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568화


#57

잠자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탓에 바로 잠이 들었던 동천은 잠결임에도 무언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부드러운 느낌이었는데 살짝 뺨을 스치는가 싶더니 떨어지고, 다시 어루만지는 듯 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으응, 뭐야.’

동천은 한 손을 들어 얼굴을 한번 쓸어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효과는 없었고 오히려 점점 간질거리는 느낌이 지배적이었다. 그는 꿈결임에도 ‘이러다 곧 잠잠해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오산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간질거리기는 매한가지였다. 결국 코를 실룩거린 동천은 시원하게 재채기를 했다.

“에, 에, 에취∼이!”

“꺄악!”

난데없는 비명소리에 잠에서 깬 동천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야?”

재빨리 주위를 둘러본 그는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돌리고 있는 소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 너 왜 그러고 있냐? 그리고 방금 전의 그 비명소리, 니가 낸 거 맞아?”

‘아, 디러. 아, 디러…….’

얼굴에 흥건한 주인님의 침을 닦느라 정신이 없었던 소연은 아직 덜 닦였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돌려 바로 대답해주었다.

“예에… 그, 그게요. 저도 깜박 잠이 들었다가 악몽을 꾸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비명을…….”

자세한 내막을 몰랐던 동천은 어처구니없어 했다.

“참나, 너도 참 가지가지 한다.”

소연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

동천은 기왕지사 깨어난 거 공연히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 그로서는 참으로 드문 일인 것이다.

“아아, 죄송하고 나발이고 지금 여기가 어디쯤이지?”

화제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기다렸다는 듯 소연이 급히 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 부근이 그러니까……. 아? 거의 다 왔어요, 주인님.”

그 소리에 동천은 소연이 내다보고 있는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살펴보았다. 헌데, 어디에선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냄새의 근원지는 소연이었고 말이다.

“킁킁! 근데 이게 무슨 시큼 털털한 냄새냐? 너 혹시 며칠 안 닦았냐?”

소연은 얼굴에 침 범벅을 한 것도 억울한데 의심의 눈길까지 받게 되자 얼굴을 붉히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무, 무슨 소리예요, 전 매일같이 목욕할 만큼 청결하다고요!”

뜻밖의 고함에 동천이 찔끔했다.

‘얼레,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왜 화를 내지? 혹시, 그 날인가? 가만있자. 얘 초경이 중순에서 닷새 사이니까…….’

이상한 쪽으로 결론이 흐르는 가운데 잠시 생각해보니까 자신이 당하고만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런 씨! 아니면 아닌 거지, 어디에서 감히 눈알을 부라려? 니가 지금 한번 해보겠다는 소리야? 엉?”

흥분해서 팔까지 걷어 부친 주인님의 모습에 소연은 금새 위축된 행동을 보였다.

“그게 아니라요. 청결만큼은 자신 있는데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사실 그녀는 억울했다. 입맞춤이나 해보고 이런 소릴 들었다면 그나마 덜 억울했을 텐데, 그녀의 머리카락이 하필 동천의 코를 간질여서 바로 앞까지 갔다가 침만 잔뜩 묻히고 비명을 질렀었기 때문이다.

“니가 아무리 청결하다고 생각하면 뭐하냐? 냄새가 나는데. 너는 냄새가 나도 이 몸이 아니라고 말씀했어야 옳았다고 말하는 거냐, 지금?”

“아니, 그게 아니라요…….”

기세가 오른 동천이 계속 닦달하는 가운데 서서히 마차가 멈춰 섰다. 이어 마부석 쪽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밖에서 방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전주님, 거의 도착했으나 사람들이 붐비어 마차로 진입하기엔 조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완력으로 길을 트일까요?”

일단 소연과 함께 마차에서 내린 동천은 바깥상황을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뭐 그렇게 하던…….”

그때 소연이 끼여들었다.

“아뇨, 오늘 같은 날에 사람들을 힘으로 다스리려는 것은 보기에 좋지 않아요. 이는 약왕전 답지 않은 행동이니 우린 천천히 걸어가는 쪽을 택하겠어요.”

“예에, 그게…….”

갑자기 끼여든 소연의 이야기는 타당했으나 방삼은 힐끗 동천의 눈치를 살피며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그도 소연의 행동이 신분 이상의 짓이었다는 것을 알고있었기에 아무래도 소전주의 확실한 결정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천의 반응은 의외였다.

“얼레, 이 몸은 왜 보니? 걷는 다잖아. 니는 이 몸이 말씀하시는 것 이외엔 다 개소리로 들리냐?”

기겁을 한 방삼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 그럴 리가요! 그럼 소인은 그렇게 알고 마차를 이곳 갓길에 세워놓겠습니다요, 예예.”

쩔쩔매며 허리를 숙인 그는 이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이보게, 자네’ 라고 말해주던 인간이 이렇게까지 돌변하자 사람들이 왜 동천을 개 같은 소전주라고 씹어댔는지를 새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네, 수고해주세요.”

부드럽게 미소하며 방삼을 격려한 소연은 주인님이 멋대로 먼저 걷기 시작하자 약간 뒤쳐진 상태로 뒤따랐다. 그래야 방향이 달라져도 바로 교정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만독문의 소문주가 화젯거리이긴 화젯거리인가 보네? 인간들이 이렇게 달박달박한 것을 보니?”

소연은 대답했다.

“요 사이 천마도해천마지가에 관한 이야기만 나돌아서 자못 분위기가 살벌했잖아요? 그래서 다들 새로운 것을 원하던 차에 다른 일도 아닌 소교주님의 혼사 이야기가 퍼지자 자연스레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듯 싶어요.”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소연을 힐끔 바라보았다.

“얘가 전문가 다 됐네? 아예 이 기회에 그쪽 계통으로 나가보지 그러냐?”

얼굴을 붉힌 소연은 손을 내저었다.

“벼, 별것도 아닌데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부끄러워요.”

그냥 지나가는 말투였던 동천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부끄럽긴 개뿔. 그건 그렇고, 어디에다 자리를 잡아야 할까나?”

소연은 금새 평정을 되찾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잘 보이는 길 앞쪽이나 전망 좋은 이층 창가가 좋지 않을까요?”

마땅한 이야기자 동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 몸도 같은 생각이야. 헌데 기왕이면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는 앉는 자리가 좋지 않겠어? 그러니까 전망 좋은 이층집으로 좀 알아보도록 해. 누가 뭐라고 하면 한 대 갈기던가, 아니면 이걸 보여주던가 하고.”

약 소전주의 신분을 증명하는 금색 영패를 받아든 소연은 한 대 갈기라는 부분 때문인지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조심스레 갈무리했다.

“네, 주인님.”

그들이 서 있는 부근은 꽤나 번화한 곳이라 전망 좋은 이층집을 찾자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다만 이층에서 구경하고자 하는 사람이 동천뿐일 리는 없는 관계로 이층 창가에는 힘 꽤나 쓴다는 작자들이 모두 점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제나저제나 만독문의 소문주를 기다리던 구경꾼들은 한 미모의 소녀가 아담하게 지어진 이층집으로 들어갔을 때만해도 악독하기로 소문난 십기칠조(十璣七爪) 우제(宇提) 일당에게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잠시 후 헐레벌떡 뛰쳐나와 도망치는 우제 일당을 보곤 적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북당주의 심복이자 이 부근에서는 천하제일인 부럽지 않게 행세했던 자가 바로 십기칠조 우제였기 때문이다. 뒤이어 나온 소녀는 구경꾼들의 시선을 느끼곤 수줍어하는 얼굴로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는데, 잠시 후 동행으로 보이는 소년을 데리고 돌아와 우제 일당이 도망친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인님, 여기예요. 어느 친절하신 분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계시는데도 양보해주시고 가셨어요.”

알고 보니 하녀였던 그녀가 진실을 왜곡했다고 구경꾼들이 생각하고 있을 때 소년이 집안으로 들어갔고 소녀 역시 따라 들어갔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냐?”

소년, 즉 동천이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인상을 찡그리고 주위를 살피자 괜히 피해의식이 있었던 소연은 약간 물러서서 말했다.

“저, 전 깨끗하니까요? 방금 전에도 세수를 하고 주인님을 모셔온 거라고요!”

동천은 그런 소연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켕기냐? 너한테 한 말이 아니라 여기 방안 공기가 탁하다는 말이야.”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소연이 재빨리 둘러쳤다.

“아? 그건… 일층이라서 그럴 거예요. 이층으로 올라가시면 상쾌한 공기가 창문을 통해 흘러 들어올 테니까 어서 올라가도록 해요.”

동천은 말했다.

“참나, 봐준다.”

천천히 이층으로 올라간 동천은 인기척 대신 먹다만 술과 안주들 때문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짐을 느꼈다.

“여기 주인 어디 갔냐? 방안이 왜 이리 어지러워?”

집이 있으니 주인이 없을 리 만무했지만 이곳의 주인은 십기칠조 우제의 무서움 때문에 미리 멀리 도망친지 오래였다.

“그건 잘 모르겠고요. 여기 방안은 제가 얼른 치워놓을 게요.”

동천은 서둘러 방안의 음식들을 치우는 소연에게 물었다.

“헌데, 이 몸이 드실 음식보따리는?”

소연은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마차! 죄송해요, 그것도 얼른 가져올게요. 아니, 방을 마저 치우고요. 아, 아니다. 마차에 먼저 가야하나?”

동천은 이곳의 일과 도시락을 사이에 놓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소연에게 나직이 혀를 차주었다.

“쯧쯧, 젊은 게 정신을 어디다 놓고 사는지 원. 저걸 언놈이 데려가려나?”

주춤거린 소연은 은근슬쩍 동천의 눈치를 봤다.

“전……, 아무 곳에도 안 가요. 그냥 주인님 곁에서 평생을 살래요.”

그녀로서는 굉장히 용기를 내어 속마음을 내비친 것이었지만 연애에 관해서 무식이었던 동천은 가볍게 받아들였다.

“됐어. 다 늙어서 주름살 투성이가 된 널 그때까지 봐서 뭐하냐? 잔소리 말고 여기부터 치워. 배고파도 그건 좀 참아볼 테니까.”

“네에…….”

힘없이 대답한 소연은 축 쳐진 어깨를 움직여 술과 안주들을 한곳으로 모아 일층으로 내려갔다. 동천은 아직 덜 치워졌지만 마냥 서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의자에 앉아 창 밖을 내다보았다.

“히야, 저 사람 바글바글한 것 좀 봐라.”

인산인해는 아니었지만 길가에 서있는 사람들의 수는 잦은 자리다툼이 일어날 정도는 되었다.

“가만, 쟤들은 일도 없나? 뭐 볼게 있다고 여기까지 나와서 길이나 막고 지랄들인 거지? 거참, 더럽게도 할 일 없는 인간들 같으니라고.”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있음을 알 턱이 없는 동천은 창가에 한쪽 팔을 내놓은 상태로 턱을 괴었다. 그저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노인네처럼 눈동자만 왔다갔다 움직이며 주위를 살펴보던 그는 양손에 보따리를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소연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동천은 순간이지만 안쓰러운 느낌을 받았다.

“에그, 쟤 저러다 허리 부러지는 거 아닌가 몰라.”

만약 주방장이 지금의 절반 정도만을 준비해서 소연이 수월하게 들고 왔다면 동천의 반응은 정 반대로 튀어나왔을 것이 분명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었지만 천상 사람이란 동물은 간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우, 기다리셨죠?”

동천은 길게 한숨을 돌린 소연에게 말했다.

“뭐 그렇게까지는 아니고 그럭저럭 바깥 경치나 구경하고 있었어. 수고했으니까 그거 옆에 내려놓고 마저 치워.”

“네, 주인님.”

진심이 섞인 수고했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소연은 금새 힘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식탁과 주변 바닥을 쓸어 낸 그녀는 나들이 나온 기분을 만끽하며 동천과 함께 약간 늦은 점심 식사를 끝마쳤다.

“꺼억! 아, 잘 먹었다! 좀 모자라긴 했지만 이 정도면 먹을 만 하지 뭐.”

“예에, 그러네요.”

소연은 주인님의 튀어나온 배를 바라보느라 대답하는 둥 마는 둥 했다. 그것을 눈치 챈 동천은 가볍게 소연의 이마를 때려준 뒤 창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굼벵이를 삶아 먹었나, 왜 이리도 안 와?”

먹을 거 다 먹고 할 일이 없자 성격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을 감지한 소연은 재빨리 주인님을 달래기 시작했다.

“올 거예요. 교주님 쪽에서도 기다리고 계실 텐데 설마하니 늦장을 부리겠어요?”

거기까지 미처 생각을 못했던 동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 당당한 입장도 아니고 눈치를 보는 입장이니 놀면서 올 시간이 없겠지.”

웅성웅성―!

동천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거리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사태를 감지한 동천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흐릿하긴 했지만 긴 행렬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싸, 드디어 오는구만?”

튕기듯 의자에서 일어난 동천은 후다닥 일층으로 내려갔다. 기다리는 것은 편안한 곳이 좋았지만 구경이라 함은 뭐니뭐니 해도 바로 앞에서 구경하는 것이 제일이었기 때문이다.

“가, 같이 가요!”

바늘 가는데 실 가듯 동천의 뒤를 따른 소연은 맨 앞쪽에 이미 버티고 있는 주인님 덕분에 수월하게 나란히 설 수 있었다. 그녀는 왠지 설렘을 느끼곤 두근거리는 가슴을 한 손으로 꾹 내리눌렀다.

“아아, 어떠한 모습일까 생각하니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려요. 주인님은 요?”

동천은 행렬이 오는 쪽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대꾸했다.

“난 별로야. 지도 사람인데 이뻐 봤자 정화보다 나을라구?”

기실 그렇게는 말했지만 동천의 얼굴은 약간 상기된 듯한 표정이었다. 그도 나름대로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하는 한편 긴장해하는 것이다. 소연은 그런 주인님의 대답에 무언가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수그렸다.

‘무의식적이셨지만 사 아가씨와 비교를 한다는 게 좀……. 아냐, 사 아가씨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니까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 괜히 엄한 생각은 말자!’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 내려는 듯 소연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동천은 옆에서 혼자서도 잘 놀고(?)있는 소연에게 말했다.

“야, 비듬 떨어져. 그만 흔들어.”

창피해진 소연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며 반박했다.

“예? 비, 비듬이라뇨! 전 그런 거 없어요.”

동천은 귀찮다는 표정을 대꾸했다.

“아아, 알았어. 너 비듬 없어. 그러니까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너도 저거 구경하러 왔으면 오는 거에나 집중해. 알긋냐?”

소연은 주인님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지려하자 군말 않고 대답했다.

“예에, 그럴 게요.”

잡생각을 버리고 뒤늦게 만독문의 행렬을 바라본 소연은 그 사이 상당히 다가와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만독(萬毒)**이라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 글씨가 새겨진 깃발들을 필두로 호위기병들이 지나쳤고 뒤이어 이두마차들의 순서가 이어졌다.

“그런데 마차들의 모습이 다 똑같네요? 저래서는 어느 마차가 만독문의 소문주님 마차인지 알 수가 없는데.”

동천은 마차들의 생김새를 살펴보는 소연을 나무랐다.

“에그, 바보야. 당연히 똑같게 만들어야지. 한가하게 나들이 나온 것도 아닌데 소문주의 마차만 튀게 만들어봐. 그건 나 잡아 잡수,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유사시에 습격을 받아도 확률적으로 안전하게끔 방비를 해놓은 거라구. 아마 저 마차들 속에는 소문주를 가장한 가짜들이 각기 다 들어가 있을걸? 그리고… 아? 온다! 이제 말시키지마.”

의외로 해박한 지식에 소연이 감탄하고 있을 때 동천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마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꿀꺽! 과연 방광 할배가 약조한 대로 천하제일의 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을까나?’

따각따각…….

드디어 첫 번째 마차가 지나갔다. 유연한 곡선과 튀지 않는 비단결 문양은 세월의 경륜을 더해 고풍스러움까지 자아냈고, 황갈색 마차는 남들에게 내부를 보이고 싶지 않았던지 모든 문들이 폐쇄된 상태였다.

“엥?”

따각따각…….

이어서 두 번째 마차도 지나갔는데 앞서와 마찬가지로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금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얼레?”

그 뒤를 세 번째 마차가 지나갔고, 이번 마차 역시 마차가지인 상태였다.

“으잉?”

따각따각…….

그러는 사이에 벌써 여섯 번째 마차가 지나갔다.

“…….”

잠시 침묵하던 동천은 마침내 그 성깔을 드러냈다.

“이런 개 씨파…….”

“썅늠의 새끼들! 그거 좀 보여준다고 얼굴이 다냐? 엉? 이 몸이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이런 그지 같은 곳에서 반 시진이나 기다린 줄 알아? 으으, 내가 아랫것들 정도만 되었어도 그냥 콱!”

마치 동천의 마음을 대변한 듯한 욕지거리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구경꾼들의 후방에서 들려온 탓에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우연인지 몰라도 그 목소리는 동천의 귀에 상당히 낯익었다. 재빨리 사람들을 헤치고 상대방에게 당도한 동천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역천이었던 것이다.

“아니, 사부님!”

성질이 나 있던 역천은 흥분된 얼굴로 획 돌아보았다.

“이런 씨! 누가 감히 이 몸의 제자를 사칭……. 헉? 진짜네?”

뜻밖의 일이었던지 역천이 한순간 멍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잠시 정적이 일어나려는 찰나 뒤늦게 따라온 소연이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전주님.”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역천이 점잖게 물었다.

“아? 음, 그래. 너희들은 이곳에 어쩐 일이더냐?”

소연은 아직 화가 가시지 않은 주인님께서 말실수라도 할까봐 대신 나서서 대답을 해주었다.

“저희는 만독문의 소문주님께서 이곳을 경유해 가신다고 하기에 구경이나 해보려고 왔는데요, 아쉽게도 너무 신비하게 지나치셔서 허탕을 친 상태예요. 전주님도 구경하러 오신 듯 한데 맞죠?”

찔끔한 역천은 자신이 떠벌렸던 욕지거리가 있었기에 한순간 고민했다.

‘으음, 제자가 보는 앞에서 이 위대한 사부님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했으까이! 그렇다고 상스러운 말을 내뱉지 않았다고 잡아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아! 그러고 보니, 고민하는 내 모습도 꽤나 멋있지 않은가!’

이상한 결론으로 빠진 역천은 평정심을 되찾고 적당히 자란 턱수염을 쓸어 내렸다.

“험험! 구경까지는 아니고 이곳에 잠시 일이 있어 들렸다가 겸사겸사 보러왔을 뿐이지, 별건 아니었다. 음?”

갑자기 눈을 빛낸 역천은 멀쩡히 잘 지나가는 건장한 사내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바로 네놈이로구나! 감히 본교의 귀빈이 지나가는데 욕지거리를 한 놈이!”

영문도 모른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내는 목이 졸리자 바둥바둥 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케, 케켁! 누, 누구시기에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켁켁!”

“사부님 그자는 왜…….”

동천과 소연도 영문을 몰라하는 눈치이자 사내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역천은 좀더 상세한 설명을 해주며 밟아댔다.

퍽퍽퍽퍽!

“이시키! 이시키! 니가 방금 전에 썅늠의 새끼들 어쩌구 하며 만독문의 소문주를 욕했지 않느냐! 그랬으면서도 니 자꾸 거짓말할래? 엉?”

“어쿠! 내가 언제… 끄엑―?”

허튼 소리가 나오기 전에 한방에 끝낸 역천은 사용한 건 발인데 손을 탁탁 털며 죄를 뒤집어씌운 사람답지 않게 당당히 말했다.

“에이! 반성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 내 마음이 넓어 이것으로 용서해줄 터이니 다음부터는 조심하도록 하거라!”

이미 기절한 사내에게 말해봤자 상대가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또한 깨어난다 해도 왜 맞았는지 억울해할 것이 분명하지만 죄가 있다면 제자에게만큼은 위대한 사부이고 싶었던 역천의 옆을 때마침 지나쳤다는 것뿐이었다.

‘아프겠다…….’

간단명료하게 상대의 몸을 걱정해준 소연은 전주님의 앞이라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동천이라면 몰라도 역천에게까지 나설 정도로 간이 큰 그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때 역천이 말했다.

“험! 제자야. 가자꾸나. 내 오늘은 특별히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뼈가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눈물이 되고, 콧물이……. 뭐 아무튼! 뜻깊은 이야기만을 들려주도록 하마.”

수련을 건너뛴다는 소리였다. 약발이 들었는지 동천은 자신 못지 않게 악랄함을 보인 사부의 모습 따윈 망각의 너머로 훨훨 날려보냈다.

“예, 사부님! 이 제자는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헐헐! 이 사부 또한 흥겹구나!”

그런 그들의 뒤를 따라가는 소연은 역시 그 사부에 그 제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