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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86화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냉현은 가볍게 미소했다.

“하하, 그래. 맞는 말이지. 다름이 아니라 며칠 전 연회에 사 소저를 만났는데 우연찮게 자네의 이야기가 거론되었다네. 그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사 소저께서는 자네의 무공수위를 낮게 보시더군.”

동천은 진지한 얼굴로 냉현의 말을 받아들였다. 물론 마음까지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쳇, 정화 년이야 그렇게 살아온 인생인데 할 말 없지 뭐. 자칭 천재소녀인데 평범한 천재인 이 몸의 신위가 그년의 눈에 차기나 하겠어?’

그녀의 천재성에 관해서는 동천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해주는 바였고, 하도 그녀에게 씹혀 다닌 몸이라서 그런지 오늘따라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원래는 이런 동천이 아니었는데 아마도 눈앞의 냉현보다는 사정화가 더 낫다는 심리상태가 그렇게 작용한 듯 싶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때 그 소리를 듣고 이 몸의 실력을 평가하려 찾아왔던 거구만? 쯧쯧, 하여튼 계집애가 쪼잔해가지고.’

재빨리 생각을 마친 동천은 ‘그래서 뭘 어쩌라고?’ 라는 얼굴로 냉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을 간파한 냉현은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품안에서 작은 옥갑을 꺼내들었다. 딸깍, 소리와 함께 열린 내용물을 들여다 본 동천은 가늘어진 눈을 만들었다가 돌연 눈을 부릅떴다.

“엇? 이, 이것은 화리혈현단이 아닙니까!”

냉현은 동천의 반응에 만족한 듯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무얼 그리도 당황하나. 그때 자네가 준 화리혈현단이 맞거늘.”

그렇기는 했다. 문제는 현재 상황이 느닷없이 금괴를 가져와서는 금괴가 맞는데 왜 놀라느냐고 묻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또 슬슬 머리가 아파지게 하네……. 미친 것도 아닌데 왜 이걸 안 처먹고 이리로 가져온 거지?’

화리혈현단의 효능을 놓고 보았을 때 아직까지 복용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었다. 또한 복용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왜 그것을 자신에게 보여주느냐, 하는 것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그런 이유로 화리혈현단과 냉현을 번갈아 보며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보던 동천은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해도 확신이 없자 하는 수 없이 물어보았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소신이 일전에 드린 것인데 아직까지 복용을 하지 않고 계셨다는 것이 약간 의아해서 그렇습니다.”

냉현은 자신이 생각했던 범주 안의 물음이었기에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음,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군. 내 자네의 질문에 답변을 해주자면 이 화리혈현단이 바로 내가 익히고 있는 무공의 극성이기 때문이라네. 자네도 알다시피 물과 불은 서로 극과 극이지 않은가.”

그것은 방금 동천이 머리를 굴렸을 때 미리 예측하고 있던 부분 중에 하나였다. 정말 그것만이 이유라면 다행이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냉현이 아무 의미도 없이 그것을 보여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혹시, 뭐 이따위 것을 줬냐며 꼬투리를 잡으러 온 것은 아니겠지? 그게 아니면 효과가 비슷한 다른 걸로 바꿔 달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돈으로 환불해달라던가. 큭큭!’

자기가 생각해도 환불 이야기는 웃겼던지 한심하게도 그는 소교주의 앞에서 낄낄거리며 웃을 뻔했다. 겨우 웃음을 가다듬은 동천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소교주님께서는 빙강파천수(氷剛波天手)를 익히셨군요! 이런 실수를!”

교주인 냉소천처럼 열화파천강을 익혔더라면 더 없는 영약이었으나 음한 기운을 타고난 냉현으로서는 빙강파천수를 선택할 시 열화파천강과 비교했을 때 그 성취도 면에서 월등히 차이가 나는 관계로 그것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런 냉현이 아무런 여과 과정 없이 화리혈현단을 복용할 시에는 독약이나 다름이 없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를 잠시 곱씹어 본 동천은 자신이 본의 아니게 익힌 만독혼원공도 그렇고 속성을 지닌 무공을 익히면 까다로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을 지나치듯 하게 되었다. 그가 그런 생각을 끝마치는 찰나에 냉현이 말했다.

“하하, 실수까지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 너무 미안해할 필요는 없네. 살다보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어찌 그것까지도 남을 탓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미안해 할 필요는 없는 관계로 동천은 쓸데없는 생각이나 했다.

‘이 새끼가 간만에 사람다운 소리하네? 혹시, 요 근래에 사자성어 두어 개라도 더 배웠나?’

바른 소리만 해서 은근히 불안해진 동천은 약간 빗나간 듯한 현재의 대화를 본 궤도에 올려놓아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소교주님께 맞지 않은 단환일지라도 교주님께는 더 없는 영약이나 다름없음인데 어찌 이것을 아직까지 보관해두시고 계신 것입니까?”

너는 못 먹어도 네 아비는 그 반대일 것이 아니냐는 말이었다. 아울러 그는 상생원리를 이용하여 단환의 성분을 중화시키는 방법을 언급할까도 했지만 그랬다간 독공을 익혔다고 의심받고 있는 자신이 화리혈현단을 무난히 복용했던 것까지도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일부러 그 부분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천년화리의 내단이라면 모를까, 아버님께서는 이미 입신지경(入神之境)에 도달하신 분이라 이제 이런 단환으로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네.”

동천은 이 자식이 은근히 천년화리의 내단을 갖다 바치라고 종용하러 온 것은 아닐까 잠시 분개했지만 바로 이어지는 냉현의 이야기에 그런 생각을 쏙 집어넣어야만 했다.

“그래서 기왕지사 임자가 불분명해진 단환. 좋은 일에 써보자는 의미에서 오늘 이렇게 자네에게 다시 돌려주기 위하여 가벼운 발걸음을 했던 것이네. 바로 곁에서 자네를 지켜보고 계시는 사 소저께서 자네의 무공 성취도에 강한 불만을 가지고 계신 듯하여 내 자네를 아끼는 마음에 돌려주는 것이니 어서 이 자리에서 복용을 하시게나.”

헉, 하고 놀란 동천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귀한 화리혈현단을 다시 돌려준다고 해서 기쁘기 그지없었으나 그것을 이 자리에서 복용을 하라고 하니 그로서는 주화입마를 각오해야했기 때문이다.

‘아차! 이 개 후레자식이 그래서 이 몸을 찾아온 것이로구나!’

그제야 냉현이 찾아온 속셈을 간파한 동천은 식은땀이 절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어 정신을 차린 그는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소신이 정성을 다하여 드린 물건을 다시 받는다니! 이것은, 이것은…….”

동천이 말끝을 흐린 것을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이미 받아들인 물건을 다시 되돌려준다는 것은 선물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치욕스러운 일에 해당했다. 그래서 그런지 다급히 말을 꺼낸 동천으로서는 적당한 뒷말이 떠오르지 않아 말끝을 흐렸던 것이지만 냉현은 그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음, 내 자네의 뜻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지금 이 상황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니 이의를 수렴하지 않겠네. 알겠는가?”

부드러운 말투인 듯 하면서도 말끝을 날카롭게 강조해서 그런지 상당히 강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동천으로서는 도통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으으, 이걸 지금 그냥 복용했다가는 열이면 열 주화입마에 걸릴게 뻔하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확! 엎어버리고 튀어?’

한번 튀었던 거 두 번이라고 튀지 못할 것 같냐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초조한 마음만 앞서 그저 눈알만 데굴데굴 굴린 동천은 나중에 복용하겠다고 하면 그때처럼 자신이 옆에서 지켜봐 줄 것이니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할 것이 뻔한 관계로 괜히 애꿎은 침만 연거푸 꼴딱 삼켜댔다.

“휴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염치를 불구하고 소신이 차후 조용히 복용하겠습니다.”

일단 상대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척하며 화리혈현단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동천은 냉현이 아무 말 없이 넘어가 주기를 바랬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하하! 자네가 융통성 있게 생각해주니 한 짐을 덜은 듯 하이. 자아, 어서 지금 복용해보시게나.”

‘윽! 개새끼……. 역시나 물고늘어지는구나!’

이제 동천이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로서는 정말로 뒤엎고 도망치거나 복용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헌데 너무 궁지에 몰렸음인가? 어느 순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진한 살심(殺心)이 스멀거리며 올라왔다.

‘이놈 혼자라면 모를까, 호위하듯 뒤에 서있는 혈살 새끼 때문에 일초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수중에 무기가 없으니 쓸 수 있는 것은 수공(手功) 뿐…….’

일단 살심을 끌어올리자 역심무극결을 운용한 것도 아닌데 정신이 맑아지고 침착해졌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는 말이 있듯이 동천 또한 도망갈 구석이 보이질 않게 되자 잠재해있던 감각들이 일어나면서 절로 그의 심신을 안정시켜주었던 것이다. 이런 동천의 행동이 어찌나 은밀했던지 냉현은 물론이고 강호의 경험이 풍부했던 산관조차 그저 안색만을 굳혔다고 생각할 뿐 그의 살기까지는 감지해내지 못했다.

“이제와 무얼 그리 고민하는가. 하하, 어려워 말고 어서 복용하게나. 잘못 되는 듯 싶으면 여기 이 산관이 뒤에서 도와줄 테니까.”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산관이 동천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제가 있으니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에 실소한 동천은 아무래도 저들에게 살수를 써봤자 무위로 돌아갈 것임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심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모든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 내 몸에는 두 가지 내공이 존재한다. 상극은 아니나 너무도 이질적인 기운이라 합칠 수가 없음이다. 물론 만독혼원공이 섞인 귀의흡수신공이 아니라 역심무극결로서 화리혈현단을 흡수하는 방도가 있긴 하지만 일단 불의 기운이 몸 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만독혼원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바로 이곳에서 발생하는데 독은 불과 상극이다. 독은 불에 탄다. 물과 불이 상극인 예로서 물이 불에 증발한다거나 얼음이 불에 녹는 것과는 그 속도가 현저히 틀리다는 소리다. 제길! 예전에 세 가지의 내공을 몸에 지녔던 적이 있다지만 그때와 지금의 상황은 천지차이인…데……. 가만, 내공이 세 가지?’

순간 동천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세 가지의 내공을 지녔던 몸인데 지금에서라고 또 가지지 못할게 뭐란 말인가. 물론 만독혼원공이 이미 자리가 잡혀있는 상황에서 상극인 내공이 비집고 들어가기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앞길만 고집하던 사람이 옆길로 들어서 지름길을 발견하듯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라 할지라도 생각의 전환을 바꾸면 의외로 쉬워지는 것이 인생사라고 할 수 있었다.

바로 내공을 하나의 그릇이라 생각하여 만독혼원공이 섞인 귀의흡수신공을 제일 먼저 붓고, 다음으로 역심무극결을 그 위에 부은 뒤 마지막으로 새로이 생성된 화리혈현단의 내공을 쏟아 붓는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되면 역심무극결이 만독혼원공과 화리혈현단 사이에서 기름과도 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확실한 성공을 보장할 순 없지만 이론만 가지고 본다면 충분히 성공할 가능성은 존재했다. 이는 메마른 화분에 한줄기 신선한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경우와 다를 바 없음이니 동천으로서는 이보다 더 달콤할 수가 없었고 말이다.

‘큭큭큭! 어쩐지 어제 꿈자리가 좋다 했더니 바로 이런 복이 굴러 들어오려고 그랬던 거구만? 으하하하! 으히히히히!’

좋은 쪽으로 보아주자면 이 또한 생각의 전환이다.

“하하, 산관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내 아무 부담 없이 복용하도록 하겠네.”

이런 확실치도 않는 가설에 그가 자신 있어 하는 이유는 바로 예지력 때문이었다. 자신이 위급할 때면 어김없이 예지력이 발동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있는 동천은 자신의 가설이 틀렸을 경우 틀림없이 신호를 보내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마음에 여유까지 생긴 그는 언제 심각했냐는 듯 만면에 미소를 띄웠고 냉현은 갑작스레 태도를 바꾼 동천의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의주시 했다. 혹시라도 단환을 바꿔치기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천은 그의 주시를 비웃기라도 하듯 보란 듯이 단환을 집어삼킨 뒤 바닥에 앉아 운기를 시작했다.

스으으으…….

잠시 후 옅은 훈풍이 동천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가 싶더니 곧 그의 몸 전체가 붉게 달아올랐다. 그 중에서 동천의 얼굴이 수배나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단전의 내공을 층층이 쌓는다는 느낌이 확연히 닿아오지 않자 섣불리 내공들을 움직일 수 없는 관계로 확신이 설 때까지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얼굴 쪽의 상단전으로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불의 기운이 얼굴을 손상시킬 수도 있었지만 알 턱이 없는 동천으로서는 단전들 중에서 정신을 담당하는 상단전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는 결론 하에 그러한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이제와 달리 바꿀 방도도 없고 말이다.

‘으으! 쌓여라 좀, 쌓여! 어차피 무형(無形)인데 니들이 개겨서 뭐 좋을 게 있다고 뻐팅기는 거냐? 엉?’

즉석에서 생각한 방법인 만큼 뜻대로 내공이 움직여주질 않았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두 내공이 정확하게 반반씩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섞이지만 않았을 뿐 복잡한 구조로 엮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아무 진전도 없이 시간만 점점 흘러가자 이미 화리혈현단의 모든 기운을 상단전 쪽으로 몰아 넣은 동천은 얼굴이 홍시처럼 익다 못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고 그 영향 탓인지 그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가고 있었다.

‘아, 쓰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한눈에 보아도 정상이 아니자 동천을 지켜보는 냉현의 시선은 기묘하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좋아 좋아. 아마도 만독혼원공과 접촉하지 않기 위해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얼굴 쪽으로 몰아넣고 있는가 본데……. 그래봤자 길어야 반각이거늘, 참으로 애처롭기 그지없구나! 하하하!’

고통스러워하는 동천의 모습을 즐거운 듯 조용히 바라본 냉현은 기분 좋게 차를 마시며 곧 있을 주화입마의 시기를 기다렸다. 여기에서 동천이 잘못되어도 아무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 자신은 약소전주가 화리혈현단과 상극인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을 몰랐다고 잡아떼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약소전주 자신이 아무 언급도 없는 상황에서 복용했다가 이렇게 된 것이니 더더욱 잘못이 없었고 말이다.

“끄으으윽!”

드디어 주화입마의 징조가 보이고 동천이 고통스러움에 신음을 흘리자 냉현은 옳다구나 반응을 보이며 짐짓 다급한 목소리로 산관을 불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산관, 어서 약소전주를 도와 진기를 유도해보거라!”

“알겠습니다!”

하단전 내의 내공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하단전으로 보내버리면 바로 주화입마가 일어나게 되는데 냉현은 바로 그것을 노리는 것이었다. 만약 동천이 이런 사실을 알았더라면 기겁을 한 나머지 자칫 심신이 흐트러져 진짜로 주화입마에 걸렸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도 정신이 혼미한 상태여서 외부의 소음에 귀를 기울일 상황이 아니었다.

‘으이씨……. 이러다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겠구나. 세, 세상의 모든 미녀들이 눈물지을 것이 뻔한데 이를 어이한단 말인가!’

평소에 하던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 아직 죽을 지경까지는 아닌 듯 싶었다. 그러나 동공이 풀리고 전신이 미세하게 부들거리는 것으로 보아 확실히 위험한 상태이기는 했다.

‘헉헉! 죽을… 맛이네. 이제와 운기를 멈출 수도 없고……. 크윽, 얼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이 뜨거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은 헐떡거렸다. 하지만 이 정도쯤은 참을 만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라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타들어 가는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운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본능적으로 이 상태에서 운기를 중단하면 주화입마 내지는 그에 준하는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

혼미한 와중에도 의식의 끊을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정신이 맑아야 신체도 건강하다는 말이 있듯 이렇게 혼미한 와중에 무슨 집중을 하고 무슨 내공을 층층이 쌓는다는 말인가.

‘이, 이렇게 죽기엔 내 청춘이…….’

산관이 내공을 불어 넣어준 것은 그때였다. 그리고 동시에 하단전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나온 것도 그때였다. 산관은 소교주의 의도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기에 서둘러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하단전으로 이끌어 내렸고 하단전에서 일어난 의문의 기운은 상단전으로 타고 올라가다가 정확히 중단전에서 내려오는 화리혈현단의 기운과 부딪힌 뒤 그것을 완벽히 중화시켰다.

자연히 화(火)의 기운이 소멸된 화리혈현단의 내공은 중단전에 머물게 되었고, 이차 삼차로 이어지는 산관의 진기 유도와 맞물려 하단전에서 일어난 기운 또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중단전까지 밀고 올라와 그것을 중화시켰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자 시간이 흐를수록 동천의 얼굴은 평온을 되찾아갔고 그것을 감지한 냉현은 딱딱하게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살기 어린 광망(光芒)을 터트린 냉현은 산관을 죽일 듯이 노려본 후 전음을 날렸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지?』

산관 또한 기대하던 내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 진땀을 흘리는 중이었는데 소교주에게 그런 소리까지 듣게 되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로서는 상단전에 몰린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하단전으로 내려보내는 시도만 했을 뿐이어서 동천의 하단전에서 발생한 신비한 기운을 감지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당장 진기 유도를 그만두고 손을 떼!』

서릿발같은 냉현의 전음이 계속 이어졌다. 안 그래도 진기를 유도 중이어서 전음을 사용할 수 없었던 산관은 서둘러 내공을 갈무리한 뒤에 조심스레 일어나 전음으로 해명을 해주었다.

『소, 속하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명령대로 상단전에 몰린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하단전으로 유도하여 내려보냈을 뿐인데, 그런데…… .』

『시끄럽다! 나도 알고 있으니 닥쳐라!』

잘하면 살인이라도 날 듯한 분위기였다. 물론 살해당하는 쪽은 산관이었고 말이다. 이럴 때일수록 변명하지 않는 게 오래 사는 비결임을 간파하고있었던 산관은 쥐죽은듯이 가만히 서있었고, 냉현은 자신의 수하가 시킨 대로 잘 해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분풀이 대상을 찾지 못해 괜히 성질만 내는 중이었다.

‘으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 녀석은 분명히 독공을 익히고 있어! 그렇지 않고서야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얼굴 쪽에 몰아넣고 단전으로 보내지 않을 이유가 없단 말이다!’

만일 그가 산관에게 진기 유도를 명령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동천은 주화입마에 걸렸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동천이 독공을 익혔다는 아무 물증도 없는 상황에서 주화입마에 걸려 죽거나 반병신이 되는 것은 그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약소전주 한 명 죽고 사는 건 아무 문제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이 확신했던 부분만큼은 밝혀내고 싶었던 것이다.

후우우웅…….

스쳐 가는 바람결인 듯 동천의 전신에서 미세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방안을 살며시 휘돌아 어루만졌다. 운기를 무사히 끝마치고 그 기운을 갈무리하는 중인 것이다. 그제야 서서히 정신을 차린 동천은 자신의 몸 안에서 벌어진 상황을 살펴볼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화리혈현단의 기운이 아닌 따스하고 순수한 진기가 귀의흡수신공과 역심무극결과 함께 공존해있는 것이 아닌가!

‘헉,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이 몸이 잠깐 의식을 놓친 사이에 무난히 화리혈현단을 중화시켰단 말야? 이럴 수가! 단전에 흐르고 있는 귀의흡수신공과 역심무극결을 층층이 쌓아올리지도 못했는데 어찌 화리혈현단의 기운까지 중화시킬 수 있었단 말인가! 이것은 분명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분명하거늘! 엇? 설마!’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동천은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이 몸이 평범한 천재가 아니었었단 말인가? 오오, 하늘이시여!’

동천이 중증치고는 상당한 중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냉현과 산관은 저 혼자 천장을 올려다보며 감격에 마지않는 약소전주를 미묘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흠! 축하하네.”

차가운 냉현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동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깊게 읍을 했다.

“이것이 다 소교주님의 크나큰 은혜 덕분입니다. 소신은 그저 감격할 따름입니다!”

냉현은 활기에 찬 동천의 모습에 순간 뭐 씹은 표정을 지었으나 워낙에 표정관리를 잘 했으므로 산관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니까 동천은 눈치챘다는 말이다.

‘큭큭큭! 아깝지? 준 게 아깝지, 이 후레자식아? 하하! 쌤통이다! 으히히히히! 와 이리 좋노!’

원래 계획은 삼층 내공을 만든 후에 역천에게 중화 단환을 얻어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예정이었다. 헌데, 살펴보니 화리혈현단의 기운이 완전히 중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그 기운이 배나 늘어나 있는 상태였다. 즉, 그는 화리혈현단 두 개를 복용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진짜 불가사의한 것은 중화된 이 진기가 순수한 귀의흡수신공으로 되어버렸단 말이야? 일이 잘 되어서 좋긴 좋은데……, 거참 되게 궁금하네?’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귀의흡수신공으로 그 성질을 바꿔 흡수하려면 적어도 화리혈현단의 기운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이상인 내공이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 정도의 내공이라면 만독혼원공이 섞인 귀의흡수신공과 역심무극결이 존재하긴 했지만 알다시피 층층이 쌓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서 그것들은 흡수하는 용도로 운용할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흡수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사실 동천은 모르고 있었지만 그가 위급했을 때 운석에서 그 기운이 흘러나와 화리혈현단의 기운을 중화시킨 것이었다. 그 뒤에 다시 흡수하려고 했던 것인데 이 운석이 방출은 할 수 있어도 흡수를 하려면 단전에 바싹 붙어있어야 하는 단점이 존재했기에 중단전에서 중화된 내공이 하단전으로 내려오지 않자 흡수를 포기하고 그대로 놔둔 것이었다.

만일 산관이 냉현의 제지를 받지 않고 계속 진기를 하단전으로 유도했더라면 영락없이 운석에 흡수되었을 텐데 그만 중도에 포기시키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동천을 도와준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어찌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란 말인가. 만일 이런 사실을 그들이 알았다면 과연 그들은 어떠한 표정을 지을까?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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