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50화
‘시팔 넘들! 니들 다 뒈졌어!’
대충 간추리자면 위와 같았는데 금면마제만을 복수하려다가 포석까지 그 복수의 명단에 끼워 넣은 동천은 어떻게 이놈들을 잡아 족쳐야 통쾌하게 복수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노므스키들 같으니라고. 그냥 확! 결정적인 순간에 이 자식들을 암살해 버릴까? 아냐, 그래도 같은 문파인데 그건 너무 비열해. 그럼 은밀히 오련 놈들을 도와서 이번 일을 망쳐버려? 흠, 그것도 아냐. 아무 준비도 없이 쫓아가는 중이라서 괜히 어설프게 돕다가는 배신자가 되어서 인생을 종칠 거야. 쓰읍! 그럼 어떻게 하지?’
이런 저런 고민을 하는데 주변의 움직임들이 서서히 멈추어 가는 것을 느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동천은 수풀 속에서 누군가 죽어 가는 소리가 들리자 눈을 번쩍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동료들이 여유로운 듯 보이자 벌써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순찰하는 녀석들을 죽였나?’ 하고 생각하는데, 그때 금면마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부 쓸되 인질로서 가치가 있을만한 놈들은 가능한 잡는다.”
끄덕!
모두들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동천은 되려 잡히지나 말라고 악담을 해댔지만 미치지 않는 한 대놓고 그랬을 리가 만무했다.
금면마제는 수하들에게 한차례 시선을 보내준 뒤 마지막으로 동천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곳이 제일 안전한 것 같은데 자네는 어떻게 할 셈인가. 따라오겠는가?”
‘이런 젠장! 아까 까지만 해도 떨어져 있지 말라고 했으면서 이제와 한다는 소리가 고작 남아? 이놈의 소림사 18동인 영감이 죽을라구!’
어디에선가 소림사의 18동인(銅人)이 금칠로 되어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그렇게 비꼰 것이었다.
여하튼 동천은 하는 짓이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 금면마제였지만 듣고 보니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순순히 남는 쪽을 택했다.
“아무래도 제가 뒤따른다면 그만큼 금면마제님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이니 일이 잘 마무리 될 때까지 이곳에 남아있겠습니다.”
그러자 금면마제가 말했다.
“그때까지 이곳에서 죽치고 있을 필요는 없네. 후미에서 다가오는 살각의 살수들과 대기하고 있다가 도망치는 놈들이 발생하면 같이 움직이면서 실전 경험이나 쌓게나.”
‘니 마음대로 하세요.’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동천은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고 금면마제도 공격의 시기를 늦출 생각이 없었던지 출발을 명했다.
동시에 멀리 좌우 측에서 신호를 주고받은 2조와 3조 또한 전방에 보이는 오련의 목책 진영지(陣營地)를 향해 물밀 듯이 쏟아져 나갔다.
땡땡땡땡!
오련의 진영은 비록 다수의 사람들이 빠져나간 상태라고는 해도 협력 관계의 무림인들이 웬만큼은 되었던지 망루 위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금세 수십 명의 인원들이 목책을 방어하고 나섰다. 그들 중 40대의 남자가 검을 들고 지휘하며 소리쳤다.
“쏴라!”
슈슈슈슈―슉!
수십 발의 강맹한 화살들이 마교도들을 향해 쏟아졌다. 그러나 활에 익숙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있었던 듯 어느 것은 위력적이었고 어느 화살은 손쉽게 쳐낼 수가 있었다. 쏘는 사람의 수도 넉넉지 않은 가운데 실력이 딸리는 사람들까지 뒤섞였다 보니 생각보다 큰 피해는 주지 못했던 것이다.
“저것들이 장난하나. 난 또 대단한 피해를 입히는 줄 알았네.”
방금 전의 상황을 멀리서 지켜보는 중인 동천은 정말 신속한 그들의 대응에 ‘과연, 오련이구나.’ 하고 감탄을 하면서도 기이한 기분이 들자 본교의 무사들이 채 다가가기도 전에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었다. 헌데 그게 아니자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상황은 반전이 되었다.
“엇? 뭐냐!”
“으악! 느, 늪이!”
“살려줘! 어, 엄청나게 큰 뱀이! 히이익?”
동천이 보기에는 사방이 확 트인 들판이었는데 어떤 인간은 허우적거렸고 어떤 인간은 무기를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슈슉! 퍽! 퍼퍽!
“커헉!”
“끄으억!”
뜻하지 않은 상황에 부딪힌 금면마제 측 무사들은 뒤이어 날아오는 화살들에 의해서 하나 둘씩 목숨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동천의 뒤로 다가온 살각의 섬살대(閃殺隊) 대주 을목평(乙木平)은 침중한 목소리로 신음하듯 입을 열었다.
“으음! 진법입니다.”
“진법?”
“그렇습니다. 아마도 처음의 화살들 때문인 것 같은데, 그것들 중 몇 개는 진법을 발동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사용된 모양입니다.”
동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제갈세가인가?”
을목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목책 위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자가 정보대로라면 제갈세가의 외단주(外團主) 초우협(草友俠) 도전광(導電光)인 듯 합니다.”
동천도 제갈세가의 인물들이라면 웬만큼은 알고 있었는데 상대가 밖에서만 근무하는 자라서 그런지 처음 보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럴 게 아니라 후퇴를 하게 하던지 어떻게 대처를 해야만 할 것이 아닌가.”
을목평은 희미하게 웃었다.
“준비도 없이 출발했겠습니까.”
아닌게 아니라 허둥대던 아군이 서서히 질서를 잡아가더니 날카로운 침봉(針峰)이 되어 하나의 섬광처럼 질주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아수전의 3당주인 포석이 있었다.
‘아하! 어쩐지 서생나부랭이처럼 비실 거리 게 생겼다 했더니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로구만?’
3당주는 강시제련에 속한 아수전의 인물이었음에도 진법에 능숙한 자였던 듯 일단 진법의 요체를 파악하자 또 다른 변수를 막기 위하여 서둘러 전진을 시작했다.
그러자 오련 측에서는 당황한 듯 애꿎은 화살들만 날리다가 이내 근접전을 준비했다. 그들로서는 너무도 일찍 진법이 뚫리는 바람에 다음 작전을 시도해보지도 못했던 것이다.
챙! 채챙!
“으아악!”
잠시 암흑마교도들의 진입을 막는 것처럼 보이던 저지선은 이내 거칠 것 없이 뚫리기 시작했고 금면마제를 위시한 고수들은 재빨리 목책을 넘어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들 정도면 문을 부술 필요도 없이 그저 가볍게 뛰어 넘어가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순식간에 모든 고수들이 동천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냐?”
동천의 중얼거림에 섬살대주 을목평이 대답했다.
“정보대로라면 그렇게 많은 인원이 상주하지 않은 셈이니 쉽게 끝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만 썩어도 준치인 오련이기에 안쪽에서 무슨 수작을 벌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잠시 생각한 동천은 물었다.
“저곳에 황룡세가의 인물들도 있나?”
“있을 겁니다.”
눈살을 찌푸린 동천은 어쩌면 자신과 예전에 가까웠던 인물이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내심 찜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 진짜…….”
“예?”
을목평의 반문에 동천이 손을 들어 내저었다.
“아냐. 혼잣말이야. 그보다 우린 그냥 이렇게 죽치고만 있으면 되는 건가?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하지 않아?”
을목평은 어쩐지 기분이 저하된 듯한 약소전주의 목소리를 듣고는 나름대로 신중하게 대답해주었다.
“현재 포위망을 서서히 좁히고 있는 중이지만 저희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빠져나오는 자들의 척살 입니다. 제가 감히 약소전주님의 움직임까지 제지할 수는 없지만 지금 안쪽은 지극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재고하여 주십시오.”
살각의 섬살대주를 그냥 맡고 있는 것이 아니었던지 동천이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감지한 을목평은 가능한 조리 있는 말투로 약소전주의 이유 모를 호승심을 잠재우고자 노력했다.
잠시 침묵하던 동천은 생각해보니 자신의 생명이 더욱 귀중했기에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누가 뭐라고 했는가? 본 소전주는 저곳에 들어갈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으니 나오는 놈들이나 잘 처리하게. 응? 마침 한 놈이 튀어나오는군.”
동천을 말대로 청의(靑衣)를 붉게 물들이며 도주를 시도하는 젊은 사내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씨익 웃고 난 을목평은 걱정하지 말라는 얼굴로 느긋하게 도주 중인 청년을 바라보았고, 그들이 있는 장소와 제법 떨어진 곳으로 도주하던 청년은 숲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곧이어 단발마의 비명소리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그 섬뜩한 소리에 동천은 눈을 감고 가슴 아파했다.
‘아! 무림의 젊은 피가 세상을 덧없이 떠나는구나! 근데 돈은 좀 들고 도망을 쳤을라나?’
이따가 죽은 놈들의 몸을 수색해서 짭짤한 수익이라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한 동천은 이럴 게 아니라 죽이는 족족 그들에게 다가가서 돈이나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빼내오는 것은 어떨까 잠시 생각했다.
그 이유는 전투가 다 끝나게 되면 금면마제를 비롯하여 눈치를 봐야할 인간들이 한둘이 아닌지라 그때가 되면 돈을 빼돌리기가 어려울 거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누가 돈에 환장한 놈 아니랄까봐 재화에 눈을 돌리는 동천이었다.
“험! 잘 처리한 듯 싶군. 허나, 내 자네의 수하들이 일 처리를 잘 했나 못 했나 잠시 가서 살펴보고 좀 와야만 할 듯 싶네.”
쓸데없는 행동인 듯 보이자 을목평이 이의를 제기했다.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동천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어허, 이 사람! 자네는 본 소전주의 특성상 사람들의 시체와 상처부위를 접하면 접할수록 심도 깊은 공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인가?”
그가 어찌 약왕전의 특성을 모른다고 말하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것도 평소에 행실이 어떠했느냐에 따라서 상대적이라는 것이었다. 이건 뭐 틈만 나면 뒹굴 거리지 않나, 식충이 저리 가라할 정도로 밥만 달라고 보채지를 않나…….
‘끄응, 머리가 아프군.’
기가 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을목평은 내심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동천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이보게 섬살대주. 왜 말이 없는가? 혹여, 감명이라도 받은 것인가?”
을목평은 제발 좀 감명 받을 건더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어디에서 이런 미친 종자가……. 으으, 내가 말을 말아야지.’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더 이상 대답을 미룰 수 없었던지 서둘러 동천을 상대로 대답했다.
“그, 그런 것도 있습니다. 험험! 그건 그렇고, 정히 뜻이 그러하시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되도록 저희 섬살대가 적도를 처리한 뒤에야 접근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약소전주님의 옥체에 손상이라도 간다면 본교의 입장에서 볼 때 크나큰 손실이기도 하지만 저 또한 문책을 피할 수 없게 되니까 말입니다.”
상대가 문책을 당하던 고문을 당하던 알 바가 아니었던 동천은 본교의 입장에서 크나큰 손실이라는 부분까지만 받아들인 후 껄껄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뒤 신속하게 움직여 살수를 당한 자에게로 신형을 옮긴 동천은 즐겁게 다가가서 몸수색을 하려다가 시체에게 바로 토악질을 선물해주었다.
“우웩! 웩!”
사정화와 지내는 동안 산적들을 쓸어내며 단련되었던 동천이었지만 새삼 머리와 목이 분리되어 피가 흥건한 채 두 눈을 부릅뜬 시체를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이 튀어나왔던 것이었다.
‘흐미! 이런 시팔 새끼들! 살수도 일종의 예술인인데 죽여도 꼭 이따위로 죽여야 마음이 편한 거야? 누가 수준 낮은 살각 새끼들 아니랄까봐.’
그때 토하는 그를 한심스럽게 바라보던 살수 하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지우고 다가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약소전주님?”
빠르게 적응해낸 동천은 돌연 눈을 부릅뜨고 상대를 노려보았다.
“넌 이 새꺄 이게 괜찮아 보이냐? 아니 니들이 무슨 백정새끼들이야? 왜 죽은 사람만 억울하게 토막을 내고 지랄이야? 니들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것들이었어?”
살다 살다 죽이는 방법 가지고도 뭐라고 지랄하는 상관을 처음 본 살수들은 다소 어이가 없다는 표정들을 했다. 자신이 먼저 죽이지 않으면 당하는 상황에서 과정이 어떠하던 죽이기만 하면 되었지, 그것 가지고도 뭐라고 했으니 그들로서는 황당했던 것이다.
“아니 그게…….”
“됐어! 저기 한 놈 또 튀어나오니까 이번에는 잘해. 알았지?”
싫다고 말하면 자신들이 위험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인 살수들은 나무와 수풀에 동화되어 숨어 있다가 보기 드물게 긴장하며 먹이를 기다렸다.
왜냐하면 약소전주의 요구조건을 충족시켜주려면 오직 찌르는 방법으로 단 일합에 승부를 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것도 감지하지 못한 채 때가 되자 섬전과도 같은 공격을 시도했다.
피핏, 푹!
“커헉?”
정확하게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검을 내려다보던 도주자는 억울하다는 듯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그를 죽인 살수는 긴장이 풀어지는지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적어도 다섯 놈을 죽일 정도의 심기(心氣)를 고작 한 놈에게 쏟아 부은 격이로군.’
한두 번은 괜찮다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죽인 사내에게 다가온 동천은 또 신경질을 냈다.
“이런 젠장! 심장을 찌르면 상체가 온통 피바다가 되잖아!”
대게 중요한 물건은 오른쪽 가슴팍 아래에 보관하기 때문에 아무리 돈에 환장한 동천이라지만 피 뭍은 돈까지 반길 턱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래도 돈이 보이면 수거할 것이 분명했지만.
“하지만 약소전주님. 심장은 가장 부위가 넓고 가능한 시체의 손상 없이 쉽게 죽일 수 있는 부위입니다.”
참을 수 없었던 살수 한 명이 용기를 내어 물어보자 인상을 팍 구긴 동천은 그들을 노려보며 아주 소소한(?) 협박을 가했다.
“어쭈, 그래서 지금 반항을 해겠다는 거야? 이 씨팔아, 너 만약에 이 몸이 이따가 도주하는 놈을 공격해서 심장을 제외한 다른 부위로 깔끔하게 죽이시면 어떻게 할거야. 양쪽 팔 잘라내기 어때. 한번 해볼텨?”
동천이 그렇게 할 리가 없었음에도 은근히 쫄아 버린 살수는 급히 얼버무렸다.
“아, 아니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심장이 아니면 딱히 상처가 보이지 않게 일수에 죽일 수 있는 부위가 없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그나마 성대 부위를 허용해주신다면 시도는 해보겠지만 그게 또 공격의 폭이 너무 좁은지라 저희들이 되려 당할 위험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울러 동천은 아무리 자신이 돈에 환장해서 억지를 쓴다지만 그런 것으로 같은 편을 죽이게 할 만큼 생각이 없는 녀석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큰마음 먹고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그렇군. 그렇다면 어쩐다? 음음! 아? 배를 찔러, 배. 복부 말야.”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한 살수가 동천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대꾸했다.
“저기… 그곳은 웬만하면 일검에 죽일 수 있는 부위가 아닙니다.”
그 살수를 힐끗 쳐다본 동천은 그게 뭐 대수냐는 얼굴로 해결방안을 제시해주었다.
“안 죽으면 계속 찔러. 지가 신이 아닌 다음에야 결국엔 죽지 않겠어? 안 그래?”
순간 살수들은 엄청난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져야만 했다.
‘곱게 죽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 죽을 때까지 계속 찌르라니…….’
‘이 새끼, 변태인가?’
‘누가 저 인간 배때기 좀 왕창 찔러줬으면 좋겠구나!’
동천의 진정한 목적을 파악하지 못했던 그들이었기에 당연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의 목적을 알았더라면 더욱 혼란스러워 할지도 몰랐다.
그때 동천이 낮게 소리쳤다.
“또 온다! 이번에는 떼거지야!”
깜짝 놀란 살수들은 재빨리 시체를 뒤로 수습하고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들은 같은 조원도 아닌 약소전주가 알려주었다는 사실에 크게 반성하며 전의를 가다듬었다.
그러는 사이에 뒤쪽으로 숨긴 시체에게서 돈주머니를 챙긴 동천은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었고 말이다.
‘아싸, 땡 잡았다! 흐흐, 이 몸은 역시 돈 버는데 천재라니까?’
인간으로서 정말 최하의 짓거리를 하고 있던 동천은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도주자들을 얼핏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들 중에 자신이 알고 있는 자가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스스슷.
동천 쪽의 살수들이 모자라다고 여겼는지 다른 곳의 살수들까지 합류를 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동천은 서둘러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상대를 확인하기 시작했고 곧 상대가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보니까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다.
“이런 젠장할!”
그는 자신도 모르게 튕겨 오르듯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이, 이쪽으로 어서! 아닌가? 아, 아니, 그냥 갑시다!”
강진구는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신이 속한 황룡표국이 황룡세가와는 아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어서 물자를 전달해주기 위하여 수송을 담당했던 것까지는 좋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담당자가 아니었고, 황룡세가의 이공자인 황룡번(黃龍繁)이 총표두와 함께 실질적인 버팀목 노릇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도 좋았다.
그러나 이곳의 책임자인 남궁세가의 수석당주 만악승이 수고했다며 이틀 정도는 푹 쉬라고 말하자 총표두인 거검(巨劍) 백승우(白勝愚)가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 문제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 총표두가 고개를 끄덕였을 때 모가지를 확 꺾어 놨어야 했던 것인데 새삼 천추의 한으로 남는 강진구였다.
‘제기랄! 뭘 더 처먹겠다고 쉬어 간다며 그 지랄을 떨었던 거야?’
푹 쉬겠다던 총표두는 그가 보는 앞에서 정말로 푹 쉬게 되었다. 적의 칼침에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으니 그게 푹 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제라면 푹 쉬는 것을 넘어서 영원히 쉬게 되었다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흑흑, 안쪽의 사람들은 무사할까요?”
울먹이는 아리따운 소녀의 목소리에 강진구는 내심 고개를 내저었다. 기습을 당한 상태에서 대처는 빨랐지만 압도적인 숫자와 공격력의 차이는 극복하기가 힘든 것이기 때문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애도 아닌데 투정부릴 생각말고 마음이나 굳게 다잡으라는, 다소 인생에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해주고 싶었지만 상대와의 신분 차이가 상당했고 또 팔자에도 없는 보표행(保票行)으로 엮여져 있는 상태인지라 그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였다.
어쨌든 그가 이런 저런 생각들로 대답할 순간을 놓치자 곁에서 그를 보호하듯 가까이 붙어 있던 20대 중반의 사내가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네주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제갈 소저. 안에는 뛰어난 분들이 많소이다. 필경, 충분히 자기 몸 하나는 잘 간수하실 수 있으실 것이오.”
그러자 애써 울음을 참고 있는 중인 소녀가 말이라도 고맙다는 눈길을 보내며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사내는 그녀의 웃음에 만족한 듯 서둘러 대답을 해주었다.
“하하, 물론이고 말고요.”
그러나 이 사내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일행들 중에 아무도 없었다. 이는 제갈 소저라 불린 여인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긍정적인 대답을 듣고 싶어했을 따름이었다.
‘이런 썅! 이런 상황에서도 여자에게 잘 보일 여유가 있으면 돌아가서 걍 싸우든가!’
강진구는 가만히 듣고 있자니 닭살이 돋아날 것만 같았다. 그는 상대가 모용세가(慕容世家)의 3째 아들인 모용상현(慕容尙賢)만 아니었어도 한가하게 여자나 꼬실 때냐고 윽박질렀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그러한 여건이 안 되었던 강진구는 대신에 다른 이야기로 그들의 시선을 모았다.
“일단 숲으로 피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뒤 본련의 다른 거점인 세평(細評)능선 쪽으로 가야 할 듯 싶습니다! 현재로서는 그곳이 가장 가깝고 그쪽에서도 지원군이 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모용상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긴 하지만 세평이 아닌 예곡(刈谷) 쪽에서도 지원군이 오고 있는데, 누군가 그쪽으로 가서 이곳의 사정을 알려주어야 적어도 기습을 당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지가 가지도 않을 것이 뻔하면서 누군가는 가야한다는 식의 대답은 안 그래도 기분이 최저였던 강진구를 심한 짜증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모용상현을 계속 보고있자니 신분의 차이고 뭐고 성질이 나올 것만 같자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일단 상대가 보이지 않는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
‘아! 생각 같아서는 저 새끼 모가지를 비틀어 버린 후 적의 기습에 뒈졌다는 보고를 올리고 싶지만 마음이 넓으신 이 몸이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그래, 인생이 불쌍하니 내가 참자.’
그 와중에 그는 인원 점검 차 자신들의 일행을 힐끔 둘러보았다. 먼저 제일 처음에 보이는 인물들은 제갈세가의 장중보옥(掌中寶玉)이라는 제갈연(諸葛淵)과 그녀의 호위를 맡고 있는 제갈세가의 무사 2명이었다.
남궁세가의 수석당주가 또 다른 천마지가를 손에 넣고자 오련의 정예들을 이끌고 나가게 되었을 때 같이 참전하게 된 제갈세가의 장자 제갈일위(諸葛一位)는 황룡번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던 강진구에게 장난 식으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누이의 안전을 부탁한다고 말한 뒤 진지를 떠났다.
물론, 굳이 강진구가 아니더라도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그녀를 지켜줄 것이 분명했지만 높은 위치의 인물들과 친하게 엮여질수록 자신의 생활이 창창일로(蒼蒼一路)로 펼쳐질 것이 분명했기에 강진구도 흔쾌히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주었다.
그리고 원래 그녀의 호위는 제갈세가에서 따로 지정해준 과묵한 인상의 고수였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고수는 얼굴에 금칠을 한 듯한 늙은이로부터 그녀를 지키려다가 단 10합도 버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해서 자연스럽게 같이 도주하게 된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현재 호위를 맡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