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77화
#66
“켈켈, 즐겁게 시간을 보내시다 오셨습니까?”
장로들과 어울리다가 돌아오는 아가씨를 발견한 정원이 다가와 그렇게 물었다. 사정화는 예의 그 무뚝뚝한 목소리를 답했다.
“그저 그랬어.”
정원은 짐짓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소신 딴에는 무료하시지 말라고 그 자리를 주선해주었던 것인데 즐겁지가 않으셨다니.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사정화는 자신이 너무 쉽게 말을 내뱉었다고 생각했는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무익한 시간만은 아니었으니 너무 자책하지마.”
정원은 회복이 빨랐다.
“켈켈, 그렇게 하겠습니다요. 아참? 약전주께서 만검전주님과 함께 도착한 상태입니다. 만나보시겠습니까?”
고개를 내저은 사정화는 좌중을 둘러보며 정원에게 물었다.
“아냐, 됐어. 그보다 동천은 어디에 있지?”
정원은 잠깐 놀라는 표정을 내비쳤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아까 소교주님과 함께 약소전주에 관한 이야기라도 나누었습니까? 방금 전에도 아가씨보다 한발 일찍 도착한 소교주님께서 약전주께 소전주의 동행여부를 묻던데.”
인상을 찌푸린 사정화는 되묻기 전에 생각부터 해봤다.
‘같은 시간에 나가서 다른 볼일이 있다고 헤어졌는데 나보다 먼저 왔다는 것은 일정이 취소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따로 볼일이 있다는 것이 이것이었거나.’
그녀는 아무래도 후자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더불어 여자의 직감으로 소교주의 행동은 단순한 소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런 이야기는 나누긴 했어. 내용은 할멈이 들어봐야 별거 없는 거니까 신경 끊어.”
“예, 아가씨. 켈켈.”
사정화는 다시 한번 물었다.
“동천은 어디에 있지?”
정원은 앞서 냉현에게 해주었던 말을 다시 한번 읊어주었다.
“약소전주는 오늘 연회에 불참한다고 했습니다. 켈켈, 자신이 없어도 될 것 같다며 무공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눈을 치켜 뜬 사정화는 쉬이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녀석이 무공수련을?”
정원은 한가득 주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켈켈, 소신도 믿을 수 없지만 그렇다는군요. 약전주께서 어찌나 자신 있게 자랑을 하시는지 도저히 그의 앞에서 부정적인 대답을 해줄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죠. 켈켈켈!”
왠지 흥미가 동해 역천에게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신형을 옮기려던 사정화는 갑자기 인파가 갈라지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함에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리들의 뒤편에서는 한 사내가 때맞춰 소리를 질렀다.
“교주님과 부교주님께서 납시었습니다!”
앉아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잡담을 나누던 사람들은 그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냉소천과 사비혼이 상석에 앉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정화는 모일만한 사람들은 다 모인 듯 한데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강소홍이 등장하지 않고 있자 나름대로 염려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왜냐하면 강소홍은 정문이 아닌 다른 곳을 통해서 들어왔는지 어느새 냉현의 바로 옆으로 가서 앉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잘 와주었소.”
강소홍 쪽을 바라보던 사정화의 시선은 조용히 울려 퍼지는 교주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그쪽으로 옮겨졌다. 냉소천은 계속 이어 말했다.
“본교가 그대들의 노력으로 점점 더 강성해지고 있으니 본좌는 기쁘기 그지없을 따름이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런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고자 하는 뜻도 있지만 근 시일 내에 새로운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 재인(才人)을 반긴다는 뜻도 있음이외다. 본교는 이제…….”
사정화는 계속 이어지는 냉소천의 연설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제 이곳에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지루해. 가식적인 소리 그만하고 빨리 좀 끝냈으면 좋겠군.’
간결한 것을 선호하는 그녀로서는 확실히 지루한 순간이었지만 그런 그녀를 비웃기라도 하듯 냉소천의 연설은 점점 더 열기를 띄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무리도 있는 법. 연설이 거의 끝나 가는 시점에서 술잔을 집어든 냉소천은 자신 있는 어투로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런 이유에서 타 세력들도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오! 그러나 최후에 웃는 자는 우리가 될 것임을 본좌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소이다! 자아! 잔을 드시오!”
냉소천은 힘차게 잔을 들어올렸고, 그의 열기에 전염된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소리쳤다.
“마교제일 암흑마교(魔敎第一 暗黑魔敎)! 만마앙복 천하제일(萬魔仰伏 天下第一)!”
와아아아아!
순간 적룡등천각의 내부가 떠나갈 듯한 함성에 몸서리를 쳤다. 만일 동천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더럽게들 지랄한다고 욕을 해댔을 지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사정화는 사람들이 즐겁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을 바라보며 슬그머니 일어났지만 그녀의 자리는 최고위층에게 적용되는 자리여서 바로 근처의 냉소천에게 시야가 걸리고야 말았다.
“아니, 이제 바로 시작된 연회인데 벌써 일어나려고?”
사실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본 모든 사람이 그렇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들 중 냉소천이 제일 빨랐기에 그가 대표격으로 말한 것처럼 된 셈이었다. 여하튼 사정화는 다른 사람도 아닌 교주의 물음이었기에 공손히 대답해주었다.
“송구하오나 강 소문주님은 이미 만나 뵈었고, 소녀는 이런 곳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을 듯 싶습니다.”
‘어린것이 감히…….’
냉소천은 대번에 기분이 상했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아쉬운 표정으로 대꾸해주었다.
“음, 오늘같이 즐거운 날에 마교 제일의 꽃이 먼저 간다고 하니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드는구나. 하지만 네가 둘러 쌓여있기를 즐겨하는 체질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있기에 먼저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
사정화는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하하!”
그때까지도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고있던 사비혼은 조용히 눈을 들어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조심해서 들어가거라. 내 저녁에 잠깐 들르마.”
고개를 든 사정화는 부친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보는 듯 하더니 살짝 외면하며 대답했다.
“네, 아버님.”
싱거울 지경인 부녀지간의 짤막한 대화를 듣고 난 냉소천은 약간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있는 시녀에게 명령했다.
“너는 여기 사 아가씨를 모시고 사람들의 시선을 덜 받는 뒷문으로 데려다주거라.”
시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부터 하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시녀가 총총걸음으로 앞장서려는데 사정화가 돌아가는 것을 눈치 챈 정원이 약간 떨어진 곳에서부터 다가왔다.
“벌써 가시려는 겝니까?”
“그래. 따라오지 말고 재미있게 놀다와. 나는 동천에게 좀 들렸다가 돌아갈 테니까.”
정원은 고개를 내저었다.
“켈켈, 그럴 수는 없지요.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는 세상이니 외출 시에는 소신이 꼭 곁에 붙어있으라는 부교주님의 엄명이 계셨습니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사정화가 가시 박힌 소리를 했다.
“아버님의 명이 없었다면 어디를 가던지 상관을 않는다는 소리로 들리는 군.”
정원은 당황하여 변명했다.
“아, 아니옵니다. 설마하니 소신이 그런 불온한 마음을 먹겠사옵니까.”
잠시 정원을 노려보듯 바라본 사정화는 이런 곳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지 집요하게 늘어지지는 않았다.
“알았어. 마음대로 해.”
아가씨의 허락에 정원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소신의 충심을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켈켈.”
단정짓지 말라고 충고하려던 사정화는 말하기도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정원과의 볼일을 끝마친 그녀가 움직이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시녀 또한 길 안내를 시작했다. 뒤로 돌아나가 빙 둘러서 마차에 도착한 그들은 지체 없이 출발했고, 가는 도중에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정원은 물었다.
“아가씨, 갑자기 약소전주에게 가시는 이유가 뭡니까?”
사정화는 툭 내뱉듯 대꾸했다.
“그냥.”
“예에? 그냥 이란 말씀이십니까?”
황당한 대답이자 정원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늙은이의 거칠고 큰 목소리가 귀에 거슬려 눈살을 찌푸린 사정화는 못을 박듯 다시 한번 말했다.
“그래, 그냥.”
심기를 건드렸음을 눈치챈 정원은 바로 입을 다물었고 말이다.
두두두두두.
마차는 거침없이 약왕전을 향했다.
“아침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아∼ 씨팔! 저놈의 새. 모가지를 비틀까보다!) 앞뜰에 춤추는 어린아이 흥에 겨워 잘도 논다!(미친 애새끼! 밤새 춤만 추네?) 장단 맞춰 술 한잔을 기울이니! 세상의 시름들이 다 물러가누나∼!(역시, 술은 구타 후에 마시는 게 제일이라니까?) 캬! 쥑인다!”
그 누구도 예측 못할 오묘한(?) 뜻이 담겨진 자작시를 읊어댄 동천은 방안에서만 빈둥거리다가 언제 목욕했는지 양손가락을 사용해도 모자랄 것 같다는 소연의 성화에 못 이겨 때를 밀고있는 중이었다. 사실 보통사람들 같았으면 이 정도 목욕을 안 했을 시, 몸에서 시큼털털한 냄새가 흘러나왔을 것인데 뛰어난 심법을 소유하고있는 동천으로서는 몸에 이물질이 쌓여도 보통사람들 보다는 수배나 덜 쌓이는 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목욕을 미루었던 것에 비해 나오는 때가 적었고 말이다.
“음! 간만에 느낌이 오는걸? 이번에는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자 작곡의 노래를 불러 볼까나? 아아! 에에! 우우! 켁켁∼!”
모든 준비를 끝마친 그가 목청을 가다듬을 때 문밖에서 수줍어하는 소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아직도 머셨어요?”
자신의 창작에 침해를 받게 된 동천은 심히 기분 나빠하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멀면? 니가 들어와서 대신 닦아줄 거야?”
헛바람을 들이킨 소연은 겨우 말했다.
“마, 망측해요!”
동천은 소연의 말투를 따라했다.
“마, 망측하긴! 뭐, 뭐가 망측하다고!”
일단 따라하긴 했는데 동천은 생각보다 재미가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말투 따라하기를 바로 중지한 뒤 제대로 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방금은 웃으라고 한 거니까 그냥 넘어가자. 본론만 말해서 무슨 일이 야?”
소연은 어차피 보이지도 않았기에 마음놓고 못 마뜩한 표정을 하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요, 사 아가씨께서 오셨어요.”
동천은 대뜸 눈살을 찌푸렸다.
“싸가지? 뭔 싸가지?”
잠시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벌린 소연은 금새 정신을 차렸다.
“그게 아니라 사정화 아가씨께서 오셨다니까요?”
기겁한 동천은 소연의 목소리가 신경질적이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 채 욕조에서 벌떡 일어섰다.
“켁? 정화 년이? 아, 아니, 아가씨께서 오셨다고?”
정화 년이란 욕에 동천보다 더욱 기겁을 한 소연은 누가 듣기라도 했을까 봐 벌렁거리는 가슴을 움켜쥐며 겨우 대꾸를 해주었다.
“예, 예에. 주인님 방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으으, 정말이야?”
어느 정도 회복한 소연은 숨을 고르며 마주보고 대화하는 양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아가씨께서는 주인님께서 목욕을 끝마치실 때까지 기다리신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가능한 일찍 나오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동천은 벌써 옷을 다 갖춰 입은 상태였다. 대충 닦아서 젖은 몸으로 나온 그는 후다닥 달려가서 사정화가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시켜주었다.
“헤헤, 아가씨께서 어쩐 일로 이런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사정화는 무표정하게 물었다.
“왜, 오면 안되나 보지?”
‘윽? 이게 잘하면 사람 치겠다는 얼굴이네?’
말장난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사정화의 경우, 진짜로 얻어맞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천은 속과 겉이 다른 얼굴로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이구, 그럴 리가요! 제가 찾아뵙지는 못할망정 되려 먼 발걸음을 하게 만들어서 송구스러워서 그렇죠, 예.”
사정화는 한눈에 보아도 아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오늘따라 귀찮은 일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훈계를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 주었다.
“정원 할멈도 같이 오긴 했는데 네가 불편해 할까봐 마차에 대기시켜 놓았어.”
동천은 잠깐 놀랐다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야… 얘가 간만에 마음에 드는 짓을 할 때도 있네?’
그는 사정화의 입에서 ‘데려올까?’ 라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재빨리 다른 질문에 들어갔다.
“지금쯤 연회가 한창일텐데 생각보다 재미가 없으셨습니까?”
사정화는 뼈있는 대답을 했다.
“너야말로 연회까지 제쳐두고 수련을 한다더니 그렇지만도 않은가 보구나. 혹시, 한가하게 목욕이나 즐기면서 수련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터득했나보지?”
‘윽! 지가 꿀리니까 나한테 화살을 겨누는 짓 좀 봐라. 저게 상전이나 되는 계집애의 입에서 나올 말이냐? 엉?’
내심 얼굴을 구긴 동천은 재빠르게 둘러쳤다.
“아아, 그거요? 하하, 뭔가 오해가 있으셨나본데 일단 정신을 집중하려면 몸을 깨끗이 해야한다고 판단해서 목욕을 했던 겁니다. 설마 하니 교주님께서 주관하시는 연회까지 빠진 제가 허튼 짓이나 하고있었겠습니까?”
사정화는 잘도 빠져나가자 코웃음을 친 뒤에 쐐기를 박았다.
“그럼, 목욕도 끝냈으니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하겠군.”
“예? 에에……. 하하, 그렇죠! 네.”
어쩔 수 없어진 동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정화가 가볍게 일어섰다.
“좋아. 그렇다면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지켜봐 주기로 하지.”
갑자기 어정쩡해진 동천은 다른 기발한 변명거리가 없을까 머리를 굴리다가 싸늘해진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사정화와 눈이 마주쳤다.
‘헉?’
덕분에 기발한 변명거리고 뭐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도배된 그는 두말 않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풀이 죽은 얼굴로 방을 나섰다. 동천은 이럴 때 도연이라도 있었더라면 자신을 옹호해주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 도연은 아직도 실력이 형편없다는 핑계로 좀더 수양을 쌓고 돌아오라며 그가 장로들의 집에 내쫓은 상태였다.
“저기…….”
동천의 머뭇거리는 물음에 사정화가 대답했다.
“말해봐.”
꿀꺽 침을 삼킨 동천은 신중하게 말했다.
“예, 다 좋은데 말입니다. 아시다시피 상대의 무공수련장면은 타인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것인지라 생각해보니까 보여드릴 만한 게 거의 없을 듯 보여서요. 헤헤.”
사정화는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를 보냈다.
“마치 내가 너의 무공을 훔치기라도 한다는 소리로 들리는구나.”
마치 기분 좋을 때 내뱉는 말투로 들렸다. 그러나 동천은 차분할 때의 그녀가 더욱 무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상태인 것이다.
‘젠장! 이 몸보고 도대체 어쩌란 거야? 그렇다고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에잇, 싸가지 방구리 같은 계집애! 후회하게 만들어줄 테다!’
결국 궁지에 몰린 동천이 선택한 것은 현실도피였다.
스으으으.
갑자기 동천의 몸에서는 무형의 기운이 일렁였고 그것을 감지한 사정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찰나간의 일인지라 특별히 수상쩍은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녀는 곧 그것이 자신의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새 진지해진 얼굴로 표정으로 바꾼 동천이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분위기로 자신을 마주보았기 때문이다.
“너어…….”
사정화는 얼굴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