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85화
“그녀석이 있는지 확인은 했느냐.”
냉현의 무미건조한 물음에 산관은 바로 대답을 해주었다.
“예, 특별한 일 없이 그저 자신의 거처인 암한문에서 지내고 있다 합니다. 허나, 서두르시지 않는다면 오후가 되어 사부인 약전주에게 무공수련을 받게 되어있으니 헛걸음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제야 비릿한 미소를 풍긴 냉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야 없지. 무릇, 선공(先攻)이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때에 써먹어야만 제몫을 다하는 법이니까.”
산관은 말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준비는 되어 있으니, 소교주님께서는 마차에만 오르시면 됩니다.”
냉현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웃음의 강도를 높였다.
“큭큭, 네가 요즘처럼만 일 처리를 잘 한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산관은 급히 허리를 숙였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그래. 가자.”
“존명!”
마차에 올라 빠른 속도로 질주하여 약왕전에 도착한 그들은 거칠 것 없이 중간 중간의 보초들을 제치고 암한문에 당도했다. 당연히 암한문을 지키고 있던 위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보고를 올렸으며 동천은 하품을 하고 일어서려다 쩍 벌어진 입에 턱이 빠질 뻔했다.
“뭐? 누가 와?”
위사에게 전해들은 소연은 다시 말해주었다.
“소, 소교주님이 오셨대요. 어떻게 하죠?”
말하는 폼을 보니 소연도 당황한 듯 싶었다. 동천은 어쩌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일단 대접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니는 손님 대접 한두 번 해보냐? 어쩌긴 뭘 어째! 접견실로 유인해야지!”
놀란 소연은 물었다.
“예? 유, 유인이라니요? 어떻게 하시려고…….”
확실히 동천의 잘못된 발언이었지만 그가 어디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할 인간이었던가?
“이런 씨! 그냥 대충 알아들어! 너는 다 좋은데 융통성이 없어서 탈이란 거 모르지? 뭐? 진짜 몰라? 모르면 말고!”
흥분한 동천이 앞뒤 안 맞는 소리나 지껄이자 소연은 얼른 잘못했다며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그녀를 쳐다보던 동천은 뒤늦게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으으, 그 새끼가 왜 여기에 온 거지? 헉? 서, 설마 이 몸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사람들이 다 자기 같은 줄로 아나보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래도 이 몸에 대한 의심이 풀리지 않아 찾아온 거겠지? 젠장! 누가 지 애비 닮아서 더럽고 편협스러운 놈 아니랄까봐!”
씩씩거리며 분기탱천하던 동천은 이곳에서 접견실까지의 거리가 약간 걸린다는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핑계삼아 조금 더 준비를 한 뒤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딱히 준비할만한 것은 없었다. 그것 때문인지 아무 대비도 못하고 가야만 하는 자신이 화가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구 하나 걸리면 화가 풀릴 때까지 쥐어 패려고 했던 것이다.
“아 짜증! 아 짜증! 팰 놈도 안 보이네?”
동천은 이런 자신이 참으로 불행한 사나이라고 생각하며 접견실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두어 개의 문을 지나치는 동안 늙은 하녀 한 명과 마주친 동천은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한번 째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지극히 겁을 먹은 그 늙은 하녀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는 동안 노려보기만 하고 그냥 지나친 소문주의 행동을 염려하다가 혈압이 올라가 쓰러져버렸다. 결국 노려본 거 하나로도 불행을 안겨준 동천이었던 것이다.
“어이구, 소전주님께서 이런 미천한 곳엘 직접 오시다니요! 어디 가시게요? 아참, 소인이 멍청하여 계속 말씀을 드려야지…… 하면서 계속 까먹었었는데 그때 주신 작설차(雀舌茶), 소인을 비롯하여 식구들이 아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요. 헤헤!”
때마침 맞아 줄 마부 방삼이 보여서 주먹을 가다듬던 동천은 번개같이 주먹을 휘두르려다 방삼이 눈치채지 못하게 주춤했다.
‘오호? 그러고 보니, 병신 사형이 건네준 작설차가 있었네?’
명색이 소교주인데 아무 것이나 대접할 수 없었던 동천은 변덕스러운 인간답게 자신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공영수가 은근히 자신 있게 내놓은 차였던 만큼 그것을 대접하면 적어도 차의 품질에 관해서는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재빨리 미소를 띄고 방삼에게 물었다.
“이보게, 방삼. 지금 그 작설차가 급히 필요하게 되었는데 혹시 조금이라도 남았는가?”
이 새끼, 저 새끼 하다가 다시 대우를 해주는 동천의 행동에 흠칫한 방삼은 치사하게 준걸 도로 빼앗으려고 하자 맛있다며 해맑게 웃던 딸아이의 얼굴이 잠시 떠올랐다.
‘악마 같은 자식! 세상에서 제일 더럽고 치사한 게 준걸 도로 빼앗는 것이거늘!’
그런 방삼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눈치 챈 동천은 여기에서 한 대 때렸다가 실려나가면 차를 가져오는데 시간이 조금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저 가볍게 근처의 나무를 걷어찼다.
퍽! 우지직!
“헉?”
동천은 방삼의 놀람을 뒤로하고 부러져 뒤로 넘어간 나무를 가리키며 은근히 말했다.
“그 작설차, 열 셀 때까지 안 가져오면 저게 니 허리가 될 거야.”
그 효력은 대단했다. 군말 없이 튀어간 방삼은 벌벌 떨며 차 통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건네 받은 동천은 방삼이 벌벌 떨었던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를 알아낼 수 있었다.
“어라? 거의 다 처먹었네?”
온 몸을 떨어대던 방삼은 올게 왔다는 것을 깨닫고 바닥에 엎드려 빌었다.
“아이고, 소전주님! 미천한 소인의 가족들이 그동안 풀뿌리만 달여 먹다가 고급 차를 대하고는 미쳐버렸는지 하루에 한번씩 꼬박 마셨더니 그것밖에 안 남았습니다요! 흑흑!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흔들던 차 통을 열어보자 거짓말은 아닌 듯 잘만 나누면 모자라지만 서너 명은 마실 수 있는 분량이었다. 동천은 약간 기분이 나빴지만 어차피 일회용으로 써먹을 것이었으므로 방삼에게는 딱히 위해를 가하지 않고 접견실로 바삐 달려갔다. 방삼을 기다리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던 것이다.
“사, 살았다!”
엎드린 그대로 힘이 쪽 빠진 방삼으로서는 참으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야, 가서 이걸로 소교주에게 대접해.”
밖에 나와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소연은 냉큼 건네주는 차 통을 받아든 뒤 내용물을 살펴보고 물었다.
“소교주님을 대접할 것을 끓이면 거의 안 남을 듯싶은데 주인님 것은 어떻게 해요?”
동천은 바삐 손사래를 쳤다.
“아아, 이 몸은 그딴 병신 꺼 안 마시니까 걍 맛이 연한 차나 내와. 그럴 리 없지만 뭐라고 물으면 같은 거라고 하고. 알았어?”
소연은 ‘그딴 병신 꺼’라는 부분이 궁금했지만 당장에 급한 것은 아니었기에 얼른 고개를 끄덕이고 사라졌다. 그녀가 접견실의 뒤채로 뛰어가는 동안 잠시 숨을 고른 동천은 곧 안으로 들어갔다.
“소전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내실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평초(萍草)는 동천을 발견하곤 기다리고 있던 소교주 일행에게 조용히 일러주었다. 동천은 며칠 전 연회 때 주워(?) 온 방명록 자식이 왜 여기에 있나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뒤늦게 자신이 몇 개월 간 이곳에 배치시킨 뒤에 집사로 승격시켜 줄 것인가를 두고볼 것이라고 말해주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바로 문 하나를 두고 소교주가 있는 만큼 별다른 말은 않고 그저 평초의 어깨를 두드려준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하하, 소교주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가볍게 읍을 하며 안으로 들어간 동천이 반기는 듯한 얼굴로 들어오자 냉현 또한 웃는 낮으로 그를 대했다.
“누추하다니. 약왕전 소전주의 거처가 누추하다면 그 누가 믿겠는가.”
“과찬이십니다.”
냉현은 겸손을 떤 동천이 계속 서서 있자 그제야 눈치를 채고 손을 내밀어 의자를 가리켰다.
“종일 서서 있을 참인가? 앉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이제야 앉으라고 한다며 속으로 그를 욕했다. 의자에 앉아 그와 마주한 동천은 살짝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딱히 대접해드릴 것은 없고 조금 후에 차를 대접해드리겠습니다.”
냉현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차라……. 거 좋지.”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아닐세. 헌데, 오늘의 자네는 저번과 느낌이 틀리군. 나만의 착각인가?”
역심무극결을 운용하지 않은 채 그냥 왔으니 아무리 동천이 점잖게 행동한들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동천은 날카롭게 묻는 냉현의 물음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꾸했다.
“그때 너무 딱딱한 것을 지적하셔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어색하신지요.”
냉현은 가지가지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웃음을 흘리려다 참고 말했다.
“음, 그렇지 않네. 자연스럽고 좋아 보여.”
“그렇게 봐주셔서 안도가 됩니다. 소교주님께서도 그때보다 안색이 환해지신 것이 만독문의 소문주님과 아주 잘 되시고 있는 듯 합니다.”
아부 아닌 아부에 냉현이 호탕하게 웃어 제꼈다.
“하하하! 빈말이라도 고맙기 그지없네. 사실, 한번쯤은 누군가가 그런 말이라도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말일세.”
냉현은 몰랐지만 사실 동천은 오입질이나 하고 다닌다고 욕을 한 것이었다. 어쨌든 동천은 마주 웃어준 뒤 말했다.
“잘 되시고 계시는 듯하여 소신 또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십 장로님의 손녀 분인 상관 소저께서 소교주님을 사모한다고 하던데……. 앞으로 그분 소저와의 관계는 어떻게 하실 예정이십니까?”
냉현은 자신의 애정사에 동천이 끼여들려 하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잠시 뿐이었고 바로 회복하여 입을 열었다.
“그녀에 관해서는 특별한 일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네. 차후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전혀 관심이 없음이야.”
표정은 풀었지만 심기는 풀지 못한 듯 냉현의 목소리가 자못 차가워졌다. 그 바람에 주변의 공기는 차가워졌고 호위하듯 냉현의 등뒤에 서있던 산관은 약간 동요하는 신색을 내비쳤다. 성질 난다고 소전주에게 해코지를 하겠느냐 만은 만일 소교주가 이런 상태로 돌아간다면 그 분풀이를 자신이 다 받아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천은 냉현이 화를 내던 말던 별 관심이 없었다.
‘씨팔 놈아, 그러게 누가 여자관계 복잡하게 하고 나돌아 댕기래? 자고로 여자관계 복잡해서 패가망신 당하지 않은 인간 없어, 이 호로 자식아! 알아? 그리고, 니가 눈깔 똑바로 뜨고 쳐다보면 어쩔 건데? 그러면 누가 너한테 쫄아 주디? 이걸 확! 그 눈깔을 파내서 까마귀에게 던져 줄까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강소홍이 냉현의 여자가 된다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소교주고 나발이고 탁자를 뒤엎은 뒤 싸대기를 후려갈기고 싶었지만 현실은 엄연히 존재했다. 그는 내심 욕을 퍼부은 것이 후련하기도 했기에 바로 마음을 가다듬고, 상당히 죄송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앞으로 기울였다.
“심기를 불편하게 한 질문이었다면 용서해주십시오. 하지만 이 문제는 소신이 아니더라도 한번은 집고 넘어가야 십 장로님 쪽에서도 어느 정도 마음을 결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냉현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강소홍을 자신의 여자로 받아들이기로 내심 마음먹은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십 장로의 손녀딸에 관한 문제를 어정쩡하게 넘기게 된다면 십 장로 상관봉과 상당히 심기 불편한 관계로 악화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듣고 보니 그렇군. 잘 지적해주었네. 내 근간에 시간을 내어 그 일을 매듭짓기로 하지.”
동천은 신경질이 나서 생각 없이 말했던 것인데 소교주가 잘 말해주었다고 하자, 역시 자신은 뭘 해도 상대방에게 깨달음을 준다며 속으로 좋아서 실실거렸다. 덕분에 그는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훌륭하신 판단입니다.”
그때 소연이 문을 열고 쟁반 위에 차를 들고 왔다. 그녀는 냉현에게 먼저 차를 내려놓으며 조심스레 말했다.
“주인님께서 귀하게 구하신 작설차입니다. 입맛에 맞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냉현은 차에게 관심을 두는 대신 소연의 위아래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그의 시선에 소름이 돋은 소연은 미약하게 몸을 떨다가 동천의 차까지 내려놓은 뒤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냉현은 의무적으로 한 모금을 마신 뒤 차갑게 미소했다.
“내 아까도 얼핏 보았는데 이렇게 바로 앞에서 다시 보니 상당한 미녀로군. 느낌만을 놓고 본다면 만독문의 강 소저와 거의 흡사해……. 자네와는 어떻게 되는 관계인가?”
은근한 목소리와 표정으로 보아 누가 봐도 냉현이 소연을 넘보고 있는 상황이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것을 감지했음인지 동천은 순간 서늘한 눈빛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은 동천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동천은 본능적인 살심에 역심무극결의 정수(精髓)를 운용했던 것이다. 아마도 냉현이 그것을 느꼈다면 찰나간,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아찔함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으나 동천에게는 다행히도 소교주를 비롯한 산관은 그런 눈빛을 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 이 개호로 후레자식이 이제는 남의 여자까지 넘보네?’
동천은 소교주가 자신의 소유목록에서 일 순위라고도 할 수 있는 소연에게 관심을 가지자 상당히 기분 나빴다. 물론 소연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방에서 굴러다니는 하찮은 것들까지 소교주에게는 주기 싫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연에게 관심을 보였으니 어찌 동천이 분노하지 않으리오. 그는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무릎을 꼬집어가며 겨우 감정을 숨겼다.
“하하, 이런 말씀을 드리기엔 좀 그렇지만 방금 그 아이는 소연이라고 하며 소신의 첩입니다.”
냉현은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다.
“첩?”
“그렇습니다.”
냉현은 동천의 확답이 끝나는 순간 김이 팍 새는 듯한 얼굴을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끝내기에는 미진한 감이 있던지 계속 물고 늘어졌다.
“내 자네에게 본처가 없음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 아이가 첩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동천은 내심 십새끼, 개새끼를 연발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아? 의사전달이 부정확했던 점 용서하십시오. 소연은 근 8년 간을 제 시녀로서 데리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운 눈으로 보니, 정이 들었음을 깨닫게 되고 사랑스럽게까지 느껴지지 뭡니까? 그래서 누가 채가기 전에 소신의 여자로 만들었습니다. 하하, 약왕전에서는 소문이 돌대로 돌아서 부끄럽기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이 말해놓고도 참으로 닭살이자 동천은 온몸이 간지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으으! 내 살아 생전에 이런 짜증나는 대사를 읊어대게 될 줄이야. 이 시팔 호로 새끼야! 만족하냐? 앙? 만족해?’
속으로 냉현을 욕하며 자연스럽게 팔목을 쓰다듬은 그는 두드러기가 올라온 것이 확연히 느껴짐에 마치 자신의 피부가 아닌 것만 같아 속이 다 메스꺼웠다.
‘으웩, 두꺼비가 친구하자고 해도 거절을 못하겠구나! 어우, 짜증나!’
불에 데인 듯 손을 뗀 그는 이런 상황에서 입을 열어봤자 육두문자만 튀어나올 것만 같아 성질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저 먼 산을 바라보듯 고개를 창가로 돌렸다. 그리고 그것을 창피함과 멋쩍은 표정으로 오해한 냉현은 약간의 침묵 속에서 말을 꺼내들었다.
“흐음! 그 나이에 벌써 여자를 알다니. 앞으로 처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무공수련에 상당한 저해를 가져올 것이니 조심하게. 색(色)을 가까이 해서 좋을 것 하나 없네.”
‘너나 잘해…….’
동천은 냉현이 상관은혜와 강소홍의 일을 놓고 볼 때 자신에게 충고할 만한 처지가 아님을 잘 알기에 그저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닭살스럽게 말한 효과를 보는 이 마당에 무슨 말을 또 못하겠는가.
“소교주님의 은혜 깊은 충고. 깊이 새겨두겠습니다.”
냉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는 말을 건넸다.
“깊이 새겨두겠다니 나로서도 흡족할 뿐이네. 음, 이제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내가 찾아온 이유가 궁금할 것이네.”
안 그래도 뭐 하러 자신의 거처까지 기어들어 왔는지 궁금했던 동천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