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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48화


<동천(冬天) 3부 3권 – 등잔 밑이 어둡다 편>

서장(序章).

초목 사이를 걷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바라보게 되었다. 한때는 찬란한 전성기를 누리며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열매를 매달고 새들과 온갖 벌레들의 안식처를 제공해주었을 그 고목(枯木)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상태가 되어 외로이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다.

아아, 깨달음은 언제나 불현듯 나를 찾아온다. 지식의 습득을 깨달음이라 착각하는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 어리석음이 언젠가 너희들의 무지에 철퇴를 가할 것이로다. 부디… 그 철퇴가 나의 손이 되지 않기를…….


귀환(歸還).

“침을 좀 놓겠네.”

점잖게 생긴 의원이 침통을 꺼내며 말하자 어깨에 붕대를 감고 온 장한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시죠.”

평소에 환자들이나 약사들이 왔다갔다 바빠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약당(藥堂)의 내부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어쩔 수 없이 중병으로 누워있는 환자들이나 그들을 진료하는 의원들 몇몇을 빼고는 시골의 한산한 약방과 별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다만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한 가닥 그늘이 서려있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총 두 명의 의원들이 환자들을 돌보고있었는데 방금 전의 장한을 돌봐주고 나자 할 일은 별로 없고 시간은 남아돌게 되어 자연히 요사이 화제가 되고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형(炯) 의원, 소전주가 오늘내일 한다지요?”

“그렇지요. 오늘 아니면 내일이랍니다.”

누가 들으면 죽는 날짜만 받아놓은 사람에 대해서 저희들끼리 속닥거리는 이야기인 줄 알리라. 그러나 알다시피 이들의 이야기는 동천이 교내로 돌아오는 시기에 대하여 주고받는 이야기였다. 질문에 답한 형 의원은 자못 길게 한숨을 내쉰 후 다시 말했다.

“후우! 그간 잘 돌아가는 약왕전이었는데 이제 또 어떻게 될는지…….”

상대 의원이 그나마 희망적으로 형 의원을 달랬다.

“소전주도 사람인데 그 동안 정신적으로 성장을 했을 겁니다. 또 듣자하니 세상을 떠돌며 많은 것을 배웠고 그래서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고 하더이다.”

형 의원은 내심 혀를 찼다.

‘이 양반도 참. 믿을 걸 믿어야지.’

얼마나 동천에 관하여 불신의 골이 깊은가를 알 수 있는 단적인 부분이다. 형 의원은 대놓고 그런 소리를 할 만큼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겉으로는 수긍해주었다.

“하긴, 세상을 보고 배웠으니 어느 정도는 개선이 되어서 오시겠지요.”

“맞는 말이오. 우리 좋게 생각합시다.”

그렇게 두 의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험…….”

단정하게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수염도 매끄럽게 손질을 마친 약왕전주 역천은 자신이 들어왔다는 인기척을 살며시 드러낸 뒤 약당 내부의 상단 위에 조용히 가부좌를 틀었다. 두 의원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마치고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상전이 오셨기에 자신들이 맡은 소임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파리만 날리다시피 하는 실정인지라 하는 수 없이 방금 전에 진찰을 해주었던 환자에게 다시 달라붙어 형식적으로나마 봐주는 척했다. 그것을 본 역천은 ‘음, 잘들 하고 있군.’ 이라는 신색을 내비친 뒤 조용히 명상에 잠겼다. 명상을 하려면 조용한 자신의 거처에서나 할 것이지 왜 환자들이 심심치 않게 끙끙거리는 약당에서 이러는 지 자못 의아할 것이다. 이유인즉슨, 생색내는 것을 즐겨하는 역천이었기에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은근히 자랑하려고 나온 것이었다.

“험…….”

역천은 두 의원들이 생각 외로 눈치가 없자 다시금 헛기침을 하여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게 만들었다. 그의 의도대로 힐끔 그를 바라본 의원들은 전주님과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으며 급히 환자에게로 시선을 복귀시켰다. 역천은 자신이 원하던 반응이 아니자 자못 실망했다.

‘어허! 싸가지 없는 놈들이로다.’

상전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으니 역천의 입장에서 저들은 싸가지 없는 놈들이었다. 그러나 넓은 아량과 포용력으로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이 바로 그의 사랑스러운 제자인 동천이 돌아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위를 힐끗 둘러본 다음 의원들에게 물었다.

“아니, 어째서 오늘은 이리도 환자들이 없는 것이지?”

두 의원들은 사실대로 말했다간 전주님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도 있는 관계로 완만하게 넘어가고자 했다.

“거의 모든 환자들이 전주님의 신기와도 같은 침술에 은혜를 입어 생각 이상으로 차도를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꺼번에 빠져나가 버린 관계로 이렇듯 환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돌연 역천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얼굴까지 굳힌 그는 의원들이 영문을 몰라하는 가운데 덜덜 떨리는 한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저 혼자 중얼거렸다.

“이, 이 몸이 잘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아아, 신은 나에게 너무도 큰 재능을 주셨도다. 쩝, 얼굴 마사지나 하러 가야지.”

그는 그렇게 자신의 칭찬을 한 뒤 홀연히 약당을 나섰고, 역천이 완전히 나갔다는 것을 재차 확인한 형 의원은 말했다.

“왜 왔을까…….”


다그닥, 다그닥!

한 대의 마차가 누런 흙먼지를 뿌리며 급히 내달리고 있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마차였고 창가에 한 팔을 걸치고 밖을 내다보고있는 소년 또한 흔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그나마 흔하지 않음을 찾아보자면 햇살에 반사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있는 윤기 자르르한 머리카락 정도? 이쯤 되면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동천이었다. 여하튼 그는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웃더니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훗, 본교의 내부는 시간이 흘렀어도 변한 것이 하나도 없군.”

나름대로 세상을 내려다보는 듯한 음성을 자아낸 동천은 당연히 기억에도 없는 곳이건만 오늘도 아는 척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동천의 말에 반응한 것은 약간 맹한 듯 하면서도 백치미의 얼굴을 소유하고있는 동화정이었다.

“정말이야 동천? 어디어디, 나도 좀 봐.”

창가가 비좁은 관계로 그녀가 얼굴을 들이밀자 엉겁결에 동천이 밀려나게 되었다. 기분이 나빠진 동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씨… 음! 아니지. 오늘은 본교에 돌아온 영광된 날이니 봐주도록 하마.”

“와아, 쟤네 좀 봐. 모여서 노네? 재미있겠다.”

“놀아? 어디 봐봐.”

궁금해진 동천은 화정이의 머리를 밀치고 다시 창가를 차지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내밀고 바깥을 쳐다보았다. 공격진법을 연습하고 있는 듯 보이는 사내들이 최소 다섯 명에서 최대 스무 명까지 한 조를 이루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장면이 동천의 눈에 포착되었다. 아무리 같은 교내의 사람들이라고 해도 각자 소속된 곳의 연습장면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었으나 가장 기초적이고 널리 사용되는 합격진(合格陣)이었기에 그들은 숨김없이 탁 트인 곳에서 연습하는 중이었다.

“히야, 저놈들.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훈련이나 하고 자빠졌네? 쯧쯧, 불쌍한 것들.”

동천만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마차는 계속 내달렸고 연습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은 어느새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갔다.

“어쩐지 전 떨려요.”

약간 상기된 표정의 소연이 양손을 부여잡고 만지작거리며 말하자 바깥바람을 쐬던 동천이 고개를 돌려 힐끔 바라보았다.

“떨려? 왜 떨려? 너 혹시 죄지은 거라도 있냐?”

소연은 오해 말라는 듯 바로 대답했다.

“주인님 그런 떨림이 아니라요, 오랜만에 돌아와서 흥분이 되고 설레고 하는… 그런 종류의 떨림이었다는 말이었어요.”

동천은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하, 알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오래 전에 사고 친 게 하나 있는데 그 일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흥분이 되고 설레었다는 말이지? 참나, 뭘 그런 걸 가지고 말을 빙빙 돌리냐?”

“아, 아니라니까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 일은 니가 알아서 해결해. 됐지?”

결국 그녀는 졸지에 죄지은 전적이 있는 여인으로 되어버렸다. 그녀는 억울했지만 더 이상의 이야기는 고통과도 직결될 수가 있다는 판단 하에 그만두어야 했다. 이각 여를 더 달리고 창 밖을 바라보는 동천의 열기가 시들해지다 못해 녹아들었을 즈음 그토록 고대하던 약왕전에 도착했는지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다가 멈추어 섰다. 바깥 상황을 확인한 소연은 주인님의 명이 있었기에 잠들어있는 동천을 재빨리 흔들어 깨워주었다.

“주인님, 주인님.”

“으음, 뭐야.”

소연은 인상을 찌푸리는 동천에게 말했다.

“다 왔어요. 약왕전이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정신이 번쩍 든 동천은 벌떡 일어났다.

“뭐? 다 왔어?”

“네, 주인님께서 약왕전에 도착하면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세워두라고 하셔서 지금 대기 상태에 있는 중이에요.”

“오오, 그래?”

동천은 흥분에 들떠있는 얼굴을 하곤 서둘러 문을 열어 제켰다. 문밖으로 나오자 약왕전(藥王傳)이라고 쓰여진 웅장한 글씨체의 현판이 현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소인들이 소전주님의 귀환을 앙축 드리옵니다!”

난데없이 들린 우렁찬 소리에 정신을 차린 동천이 현판에서 시선을 떼자 갑자시 사물이 흔들리고 그의 몸까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뭐야.”

억지로 눈을 뜨자 소연이 그에게서 손을 떼며 말했다.

“다 왔어요. 약왕전이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동천은 길게 하품을 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흐아함! 누가 뭐래? 그러니까 와서 이 몸이 내렸… 어? 여기가 어디냐?”

소연은 자다 일어나서 헛소리를 하는가보다 생각했다.

“어디긴요. 마차 안이죠. 주인님께서 약왕전에 도착하면 안으로 들어가지 말고 세워두라고 하셔서 지금 대기 상태에…….”

“잠깐잠깐. 그러니까 지금 여기가 마차 안이라는 소리야?”

소연은 주인님이 계속 영문모를 소리만 하자 ‘이쯤 되면 정신을 차릴 때도 됐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네.”

듣고도 확신이 서지 않아 주위를 살펴보니 정말로 마차 안이었다.

“어라? 진짜네?”

동천은 자신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소연의 머리를 쾅 때려 준 뒤 마차에서 내렸다. 꿈에서는 감격에 벅차 올라 약왕전의 현판만을 바라보았는데 정면을 바라보자 약간 떨어진 곳에서 즐비하게 서 있는 무사들과 의원들을 볼 수 있었다. 동천은 그들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며 입을 열자 동시에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인들이 소전주님의 귀환을 앙축 드리옵니다!”

‘소인들이 소전주님의 귀환을 앙축 드리옵니다.’

역시나 똑같았다.

“호오…….”

가늘게 눈을 뜬 동천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낮은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을 자신들 나름대로 해석한 사람들은 그들의 환영인사에 소전주가 만족을 했다고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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