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09화
걸어서 오솔길을 걸어가면은 2.
고치 속에서 눈을 뜬 화정이는 생각했다. 왜 포근함이 사라진 것일까? 왜 나는 깨어난 것일까? 나는 누구일까?
“…….”
한번 궁금해지기 시작하자 밑도 끝도 없었다. 궁금증은 늘어만 가고 주위는 어둡기만 할뿐이었다. 문득 갑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을 뒤척여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헤집어내자 전신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손안에 동그란 무언가가 잡혔다. 움직임을 멈추고 그것을 가볍게 눌러보자 ‘쯔극, 쯔극!’ 거리는 요상망측한 소리가 그 동그란 것 속에서 새어나왔다. 재미가 들린 그녀는 빠져나가는 것도 잊고 이리저리 눌러보며 그것을 가지고 놀았다.
“아이, 재밌어.”
생각했던 것이 언어로 만들어지자 그녀는 놀라움에 눈을 치켜 떴다. 내가 방금 어떻게 한 것이지? 놀던 것을 멈춘 그녀는 다시 갑갑함을 느꼈다. 그녀를 감싸고 있는 것들은 무척이나 따가웠지만 그녀는 과감하게 두 손을 뻗쳐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순간 차갑고 신선한 공기가 그녀의 상체를 자극해왔다. 왠지 기분이 좋아진 그녀는 만족할 만큼의 공기를 들여 마신 후 힘을 배가시켜 균열이 일어난 작은 틈을 단숨에 벌려놓았다. 손이 따끔거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외상은 전혀 없었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매끄러운 연체동물처럼 쑤욱 빠져 나온 그녀는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주위는 난장판이었다. 파괴되고 부서진 것들은 절로 그녀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게 뭐야….”
기대와는 다른 세상이었나 보다. 천천히 일어난 그녀는 땅이 익숙하지 않는지 자꾸만 뒤로 넘어지려고 했다. 상체를 옆으로 비틀어 넘어지는 것을 모면하자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도발적으로 출렁였다.
“아아, 재미있다. 재미있어.”
걷는다는 놀이를 발견하지만 않았어도 바깥에 흥미를 못 느껴 다시 고치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맞다맞다. 방울방울.”
고치 안을 뒤져 어린애 주먹만한 유 백색의 알을 꺼낸 그녀는 고무공 만지듯 꾸욱 눌렀다.
“찌으꾹!”
마치 살려달라는 듯 긴박한 울음소리를 토해내자 손아귀에 힘을 뺀 그녀는 인면지주의 알을 부드럽게 매만져주었다.
“미안, 아팠어? 아팠다고? 호호, 미안해.”
천진난만한 얼굴로 인면지주의 알을 위로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던 화정이는 뒤늦게 시끄러운 소리를 감지했다. 자신의 일만 생각하느라 주위의 소리에는 무관심했었는데 유독 하나의 목소리가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던 것이다.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밖으로 빠져나간 화정이는 ‘아이고 동천 죽네!’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벼락에라도 맞은 듯 신형을 휘청거렸다.
손안에 들고있던 인면지주의 알은 바닥에 떨어져 ‘쯔극.’ 거리며 뒹굴었다.
‘동천. 동천….’
생각날 듯 말면서도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 그리움을 찾아 기억을 헤집어보자 단편적인 과거의 일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취한 듯 눈을 감고 미소를 짓던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떠 살풋이 웃었다.
“나는…, 나는 동화정.”
운성현이 앞뒤 가리지 않고 양손을 곧추세워 중소구의 양어깨를 잡아채자 중소구는 어깨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큭? 이, 이놈이?”
떨쳐 내보려고 했었지만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흐으, 흐으, 크아아아!”
탐욕스런 눈을 번뜩인 운성현은 독사의 아가리처럼 입을 벌려 중소구의 목 줄기를 물어갔다. 그러나 입안에 물리는 것은 쇳덩이였다. 중소구가 그 와중에도 쇠사슬을 들어올려 막아낸 것이었다. 그 사이 운성현의 무릎을 걷어차 휘청거리게 만든 도연은 되려 후들거리는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고 긴박한 어조로 소리쳤다.
“복부를 차서 떼어놓으세요!”
지금의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 중소구는 이를 악물고 그 말에 따랐다. 깜짝 놀란 동천은 ‘안돼!’ 하고 소리를 지르려했지만 상황은 이미 벌어진 후였다.
“어이쿠! 도, 돌덩어리로세!”
동천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런 병신! 내가 장난으로 아프다고 소리친 줄 아쇼? 때리는 게 아니라 발로 밀었어야지! 아니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던가!”
“끄워어어어!”
갑자기 괴성을 내지른 운성현은 금방이라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자, 이것저것 가릴 것도 없이 중소구의 팔목을 물어뜯었다.
콰작!
“아윽, 이런 미친…!”
섬뜩한 생살 뜯기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이어지는 피 빨아먹는 소리가 절로 진저리를 치게 만들었다. 아울러 동천에게는 떠올리기도 싫은 옛 기억을 끄집어내게 하고 말이다.
‘으으, 언니 년은 피 빨아먹고, 동생 년은 피 빨아먹는 강시를 만들어? 아이고, 하늘님. 어, 어찌하여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고통을 넘어 공포에 악이 받힌 중소구는 멀쩡한 다른 손을 휘둘러 운성현의 머리를 쳐댔다. 그러나 양쪽 쇠고랑사이에 이어져있는 쇠사슬은 그 길이가 짧은 탓에 생각만큼 타격을 주진 못했다. 쇠사슬의 제약이 없었었다해도 때리나 안 때리나 그게 그거였지만 정신적인 만족감은 아무래도 후자 쪽이 나으리라.
퍽퍽퍽퍽!
“으아아! 죽어! 죽어! 떠, 떨어지란 말야! 흐억, 떨어져 이 잡것아!”
도연도 합세하여 다리를 밀거나 걸어보았지만 운성현의 디딤 발이 어찌나 굳건했던지 쇠기둥을 박아 넣은 듯 꿈쩍할 생각도 안 했다. 그러나 도연의 행동이 신경에 거슬리긴 했나보다. 운성현은 신경질적으로 팔을 휘둘렀다.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급히 어깨로 방어한 도연은 내부를 울리는 듯한 강력한 충격에 하마터면 기절까지 할 뻔했다. 동천은 도연의 몸이 허공에서 출렁거린 후 곤두박질을 치자 재빨리 손을 내밀어 받아 올렸다.
“이 멍청한 자식아! 그것도 못 피하냐? 괜찮긴 한 거야?”
힘겹게 일어난 도연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며 두어 번 콜록거렸다. 소량이긴 하지만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주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입가를 닦아냈다.
“괘, 괜찮습니다. 그보다 중 대인을 구해야합니다!”
어쩔 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한 동천은 급히 작전을 일러주었다.
“눈깔을 찔러! 죽이진 못해도 당장에는 그게 최상이라고!”
가능성 있는 작전이라고 생각했는지 도연의 눈에서 생기가 감돌았다. 반면, 거의 실신지경의 중소구에게서 인정사정 없이 피를 빨아대던 운성현은 어디선가 은은한 향기가 흘러들어 오자 팔목에 이어 어깻죽지에 박아 넣었던 이빨을 살짝 떼어냈다.
“크으으으.”
코를 킁킁거린 그는 돌연 도연에게로 신형을 돌렸다. 소량이긴 하지만 도연의 피 냄새를 맡게된 것이다. 처음보다 많이 안정된 상태의 운성현은 어느 정도 초점이 잡힌 눈으로 도연을 노려보았다. 틈을 노리려는 듯 마주보는 대치상태가 점점 길어지자 마음만 급한 동천이 소리쳤다.
“뭐 하는 거야! 빨리 찌르지 않고!”
동천의 목소리에 도연이 움찔하자 기회의 순간을 움켜쥔 운성현이 달려들었다.
‘제기랄!’
다급히 손가락을 찌른 도연은 운성현의 눈을 찔렀다고 생각한 순간 숨이 턱 막혀왔다. 운성현의 양손은 어느새 그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도연보다 긴 팔을 가지고있어 먼저 성공한 것이었다. 도연은 참기 힘든 고통스러움에 이를 악물었다.
‘크으, 이렇게 죽는 건가…. 이것이 죽는다는…….’
의식이 가물거렸다. 자연히 몸 안의 힘이 빠져나갔다. 그는 이내 기절해버렸다.
“떨어져라!”
뒤늦게 운성현의 상체를 밀어낸 동천은 침착해진 눈으로 견제자세를 잡았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난 운성현은 크게 노한 표정으로 동천에게 달려들었다. 그 움직임 하나 하나를 소름끼칠 정도로 냉정하게 살펴보던 동천은 양손을 묘하게 교차하더니 낮은 기합음과 함께 손을 내뻗었다.
쩌엉!
“크아아악!”
운성현은 오른쪽 가슴에 둔탁한 충격을 받고 뒤쪽으로 날아갔다. 동천의 맞은편 벽에 머리를 부딪힌 그는 그대로 고꾸라져 앞으로 넘어졌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동천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헉, 성공했나?”
방금 전 도연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동천은 있는 내공 없는 내공을 끌어올려 운성현에게 한방 먹이려고 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의 귀의흡수신공이나, 역심무극결의 내공이나 그게 그거였던 것이다. 자신의 멍청함을 탓할 사이도 없이 역심무극결을 운용한 그는 도연의 눈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섣불리 공격하지 않았다. 무의미한 한방은 지극히 손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충격을 가하려면 적어도 초식을 사용한 무공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 그가 내린 결론이었고, 그 와중에 장노삼 할아버지가 전수해준 수법(手法)이 떠오른 동천은 운성현을 도연에게서 떼어놓은 뒤, 달려드는 상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찰나 손을 쓴 것이었다. 일단 성공은 했지만 단 한번의 공격으로 극심한 내력의 고갈을 느낀 그는 급히 심법의 종류를 전환했다. 뒤늦게 손가락들이 아리긴 했지만 그런 대로 참을 만했다.
“이히, 이히히! 앞날을 내다보는 이 탁월함! 어떠냐, 이 강시자식아!”
그간에 소홀한 상태였는데 아직까지도 그 수법의 요결을 기억하고있자 자신의 뛰어난 머리를 자랑하고있는 것이었다. 예상외의 위력을 실감한 그는 이제부터 그것도 열심히 익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동처어언!”
깜짝 놀란 동천은 눈부신 속도로 그에게 안겨드는 희멀건 물체를 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건 둘째치고 감지력에도 걸리지 않고 다가온 상황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그가 더욱 놀란 이유는 상대가 벌거벗은 성숙한 여인이라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그가 더욱, 진짜로, 놀란 이유는 그 여인이 화정이였다는 데에 있었다.
“어? 어? 화, 화정…. 우풉!”
물컹!
정말 물컹거렸다. 자신의 탐스러운 가슴에 동천의 얼굴을 파묻다시피 한 화정이는 놓치지 않으려는 듯 더욱 힘껏 껴안았다. 황홀한 건 둘째치고 그녀의 옥죄임에 목이 다 부러질 것만 같았다.
‘커억?’
다급해진 동천은 그녀의 옆구리를 찰싹거리며 반복해서 때렸다. 다행이 그 뜻을 깨닫고 그녀가 손에 힘을 풀었다.
“콜록콜록! 헉헉, 아주 죽는 줄 알았네. 그, 그보다 너 화정이 맞아?”
화정이는 자랑스러운 듯 허리에 양팔을 턱하니 올려놓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응! 나 화정이 맞아.”
천진난만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는 동천이었다. 대가리가 커서 그런지 예전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근데 너 목소리가…. 참, 다른 사람들은?”
퍼뜩 다른 사람들의 생사여부에 관심이 쏠린 그는 재빨리 돌아보며 소리쳤다.
“크아악! 보지마! 다들 눈깔 깔어!”
생사여부를 확인하고자 한 것이 맞긴 맞는데, 그 확인의 의미가 조금은 다른 것 같았다. 눈을 부릅뜨고 살펴봤자 볼 사람도 하나 없었지만 말이다. 멋쩍어진 그는 양쪽 소매의 바느질 선을 쭉 찢어낸 뒤, 윗도리를 벗어 최우선으로 가려야할 하체에 앞치마처럼 매주었다. 동천이 해주는 대로 가만히 서있던 그녀는 선물 같은 것으로 인식했는지 좋아서 어린애처럼 폴짝폴짝 뛰었다.
“와아, 화정이 주는 거야? 와아와아!”
그녀가 뜀뛰는 것에 맞춰, 올려봤다 내려봤다를 반복하던 동천은 피가 아래로 쏠리는 것을 느끼자 무척이나 곤혹스러워했다.
“야아…, 그, 그만 뛰어. 그래서는 가려준 보람이 없잖아.”
주인의 찌푸린 인상에 혼난다고 생각한 그녀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으응, 그만 뛸게.”
마음 한구석이 뜨끔해진 동천은 그녀를 위로해주기 위해 살짝 앞으로 다가섰다. 헌데, 그 와중에 꿈틀거리는 운성현을 발견한 그는 깜짝 놀랐다. 기절한 줄 알았던 운성현이 소리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래도 그사이에 충격을 회복했나보다.
“쳇, 여, 역시 무리였나?”
만일 운성현에게 주인이 있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싸움에 임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린 뒤 잠깐 쉰 다음에 일어난 것이었다. 주인의 동요에 기분이 나빠진 화정이는 검지로 운성현을 가리키며 동천에게 물었다.
“내가 저거 죽여줄까?”
“응?”
“나 충분히 저거 죽일 수 있어. 죽일까?”
그제야 화정이의 존재를 깨닫고 안심이 되었지만, 막상 그녀가 죽인다는 말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뱉자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입장처럼 동천의 가슴도 쓰라려왔다.
‘아아,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는구나. 그래 차근차근 말투를 고쳐주자. 그것이 주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거야.’
그 다짐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몰랐지만 당장에는 포기할 맘이 없었다. 시도해보지도 않았으니까.
“화정아, 죽인다니. 그런 말투를 사용하면 못써.”
화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뭐라고 해?”
동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물음처럼 뭐라고 바꿔 말해야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막상 적당한 단어를 생각하려니까 거 되게 어렵네?’
머리를 싸매고 생각하던 그는 갑자기 운성현이 행동을 개시하자 급히 명령을 내리고부터 보았다.
“앗? 우선 그 녀석을 막아! 그래, 잘한다! 재빨리 안면을 후려쳐! 옳지, 뒤돌아 차기 한방! 윽, 너무 야해서 안되겠다. 그냥 주먹으로 안면이나 뭉개버려! 좋았어, 치고 또 치고! 죽여! 아주 죽여버려!”
화정이의 압도적인 우세에 자못 흥분해버린 동천은 처음의 다짐과는 달리 ‘죽여 죽여!’를 연발했다. 중간에 운성현의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화정이를 말렸다. 만일을 위해 인질 식으로 붙잡아두어야 할 운성현이 정말로 죽어버리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화정이는 숨 하나 헐떡이지 않고 동천에게 다가왔다.
“헤에, 나 잘했지?”
그녀 너머의 운성현을 힐끔 바라본 동천은 실로 대단하긴 했지만 여기에서 추켜세워 주면 자만할 것만 같아 약간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그녀의 가슴을 보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화정이도 주인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응? 화정이 가슴에 뭐 묻었어?”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이리저리 주물러가며 살펴보자 본의 아니게 무릎을 살짝 구부린 동천은 애써 흥분을 가라앉히며 가슴까지 가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헉헉! 좋긴 다 좋은데, 이러다가는 내 명대로 살지도 못하고 죽을지도 몰라. 더군다나 소연이한테 이런 꼴을 보기라도 하면 무슨 오해를 살지도……, 가만. 그 계집애는 뭘 하고 자빠져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안 나타나는 거지?’
이런 상황에서도 안 나타났던 그 문제의 소연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열쇠를 찾는다며 도망치듯 나오긴 했지만 열쇠를 포기한지는 옛날옛적이었다.
“아아, 난 몰라. 이제 그분을 어떻게 본다지?”
침대에 누워 주인님과의 포옹을 떠올리던 그녀는 창피하고 흥분되기도 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흥분해있던 그녀가 어떠한 연유로 낮잠을 자게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꿈 많은 소녀가 침대에 누워 여러 가지 비밀스러운 꿈들을 떠올리다보니 정말로 꿈나라에 들어간 것이었다.
“으음, 내가 잤었나?”
이리저리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세수를 하고 난 뒤 간식을 마련해 지하로 내려갔다.
콰장창!
엉망진창인 화정의 석실을 발견한 그녀가 간식들을 떨어트리는 소리였다. 그때가 도연의 윗도리를 찢은 동천이 화정이의 가슴을 동여매 줄 때였고 말이다.
“이럴 수가! 화, 화정아!”
뛰쳐나가는 그녀의 귓가에 대답은 엉뚱한 곳에서 들렸다.
“와아, 나 여기에 있어!”
“이 호실?”
급히 그곳으로 달려간 그녀는 주인님의 곁에서 다소곳이 무릎 꿇고 앉아 손을 흔들고있는 화정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은 소연은 눈물을 글썽였다.
“아아, 다행이야.”
그제야 시야가 넓어진 그녀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도연과 중소구, 그리고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진 운성현의 모습을 차례차례 바라본 그녀는 있는 힘껏 비명을 내질렀다.
“꺄악, 도, 도연이가! 꺄악, 중 대인 아저씨가! 꺄악, 저 남자는 발가벗었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웬일인지 그녀의 시선은 운성현의 중요한 부분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