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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13화


“랄라, 오늘은 어떤 요리를 해서 아가씨께 올릴까나? 탕 종류? 아니면 야채 종류? 그것도 아니면 고기 종류? 또 그것도 아니면 해산물 종류? 또또 그것도 아니면 튀김 종류? 또또또 그것도 아니면……. 헤헤, 거론할 게 더 없네? 아, 찜 종류도 있었지 참?”

오늘도 꿋꿋하게 혼자서도 잘 놀던 수련은 생각지도 못한 소연의 방문을 맞게 되었다.

“어? 언니가 오늘 웬일이세요? 며칠 전 동천이 돌아와서 앞으로 한동안은 언니의 얼굴을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화정이를 같이 데려온 소연은 어딘지 어두운 안색이었다.

그녀는 동생과 대화를 나누기에 앞서 화정이에게 말했다.

“화정아, 저기 꽃밭에서 연화하고 잠시 놀고있어. 알았지?”

호연화를 품에 안고있는 중인 화정이는 듯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화정이는 많이 오래 놀고 있을 테니까 소연도 재미있게 놀아.”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준 소연은 꽃밭 같지도 않은 꽃밭으로 뛰어가는 화정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수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것을 본 수련은 정말로 언니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이 왜 그래요? 혹시, 어디 아픈 거예요?”

힘없는 눈동자로 동생을 바라본 소연은 한숨을 푹 쉬더니 수련의 어깨를 잡고 안으로 이끌었다.

“후우,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그래요, 그럼.”

수련과 함께 집안으로 들어간 소연은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다른 말을 꺼냈다.

“차 좀 줄래?”

수련은 내심 무슨 말일까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고작 차를 달라는 소리이자 실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근데 정말로 무슨 일 있어요?”

소연은 아무래도 말하기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 같아 잠시 망설였지만 대화상대라도 찾지 않는다면 미칠 것만 같아 주저하면서도 결국에는 입을 열었다.

“그게 말이지……. 주, 주인님께서 마침내 화정이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어.”

그러자 수련은 어이 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 참, 손잡는다고 누가 죽어요? 난 또 뭔가 했네.”

되려 어이가 없어진 소연은 빽 소리를 질렀다.

“그 손 말고!”

차를 마시려다가 기겁을 한 수련은 허둥대다가 하마터면 차를 엎지를 뻔했다.

“까, 깜짝이야. 말로 해요 말로. 아참, 말로 했지. 그러니까 좀 차분하게 이야기하시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죠?”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한 소연은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 솔직히 요즘 내 정신이 아니어서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진 것 같아.”

수련은 그게 조금 날카로워진 것이었으면 많이 날카로워졌을 때에는 아주 사람 하나 잡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에 소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후우, 그러니까 주인님께서 화정이를 이성으로 생각하신다는 거야. 같이 주무시면서 이곳도 만지고, 저, 저곳도 만지고……. 무, 무슨 말인지 알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소연은 마지막에 다그치듯 소리 높여 물었다.

그러나 방금 전에 크게 놀란 전적이 있었던 탓인지 수련은 놀라하지 않고 대꾸했다.

“난 또 뭐라고. 그러는 언니도 여러 번 잤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걸 알기나 하고 지금 상담한답시고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소연은 처음 듣는 소리에 황당한 표정을 떠올렸다.

“자, 자? 내가? 주인님하고?”

수련은 뭘 그렇게 빼느냐는 식으로 언니에게 말했다.

“에이, 놀란 척 안 해도 되요. 막말로 지나가는 개한테 물어도 언니가 최소 다섯 번은 동침했다는 걸로 알고 있을 걸요?”

망측해진 소연은 찰나간 하고많은 횟수 중에 왜 다섯 번으로 알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찰나여서 기억에 상주시키지도 않았다.

“무슨 소리야! 난 어렸을 적에 잠시 가, 같이 잔 적은 있어도 커서는 단 한번도 그런 적이 없단 말야! 그 증거로 난 아직도 처녀라고!”

수련은 언니가 아직도 처녀라는 말에 놀란 얼굴을 했다.

더불어 그녀는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진지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걔가 좀 어리죠.”

억울해진 소연은 ‘그러는 너도 만만치 않아!’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아, 아무래도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는 꼴이 되어버렸구나.’

골치가 아파진 소연은 더 이상 말하고 싶은 의욕을 상실해버렸다.

“됐어. 너한테 상담하러 온 내가 바보였어. 이 얘긴 없었던 걸로 하자.”

자고로 이야기 중에 남편과 시어머니 흉을 보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는 사실을 이 어린 나이에 벌써 터득하고 있었던 수련은 한참 흥미진진해지려고 하는데 언니가 그만두려고 하자 내심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언니, 너무 골치 아파하지 말아요. 흥흥! 나도 동천이 언니 같이 아름답고 지적인 분을 차지했다는 것에 누구보다도 화가 나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소연은 동생이 듣기에도 달콤한 이야기를 꺼내자 언제 한숨을 내쉬었냐는 듯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아이, 쟤도 참. 그런 건 화내지 않아도 되는데…….’

그때 아래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야.”

그녀들은 사정화의 목소리이자 역적회의를 하다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안녕하세요?”

사정화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여준 후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계속 이었다.

“동천이 너를 차지했다는 말이 무슨 소리야.”

소연은 아가씨의 음성이 어찌나 삭막했던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수련은 그런 언니가 입을 열지도 못하자 하는 수 없이 대신 나서주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아가씨에게는 말 안 해줬나봐요? 음, 그게 그러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싹수가 노랗던 동천이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성숙한 여인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나 봐요. 으으, 그런데 그 피해자가 다름 아닌 소연 언니가 될 줄이야! 더군다나 반항도 못하는 화정이까지……. 흑흑, 아가씨! 언니하고 화정이가 너무 불쌍해요.”

소연은 아주 소설을 쓰는 수련을 보며 황당해했지만 어쩌면 이번 일을 계기로 주인님이 정신을 차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끄럽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런 그녀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사정화는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식으로 다시 이층으로 올라가며 소연에게 명했다.

“동천 데려와.”

마치 훈계를 받는 듯하여 찔끔해진 소연은 물었다.

“지, 지금요?”

사정화는 말했다.

“그래.”

“예, 예에…….”

그리하여 방안에서 3류 소설책을 넘겨보다가 엉겁결에 사정화의 집으로 불려오게 된 동천은 찾아온 수련에게 무슨 일이냐고 오는 중간에 계속 물어보았지만 대답해줄 리가 없었던 수련은 이제 너 죽었으니까 그렇게만 알라고 해서 불안한 동시에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동천 왔어? 헤헤, 나 연화하고 잘 놀고있어! 나 이쁘지?”

동천은 천진난만하게 놀고있는 화정이를 바라보며 진짜 놀고 자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대꾸할 가치가 없어 그냥 지나쳤다.

“아, 주인님 오셨어요?”

거실에서 초조하게 왔다갔다하던 소연은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묘한 얼굴로 주인님을 맞아주었다.

마침 그녀를 보게되어 잘됐다고 생각한 동천은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보다 앞서 수련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기회를 놓쳐버리고야 말았다.

“아가씨께서 오랫동안 기다리시고 계신데 왜 멈추고 그래? 어서 올라가기나 해!”

“이익! 알았어, 이 기집애야! 가니까 밀지마!”

성질을 내며 이층으로 올라간 동천은 실로 오랜만에 이곳을 보게되자 나름대로 감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저기는 바로 예전에 내가 머물던 방이잖아? 이야……. 아직도 침대 구석쪽 다리에 뒈져라 사정화라는 낙서가 있을라나?’

철없던 어린 시절의 일이었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던 동천은 한순간 가슴 한 구석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그 낙서가 아직까지 존재한다면 누군가 보기 전에 얼른 지워야하는 것이다.

“야, 야야! 나 잠깐 예전의 내 방엘 좀 가볼게. 잠깐이면 돼! 잠깐이면!”

수련은 동천이 상황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하려고 하자 무슨 또 꿍꿍이가 있는 줄 알고 콧방귀를 뀌며 세차게 그의 팔을 잡아챘다.

“헹, 웃기지 말고 빨리 가. 만일 옛날 네 방에 들렸다 가면 아가씨께 그대로 일러바칠 테니까 니 맘대로 하던가.”

‘윽! 이년은 전생에 나하고 무슨 원한이 있었기에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지?’

생각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그녀를 때리겠는가.

그저 분통이 터져 가슴을 두드린 동천은 끄응, 소리를 낸 뒤 그냥 지나쳐 가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모퉁이를 돌아 사정화의 방으로 안내된 동천은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헤헤, 부르셨다고요?”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던 사정화는 조용히 돌아서며 동천을 바라보았다.

순간 동천은 햇살에 반사된 그녀의 전신이 참으로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아! 지금의 저 모습을 보고 그 누가 감히 숨겨진 성깔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이래서 여자는 같이 살아봐야 진실 된 모습을 아는 거라고 동천은 내심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사정화가 움직였다.

그녀는 탁자에 앉을 때까지 아무 말 않다가 그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그래, 긴히 할말이 있어서 불렀어.”

무미건조한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동천은 그제야 사정화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 예. 헌데 긴히 하실 말씀이…….”

사정화는 동천이 무안할 정도로 그를 빤히 바라보며 손가락을 아래로 향한 뒤 까딱거렸다.

보통은 손가락을 위로 향하게 한 뒤에 오라는 표시를 하는데 사정화는 그 반대여서 잠깐이지만 동천은 헷갈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에에, 다가오라고요?”

바로 그 말이었던지 사정화가 말했다.

“그래.”

동천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고, 사정화는 동천이 다가오자 예의 그 까딱이던 손가락으로 자신의 바로 옆자리를 가리켰다.

“앉아.”

동천은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이런 씨팔! 그냥 옆에와 앉으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될 것을 사람 더럽게 피곤하게 하네!’

그건 그랬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것이 그녀의 성격이라면 성격인 것을…….

적어도 이번만큼은 동천이 틀린 것도 아니었지만 엄격한 신분의 차이는 그러한 불만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역천에게 수련을 받고있을 시간이어서 저녁때 부를 까도 했는데, 남녀가 유별하여 부득이하게 대낮에 불렀어. 동천, 이해해주겠지?”

마치, 이해해주지 않으면 한 대 치겠다는 분위기이자 동천은 겁나서 허튼 소리를 할 생각도 못했다.

“그럼요! 그리고 요새 사부님께서 상당히 바쁘신 탓에 제 지도도 뒷전으로 미루고 계세요. 헤헤, 그러니 크게 마음쓰지 않으셔도 되요.”

사정화는 무언가에 생각이 미쳤는지 수긍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래. 며칠 전 암흑대전회의가 벌어졌다는 것을 깜빡했어.”

동천은 그런 것도 깜빡한 사정화를 보며 이젠 쟤도 늙었구나 생각했다.

그 늙은 것치고는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말이다.

“예, 그래서 그 문제로 일 처리가 상당히 늘어나 그것들을 처리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십니다.”

사정화는 원래 그 문제로 부른 것이 아니었던 만큼 쓸데없는 이야기에 시간을 소모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내 우연치 않게 들었는데 네가 요즘 여성을 이성으로 느낀다고 하더구나.”

설마 그 이야기를 거론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동천은 당황하여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아마도 그는 최단시간에 식은땀을 흘린 적이 언제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이때였다고 꼽을 것이 분명했다.

동천은 그만큼 당황했던 것이다.

“예에? 누, 누가 그런 망발을…….”

“동천.”

“예? 예에, 아가씨.”

사정화는 횡설수설할 기미를 보이는 동천의 말을 끊어낸 뒤 그가 침착해지기를 기다려주었다.

잠시 후 그녀는 차마 자신의 시선을 마주보지 못하고 눈동자만 떼구르르 굴리는 동천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를 탓하는 것이 아냐. 왜냐하면 네 나이 때에는 다 그런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것을 잘 알고있기 때문이야.”

순간 동천은 너나 나나 그 나이가 그 나이인데 네가 그걸 어떻게 그토록 잘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아가씨의 눈길이 마치 엄하게 훈계를 내려주는 누님과 같다는 생각이 들자 이번만큼은 도저히 속으로도 욕하지 못했다.

“아, 그게. 그게.”

동천은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오늘따라 그렇게 술술 터져 나오던 재치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사정화가 말했다.

“동천, 여자를 알기에 아직 넌 어려. 그에 반해서 주어진 여건은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약왕전의 소전주라면 손만 뻗쳐도 언제든지, 또 얼마든지 여인을 자신의 마음대로 소유할 수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말야. 너처럼 어린 나이에 주색에 빠져 무공을 등한시한 채 지내다가 삼류나 이류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자들도 꽤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니? 혹시, 너도 그러한 인생을 살고 싶어?”

“아, 아닙니다!”

동천은 자신이 그 정도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었지만 사정화의 한마디 한마디가 그의 가슴을 콕콕 찌르는 상황이자 감히 반박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요 며칠 사이에 소연의 눈을 피해 화정이와 농도 짙은 애무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정화는 대답하는 동천을 주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네 나이에 혼인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면 흔해. 하지만 떳떳이 결혼하여 가장으로서 여인을 대하는 것과 책임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여인을 희롱하는 것에는 네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큰 차이가 존재해. 처음에는 그 차이가 드러나지 않겠지만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여인을 경시하게 되고 나중에 가서는 여인이란 그저 쾌락을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하게 되지.”

“예에…….”

이제 완전히 사정화의 화술에 넘어간 동천은 그녀의 말이 다 맞는 말처럼 들리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정화는 그런 동천에게 계속 이야기했다.

“동천. 난 너를 하인으로 생각하지 않아. 그렇다고 특별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하지만 일단 내 밑에 있게된 이상 난 네가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아. 그러니까 오늘부터 이성에 관한 호기심은 잠시 접고 좀더 성인이 될 때까지 무공에 박차를 가하도록 해. 내 말, 잘 알겠어?”

동천은 마지막 부분에서만큼은 도저히 수긍할 마음이 없었지만 티내지 않는 선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깊이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제야 미미하게 안색을 편 사정화는 동천이 당장에는 반성을 한다고 해도 원래의 성품을 잘 알고있는 만큼, 나중에 해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주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만일, 차후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날 찾아와. 그리고 자신 있다면 날 건드려도 좋고.”

“예에?”

듣고도 잘못 들었나 싶어 믿을 수 없는 눈초리를 한 동천이 소리치자 사정화가 차갑게 미소했다.

“끝까지 들어. 만약 날 찾아와 그렇게 할 용기가 있다면 네가 능력껏 여인을 상대해도 아무 말 않겠어. 하지만 그럴 용기조차 없으면서 여인을 성적으로 희롱한다면 나는 널 폐관이라는 명목 하에 10년 동안 가두어둘 거야. 그리고 먹을 음식은 고작 벽곡단만 마련해줄 것이고. 그러니 그런 상황을 겪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면 내말 잘 명심하길 바래.”

동천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앞섰다는 사실을 깨닫고 긴장을 풀었다.

아울러 그는 온몸의 힘이 쑥 파지는 것을 느꼈다.

‘에휴, 놀래라. 난 또 저년이 켈켈켈 할멈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 저도 모르게 창기(娼妓)의 피가 흐르게 된 줄 알았네.’

켈켈켈 할멈이란

청목신장(靑木神張) 정원(鄭元)

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녀의 신분이 환락을 담당하는

요림(妖林)

의 태상요림주였던 만큼, 사정화가 그사이 그녀의 영향을 받아 대담해진 줄 알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정화의 태도가 괘씸했다.

처음에 그냥 앉으라고 말하면 될 것을 그렇게 돌려서 말했던 것이나, 방금 전처럼 괜히 오해를 살만한 이야기를 했던 것이 동천으로서는 뒤늦게 화가 났던 것이다.

‘이런 젠장! 처음부터 자신을 건드릴 용기가 없으면 허튼 짓 할 생각을 말라고 할 것이지 말야! 그게 그렇게 어려워? 누군 한 때 심오한 철학을 논해보지 않은 적 없고, 누군 한 때 흩날리는 낙엽을 보며 괜시리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 없는 줄 알아? 저도 그런 거 겪었으면 나도 그런 거 겪었을 거라는 것을 왜 모르지? 지가 그렇게 잘났어? 씨팔, 지가 그렇게 잘났냐구!’

너무 흥분하다보니 이야기의 초점에서 상당히 벗어났지만 지금 동천은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서만큼은 지극히 충실해있는 상태였다.

그래서였을까?

간이 커져버린 동천은 정말로 사정화를 어떻게 해보려는지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일순간 눈을 크게 뜬 사정화는 동천이 무게가 느껴지는 얼굴로 자신에게 다가오자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일어선 동천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약간이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 흔들림의 정체는 불안이었다.

‘설마……. 설마, 이 녀석이 정말로?’

그녀는 동천의 눈빛이 실로 예사롭지가 않음에 피해야한다고 생각했다.

헌데, 어찌 된 일인지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이성은 움직여야 한다고 명령을 내리고있는데 몸은 그렇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바로 지척까지 다가온 동천은 쓰윽 손을 들더니 그녀의 팔을 살짝 건드렸다.

“헤헤, 건드렸는데요.”

“…….”

두두두두두!

“이랴! 하!”

급하게 마차를 몰고 가는 중인 방삼은 참으로 세상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오묘한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졌던 소전주가 어찌 복날에 개 패듯이 얻어맞고 문밖으로 내쫓겨 나왔겠는가.

“어이구, 나 죽어! 으으, 의, 의원을 불러!”

그 옛날, 민묘희에게 고문을 당했어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당하지 않았던 동천은 거참, 설명하기 애매할 정도로 싸가지 없는 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어쩌다 잠시 뿐이었고 그 외의 나머지 부분에서는 어떻게든 재빠른 치료를 받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흑흑, 주인님 죄송해요. 제가 죽일 년이에요. 흑흑, 답답한 마음에 수련에게 상의하러 가지만 않았어도……. 흑흑흑!”

안 그래도 동천은 불려간 것 자체에서부터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버럭 화를 냈다.

“됐어, 이 계집애야! 도대체 넌 왜 그리 입이 싼 거야? 윽, 아고고! 입안이 터졌더니 말도 잘 못하겠네…….”

착한 소연은 자신이 모두 잘못했다고 주인님께 계속 빌었다.

동천은 화가 나기는 했지만 궁극적으로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으므로 그 얘긴 나중에 하자며 손을 내저었다.

결국, 소연은 궁상맞게 훌쩍거리기만 했고 나중에 가서는 ‘질질 짜지마!’ 라는 한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아이고, 나 죽네. 아이고, 아이고. 이제가면 언제 오나. 아이고, 아이고. 응? 이게 아닌데.”

약왕전으로 돌아왔어도 동천은 체면상 차마 약전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방에 드러누운 채 실력 있는 의원을 불러 진찰하게끔 했다.

급히 불려온 의원은 의외로 타박상이 심각 하자 누구에게 원한진 일이 있냐고 물었다가 화가 난 동천에게 뺨따귀를 얻어맞고 조용히 진료만 해준 뒤에 처방을 내려주고 돌아갔다.

“주인님, 정의원님 말씀이 한 달은 족히 보중하셔야 한다고 했으니까 절대로 무리하지 마시래요.”

엄살은 아니지만 엄살을 부린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심각한 부상을 당한 동천은 그래도 주둥이는 살아있던지 바로 죽을 놈처럼 끙끙거리다가도 무언가 마음에 안 들면 신경질 적으로 소리쳤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뭐? 한 달이라고? 그 새끼가 그러고도 의원이야? 아니, 의원이라는 놈이 얼마나 실력이 없으면 환자를 한달 동안이나 방치한다는 말을 하냐구!”

소연은 흥분한 주인님을 급히 달랬다.

“자자, 진정하세요. 그분이라고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겠어요? 이는 주인님께서 워낙 위중하신 상태이셔서 그 이상의 처방을 내릴 수 없었던 거니까 관대하신 주인님께서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하긴, 맞아도 보통 맞은 게 아닌지라 동천도 내심 수긍하는 바였다.

그러나 맞은 게 억울해서라도 분풀이할 상대를 찾아 애꿎은 의원을 괴롭혔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왜 그때 자신이 일어나서 다가갔던 것인지, 그것이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냥 평소대로 속으로 욕만 하고 끝냈으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젠장, 젠장!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대처했으면 되었을 것을 순간적으로 뚜껑이 열리는 바람에 천추의 한을 남겼구나!’

객기 한번 부린 거 가지고 천추의 한까지 들먹거릴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게 라도 갖다 붙여야 자신이 저질렀던 행동이 덜 억울했으므로 그 정도는 이해해줘야만 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순간적으로 치솟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다가가긴 했는데 동천은 퍼뜩 정신이 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이 왜 이런 미친 짓을 했는지 후회가 막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동천은 고작 한다는 짓이 팔을 툭 건드리며 ‘헤헤, 건드렸는데요.’ 라고 말을 했으니, 그가 생각해도 참으로 한심한 짓이었다.

‘으으, 얼굴이라도 건드렸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나 않지. 아니면 가슴이라던가.’

가슴을 건드리는 부분은 너무 비약적이어서 동천은 곧 억울한 이유 중에 그 부분은 지워버렸다.

만일 거길 건드렸으면 살아서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아! 동천아, 동천아! 너는 어찌하여 고작 팔만 건드리고 말았던 것이냐!’

그렇게 계속 한심한 장탄식만을 주절거리던 동천은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연은 주인님이 눈알을 돌리며 계속 주위를 살피자 재빨리 물어보았다.

“주인님, 뭐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동천은 그녀의 말을 못 들었던지 두 번째 같은 질문이 들어와서야 찾는 것을 멈추고 소연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혹시, 뭔가 좀 허전하지 않냐?”

고개를 갸웃거린 소연은 형식적으로 찾아보는 듯 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모자란 게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주인님께서 상처가 심하시어 잠깐 그런 생각을 하셨던 걸 거예요.”

좀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맞아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이었는데, 설마 그런 뜻으로 말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동천은 별 생각 없이 그저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는 곧 허전함의 정체를 뒷전으로 내몰았고, 소연은 정성스럽게 동천의 다친 부위를 찜질해주었다.

한편, 동천을 때리고 나서도 심란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던 사정화는 그녀 나름대로 감히 자신을 어찌해 보려고 다가온 동천을 제지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분명 녀석의 그때 눈빛에는 단호함이 서려져 있었다. 그때의 눈빛 하나만을 놓고 보았을 때 충분히 나를 어찌할 그러한 눈빛이었다. 헌데, 나는 그것을 느꼈음에도 제지하지 못했다. 왜일까? 왜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일까?’

마음이 복잡해진 그녀는 방안을 서성이다가 그곳을 나왔다.

이어 그녀는 탁 트인 바깥을 보기 위해 복도의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자 향긋한 초목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와 그녀의 코를 간질였다.

눈을 감고 그것을 음미하던 그녀는 자연스레 아래를 바라보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고양이로 보이는 동물과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놀고있는 화정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방적인 놀이였던지 그녀가 보기에 고양이는 도망치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러고 보니 저 애가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더라?’

소연이 왔을 때 같이 데려왔으니 적어도 한 시진 이상은 저러고 놀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때 마침 수련이 올라왔다.

잘 되었다고 생각한 사정화는 그녀에게 말했다.

“쟤 좀 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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