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80화
#69
“야, 괜찮아? 얼레? 얘가 정신이 나갔네? 안되겠다. 손 줘봐.”
그녀의 손을 잡고 그곳을 통해 귀의흡수신공을 흘려 보내준 동천은 소연의 혈색이 점차 회복되어가자 다시 한번 볼을 쳐댔다.
“소연아, 정신이 좀 들어?”
확실히 소연은 잠시 멍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동천 덕분에 곧 정신을 차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잠시 추태를 부려서 죄송해요.”
장난 좀 치려고 했던 말에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던 동천은 어이가 없는 한편, 하는 짓이 귀엽고 재미있기도 했다.
“참나, 이 몸이 아무렴 다른 계집들에게 눈길이라도 줄 것 같냐? 걔들이 눈웃음을 쳤다는 것뿐이지, 넘어 갔다고 한 것도 아니구만 뭘 그리 놀라? 짜식! 이리 와봐, 큰 인심써서 이 몸이 뽀뽀해줄게.”
잡고 있던 손을 끌어당긴 그는 소연을 살짝 안아주며 쪽, 소리나게 왼쪽 볼에 뽀뽀해주었다.
“아앗? 창피해요.”
놀란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동천의 가슴을 밀어젖히자 그는 능청맞게 반대쪽 볼에도 가볍게 뽀뽀를 해준 뒤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히히! 양쪽에다 해준 김에 가운데에도 마저 해줄까?”
동천은 당황한 그녀가 도망칠 줄 예측하고 한 말이었는데, 꿀꺽 침을 삼킨 소연은 당황함 대신 수줍은 표정을 짓고 살포시 눈을 감았다.
‘어어? 진짜로 해달라는 건가?’
되려 동천이 당황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게 아닌데…….’
사실 입맞춤에 대해서 더럽게 그런 짓을 어떻게 하냐고 어렸을 때 떠벌린 적이 있었지만 그도 남자이고 호기심이 왕성한 시기로 점점 나이를 먹어가자 그 가치관이 상당히 바뀌어있는 상태였다. 살며시 입술을 내미는 소연의 모습은 동천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고, 아울러 의식하지 않았던 그녀의 향수냄새가 아찔하게만 느껴졌다.
‘으윽! 오늘따라 얘 입술이 왜 이렇게 도톰하고 탐스러워 보인다냐?’
마른침을 삼킨 동천은 해달라고 입술까지 내미는데 여기에서 그만두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조금씩 앞쪽으로 얼굴을 움직였다. 어느 순간인지는 몰라도 서로의 호흡이 입술을 간질거리는 정도까지 다가간 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흥분되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둘의 입술이 포개지려는 순간 꽃병이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윽?”
“아?”
깜짝 놀라 서로들 떨어진 그들은 분위기 탓인지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사내라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동천이었다.
“험, 뭐해. 치워야지.”
정신을 덜 차린 소연은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에. 치, 치워야죠.”
서둘러 치우는 그녀의 얼굴에는
‘그러게 꽃병의 배치는 왜 이따위로 해 가지고…….’
라는 질책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느낀 동천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도 조금은 아쉬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시 시도해 보자고 하기엔 분위기가 영 아니어서 언급하기가 좀 그랬다.
“에이! 얼른 가기나 해야지!”
괜히 화가 난 그는 투덜거리며 마차에 올라탄 뒤 적룡등천각으로 향했다.
“약왕전 소전주이신, 웁! 우웁!”
방명록을 담당한 문사는 동천이 왔음을 알리려고 소리를 지르는데 난데없이 입막음을 당하게 되었다.
“너 임마. 뭐 하는 짓이야!”
문사는 손을 치워준 동천이 소리 죽여 윽박지르자 가쁜 숨을 내쉰 후 말했다.
“뭐, 뭐라니요. 소신은 그저 책무를 다 하고 있는 중입니다.”
동천은 어처구니 없어했다.
“이게 누굴 속옷바지로 아나? 니 일은 방명록이나 적는 거잖아. 근데 왜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게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안 그래도 혈분 때문에 조심하는 중인데.”
방명록 담당 생전에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인 문사는 약소전주가 성격 더럽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일 줄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소전주님, 무언가 오해가 있으신 듯 한데 원래 처음 오시는 분은 안쪽의 모든 분들께 오셨음을 알리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래야 이 수많은 사람들 중에 친분관계를 가지신 분들이 서로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의를 알고있을 리 만무했던 동천은 약간 생각하는 듯하다가 표정을 바꾸어 너털웃음을 흘렸다.
“하하, 누가 그걸 모른단 말인가! 하지만 이 몸은 그저 조용히 들어가고 싶었을 따름이라네. 자네는 이해했는가?”
내심 격식(格式)에 대하여 맹탕인 동천을 한심하게 생각한 문사는 아는 척 나서서 가르쳐주었다.
“그러실 생각이셨다면 애초에 이름을 대주시며 거부를 요청하시면 됩니다. 다음부터는 이점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알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그에게 살짝 귓말을 해주었다.
“너 이 개새끼……. 이따 연회 끝나고 남아.”
“헉?”
그는 사지를 벌벌 떠는 문사를 남겨놓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적룡등천각은 교주의 전용 접대장소인 만큼, 확실히 규모 면에서는 천명 이상이 들어차도 부족하지가 않을 정도였다. 진열된 음식을 두어 개 집어먹으며 주위를 둘러본 동천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 돈 좀 썼겠네?”
음식에도 신경을 썼는지 의외로 동천의 입맛에 잘 맞았다. 그래서 계속 집어먹는데 아까 전부터 그 자리에 앉아있었던 어느 장한이 보다못해 버럭 화를 냈다.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양 어떤 비루먹을 어린놈이 날름날름 집어먹자 성질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싸가지 없는 자식을 봤나! 처먹고 싶으면 자리를 배정 받고 니 자리에 가서나 처먹어야지! 뭐 이딴 어린놈이 다 있어?”
목청을 높인 장한은 바로 구석에 끌려가 뒤지게 얻어맞았다.
“사, 살려주십시오! 소인이, 소, 소인이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동천은 손을 탁탁 털며 언짢아했다.
“나 이것 참. 오늘만큼은 평화롭게 지내려고 했는데 별 거지 같은 것들이 성질 건드리네?”
동천의 실력으로 예사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장한은 망가진 얼굴로 무릎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예예, 그저 소인이 별 거지 같은 놈입니다요.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절대로 없게 하겠사오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동천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에 그는 이곳 지리에 관하여 백지 상태나 다름없었기에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뭐 그만하면 지은 죄를 깨달은 것 같아서 봐줄 테니까, 만독문의 소문주께서 어디에 계신지 그것만 말해봐. 그럼 돌아가게 해줄게.”
운 좋게도 아까 옆자리의 친구와 그것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장한은 살았다는 얼굴로 아는 것을 죄다 말해주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요. 그러니까 그분께서는 지금 이곳에 안 계십니다. 어제 저녁까지는 계셨는데, 높으신 분들이 다 돌아가시고 별 볼일 없는 저희들 같은 것들만 찾아오니 이곳에 계속 머물러 계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시고는 돌아가셨다고 합니다요.”
동천은 자신이 원하던 대답이 아니자 대번에 얼굴을 굳혔다.
“뭐? 한번 뵈러 왔더니 여기에 안 계시다고?”
무언가 안 좋은 예감을 감지한 장한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열심히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예에, 소운정(疎韻停)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저 같은 미천한 것들이야 그분을 뵙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어디 공자님까지 그렇겠습니까? 분명 공자님처럼 젊고 유능하신 분이라면 충분히 만나 뵈실 수 있을겁니다요, 예예.”
동천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본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질을 지니고 계신 분이 바로 이 몸이니까. 근데 말야. 너 나 알아?”
“아, 아뇨.”
동천은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해주는 솔직한 장한의 모습에 별로 감탄하지 않았다.
“음,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니가 언제 이 몸을 봤다고 유능하신 공자님 어쩌고 씨부렁대니?”
지독한 놈에게 걸려도 단단히 걸렸다고 생각한 장한은 저런 류의 인간들이 사람 목숨 알기를 파리 목숨으로 알고있는 관계로 자신의 목숨이 여기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죽을 때 죽더라도 큰소리나 한번 질러보고 죽으리라 다짐했다.
“이 개……!”
“뭐 그렇다고 치자. 뛰어난 인재는 척 보면 다 뛰어나다는 것이 드러나 보이는 거니까. 근데……, 방금 전에 뭐라고 소리치려다 말은 것 같은데?”
조금만 더 빨랐더라도 진짜 죽었을 것이라 생각한 장한은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재빨리 얼버무렸다.
“아, 아닙니다요! 찾아가시려면 이렇게 개인 날씨가 딱 이라고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요. 헤헤!”
“호오? 네가 운치를 좀 아는구나. 안 그래도 오늘 하늘이 너무도 맑아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말이야. 하하하!”
“하, 하하!”
어쩔 수 없이 같이 웃어준 장한은 아주 죽을 맛이었다. 그는 재빨리 말했다.
“역시, 무언가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저곳을 통해서 나가시면 금방 출입구가 나올 것이니 꼭 그분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요.”
동천은 오랜만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 그래그래. 자네도 수고하게나.”
다행이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로 이어진 길이 있었으므로 나가는 길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방삼을 다그쳐 소운정으로 향하려고 했던 동천은 뜻밖의 난관에 부딪히고야 말았다.
“뭐라? 가는 길을 몰라?”
방삼은 진땀을 흘려가며 쩔쩔맸다.
“예, 예에. 먼저 번의 마부는 본교의 지리를 거의 숙지하고 있었사온데, 소인은 마부가 딸려 급조된 마부인지라 소전주님께서 약왕전과 사 아가씨의 집 외에는 들리시지 않는다고 하여 그곳의 지리만을 익힌 상태입니다.”
자기 딴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동천은 노발대발했다.
“이런 씨! 그럼 여기에 온 건 뭔데? 약왕전과 아가씨의 거처로 가는 지리만 안다며! 앙?”
방삼으로서는 왜 쓸데없는 곳에는 간다고 지랄을 해서 이렇듯 자신을 곤란하게 하는 것인지 그것이 억울할 따름이었다.
“오, 오늘 같은 경우는 며칠 전부터 연회 이야기를 들었기에 미리 지리를 숙달하여 온 상태였을 뿐 감히 소전주님을 속인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부디, 넓은 이해심으로 굽어살펴 주십시오!”
따지고 보면 동천이 죄 없는 전 마부를 구타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동천이 그것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할 리가 없었다.
‘나 이것 참! 이 새끼, 여기에서 패버릴 수도 없고.’
당장에 급한 것은 그였다. 방삼까지 병신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젠장! 어디 길 잘 아는 놈을 앞세우고 갈 수는 없나?”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던 동천은 문 앞에서 방명록을 작성하는 문사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정 반대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호오…….”
동천은 미소지었다.
“하하, 자네가 길을 안다니 참으로 다행일세.”
마차 안에서 동천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하자 밖에서 마부와 동석을 하고 있던 문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알고있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나서야지요.”
동천은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좋은 마음가짐이야. 이렇게 훌륭한 자네를 아까는 왜 패 죽이려고 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단 말야?”
순간 문사의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 내려갔다. 긴장하여 얼굴이 달아오른 그는 자신이 소운정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
갑자기 안쪽에서 소전주가 놀라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천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문사는 저게 또 사람 불안하게 만든다고 내심 짜증을 냈다.
“소전주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동천이 말했다.
“아냐, 아무 것도.”
‘이런 씨!’
밖에서 놀림을 받았다고 생각한 문사가 울화통이 터져 이를 갈고 있을 때 마차 안의 동천은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찾아갈 명분이 없네?’
그렇다. 앞서 소연과 대화를 나누었을 때 한번 거론했었지만 소교주의 약혼녀를 명분 없이 만나러 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달갑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신을 의심하는 듯한 소교주인데, 개인적으로 강소홍과 만났다는 소문이라도 접하게 되는 날이면 그 의심의 정도가 확고히 굳혀지게 되는 결과가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 짜증나. 야! 마차 세워!”
결국 답이 없자 동천이 마차를 세웠다. 영문도 모른 채 마차를 세운 방삼은 마차 안의 소전주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요?”
동천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건 너 따위가 알 필요 없고, 이 몸의 거처로 마차나 몰아!”
공연히 나설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한 방삼은 알겠다고 끄덕인 뒤 마차를 돌려 일단 적룡등천각으로 향했다. 그래야 고정된 지리만 익히고 있는 그가 적룡등천각을 기점으로 약왕전에 되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쳇, 괜히 금쪽 같은 시간만 낭비했잖아?”
짜증과 분노가 뒤섞인 동천은 창가에 팔걸이를 하고 바깥바람이나 쐬며 화를 삭혔다. 그러나 시원한 바람도 오늘따라 제 역할을 해내기에는 불충분한 듯 보였다.
‘하필이면 혈변 노친네가 순진한 사부님을 꼬드겨 가지고……. 에이, 빌어 먹을! 결국 보지도 못하게 됐잖아? 내 이놈의 영감탱이를 그냥!’
뿌득!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주먹을 말아 쥔 동천은 바로 비명을 내질렀다.
“케헥? 어이구, 동천 죽네에에!”
다름이 아니라 다친 손에 필요 이상의 힘을 준 것이었다. 붕대에 감겨진 손가락 두 개가 연분홍 빛으로 물들어 가는 것으로 보아, 깨진 손톱이 벌어지거나 어긋난 상태인 듯 싶었다.
“흐윽, 큭! 야, 마차 멈춰!”
“워! 워어!”
안 그래도 멈추는 중이었던 방삼은 별 무리 없이 마차를 멈춰 세웠다. 동천은 마차가 멈춘 것을 확인하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자신이 그만큼 아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 따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돌아온 그는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으으, 젠장! 하고많은 손 중에 오른손도 있는데 하필이면 다친 왼손을 말아 쥐어 가지고!”
문사는 그런 동천의 눈치를 보며 생각했다.
‘하고많은 손이라 봤자 오른손 왼손 둘인데…….’
문사의 생각을 읽었는지 동천이 대뜸 눈을 흘겼다.
“뭐야, 불만 있어? 기분도 더러운데 여기에서 맞짱 뜰까?”
기겁을 한 문사는 허겁지겁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요! 소인이 어찌 감히!”
동천은 화가 덜 풀린 얼굴로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까불고 있어.”
때마침 아담한 호숫가 근처에서 내렸던 동천은 가야할 목적지가 사라진 만큼, 아픈 손이라도 식힐 겸 저 멀리 보이는 정자(亭子)를 향해 걸어갔다. 탁 트인 곳이었고 자신의 마차가 정자 쪽에서도 보일 것이라 예측했기에 부담 없이 향하는 것이었다.
“자기, 나 사랑해?”
“그러엄! 물론이고 말고!”
한산한 정자 안에는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둘이 난간에 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창 사랑을 나누는 모양이었는데 동천이 다가오자 둘만이 함께 하고 싶었던지 그들은 슬쩍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것을 본 동천은 아니꼬워했고 말이다.
“참나, 생긴 것도 별로인 것들이 그래도 둘만 있고 싶다고 떠나네? 뭐 이 몸이야 조용하게 있어서 좋지만 서도.”
그들이 앉아 있었던 난간에 다리 한쪽을 걸친 동천은 조심스럽게 손가락의 붕대를 풀었다. 피로 얼룩진 검지와 중지는 과히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니었다.
“에그, 아까운 내 피…….”
다행이 피만 새어나왔을 뿐 손톱에는 더 이상의 악화가 없는 상태였다. 난간에서 내려와 호수의 물에 손을 씻어낸 그는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보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시선을 내렸다. 정면을 바라본 그는 방금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