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19화
‘어? 그러고 보니까 그나마 1갑자도 아닌 역심무극결하고, 나뉘어진 귀의 흡수신공만을 사용했잖아? 그렇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내공이 반 갑자 조금 상회하는 정도뿐이란 말인데 이걸로 어떻게 이 자식의 내상을 치유하라는 거지?’
그걸 자신에게 반문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제길, 내공을 알맞게 키우라던 그 미친 할아방구의 말에 속아서 내공을 둘로 나누다니! 내가 그때 잠시 어떻게 되었던 거야.’
필요 이상으로 생각하는 바람에 진기를 다스리지 못한 동천은 재빨리 정신을 차린 후 들끓는 진기들을 단전으로 유도했다. 생각보다 무리하지 않았던 듯 작업은 쉽게 끝날 수 있었다.
‘돼, 됐다! 에휴, 겨우 가라앉혔네. 하마터면 별 거지같은 놈 때문에 주화입마에 걸릴 뻔했잖아?’
순수한 내공이었던 만큼 안정하는데 있어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차분하게 진기를 한바퀴 돌린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씩 뒤엉켜버린 혈도들을 풀어나갔다. 원래 동천의 지금 내력으로는 진창남의 내상을 치유할 수 없었지만 워낙에 정순한 내공이었는지라 무사히 성공할 수 있었다.
“으으, 쿨럭! 컥!”
마침내 진창남의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오고 풀렸던 그의 눈에서 생기가 돌아오자 그제야 나머지 응창삼황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기 시작했다.
“오오! 살았구나!”
“창남! 우리가 누군지 알겠는가?”
진창남은 겨우 대답했다.
“무… 물론이지. 소평과 혜풍이 아닌가.”
천소평은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맞았네! 맞았어! 하하하!”
“아하하! 거 잘됐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지?”
그들이 즐거워하는 가운데 태연하게 끼여든 동천은 은근슬쩍 진창남의 어깨 위에 한 손을 얹어 놓았다. 허튼 짓이라도 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일종의 위협을 담고있었다. 깜짝 놀라 일어서려던 진창남은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동천의 힘이 가히 장사에 버금가자 창백하게 질려 다시금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동천이 그렇게 셌던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진창남이 가까스로 회복된 터라 제대로 된 힘을 쓸 수 없었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무, 물론이다! 우리가 잘못했으니 용서를 바란다! 이제 됐느냐? 어서 창남을 우리에게 넘겨라!”
진창남의 안부를 걱정한 연혜풍이 사과 아닌 사과를 다급하게 했다. 간사한 것이 인간이라고 일단 친구가 살아나자, 어린것에게 말을 높이는 것이 싫었던 연혜풍이 나오는 대로 지껄였던 것이다. 그는 뒤늦게 아차 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에 얼굴에다 철판을 까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벌어진 상황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을 바라보는 동천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저 자식이 친구가 살고 보니까 말투부터 달라지네? 으음, 어떻게 한다? 이 몸의 무서움을 재차 보여줘야 하나? 하지만 그랬다가 저놈도 오락가락 하면 옆의 놈들이 살려달라 어째라 울고불고 질질 짤게 분명해. 끄응, 귀찮아서 어디 마음놓고 때릴 수가 있어야지 말야. 에잇, 짜증나!’
이어 동천은 자신도 모르게 뒷부분을 말로 옮겼다.
“음……. 한데 생각해보니까 이놈들이 죽던 말던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 아아, 맞다! 이렇게 고민할 것도 없이 모두 병신을 만들어 놓으면 그런 귀찮은 일을 피할 수 있겠구나! 하하, 난 왜 이렇게 똑똑한 것일까?”
그 말에 천소평과 연혜풍이 긴장을 하며 놀랐지만 진창남만은 그 놀람의 강도가 거셌다.
‘아, 안 돼! 난 이 이상 맞았다간 분명히 죽고 말 거야!’
그렇게 기겁을 한 응창삼황은 서로들 눈치를 보아가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셋으로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대였는데 사실상 두 사람이 된 이 마당에 결과는 뻔해 뻔 자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력만 있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도(邪道)에 속한 사람들을 죽이던 나이 어린 명문세가 녀석들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에 분명 거짓말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렇게 된 마당에 어찌 자존심 따위를 세울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할 사이도 없이 동천을 높여 부르기 시작했다.
“소협, 어인 말씀이십니까. 저희는 마음 속 깊이 소협의 힘에 굴복했으니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마, 맞습니다. 방금 전에는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삼아 앞으로 올바른 삶은 살겠으니 용서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차례가 돌아온 진창남은 자신이 하려고 했던 말을 친구들이 미리 가로채버리자 딱히 해줄 말이 없어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소, 소협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소인은 꼼짝도 못하겠습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자신만의 생각에서 깨어난 동천은 진창남이 말하는 부분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이번에야말로 묵사발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놈이 자신의 힘을 칭찬해주자 절로 으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오, 변일구! 네가 뭘 좀 아는구나! 예전에 이 몸께서 호두를 손으로 까서 잡수시는데 후일 옆집 부인하고 바람이 났었던 공 교관 아저씨가 다가와 말하길, 동천아. 너는 손아귀 힘이 장사로구나? 라고 칭찬해주었지. 하하하!”
어린놈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듯 하자 신이 난 진창남이 계속 아부를 했다.
“역시 그분도 식견이 높으신 분이었군요?”
동천은 돌연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말야. 그때의 호두는 속이 곯아서 쉽게 부서지던 거였어. 때마침 그거 하나 부수는데 공 교관 아저씨가 보았던 것이지. 아 쓰팔! 그때 생각 하니까 갑자기 열 받네?”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갈 조짐을 보였다. 진창남은 불똥이 튈까 싶어 급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는데, 동천이 그런 그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안 물어봐?”
“예? 뭐, 뭘…….”
동천은 눈알을 부라리며 다그쳤다.
“그러니까 왜 이 몸께서 열이 받으셨는지 안 물어보냐고!”
누구보다 동천의 매운 손맛을 경험했던 진창남은 늦게 반응했다고 얻어맞을 까봐, 심장이 벌렁 벌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까스로 참아가며 물어보았다.
“그, 그것 말씀이로군요? 무, 물어……. 당연히 물어봐야지요! 헉헉!”
동천은 숨을 몰아쉬는 진창남에게 짜증스런 눈길을 보냈다.
“이게 왜 학질에 걸려 똥마려운 개새끼처럼 벌벌 떨고 지랄인 거지? 음, 뭐 어쨌든 좋아. 내가 방금 전 후일 옆집 부인이랑 바람이 난다고 말했잖아? 아 근데, 공 교관 그 잡놈이 남의 집 여편네와 짝짝꿍한 것은 그렇다 치고, 몇 일 후에 야반도주를 해서 톡꼈지 뭐냐? 내가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어. 옆집 부인하고 눈이 맞던, 뒷집 부인하고 눈이 맞던, 그 뒷집에 뒷집 남창(男娼)새끼하고 눈이 맞던, 이 몸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말이지. 그 썩을 놈의 자식이 톡끼기 전에 꿔간 이 몸의 두 푼을 갚지도 않고 날라버린 거야. 크윽, 다 큰자식이! 그것도 황룡세가에서 교관이란 직책까지 맡았던 자식이, 어찌 어린 분의 피와 땀이 섞인 그 귀중한 돈을 갚지 않고 야반도주를 했는지 난 여태까지도 그걸 이해할 수가 없어! 너 같으면 그 돈 떼이고 잠이 올 것 같냐? 엉? 잠이 올 것 같냐구!”
옆에서 천소평이 ‘그걸 이해 못한 네가 병신이지.’ 라고 중얼거릴 때 진창남이 힘들게 호응을 해주었다.
“물, 물론 잠이…….”
동천은 진창남의 이야기를 중간에 묵살했다.
“으으, 이 몸이 진짜 분한 건 말야. 그 일로 인해 근 보름동안을 시름시름 앓았는데, 미미 그년에게 개수작을 부린다는 오해를 받고 죽도록 얻어맞았다는 거야. 상황이 이러할 진데 너 같으면 열 안 받게 생겼냐? 돈은 돈대로 떼이고, 맞는 건 죽도록 얻어맞고 말야. 아아, 그 날의 기억이 이 몸을 슬프게 만드는구나……. 그래, 안 그래 짜식아!”
동천의 악악거리는 소리에 완전히 질려버린 진창남은 먼저 간 할아버님이 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지, 그제야 그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는 앞으로 절대 남에게 닦달하지 않으리라 재삼 속으로 다짐했다.
“그렇습니다! 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괜히 친구들 중 마지막에 말했다가 동천의 말상대가 되어버린 그는 어떻게든 이 위기를 벗어나고자 친구들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 나머지 응창삼황들은 가차없이 그를 외면하고야 말았다. 자칫 잘못했다간 혹 떼려다 혹 붙이는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동천, 화났어? 무서우니까 그러지 마.”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다던가? 다행히 구원의 손길이 찾아왔다. 화정이가 겁먹은 눈망울로 주인에게 말을 걸어왔던 것이다. 그 모습이 참으로 귀엽다고 생각한 동천은 그녀의 볼을 쓰다듬어주며 기분을 풀었다.
“후우, 이 몸이 참아야지 어쩌겠느냐! 그나마 화정이 네가 있어서 안정이 되는구나.”
그는 짐짓 한숨을 돌린 뒤 말을 이어갔다.
“가만 있자. 그건 그렇다 치고, 그때에 받지 못한 돈은 어떻게 받아낸다? 이미 어느 구석진 곳에서 늴리리야 하고있을 그 공 교관 자식을 찾는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이고 말이지. 흐음, 어찌한다? 어찌해야 잘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어찌해야?”
그는 말꼬리를 계속 늘어뜨리며 응창삼황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빛에서는 무언가 갈구하는 듯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응창삼황 중에서 가장 눈치가 빨랐던 천소평은 그 진의를 깨닫고 재빨리 주머니의 돈을 털어 갖다 바쳤다.
“약소하나마 이 돈을 받으시고 그깟 일쯤은 잊어버리시지요.”
만족스런 얼굴로 돈을 받아든 동천은 대충 세어본 뒤 말했다.
“쳇, 정말 약소하군.”
이어 그는 상판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천소평에게 관심을 끊고 나머지 응창삼황들을 바라보았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돈을 탈탈 털어 동천에게 갖다 바쳤다. 돈주머니들을 받아들고 합쳐서 세어보니 꽤 많은 돈이 되었다. 그제야 동천의 안면에서 웃음꽃이 피어났다.
“하하, 작으나마 며칠은 버틸 수 있겠는걸?”
그 모습이 아니꼬웠던 연혜풍은 들키지 않을 정도로 인상을 써가며 동천을 노려보았다.
‘제기랄! 우리의 한달 치 분량을 고작 며칠동안의 향락으로 써버리려는 모 양이구나! 퉤, 싸가지 없는 어린놈!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죽여 버릴 테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상대를 얕잡아봐도 너무 얕잡아 본 생각이었다. 왜냐하면 동천이 약왕전에서 키운 능력들 중에 남의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이 제일로 탁월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남들을 괴롭히며 얻어낸 결과였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라? 너 지금, 어린놈이 내 돈을 갈취하다니. 나중에 두고보자! 뭐 이따위 생각을 하고 있었지!”
‘헉? 어, 어떻게…….’
퍽!
“어이쿠!”
동천은 연혜풍의 배를 걷어찬 뒤에 말했다.
“어떻게 알긴 어떻게 알아 짜식아! 니 쌍판에 그렇게 써있으니까 알았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연혜풍이 아픈 배를 부여잡으며 변명을 하려했지만 동천은 들어줄 태세가 아니었다.
“눈빛이 날카로워지고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는 동시에 미세하게 떠는 것으로 보아 분명한데,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변명을 해대?”
연혜풍은 자신의 속내가 들키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내심 그와 같이 동천을 욕하고있었던 천소평은 눈치가 빠른 자답게 냉큼 욕하는 것을 중단했다.
‘이 어린놈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어서 빠져나가는 것이 상책이야.’
그는 연혜풍과 동천의 사이로 슬쩍 끼여들었다. 자연히 동천과 마주하게 된 천소평은 정 수틀리면 기습을 할 작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소협, 혜풍의 생각이 좀 모자라 이렇게 된 것이니 그 넓은 마음으로 한 번만 봐주시지요. 이 녀석도 지금 후회하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순간 동천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여기에서 더 때린다면 결코 마음이 넓은 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넓어? 흐음, 하긴 이 몸이 마음이 넓긴 넓지. 여길 보나 저길 보나 모든 정황이 그러하니, 그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몸의 마음은 정말로 넓다고 할 수가 있지. 그러니까 너희들도 배워라, 배워. 배워서 남 주냐?”
‘이 새끼가 아주 기가 살았구나. 그리고 무슨 놈의 말이 그따위지? 아무리 봐도 도저히 상종 못할 놈이로다!’
천소평은 동천의 기고만장함에 절로 이가 갈렸지만 일단 호응부터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섣불리 고개를 들지 않고 굽실거렸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이번만은 용서해주시지요.”
“음, 뭐 그러기로 하지. 헌데 말야. 이 몸이 당장에 주무실 곳이 없거든?”
동천은 돈까지 갈취한 것도 모자라 아예 숙식문제까지 해결하려는 듯 넌지시 천소평에게 말을 건넸다. 하마터면 욱하는 성질에 고개를 쳐들 뻔했던 천소평은 급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싹싹하게 대답했다.
“그, 그러십니까? 마침 다행입니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주점에 저희가 어렵게 구한 방이 하나 있으니 거기에서 묵으심이 어떨는지요.”
주점이라면 이 마을에서 딱 한곳뿐이라고 소연에게 들었다. 그래서 동천은 천소평이 말하는 주점이 방금 전 내쫓기다시피 한 그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흐응, 그곳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시는군요?”
“그야 당연하지. 이 몸은 모르는 것이 없는 분이시거든.”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자 천소평은 가능한 빨리 끝내기 위해 주머니에서 작은 패를 꺼내주었다. 동천은 그것을 받아들고 물었다.
“칠(七)이라고 써있네? 이게 뭐냐?”
‘다 안다며, 자식아.’
천소평은 내색 않고 가르쳐주었다.
“예, 그 주점의 방 번호입니다. 그것을 지니고 있어야 그 방에 묵게 해주죠. 지금은 안되고 사람이 빠지는 저녁에 가셔야 묵을 수 있으실 겁니다.”
동천은 그 패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말했다.
“그래? 그렇다는 것은 방이 없는 인간들은 이런 패를 가지고 있는 인간들에게서 조달 받으면 그 빌어먹을 주점에서 잘 수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네?”
천소평은 내심 뜨끔했다. 동천이 돌려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실력만 있다면 번호패를 빼앗아 방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동천이 그것을 지니고 있다가 다른 고수에게 빼앗기길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충고를 접어뒀었는데 마치 동천이 다 알고있다는 듯 말하자 흠칫했던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역시 모르시는 것이 없는 분이시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평소 조심해서 간수하고 다니십시오. 방 번호패 따위가 대단하랴만은, 지금 이곳에서 잠자리 하나 구하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헤헤.”
재빨리 둘러친 그는 혹여 라도 자신의 마음이 들켰을까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하하, 내 말했지 않느냐. 이 몸은 앞일을 내다보는 선경지명을 지니신 분이라고.”
점점 도를 더해 가는 동천의 자화자찬은 쉽사리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도연과 소연이 돌아오는 것을 발견하곤 거기에서 그만 접었다. 이어 그는 응창삼황에게 말했다.
“음, 내 더 이상 너희들과 시간을 할애할 수 없구나. 알아서 노숙을 하던 구걸을 하던 잘먹고 잘살아라.”
이제 볼일이 없어졌으니 꺼지라는 소리였다. 마지막 말이라도 곱게 해주면 어디가 덧나는지 동천의 이야기는 불성실하기가 그지없었다. 당연히 울화가 치미는 응창삼황들이었으나 어쩌지도 못하고 굽실거리며 사라졌다. 화정이는 떠나가는 그들에게 ‘안녕∼!’ 하면서 잘 가라는 인사를 해주었지만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미지수였다.
“주군, 저들은 누구입니까?”
다가온 도연이 묻자 동천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주 착한 녀석들이지. 나중에 저 녀석들을 보거든 고맙다고 인사치레나 해주어라. 얼마나 착하던지, 그 망할 놈의 주점에서 며칠동안 묵을 수 있게 방 번호패를 건네주고 갔지 뭐냐? 뭐, 이 몸의 인덕으로 비롯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말에 머물 곳을 구하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었던 소연이 금세 밝아진 얼굴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 그렇게 좋은 분들이 계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 도연과 함께 다니면서 요깃거리까지는 구했지만 잠잘 곳까지는 아니었거든요. 역시, 주인님이세요.”
한껏 기가 오른 동천은 슬며시 턱을 쓰다듬었다.
“이 몸이 나서서 안 되는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 수다는 그만 떨고 먹으러 갈 곳으로 가자꾸나. 자, 앞장서거라.”
소연은 주인님이 뭘 잘못 알고있자 다시 조심스러워진 몸짓으로 이야기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먹을 것은 저희가 직접 만들어서 먹어야 하는 거예요. 여기 그 재료만 가져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동천은 소연이 내민 꾸러미 속 음식재료들을 살펴보더니 역시나 화를 냈다.
“뭐야, 그럼 고귀하신 이 몸께서 거지새끼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진지를 드셔야 한다는 거야?”
주인님의 성냄에 소연은 쩔쩔매며 겨우 말을 꺼냈다.
“혀, 형운곡에서는 묶여 계셨으면서도 잘 드셨잖아요.”
딱!
“아야!”
“이년아, 그거하고 이거하고 똑같아?”
말대꾸했다가 억울하게 꿀밤을 맞은 소연은 더 얻어맞기 전에 꼬리를 내려야만했다.
“잘못했어요, 주인님. 하지만 집집마다 무림인들이 이미 선약해놓았기 때문에 이것도 겨우 마련한 것이었어요.”
그녀의 눈에서 미세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여자의, 특히 소연의 울음소리가 질색이었던 동천은 내심 찔끔하여 그만하기로 했다.
“아아, 됐어. 이번에만 특별히 봐줄 테니까 알아서 자리잡고 어서 불이나 지펴.”
“훌쩍, 예에…….”
식사를 마친 후 시간이 남아돌아 짜증을 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동천은 그 와중에 사람들이 없었던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마을 동쪽 방면에서 천마도해가 나타나 무림인들이 그쪽으로 몰려갔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야 괜히 바깥출입을 했다가 곤욕을 치를까봐 집안에서만 머물러 있었고 말이다. 그들 일행은 할 일 없이 시간을 때우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주점에 들어갔다.
“어서 옵……. 아? 낮에 오셨던 일행이군요. 이를 어쩌지요? 아직까지도 자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점원인 곽술이가 동천 일행을 기억하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동천이 사근사근히 웃으며 번호패를 꺼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