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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31화


약간 늦게 출발한 사정화는 지금쯤이면 앞선 추적대가 소식을 전해줄 만도 했는데 그들조차 증발해버렸는지 흔적만이 무성하자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를 따라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곡 안으로 진입한 초철산은 절벽 위에서의 기습도 신경을 써야 했지만 터무니없이 높은 곳이어서 곧 관심을 끊었다.

물론 사람이 아닌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저 까마득한 높이의 정상까지 바위들을 올려놓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삽질이라도 해서 바닥에 함정을 설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가씨, 추적대 외에 혼천부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계곡 안쪽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다시 빠져나온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초철산은 그녀에게 계속 들어가야만 하는지를 물었다. 직접적인 물음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간파 못할 사정화는 아니었다.

잠시 생각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먼저 계곡 입구에 둘을 차출해서 세워. 우린 앞쪽으로 계속 갈 거야. 그리고 전방에 둘을 보낸 뒤 정찰을 시키고, 보고할 사항이 없는 한 이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기다리게 해.”

“예, 아가씨. 헌데……, 계곡 입구에서 뒤를 살피는 녀석들이야 둘이면 충분하다고 보지만 정찰을 둘만 보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적어도 위급함을 알리려면 그 2배인 넷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정화는 초철산의 조심스러운 의견에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시선을 어디에다 두어야할지 몰라하는 초철산에게 마침내 허락을 내렸다.

“좋아.”

“감사합니다!”

사정화는 딱히 감사할 일도 아닌데 그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뭐라고 한마디 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런 하찮은 일 보다는 앞선 자들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했기 때문이다.

곧이어 그녀의 명을 받든 정찰대가 출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통 속도로 전진하는 사정화 일행에게 1명이 되돌아왔다.

초철산은 정찰대원의 얼굴이 한껏 굳어져있자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정찰대원이 보고를 올렸다.

“전방 100여장 부근에서 앞선 선발대가 접전을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정화는 핵심이 빠져있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대가 누구야.”

정찰대원은 자신이 보고 왔어도 선뜻 대답해주기가 뭐했던지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어, 그게……. 쥐하고 새하고…….”

“…….”

동천을 놔두고 침입자들을 상대하러간 중년여인은 계곡 안으로 한참을 진입 중인 일단의 무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숨어서 살펴본 결과, 마기(魔氣)를 흘리는 것이 결코 좋은 자들이 아니었다.

대게 사람은 보이는 존재보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대하여 더욱 두려움을 느끼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사내도 아닌 여자의 몸으로 홀로 나섰다가는 득 보다 실이 많은 손해보는 장사였다.

‘아까의 3배 정도로 쥐들을 끌어 모은 뒤 계곡 안으로 투입하면 물러서겠구나.’

계산을 마친 그녀는 늘 그래왔듯 처음부터 미리 접촉을 단절했다. 그나마 예외였던 동천의 경우는 어린아이라 아들이 생각나서 만났던 것이고 무엇보다 남편과

‘그녀’

를 잘 섞어놓은 듯한 용모 때문이었다.

여하튼, 그녀는 만수신공(萬獸神功)을 9할 가량 끌어올리며 품속의 피리를 꺼내 불었다. 만수신공과 결합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심심인곡(獸沈心引曲) 내의 1악장인 서인곡(鼠引曲)을 불기 시작하자 향화곡 내의 쥐들은 물론이고 외부와 거미줄 같이 연결되어있는 통로를 따라서 수천의 쥐 떼들이 그녀에게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쥐들에게만 들리는 곡조를 변경하자 쥐들이 흥분을 하기 시작하더니 계곡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잠시 후, 경악 어린 소리와 함께 악에 받힌 명령들이 시장판 저리 가라할 정도로 난잡하게 들려왔다.

만족한 그녀는 살짝 웃었다.

‘저 정도면 얼마 버티지 못하겠구나.’

앞서 혼천부원들을 퇴치한 경력이 있었던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거의 확신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의 예측은 빗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혼천부와는 애초에 침투한 목적이 달랐던 만큼 평호 일행은 쥐 때문에 물러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비정하게 자신의 동료까지 베어내더니 곡 내로 진입을 시도했다. 그녀는 못마땅한 눈으로 평호를 노려보았다.

‘저렇듯 간단히 동료를 죽이다니……. 역시, 사악한 자들이었어.’

현재 그녀가 부리는 쥐 떼는 사람을 물기만 할 뿐 죽일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상대방이 물러서면 쥐들을 해산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료까지 죽이는 자들이라면 살려둘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이 바뀐 그녀는 곡조를 더욱 고조시키려는 순간 그들이 넓은 지역으로 빠져나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넓은 곳에서는 쥐들이 무림인들을 상대하는데 한계가 있는데 귀찮게 됐군.’

대략 난감해진 그녀는 잠시만 더 지켜보다가 모종을 결심을 내렸다. 내력 소비가 심해서 웬만해서는 사용하지 않으려 했던 제 2악장인 조인곡(鳥引曲)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새들의 반응은 순식간이었다.

푸드덕, 푸드덕!

향화곡 주변은 그녀의 의부가 끌어 모았던 매와 독수리들의 서식처가 된 지 오래였다. 그 말은 곧 동원할 수 있는 맹금류의 숫자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거기에다 온갖 종류의 새들까지 모여들었으니 그 위세는 가히 하늘마저 뒤덮을 정도의 장관이었다.

“악! 으악!”

계곡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끔 새 떼로 입구를 막아버리자 평호 일행에게는 한치 앞도 분간 못할 정도의 어둠이 찾아왔다. 마치

‘새의 장벽(障壁)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듯 새 떼의 간격은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자기들끼리 부딪혀서 바닥에 떨어졌으니 말 다한 것이리라.

“커헉? 비, 비겁한!”

암습을 당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정체를 드러내 비웃기라도 했다면 지금보다 덜 억울했을 것이고 말이다. 이유야 어쨌건 사람과 사람과의 대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이건 아니었다. 그들은 고작 새 떼에 당하려고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후퇴! 후, 후퇴하… 크으윽! 어헉?”

그들이 당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버텼던 당주급 인물들도 전신이 칼로 난자된 듯한 몰골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천천히 내력을 거두며 장내를 확인한 중년여인은 내공의 소모가 심하자 새 떼의 1/3만을 공중에 남기고 쥐 떼를 비롯하여 나머지는 모두 서식처로 돌려보냈다.

숨이 붙어있는 자들은 몇몇이 보였지만 간신히 살아남은 자들도 간당간당한 상태였다.

악인들이라고는 해도 생명을 빼앗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녀는 악인 하나를 없애면 고통받는 사람들 백이 줄어든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곧 감정을 추스렸다. 그러나 상황은 그녀를 쉴 수 있도록 놔두질 않았다. 일단의 무리들이 다시금 몰려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왜지? 혹시, 그 옛날 의부의 선조를 뒤쫓던 자들의 후손이 아직까지도 남아서 마침내 이곳까지 추적해온 것인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은 그녀는 너무 비약적이었다고 생각했다. 종적도 알 수 없는 자를 450년 이상이나 뒤쫓을 가문은 단언하건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녀는 남편의 가문이라면 그럴 만도 하리라고 생각했지만 피식 웃는 것으로 전방의 상황에만 집중했다.

‘그렇다면 3일 전부터 꼬여들었던 자들 때문이거나 아까 그 어린 녀석 때문에 몰려드는 것이겠구나. 아니면 그 둘 다 일지도 모르고.’

현재 상당한 내력을 소모한 그녀는 설마하니 또 다른 무리가 등장할 줄 몰랐기에 평호 일행에게 전심전력을 쏟아 부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통제력이 약해진 새들을 부리느니 해산을 선택한 그녀는 재빨리 원기를 보충하는 것에 심혈을 쏟아 부었다.

뒤에 등장한 무리는 갑자기 새들이 달아나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지만 다급한 환자들이 눈앞에 있는지라 그곳에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그녀로서는 끈질기게 살아남은 몇몇이 되려 복으로 다가오는 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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