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21화
움직이는 자들 2.
“아하, 시원하다!”
다시 들여온 식사를 마치고 개운하게 목욕까지 하고 나온 동천은 위 아래로 놓여있는 두 개의 침대 가운데 좀더 큰 쪽인 아래쪽 침대에 몸을 뉘었다. 지금 그들은 7호실이 아닌 이 주점에서 제일 큰 9호실에서 머물고있는 상태였다. 주방장 고씨의 고자질로 곽술이의 엄청난 짓을 듣게 된 송금이 거금을 들여 9호실 손님들을 7호실로 옮기고 동천 일행을 이곳에서 머물게 배려해준 것이다.
사실 말이 배려이지 송금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만일 동천이 입만 뻥끗 했다가는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무림인들은 물론, 식사를 마친 경험이 있는 무림인들까지 모두 합쳐서 공갈협박 내지 자신을 죽이려고까지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동천이 턱짓을 하자 도연이 일어나 문가로 다가갔다. 그는 억양 없이 물었다.
“누구십니까.”
문밖에서 고분고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헤헤, 접니다. 송금.”
도연이 문을 열어주자 약간 통통하게 살이 찐 송금이 고개만 살짝 방안으로 들여놓았다.
“동 공자께서는……. 아? 저기 계시는군요.”
동천은 대우가 풍족해 기분이 좋은 상태였으므로 싱글벙글 웃으며 반응했다.
“오오, 송 대인이 아니오? 이 아닌 밤중에 어인 일입니까?”
송금은 허리를 굽실거리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저 좀 잠깐 봐주십사, 하고 왔습니다.”
상대가 허리를 굽히면서까지 부탁했지만 동천은 자신의 몸 상태를 보여주며 그다지 내키지 않은 얼굴을 했다.
“보다시피 방금 전 목욕을 마치고 나온 참이라 주점 밖까지 나가는 것이라면 이 몸이 좀 곤란한데…….”
송금은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나갈 정도는 아닙니다!”
동천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 말했다.
“뭐 그렇다면야.”
천천히 일어난 그는 방문을 나선 뒤 약간 앞쪽의 송금에게 물었다.
“헌데,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묻는 어감이 자못 부드럽자 대답하기 전 송금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혀로 입술을 한 번 축인 후 말했다.
“다름이 아니오라 뭔가 불편하신 일은 없으신가 해서 말이죠. 헤헤.”
그 물음에 동천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것 말씀이군요? 흐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마을의 여건상으로 볼 때 만족할만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천의 개운치 않은 대답에 송금의 얼굴이 약간 어색해져버렸다.
“아주 없다 라면 어느 부분이…….”
동천은 일부러 안색을 어둡게 했다.
“저야 괜찮지만 아까 그 개 같은……, 아니아니. 하하, 아까 그 먹어서는 안될 음식 때문에 제 동료들이 도통 식사할 의욕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능한 잊고 먹어보길 권했지만 안타깝게도 여의치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 그런 일이!”
송금도 어두워진 얼굴로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속마음은 그 반대를 달리고 있었다.
‘이놈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로서 금품을 요구하려는 속셈이로구나. 식욕이 돋지 않긴 개뿔……. 그렇다면 처음에 내간 음식에다 추가로 처먹은 2인분은 뭐란 말인가! 그것들은 다 하늘로 치솟았다는 이야기인가?’
마음 같아서는 멱살을 쥐어 잡고 싸대기까지 후려갈기고 싶은 그였으나 어찌 그가 진실을 알겠는가. 먼저 들여간 6인분과 추가로 들어간 2인분은, 모두 동천과 화정이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도연과 소연은 정말로 입맛이 떨어져서 저녁을 걸렀던 것이다.
“모두가 제 불찰입니다. 그놈 곽술이가 평소에는 싹싹해서 저 뿐만 아니라 누구도 그런 되먹지 못한 짓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철저한 이중생활을 했던 것이죠.”
“하긴, 살다보면 간혹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동천이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물론 그의 본심은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 뚱땡이 되려다 만 잡종아. 아니면 본론만 말해, 본론만. 너 자꾸 이딴 식으로 나가면 주점에 확! 불질러 버린다? 이 몸의 성질 돋궈서 뒤끝이 좋았던 인간들 없다는 것을 니가 잘 모르나 본데, 이 몸은 한 번 하신다면 반드시 하시는 몸이야. 알겠냐?’
한껏 저 혼자 으르렁거리고 막 본론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껄끄러운 무언가가 동천의 뇌리를 강타 것은…….
‘어? 그러고 보니, 내 성질 건드려놓고도 무사했던 인간이 어딘가 있었던 것 같은데? 흐응… 그게 누구였더라? 쓰읍! 그게 누구였더……, 아? 사정화!’
그렇다. 바로 그녀였다. 자신을 쥐잡듯이 잡아놓고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으리오! 때맞춰 뇌물을 먹이기 위해 은자 다섯 냥을 꺼내들던 송금은 분노에 부들부들 떨고있는 동천의 얼굴을 발견하곤 ‘헉?’ 하는 낮은 놀람을 터트렸다.
‘이, 이놈이 돈이 적다는 것을 눈치채고 화가 난 모양이로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비용으로 준비해둔 돈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재빨리 놀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웃는 낯으로 돈의 양을 두 배로 올렸다.
“아이구, 제가 요즘 시세를 잘 몰라서 적게 드렸……. 컥?”
송금은 하마터면 숨이 막혀 그대로 생을 마감할 뻔했다. 어찌된 일인지 방금 전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살벌함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생사의 위협을 느낀 그는 하는 수없이 정말정말 비상용으로 준비해둔 금덩이를 꺼내들어야만 했다.
‘크흑, 이번 일로 벌어들인 소득이 단 한순간에 날아가는구나!’
그가 울며 겨자 먹기로 준비한 금전(金錢) 모두를 들이밀었다.
“도, 동 공자. 이 정도면 어떻겠습니까? 정말 가진 것이 이것 밖에…….”
본능이 작용한 것일까? 동천이 평소보다 일찍 정신을 차렸다. 현실로 돌아온 그는 난데없이 등장한 금전으로 인해 일순간 당황했지만, 재빠르고도 기민한 판단으로 자신에게 넘어오는 재화임을 깨달았다.
“하하! 이렇게 고마울 데가! 이러한 송 대인의 지극 정성을 안다면 필시 제 동료들도 식욕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일단 안도한 송금은 ‘역시, 이놈이 돈이 적어 화를 냈구나. 싸가지 없는 놈!’ 이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귀하신 분들인데 저희 주점의 니미럴 놈! 하나 때문에 식욕이 감퇴되어서야 쓰겠습니까. 저야말로 이 일을 계기로 그분들의 식욕이 돌아왔으면 합니다.”
여기에서 니미럴 놈은 곽술이는 물론 동천까지 빗대어 겸사겸사 욕을 한 것이었고, 동천은 입이 찢어질 정도로 헤헤거리느라 별다른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그래, 참으로 고맙소이다. 자아, 이제 염려하시던 일도 해결된 듯 하니 가서 숙면을 취해도 되겠는지요.”
동천이 대답과는 달리, 은근히 다른 무언가도 바라는 눈치이자 기겁을 한 송금이 재빨리 끝내고자 했다.
“무, 물론입니다. 제가 피곤하신 분을 너무 잡아두었군요. 그럼 전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주무십시오.”
“하하, 그렇게 하지요.”
기꺼이 고개를 끄덕이고 약간 배웅해준(한발 움직였다) 동천은 송금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낮게 중얼거렸다.
“쳇, 눈치하나는 빠르군. 좀만 더 뜯어먹으려고 했는데.”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그는 수중의 돈을 만지작거리며 사정화로 인해 잡쳐버렸던 기분을 싹 날려버릴 수 있었다.
‘강호가 이렇게 좋은 곳이었다니……. 킥킥, 돈 벌기 참으로 쉽구나!’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방안으로 돌아오자 자신의 다음차례로 목욕하러 들어간 소연과 화정이가 벌써 나와있었다. 마지막 차례로 들어가려던 도연은 주춤한 뒤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가 무슨 일로 불렀습니까?”
동천은 들어오기 전의 헤벌쭉한 표정을 지우고 담담하게 말했다.
“음, 너와 소연이 식사를 거르자 그것이 마음에 걸려 찾아왔더구나. 그러니 내일 아침은 거르지 말고 먹길 바란다. 알겠느냐?”
“예, 잘 알겠습니다.”
도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동천이 이어 말했다.
“소연이 너도.”
그녀는 미적거리며 대답했다.
“예에…, 주인님.”
할말을 다 마쳤다고 생각한 동천은 편안한 자세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그는 정말 오랜만의 폭신한 감촉에 어린아이 마냥 좌우로 뒹굴었다.
“이 편안함! 아아, 정말 그리웠다.”
그가 지치지도 않고 뒹구는 사이 화정이도 끼여들어 같이 굴렀다. 그에 화들짝 놀란 소연은 제지를 못한 자신에게 괜한 불똥이라도 튀길까 싶어 재빨리 화정이를 끌어내렸다.
“화정아, 안 돼. 그런 건 한 두 살 먹은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야.”
“싫어, 이러지마. 나 동천하고 계속 뒹굴 거란 말야.”
화정이가 떼를 썼지만 결국 소연의 명령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동천은 같이 뒹굴었음에도 화정이만 제지당하자 힘과 신분의 우월성에 만족하며 대소를 터트렸다.
“파하하! 맞다, 맞아! 그렇게 뒹구는 건 애새끼들이나 하는…….”
헌데, 웃고있을 일이 아니었다. 화정이가 한 짓이 철없는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라면 원조 격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행동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동천은 ‘저런 잡것을 봤나…….’ 라는 눈초리로 소연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깡으로 볼 때 절대 주인님인 동천을 빗대어 욕했을 리는 만무했다. 어쩌면 지금쯤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내심 당황해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동천은 여기에서 화를 내는 것보다, 조용히 넘어가는 방법이 자신의 품위유지에 이득이 될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그래, 이런 하찮은 일로서 화를 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 몸이 생각 없이 자라났다고 떠들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줘야겠다. 내 나이 15세. 언제까지고 철없는 어린아이로 남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는 자신이 생각하고도 대사가 멋이 있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헉? 이 몸의 언변이 가히 하늘에 닿았구나! 어찌 이리도 멋있는 생각을 다했을꼬? 아아, 이는 필시 하늘님의 은총이로다!’
화정이는 난데없이 두 팔을 들어올린 주인이 천장을 우러러보며 알 수 없는 짓거리를 하고있자 궁금한 마음에 다가서려고 했다. 그러나 작은 주인인 소연의 제지로 이번에도 무산되고야 말았다. 화정이는 잇따라 자신의 행동을 가로막는 작은 주인이 야속했으나, 그녀가 화정이에게 ‘너 지금 주인님 건드리면 엄청 맞을지도 몰라.’ 라고 말해주자 말려준 것을 고마워하며 금세 생각을 바꾸었다.
“쿠울…, 음냐. 거기 좀 더 긁어봐아아…….”
곧바로 잠이든 동천은 넓은 침대를 저 혼자 독차지하고서는 대(大)자로 누워 잠꼬대를 했다. 몸이 간지러운 꿈을 꾸는지 실제로 여기저기를 긁어가며 넓은 침대를 정말로 넓게 활용하는 성실한(?) 자세를 보였다. 만일 소연이 이런 장면을 보았다면 ‘저런 건 성실하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중얼거렸으리라.
휘익!
그때였다. 무언가 동천이 자고있는 범위의 지붕을 타고 뛰어 넘은 것은 말이다. 예민하게도 그것을 느꼈는지 늘어질 대로 늘어진 동천의 안면근육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표정을 제대로 해석해보자면 ‘어떤 씨부럴이야!’ 였지만 무의식중에 표출된 얼굴이라 말하는 이도 대꾸하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휙! 휘리릭!
“에이 씨이…….”
드디어 또 다른 움직임에 동천이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휙! 휙! 휙―! 휘리리리리!
“이런 싸가지 없는! 어? 꿈인가?”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그는 사방이 깜깜할 뿐이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상하네? 분명히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으음, 왜 그러세요?”
동천 때문에 막 잠에서 깨어난 소연이 눈을 비비며 졸린 어감으로 물어보았다. 자신의 느낌을 확신할 수 없었던 동천은 그녀에게 물었다.
“야, 너 잘 때 이상한 소리 듣지 못했냐?”
‘듣긴 들었죠. 주인님이 떠드는 소리.’
그러나 그녀는 시치미 뚝 떼고 말했다.
“아니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는데, 왜요?”
동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으음, 아무것도 아냐. 잠깐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올 테니까 다시 자. 그리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도연 자식이 이 몸을 찾으면, 이 띨띨아! 그런걸 내가 어떻게 알아! 라고 소리쳐주고. 알았지?”
“네에…….”
그녀는 주인님의 황당한 명령에 어이가 없었지만 소득 없이 심기를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판단 하에 고분고분 대답해주었다. 그리고 아래층에서 고씨라는 주방장과 같이 자고있을 도연이 이 밤중에 주인님을 찾을 리 만무했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그러한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그러한 말을 해줄 리가 없겠지만 말이다.
“빨리 돌아오세요.”
“오냐.”
여기에서 잠깐 도연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면 이렇다. 소연과 화정이가 한 침대를 사용하자, 도연을 의식한 동천이 사내새끼와 같은 침대를 사용할 수 없다고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그렇다고 주군이 된 입장에서 나 몰라라 하는 것이 도리에 어긋나자 마침내 동천이 내린 결론은 송금에게 무조건 떠넘기기. 난처하게 된 송금은 궁여지책으로 주점에 딸린 작은 방을 내어주게 되었고, 그 방이 바로 주방장 고씨와 곽술이가 사용하던 방이었다. 곽술이가 내쫓긴 마당이었으니 아무 하자가 없었던 것이다.
내키지 않았던 도연은 바닥에서라도 잘 태세였으나, 결국 송금의 계속되는 권유에 못 이겨 허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앞서 동천이 소연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던 것이고 말이다. 여하튼, 잠결에 들린 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동천은 확실히 해결하지 않고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자 산책을 빌미로 밖의 상황을 살펴보려고 내려왔다.
“분명히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는데? 흐음, 발정 난 고양이들이 지랄했던 소리인가?”
밖으로 나와 주점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음에도 그 흔한 바람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잠을 설친 그의 성격상 ‘아닌가 보다…….’ 라고 조용히 물러설 리가 없었다. 그는 살펴보는 범위를 주점에서 반경 십여 장(30M) 이상으로 대폭 늘려 수정했다.
“이래도 별거 없기만 해봐라!”
없으면 그가 어쩔 것인가. 없으면 마는 거지.
“그런데 낮에 천마도해니 어쩌니 했다면서 아직까지도 무림인들이 머물러있는걸 보면 찾지 못했나보지? 하긴, 이미 임자가 있는 물건인데 이따위 외진 곳에 나타날 리가 없지.”
동천이 혼잣말을 끝내고 숨 한 번 들이마시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그에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어?’ 라고 할 사이도 없이 동천의 눈앞에 당도한 그림자는 알고 보니 호리호리한 몸매의 장년층 사내였다.
“뭐, 뭡니까?”
동천이 당황하여 묻자 긴 장발과 더불어 어둠 속에 묻혀있던 상대의 두 눈이 신광을 발했다.
“방금 그 말……. 무슨 소리냐.”
동천은 조심스레 반문했다.
“그 말…이라뇨?”
사내는 가지런히 늘어뜨린 손가락을 까딱까딱 거리며 다분히 위협적인 태도로 좀더 자세히 물었다.
“방금 네놈의 말이, 천마도해의 임자가 이미 다른 놈의 물건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놈 소리를 들은 동천은 심히 불쾌했다. 상대의 스산한 위압감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음에도 불쾌한 건 불쾌한 거였다.
‘이 자식 좀 보게? 지가 언제 이 몸을 뵈었다고 네놈네놈 그러고 까대는 거지?’
일단 욕부터 하고 정신을 집중한 그는 늦게 대답할수록 이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재빠르게 선수쳤다.
“모, 모르셨어요?”
사내는 어린놈의 겁먹은 눈망울(?)에 일단 의심을 거두고 물어보았다.
“모르다니. 무얼 말이냐.”
여기까지 잘 이끌었다고 생각한 동천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 울먹였다.
“그, 그러니까요. 이 마을에 과, 곽술이라는 형이 있는데요……. 그 형이 뒷간에서 큰 거를 보다가 우연찮게 문틈사이로 천마도해를 가지고 있던 무림인을 봤대나 봐요. 꿀꺽, 그런데요. 헉헉!”
결정적인 순간에 어린놈이 꼴딱 넘어갈 것 같자 사내는 급히 동천의 어깨를 두들겨주었다. 잠깐의 대화로서 강압보다는 타이르는 쪽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서워 말고 천천히 말해보거라. 아무도 너를 해하지 않을 것이다. 음, 이 정도면 되겠느냐?”
돈의 위력을 잘 알고있는 사내가 작은 금 조각을 건네주려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동천이 기겁을 했다.
“아이구! 원하시는 대답을 해드릴 테니 제발 그 돈은 치워주세요! 저, 전 맞아죽고 싶지 않다구요!”
사내는 의아하여 물었다.
“그 무슨 말이냐.”
“무, 무슨 말이냐 하면요. 그 곽술이 형이 원체 입이 싼 형이라서 금방 여러 고수들에게 소문이 퍼졌죠. 그래서 응창삼황이라는 분들과 이, 이명(異名)……. 이명 뭐라고 했는데?”
“으음! 이명호월(異名晧月)을 말하는 것이냐?”
“네! 마, 맞아요! 그 분들이었어요!”
희색이 만면한 얼굴로 재빨리 대답한 동천은 상대가 이명호월을 언급할 때 대단히 꺼리고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순식간에 머리를 굴려 약간의 수정을 마친 그는 곧바로 대답했다.
“여하튼 말이죠. 그분들이 차례로 찾아와서 누가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 라고 물었더니, 그 바보 같은 형이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했다가 엄청 얻어맞고 지, 지금 끙끙 앓고 있대요. 그래서 전… 도, 돈을 받을 수 없어요. 흑흑, 저는 그렇게 맞고싶지 않거든요.”
자신의 돈을 거절했던 이유가 드디어 밝혀지자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사내의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졌다. 그러나 다른 무언가가 포착된 듯 순간적으로 그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네 말을 듣자니 차례로 찾아온 그들에게 전부 맞았다는 소리인데……. 그 곽술이라는 녀석이 처음에 찾아온 자들에게 호되게 당했으면서도 두 번째 무림인들에게 또다시 돈을 요구했다는 것이냐? 어쩐지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구나!”
동천은 내심 콧방귀를 뀌었다.
‘쳇! 별걸 다 꼼꼼하게 대가리를 굴리네! 그렇게 잔머리 굴린다고 죽은 네 애비 에미가 살아 돌아 온다든?’
죽었는지 살아있는지 모를 상대의 부모를 거리낌없이 죽었다고 단정한 동천은 전혀 흐트러짐 없이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잘못 아셨어요, 잘못 아셨어요!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요. 처음에 물어본 이들이 응창삼황이라는 분들이셨는데, 그 분들이 딱 한 대만 때리고 알아내셔서 별 피해가 없었던 거예요. 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기가 발동한 그 형이 돈의 액수를 세게 불렀다가 두 번째로 당도한 그 이명……. 에에, 이명…….”
“잘도 까먹는구나. 이명호월이다.”
“아? 헤헤, 제가 원체 잘 까먹어서요. 그래서 남들이 저보고 전생에 건망증이 심하다 죽은 귀신이 붙었냐고들 말해요. 정말이에요.”
어벙한 동천의 주저리에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귀신이면 귀신이지 전생은 또 뭐란 말인가. 으음, 이놈이 긴장을 심하게 한 탓에 앞뒤 문맥에 혼란이 온 모양이로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그리하여 동천의 고난이도 심리전에 말려 들어간 사내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철썩 같이 믿게 되었다.
“좋다. 내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는 그 소문을 어디에서 들었으며 지금 그 놈은 어디에 있느냐. 이 질문에는 내게 귓속말로 해줘야한다.”
동천에게 귓속말을 요구한 사내는 순간적으로 살기를 내뿜었다. 그것은 설사 상대가 무림인이라 할지라도 눈치채지 못할 어둠 속의 살기였다. 이는 동천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가 타인들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예지력의 발현이었다.
부르르르!
‘윽? 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한 게 기분이 더럽네? 설마 내 연기가 실패한 것일까?’
살기의 감은 왔지만 아쉽게도 정확한 해석은 없었다. 어찌되었든 방금 전의 느낌으로 인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왠지 꺼림직 해졌다. 그래서 그는 귓속말 대신 소리내어 말해주었다.
“그 소문은 제 친구에게 들었고요. 그 형은, 그 형은……. 저기 주점의 송 대인께 물어보면 됩니다.”
동천은 한 순간, 곽술이의 집을 몰라 더듬거렸지만 평소의 재치로서 그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반면에 귓속말로 하라고 명령한 사내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자 대놓고 날카로운 살기를 내뿜었다.
“네 이놈! 감히…….”
슥, 쉬쉭! 휘리릭!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갑자기 수많은 그림자들이 주점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몰라 눈을똥그랗게 뜬 동천은 곧 어찌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알고 보니, 주위에 꽤 많은 인간들이 숨어있었구나! 아? 그래서 이 자식이 혼자만 알려고 귓속말을 원했던 거야? 나 참, 이거 병신도 아니고. 그런 건 이 몸께서 또 다른 인간에게 알려주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거늘 그렇게도 머리가 안 돌아가나?’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은 바로 동천이었다. 왜냐하면 상대는 귓속말을 들은 후 동천을 죽이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으득, 이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네놈은 본 날수혈괴(捺手血怪)가 나중에 처리해주겠다!”
날수혈괴에게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송금에게 곽술이의 거처를 알아낸 다른 자들이 그를 죽여서 자신의 경우처럼 입막음을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곽술이란 녀석이 이 마을 사람이라고 했으니 다른 경로를 통해서 찾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되면 필시 물 건너갔을 상황! 그렇기에 동천을 죽인다고 달려들 시간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그가 신속하게 사라지자 홀로 남게 된 동천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요……. 갔어요? 음, 갔습니까? 갔습…냐? 갔냐? 갔냐 씨팔아?”
드디어 상대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동천은 지랄발광을 떨었다.
“개새끼! 그게 가르쳐준 분에게 까댈 말이냐? 확, 가운데 다리를 부러트려서 고자로 만들어 줄까보다! 에이 퉤! 퉤퉤퉤!”
그도 거짓말로 가르쳐준 주제에 참으로 당당한 동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