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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22화


서장(序章).

가끔 생각해봤다.

끝없는 나의 욕구는 과연 공명을 이어올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하아!

타인의 생(生)을 위협하고 그들의 생(生)을 가로챈 나의 욕구는 한 인간으로서는 부끄럽지 않으나, 천하를 바라보며 떳떳하기에는 부끄럽기 그지없구나!

천리(天理)를 거역하는 것은 더 이상 원치 않는 바…….

현세의 생의 끝에서 천기를 바라보매, 더 이상의 악업은 다음의 생에서 끝이 날 듯 하도다!


  1. 사천수색(四川搜索).

“헥헥헥!”

더운 여름날 체온을 조절하는 강아지처럼 혀를 내밀고 숨을 헐떡이기에 여념이 없던 동천은 의원이 떠다준 물이 도착하자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푸하! 으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물을 떠다준 의원은 소전주의 안색을 살피더니 괜찮은 듯 하자 접대용 미소를 흘리며 동천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강철 체력을 자랑하시는 소전주님답게 그 먼 거리를 달려오셨음에도 멀쩡하시다니, 감탄했습니다.”

동천은 그나마 위안이 되는지라 흐트러져있던 몸과 마음을 고쳐 잡고 의젓하게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자네가 뭘 좀 아는구먼. 본교에서 체력하면 이 몸이거늘, 수천 리 길을 달려본들 감히 이 몸의 옥체를 손상시킬 수나 있을 것 같은가? 하하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기실, 의원이 대답을 하긴 했지만 그는 근 한 달 동안 경공 수련이라는 명목 하에 죽어라 뛰어다닌 소전주의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보는 의원들이 누가 봐도 학대 수준이라고 소곤거리는 가운데 구토는 기본이었고, 탈진과 내력 소진을 겸비하여 넘어지거나 기절하는 등. 마차에 깔려 큰일날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뿐이던가?

눈물 콧물을 흘려가며 징징 짜기도 하고, 죽으면 죽었지 더 이상은 못 뛰겠다며 반항도 부려봤지만 돌아오는 것이 매 뿐이자 그 뒤로는 반항만 빼고 징징 짜는 것만 했다.

한마디로 소전주의 허세가 가소롭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아무 말 없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달리기는 했지, 아마?’

변종 귀의흡수신공을 운용하며 경공을 시전 하다가 내력이 고갈되자 하는 수 없이 역심무극결로 치환하여 역의 성격이 나왔을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만큼은 조용하고 진지해져서 ‘저 인간이 드디어 포기를 하는구나…….’ 하고 오해를 했었는데, 반 시진 정도가 지나서 다시 지랄을 하자 역시 개 버릇 남 못 준다며 혀를 찼다.

“동천.”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동천은 벌떡 일어났다.

“네, 아가씨!”

제법 기틀이 잡힌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정화는 딱딱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살짝 안면을 일그러트렸다.

“그렇게까지 긴장할 필요는 없어.”

뚫린 입으로 말은 잘한다고 생각한 그는 그냥 멋쩍게 웃어준 뒤 물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이제 곧 귀주에 당도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냥 돌아다니기엔 불편할 듯 싶어. 얼굴을 가릴 면사를 준비해 줘.”

그동안 호남성(湖南省)을 지나치며 마을에 들렸을 때 사람들의 기분 나쁜 시선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던 그녀였는데 이제 다시 사람들이 북적이는 귀주(貴州)에 거의 당도하자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 많아질 것만 같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던 듯 싶었다.

“아? 안 그래도 하나 사드리려고 했는데 그동안 열심히 수련에 힘을 쏟느라 잊어버렸네요. 헤헤, 아주 비싼 걸로 사드릴 테니까 염려 푹 놓으세요.”

사정화는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아냐. 비싼 것은 필요 없으니까 그저 얼굴만 가릴 것으로 사와.”

‘콱, 걸레를 사다줄까 보다!’

비싼 걸 사다준다고 해도 마다하자 심술이 났던지 동천은 내심 화를 냈다.

그러나 어쩌랴. 성질을 내봤자 자신만 손해인 것을 말이다.

“비싼 게 아무래도 좋을 텐데……. 뭐 그렇게 할게요.”

“그래, 수고해 줘.”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미련 없이 뒤돌아 마차에 올라탔다.

동천은 마차에 오르는 사정화의 뒤에서 ‘저기, 저기…….’ 라는 소리만 반복했는데, 차마 그만 달리면 안되겠냐는 말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적극적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제기랄! 이 몸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셨기에 이런 고생을 해야하는 거지? 아, 짜증나!’

사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웬만큼은 장거리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 장거리의 조건에 역심무극결이 끼여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알다시피 역심무극결을 운용하면 전혀 다른 성격이 나오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간사하고 앞뒤 가리지 않는 즉흥적인 성격보다는 냉정하고 깊이 있는 성격이 낫지 않겠느냐고.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 성격으로 완전히 뒤바뀌는 것도 아닌데 상황에 맞게 성격을 잠깐 바꾸는 것이 좋으면 좋았지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그러나 동천이 우려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은 내공의 성질에 따라 성격이 왔다갔다하지만 언제 역의 성격에 먹혀버릴지 예측할 수가 없었기에 불안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라.

자신의 성격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한순간에 변해버리는 모습을 말이다.

비록 남들은 동천의 성격을 개차반이라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아주 마음에 들어하는 만큼, 자신이 자신 같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당하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알 수 없는 감정이리라.

“잠시 후에 다시 출발하겠으니 준비들 하시오!”

원래는 쉴 시간이 아니었는데 동천을 위해 잠시 쉬었던 것이었다.

동천은 또 뛰어야 한다는 소리에 절로 이가 갈렸지만 곧 귀주에 당도하면 푹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을 삼았다.

하룻밤 지새울 곳에 도착하기만 하면 뛰어야할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군. 이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전체가 움직일 수 없으니 말야. 참나, 하여간 어딜 가나 유명인은 고달프다니까?”

마차와 마차 사이에서 달려야만 하는 동천이었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사실 동천만 아니었으면 사천에 도착해도 벌써 도착했을 일이었는데 초기에 너무 쉬는 일이 잦아서 이제야 겨우 중간인 귀주에 근접했던 것이다.

덕분에 남궁연경과 당문영은 사천까지 안전하게 묻어나려다가 열흘을 채 못 버티고 그들과 헤어져 따로 교통수단을 이용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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