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음기를 빨아들인다 해도 장시간에 걸쳐 천천히 시행되는 것이기에 시간은 충분하다.”
그 말에 다소 안도한 소연은 불안감을 억누르고 나름대로 다부진 얼굴로 물었다.
“장시간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거죠?”
민묘희는 그다지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답해주었다.
“적어도 사흘에서 나흘 사이겠지. 하지만 화정이의 상태가 온전하게 보존되기 위해서는 하루 이내에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단다.”
“하루….”
소연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리고 나서 사고인 민묘희를 바라봤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해결 방안이 있긴 있나요?”
민묘희는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우선 고치가 되다시피 한 화정이에게 다가가려면 방안에 퍼져있는 거미줄을 모두 제거해야한다. 일단 현철로 만든 보검이 있긴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지는 아직 의문이로구나. 인면지주의 거미줄은 현철을 능가하는 강도를 지녔다고 전해져오니까.”
그녀의 말처럼 인면지주의 거미줄은 그 강도나 예리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전해진다. 고정된 상태에서 내리누르거나 만지는 것에는 위험이 없지만(물론 조심한다는 차원에서) 선을 타고 물체를 마찰시키면 어느 보검 못지 않은 날카로움을 자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면지주의 거미줄이 병기로 사용된 예는 극히 드물었다. 1천년 전까지는 모르지만 그 이상을 자라게되면 음기가 강한 먹이 감을 찾아 자리를 이동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전까지의 거미줄은 끈적거리기만 할뿐이어서 발견했다고 쳐도 별 쓸모가 없는 것으로 치부될 뿐이었고, 1천년이 넘어선 인면지주가 뿜어내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거미줄을 사용하지 않아도 독액으로서 먹이를 섭취할 수 있는 인면지주가 뭐 하러 쓸데없이 거미줄을 낭비하겠는가.
물론, 거대하고 강한 먹이를 잡아들이거나 지금처럼 탈피를 위해 잡을 때는 거미줄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면지주는 자취를 남기는 독물이 아니다. 음기를 섭취하거나 탈피를 하고 나면 도로 먹어버린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인면지주를 접한 사람은 있어도 그것의 거미줄을 취한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타고난 행운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보물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끊어지지 않으면 빨리 다른 방도를 세워야하니까 우선 시도라도 해봐야 하잖아요. 예?”
소연이 다그치듯 말했지만 민묘희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당장은 안되고 적어도 인면지주가 화정이의 음기를 빨아들일 때 시도해야한다. 그래야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그때가 언제인데요?”
그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면 민묘희도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인면지주의 세세한 습성을 탐구한 서적이 있다면 상황이 틀려지겠지만 흉악한 인면지주를 봤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뜻하는 것이거늘, 어느 미친 인간이 있어 따라다니며 그따위 짓을 하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묘희도 모른다는 것이었지만 쓸데없이 소연의 불안을 가중시킬 필요는 없었다.
“네가 기절한지 꽤 되었으니 한 시진 정도만 더 기다린다면 가능할 것이다.”
사고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소연은 속으로 한 시진만 기다리면 된다고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사이 잠시 밖으로 나가 길다란 장검을 가져온 민묘희는 그것을 무릎 위에 얹어놓고 때를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헌데, 시간이 흘러 마침내 움직여야할 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를 통해 인면지주가 나타난 것일까? 그것도 어떠한 징조도 없이.’
일반적으로 천적 관계란 자연스러운 법칙이었다. 그러니 먹히는 존재의 입장에서는 피하거나 숨어야하는 것이 당연했다. 인면지주가 화정이를 먹이 삼아 일년 반 동안 동굴 내부를 파고 다녔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형운곡을 통해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곳을 통해 들어왔다고 치자. 그렇다면 동굴 입구로 들어오면 될 것을 어째서 그렇게 무리한 짓을 한 것일까? 알다시피 이 동굴은 현철로 도배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철이 넘쳐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화정이의 음기가 아무리 강하다한들 초혼강시였다. 영성을 띈 존재가 아닌 이상 현철 너머로까지 음기가 전달됐을 리 만무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형운곡을 통해 들어왔다면 이곳의 독물과 독충들은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대이동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징조는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뻔한 것이 아닌가.
‘으으음! 지금 나타난 인면지주는, 내가 이곳을 찾아내기 이전부터 동굴의 내부에 존재하고있었던 놈이란 말인가?’
그냥 존재하고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한곳에 머물 이유가 없는 인면지주가 그렇게 오랫동안 동굴에 머물러있었어야 했던 진정한 이유. 그것은 바로 화정이 이전에 또 다른 강시가 보관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관 뚜껑이 저절로 움직인 흔적이 있었던 거야. 허나…….’
그제야 이년여 전의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를 풀자 다른 하나가 꼬이기 시작했다. 어째서 인면지주는 단 한번의 시도를 끝으로 그만두었냐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때를 맞춰 화정이가 오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바로 눈앞의 먹이를 두고 화정이에게 시선을 돌린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는 그녀가 인면지주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어 꼬인 문제인데, 일반적으로 인면지주는 음(陰)한 생물을 잡아먹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음한 성질의 물건이나 물질에까지 강한 것은 아니었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는 말이 있듯, 관속에서 녹아버린 만년설빙수(萬年雪氷水)가 아직도 그 성질을 보유하고있어 쉽사리 어떻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화정이라는 존재가 인면지주의 감각 안에 걸렸던 것이고 말이다. 이러한 내막을 그녀가 모르다보니 생각하는 것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
‘혹시, 이유가 있어 동굴의 내면에서 동면(冬眠)되어있던 것이 아닐까? 본능적으로 만년설빙수가 녹았을 시기에 깨어난 것이고 말야. 설마 14대 문주님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그래, 그분이라면 충분히 인면지주를 제압하고도 남았을 거야! 그분께서는 화령조(火靈鳥)의 내단을 지니고 계셨다고 하니까!’
모든 생물은 불을 무서워한다. 그 중에 독을 지닌 생물들은 자신들의 독이 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특히 꺼려한다. 이는 인면지주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로서, 웬만한 상극 관계의 천적들은 능히 제압할 수 있었지만 화산 군도의 영물인 화령조 만큼은 상당히 두려워했다. 상대를 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 것이 인면지주였으나 그러자면 기본적으로 화령조 보다 두 배 이상은 성장해있어야만 했다.
즉, 화령조가 천년을 살았다면 인면지주는 적어도 이 천년은 살아야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아떨어진다는 얘기였다. 적어도 수 천년은 묶어야 생성되는 것이 화령조의 내단인데, 그것을 14대 문주인 관성이 지니고 있었다면 어떻게든 인면지주를 포획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