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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45화


-34- 김천무가(金泉武家)에서 벌어진 일.

“또 당했다고?”

만독노조(萬毒老祖) 항광(項洸)은 두 눈에 불을 켜고 눈앞의 수하를 윽박질렀다. 나이 사십 줄에 달한 수하는 쩔쩔매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모, 모든 것이 속하의 불찰 때문입니다! 그동안 잠잠 하는가 싶었던 주위의 세력들이 급작스럽게 기습을 해와서…….”

순간 찻잔이 날아갔다.

“휘익, 퍼석―!”

정확히 수하의 이마에서 깨진 찻잔은 사방으로 흩날렸다. 항광이 이어 소리쳤다.

“공격하던 놈들이 잠잠해질 때가 더욱 무서운 것이라는 것도 모르느냐? 도대체가 그런 정신상태로 형운지부(瀅芸支部)를 맡고 있었다는 것이 신통할 따름이구나!”

항광이 그냥 던진 것이고, 상대가 워낙 뛰어난 무인인지라 살갗이 찢어지지는 않았으나 맞은 당사자는 사지를 벌벌 떨며 두려워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대번에 항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죽을죄? 그걸 아는 놈의 주둥이에서 감히 용서해달라는 말이 튀어나오더냐?”

“소, 속하는. 속하는…….”

수하의 꼬락서니가 보기 싫었던지 항광이 그를 내쳤다.

“육 개월 간 반성하고 다시 명을 기다려라!”

그제야 수하의 얼굴에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재빨리 표정을 관리한 수하는 두 번 바닥에 머리를 박고 조용히 물러났다. 항광은 혼자 남게된 방안을 분주하고 왔다갔다 돌아다녔다.

“또 움직였다? 또?”

사실 이런 습격은 하루 이틀에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암흑마교의 무리들이 잠깐 휘젓고 갔을 때만해도 한번 찔러본 것인 줄 알았다. 헌데, 그동안 만독문의 위세에 눌려 쉬쉬하며 지내던 주위의 문파들이 갑자기 단결하여 만독문의 몇몇 지부(支部)와 주요 사업장들을 덮치는 것이 아닌가. ‘이것들이 이렇게 간이 클 리가 없는데?’ 라며 고개를 갸웃거린 항광은 은밀한 조사 끝에 놈들의 뒤에 암흑마교가 버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암흑마교가 일정량의 인재와 자금을 투자하여 비교적 손쉽게 만독문을 괴롭혔던 것이다. 물러난 줄 알았던 암흑마교의 수십 천인흑랑대(千人黑狼隊)는 공격한 문파들에 그대로 합류해있었고, 만독문을 포함한 육당(六堂)의 당주들이 관리하는 몇몇 지부와 사업장들을 빼놓고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으득! 냉소천 네놈이 감히 명을 재촉하는구나!”

살기를 머금은 항광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그는 밖의 시비를 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시비가 문밖에서 급히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항광은 말했다.

“가서 초혼(草魂)과 소홍이를 불러오너라.”

“예, 문주님.”

바삐 시녀가 나가고 일각 정도가 지나 그들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문주님.”

초혼이 입을 열자 항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너도 현 상황은 들어 알고 있겠지?”

초혼이 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항광이 그 옆의 강소홍(姜小紅)을 바라보았다. 너는 왜 대답을 않느냐는 뜻이다. 강소홍은 사부의 눈빛에 호응했다.

“소녀 또한 들었사옵니다.”

둘이 대답을 마치자 항광이 다음 이야기를 이었다.

“쉽게 말하겠다. 문영(雯泳)의 상태는 어디까지 끌어올렸느냐.”

문영은 강소홍과 단짝이랄 수 있는 초혼강시였다. 동천이 아직 미완성이랄 수 있는 항광의 용독경(用毒經)을 바탕으로 화정이를 돌봤다면 문영은 좀더 완성된 방법으로 키워진 강시였다. 여기에서 키워졌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데, 말 그대로 어렸을 적에 강소홍과 같이 모아왔던 아이들 중 두 번째로 재질이 우수한 여아를 초혼강시로 만들어 키워왔던 것이다. 이는 강시제조 역사상 전무후무한 방법으로서 강시와 인간의 중간 성질을 교묘하게 이끌어 낸 뒤에 깨질 듯 하면서도 유지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리하여 성장발육의 단계가 오면 한번 깨트렸다 다시 제련을 했다. 일단 강시가 되어버리면 성장이 멈추기 때문이다. 한달 전을 기점으로 열 일곱 번째 제련된 문영은 항광의 기대대로 점점 기량이 향상되었고 언어소통에 거의 막힘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천하의 현존하는 강시들 중 문영의 기량이 제일임을 감히 부인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감이 넘쳐났던 것이다. 물론 항광이 화정이의 존재를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각설하고, 무언가를 느낀 강소홍이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저하는 듯 보이던 그녀가 말했다.

“현재 외내호법(外內護法)님들과 사봉공(四奉公) 어르신들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단독으로 문영이를 제압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항광이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안 되는 일이 있으면 잘되는 일도 있듯 지금이 잘되는 일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미소를 지웠다.

“그렇다면 이제 때가 되었군.”

부르르르!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지 소홍이 돌연 전신을 떨었다. 항광은 나직이 혀를 찼다. 무가에 몸을 담았다면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하거늘, 보는 눈이 있는 가운데 대놓고 약한 모습을 보이자 어리석게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일이 끝난다면 너는 정식으로 소문주가 될 것이다.”

강소홍이 파르르 입술을 열었다.

“꼭 제가…….”

“닥치거라! 네가 감히 사부의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정히 어렵겠거든 나약한 네 모습 그대로 그곳에서 눌러 살거라! 내 다시는 너를 보지 않을 것이야!”

강소홍은 얼굴을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항광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명했다.

“물러가 있거라. 차후 때가되면 떠나야하니 준비도 하고.”

그녀는 사부의 명에 살짝 끄덕인 뒤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초혼은 지나쳐 가는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살짝만 건드려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소문주가 나가자 입을 뗐다.

“아가씨의 나이로 볼 때 지금이 적기인 것은 확실하나 너무 성급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항광은 조용히 턱수염을 쓰다듬은 후 말했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지체한다면 너무 늦어. 적어도 지금 움직여야 그쪽에서 머리를 굴리느라 잠시 공세가 주춤할 수도 있고, 거부한다 쳐도 시간을 버는 셈이니 손해볼 것은 없다.”

초혼은 수긍하면서도 여운을 남겼다.

“그렇긴 하지만 아가씨께서 잘못 되시기라도 하는 날이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항광은 초혼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는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십 몇 년을 더 투자하는 수밖에.”

“…….”

초혼은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의 문주를 바라보았다.


“에헤야! 세상이 나를 반겨주지 않네∼. 나 또한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지!”

동천은 오늘도 인정받기는 그른 노래를 부르며 휘적휘적 걸어갔다. 화정이는 호연화와 노는 것에 빠져있어 연신 손아귀에서 내려놓을 줄을 몰랐다. 도연은 무얼 그리도 심각한 생각을 하는지 길을 떠나면서 아무 말도 않고 있다가 소연이 툭 건드린 다음에야 정신을 차렸다.

“도연아, 왜 그래?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도연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화문과 암문이라는 노인들 말이야. 일전에 금문과 장문이라는 분들과 이름의 방식이 비슷해서 같은 문파의 사람들인지 생각하고 있었어.”

소연은 바로 반응을 보였다.

“너도 그렇게 생각했었니?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둘이 대화를 나누자 동천이 짜증스런 어투로 말했다.

“이것들이 감히 이 몸께서 분위기를 잡고 노래를 부르시는데 딴청을 피워?”

소연은 급히 박수를 쳤다.

“아? 아주 훌륭했어요, 주인님! 호, 호호!”

동천은 그녀의 하는 짓거리가 다소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됐어, 이 몸이 엎드려 절 받기에 만족할 줄 알았냐? 으이그, 이 몸은 복도 지지리도 없지. 누구는 부모 잘 만나 떵떵거리고 산다는데, 이 몸은 아랫것들 잘못 만나 성질만 내고 있으니……. 아아, 하늘님은 뭐하십니까! 이 몸에게 좀더 완벽하고 비위 잘 맞춰주는 수하 하나를 내려주십시오!”

비가 오려고 했다.


“며칠만 늦추자고?”

사정화는 짐작이 가는 눈치였으나 어디 뭐라고 하는지 지켜보자는 심리가 컸기에 그렇게 물어보았다. 수련은 기다렸다는 듯 재빨리 떠들었다.

“그게 말이죠. 밀린 빨래를 하랴, 청소하랴, 앞마당을 쓸랴, 집안 단장도 새로 하랴, 정원에 물 주랴, 그런 다음에 무공연습을 하랴……. 하아! 너무도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보니까 도무지 제대로 된 연습을 할 시간이 있었어야 말이죠.”

결국 수련이 하는 말의 핵심은 바쁜 일상생활에 치이느라 무공연습에 게을리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는 아가씨가 그 간의 성과를 보자고 말씀하시자 이런 이유로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사정화는 같은 여자이면서도 자신과는 극과 극을 달리는 수련의 게으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비교대상을 천재인 그녀로 잡아서는 얘기가 안되지만 보통 다른 여인들과 비교해도 유독 무공연습에만 게을리 했다. 나중에 엄하게 꾸짖으며 이유를 물어봤더니 울면서 한다는 소리가 ‘흑흑, 손에 굳은살이 박히잖아요.’ 라고 말을 해서 사정화가 그냥 넘어가 준 적이 있었다. 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제 몸 하나는 추스를 수 있게 해주려고 그랬던 것인데,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손의 관리에만 신경을 쓰고 있으니 어찌 실망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역시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후에 다시 수련을 닦달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고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지금 또한 넘어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특별히 그 바쁜 일상을 구경해봐야겠구나.”

뜻밖의 상황을 접하여 궁지에 몰린 수련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 오늘 역천 할아버지가 오라고 하셔서 바삐 그곳에 가봐야 해요. 헤헤, 너무도 바빠 까먹고 있었네?”

사정화는 수련의 뒤쪽으로 턱짓을 하였다.

“저기 오는 역천이 말이야?”

“예?”

무슨 소리인가 싶어 뒤돌아보자 역천이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으윽! 하필이면 이럴 때 찾아오실 게 뭐람? 나 이제 아가씨께 죽었당…….’

그녀는 아가씨의 확인에 대비하여 진짜 역천에게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애교를 떨면서 입을 맞추(?)려 했었는데 그것이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하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정화는 차후에 따지기로 생각했는지 일단 역천을 맞이했다.

“어서 와. 무슨 일로 이곳에는 찾아왔지?”

그녀가 묻자 역천이 갑자기 대놓고 웃어댔다.

“푸헤헤헤! 아 글쎄 아가씨. 그놈의 행방을… 이 아니라 그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지 뭡니까요?”

사정화는 본능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 녀석? 아아, 동천을 말하는 거야?”

역천은 가출했다는 소문이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태인데 자신만 모르는 듯 숨기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 명에 따라 수련을 쌓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며 돌아다니기를 어언 5년! 아아, 드디어 사랑스러운 제자가 무언가 깨달음이 있었는지 본교로 돌아오고 있답니다! 그러니 이 어찌 경사가 아니겠습니까요!”

사정화는 제발 뭔가 하나라도 깨닫고 돌아오기를 바랬다. 가출했을 때와 돌아왔을 때가 변함이 없다면, 세월아 내월아 놀다가 왔다는 이야기 밖에 성립이 안되니까. 적어도 그녀가 기준에서는 그랬다.

“그래? 그럼 도착예정일은 언제이지?”

‘헉? 그걸 제가 어찌 압니까요?’

제자의 소식을 접하고 흥분한 역천은 수다를 떨 곳에 찾아왔던 것뿐인데 그것까지 묻자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사정화가 재촉했다.

“왜 대답이 없지? 그것에 관해서는 써있지 않았어?”

역천은 알아서 살길을 마련해주시는 아가씨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바로 그렇습니다, 아가씨. 헤헤, 곧 돌아올 예정이라고만 쓰여져 있어서 자세한 날짜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약간의 공백이 이어졌고, 입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던 수련이 은근슬쩍 말문을 열었다.

“저어, 도연 오빠도 같이 온데요?”

역천은 진정한 수다의 친구가 말을 걸자 기쁘게 대답해주었다.

“오오! 그야 당연하지! 바늘 가는데 실이 따로 놀 수 있겠느냐? 같이 오고 있으니, 나중에 돌아오거든 먹을 것 좀 챙겨주고 잘 대해주거라.”

수련은 벌써부터 꿈에 부푸는지 약간 풀린 눈으로 주절거렸다.

“그럼요! 당연하죠!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주고 옷도 빨아주고 개울가에 앉아서 그간의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프헤헤! 고놈이 아주 수련의 가슴에 콱! 꽂힌 게로구나?”

수련은 싫지 않는 눈으로 역천을 흘겨보았다.

“아이참, 할아버지도?”

역천은 또 하나 생각났는지 손뼉을 쳤다.

“아? 맞다! 그리고 소연과 화정이도 같이 있다는데?”

수련은 언제 눈이 풀렸냐는 듯 왕방울 만하게 눈을 치켜 떴다.

“예에? 어, 언니와 화정이가요? 어떻게요? 어떻게 동천을 찾았대요? 소문으로 듣기로는 분명히 만독문으로 갔다고 했는데?”

이는 역천도 모르고있는 사항이라 대충 둘러댔다.

“뭐 중간에 가다가 어떻게 만났나보지.”

사정화는 역천의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한 소리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아니, 천하가 얼마나 넓은데 중간에 가다가 만날 정도로 행운이 따라준다는 말인가? 물론 그러니까 기적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이지만 하는 말투로 봐서는 약왕전을 돌아다니다가 만났다는 식이니 그녀로서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것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그렇구나…….’ 하며 감탄하는 수련의 짓거리였지만.

“아아, 일이 잘되려니까 언니도 함께 만나고. 흑흑, 그 동안 언니가 보고싶어서 생각날 때마다 남몰래 울었었는데……. 으앙!”

역천은 그 마음을 이해하는지 덩달아 눈물을 글썽였다.

“크윽! 불쌍한 것! 사랑스러운 제자를 떠올리던 이 몸의 심정과 어찌 그렇게 똑 닮았누!”

“할아버지! 와아아앙!”

“수련아! 흑흑흑!”

둘이 부둥켜안고 아주 쌍으로 놀자 결국 사정화가 입을 열었다.

“나가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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