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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52화


“헉헉! 그, 그만! 이 정도면 되었질 않느냐!”

명색이 표두였지만 강진구의 실력은 사실상 일행들 중에서 제일 하위에 속했다. 제갈연조차 무가의 자식답게 적어도 그보다는 실력이 높았지만 그녀는 심성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실전에서는 강진구가 우월하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일수도 있으리라.

“에구, 그럼 그럴까요? 후우, 후!”

사실 동천은 경공만은 자신이 있었던 터라 그다지 큰 어려움은 느끼지 못했지만 일부러 힘들어하는 척했다. 만약에 대비해서 이들보다 약하다는 인식을 주어야 나중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말하거라! 너는 누구이며 또 그들의 습격을 어찌 알고 있었던 것이냐!”

모용현상은 혼전 중에 뚫고 나와서 그런지 옷의 이곳 저곳이 심하게 찢기어 있었지만 큰 상처는 없었던 듯 미약하게 차 오른 숨결을 내공으로 보완하며 본격적인 동천의 심문에 들어갔다.

그러자 고개를 살짝 내저은 동천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단 대화로서 풀어나가기로 했다.

“저기요. 살려주면 된 거지, 그걸 꼭 말해줘야 합니까?”

동천이 범접치 못할 정도의 무위를 보여줬다던가 이런 상황이 아닌 곳에서 만났더라면 모용현상도 다그칠 생각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기습을 당한 상태였고, 만에 하나라도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아주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캐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져 있었다.

모용현상도 자신들을 위기에서 구해준 상대에게 이러고 싶진 않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만 했고 그 짐을 명문세가의 자제인 그가 짊어진 것일 따름이었다.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는 것이 아니나 우리는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에 놓여져 있다. 즉, 서로가 신뢰할 수 없다면 더 이상의 동행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잘 됐네. 이 몸도 더 이상 엮일 필요성을 느끼지……가 아니잖아!’

생각해보니 이들과 이대로 헤어진다면 동천의 입장이 상당히 곤란해졌다. 아까는 급한 김에 을목평에게 얼버무리고 이들을 도와주었던 것이었는데, 이제와 아무 소득도 없이 되돌아가게 된다면 사건이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퍼져서 약왕전의 명예 실추는 물론이고 사부인 역천의 위신에도 크나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했던 것이다.

하는 수 없어진 동천은 강진구와 제갈연 중에 누구를 들먹일까 하다가 제갈연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아무래도 자신이 하인이었다는 것을 밝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으음, 어쩔 수 없군요. 사실 저는…….”

“네가 말하지 않아도 된다! 너의 신원은 이 강진구가 보증할 수 있으니까!”

“에?”

동천이 황당해하고 다른 일행들이 놀라는 가운데 강진구가 상기된 표정으로 그를 덥석 안았다.

“이 녀석아! 그 동안 어디에 있었다가 이렇게 나타나서는 나를 놀래키는 것이냐!”

‘아씨! 이게 아닌데…….’

강진구가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제갈연을 노렸던 것인데 이미 들통이 난 것 같자 동천은 순간 고민했다. 그가 아니라고 잡아떼기에는 제갈연에게 밝혀야할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그는 제갈세가에서 자신의 본명과 유사한 동철(冬鐵)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 않은가.

“아니, 강 표두! 자네가 이 녀석을 잘 안다고?”

모용현상의 물음에 강진구가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렇습니다! 이 녀석은 어렸을 적에 황룡세가에서, 웁! 우프읍!”

가만히 놔뒀다가는 전부다 까발릴 것 같자 동천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렇게 일단 상황을 무마시킨 그는 강진구의 귀에다 소곤거리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전음으로 자신의 사정을 알려주었다.

『아저씨, 저도 만나서 반가운 건 마찬가지인데 제가 황룡세가의 하인이었다는 말은 피해주세요. 아저씨도 보셔서 알겠지만 현재 저는 무림의 고수인 사부님께 무공을 사사를 받은 상태예요. 그런데 여기에서 아저씨가 제 어두웠던 과거를 밝혀버리시면 어떻게 되겠어요? 상당히 난감함은 물론이고 저들이 저를 얼마나 무시하고 깔보겠느냐 이 말이에요. 진구 아저씨. 아저씨도 알 수 있겠지만 제가 하인이었던 생활을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안 그래요?』

속사포 같은 전음이었지만 강진구는 절로 공감이 가는지라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그는 동천이 무림고수의 사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상기시키고는 오랜만에 기뻐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하, 그래? 그럼 어떻게 해줬으면 하느냐!”

그도 모르게 전음이 아닌 직접적인 대화를 시도했지만 사람들은 무언가 의심을 하면서도 서로들 알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자 일단은 하는 꼴을 지켜봐 주기로 잠정적인 합의를 보았다.

그 사이에 동천은 전음으로 계속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요. 제가 예전에 어느 이름 모를 노고수의 제자로서 황룡세가에 들렸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황룡표국의 일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서로 안면을 텄다가 나중에는 아주 친하게 지냈었다고 말해주시면 되요. 전음으로 대답해주실 필요는 없고요, 그냥 고개를 끄덕이신 후 조리에 맞게 말하세요. 나머지는 제가 전음으로 계속 알려드리거나 여의치 않으면 직접 나서서 도와줄 테니까.』

내공의 화후가 낮을수록 전음을 시전 할 때에는 그 특징이 고스란히 입가에 드러나게 된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내공이 쳐질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듯한 입 모양새가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만약에 강진구가 전음으로 대답했다가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공연히 의심을 사게 될 것이 뻔했기에 치밀하게 넘어가자는 뜻에서 미리 언질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동천과 의견일치를 본 강진구는 모용현상을 비롯하여 제갈연 등에게 동천에 관하여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모용현상은 쉽게 받아들일 태세가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를 굳이 귓속말로 주고받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것도 납득을 시켜주게.”

‘개새끼!’

‘씹새끼!’

누가 욕 잘하는 그들이 아니랄까봐 강진구와 동천이 동시에 속으로 모용현상을 욕했다.

넘어가길 하고, 어쨌든 강진구 또한 호락호락한 위인이 아니었다.

“아? 그것은 여기 이 아이가 자신의 사부님의 정체를 숨기고 싶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눈썹을 꿈틀한 모용상현은 마치 잘 걸려들었다는 표정으로 강진구를 다그쳤다.

“허어! 뒤가 켕기는 것이 없지 않고서야 어찌 제자로서 사부의 정체를 숨기고자 했다는 것인가!”

‘씹새끼!’

‘개새끼!’

이번에서는 사이 좋게(?) 서로 욕을 바꾸어서 씨부렁거린 그들. 서로가 알까는 모르겠지만 어김없이 강진구는 대꾸를 해주었다.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동천 이 녀석이 무공수련이 힘들어서 도망쳐 나온 것인지라 가능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또 사부 되시는 분의 정체까지 숨겨서 앞으로의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무공수련이 힘들어서 도망쳐 나온 소년이 되어버렸지만 동천은 크게 마음 상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강진구와 보조를 맞추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의심을 종식시켜 버렸다.

그것을 본 모용상현은 짧지만 이제까지의 가벼웠던 동천의 행동을 보아왔었기에 내심 수긍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존재가 사부의 귀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운 것도 있고, 그래도 자신의 사부를 욕 먹이지 않으려고 이미 언질을 주었다는 이야기로군.’

일반적으로 사부의 가르침이 힘들어서 제자가 도망을 치는 경우에는 당연히 제자가 욕을 먹었지만 그의 사부 또한 제자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하여 은근히 욕을 먹는 경우가 허다했다.

모용상현은 마지막으로 확인 차 동천에게 물어보았다.

“강 표두의 말이 사실이냐?”

동천은 대답은 해주겠지만 상대의 말투가 껄끄러웠다.

‘저게 언제 이 몸을 봤다고 처음부터 자꾸 반말을 찍찍 까는 거지? 기분 참 더러운데 이 몸도 그냥 반말로 까봐? 에이, 봐줬다. 저 새끼는 나중에 어떻게든 잡아가서 박심 새끼랑 사이 좋게 침술연구를 해봐야지.’

봐준다고 하기엔 정말 잔혹한 고문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동천으로서는 그게 봐준 거였으니 무슨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사실이에요. 됐나요?”

“되었다.”

모용현상이 동천의 신변에 대하여 마무리를 짓는 순간 뜻밖에도 제갈연이 나서며 동천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저어, 제가 알기로 동 공자의 이름은 철(鐵)자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천(天)이라고 하시는 건지…….”

물어보는 그녀의 얼굴이 어쩐지 달아오르는 것 같았지만 사람들은 그녀까지 동천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그들의 충격이 당사자인 동천보다 더욱 클 수는 없으리라.

‘컥? 쟤도 알고 있었던 거였어?’

동천과 헤어진 지는 5년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첫사랑의 얼굴을 잊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사실 첫사랑이기보다는 그것과 비슷한 감정으로 지켜보았다가 일방적으로 깨진 사이였지만 제갈연은 분명히 동천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냐!”

모용현상은 이젠 완전히 모든 사람의 궁금증을 대변하기로 했는지 대뜸 나서서 동천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동천은 당황하는 와중에도 생각할 것은 다 생각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는 어렵지 않게 대답해 줄 수 있었다.

“휴우! 제갈 소저께서 모르시기를 바랬는데 사실은 동철이 제 본명 맞습니다. 동천이란 이름은 아까 진구 아저씨와 귓속말로 이야기 할 때 그렇게 불러달라고 해서 아저씨가 제 본명을 속여서 불러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동철입니다.”

마치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의젓하게 인사하는 동천의 모습에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모용현상이 순간 움찔했다. 제법 배운 듯한 폼이자 자신이 이제껏 이름난 고인의 제자를 함부로 대했던 것은 아닌지 걱정했던 것이다.

그때 제갈연은 더욱 붉어진 얼굴로 수줍은 듯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 그랬군요. 허면, 이제부터 저도 가명으로 불러드릴게요.”

제갈연이 그렇게 말했지만 동천으로서는 아니 될 말씀이었다. 애초에 동철이란 이름을 노렸던 것인데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동천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닙니다. 어차피 본명이 드러난 것 여러분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주신다면 사부님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그냥 본명으로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예, 동 공자님.”

어째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자 모용현상이 발빠르게 그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험험! 이제 모든 오해가 풀렸으니 서둘러 지원군과 조우할 수 있도록 세평능선으로 향합시다.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가지 않는다면 그만큼 큰일이 아니겠소이까. 그런 뒤 예곡 쪽의 지원군에게 알리는 문제도 가능하면 생각해봐야 하고.”

맞는 말이자 모두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물론 동천만 빼고.

“그렇게들 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의 안전을 확인하였으니 이만 헤어져야할 듯 싶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더냐! 이게 얼마만의 만남인데 이대로 그냥 헤어진다는 소리야! 안 돼! 이대로는 못 헤어져!”

강진구가 그 무슨 소리냐는 듯 강력하게 동천을 몰아 부쳤다. 모용현상은 그때 제갈연의 표정을 살폈는데 그녀도 다소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으로 모용현상의 답은 내려졌다.

“강 표두! 저 소년도 어엿한 무림인일세! 각자 나름대로의 사정이 존재하는 법인데 그것을 자네가 강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되겠는가? 내 자네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 또한 아쉽지만 차후에 자네의 표국에 들리겠다는 약조 정도만 받아 놓고 지금은 우리의 갈 길을 어서 가세나.”

만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만난 마당에 강진구의 성격상 포기할 리가 만무했다.

“절대로 안됩니다! 저는 수긍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모용현상은 내심 잘 되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강진구에게 단호히 말했다.

“그럼 자네는 이 소년과 따로 행동하게!”

‘자네는 어차피 짐만 될 뿐이니까.’ 라는 말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현재 모용현상의 본심이었다. 표두 치고는 낮은 실력에 용케도 버텨왔다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한시가 급한 이 때에 실력이 낮은 자하고 말싸움을 할 시간이 없었다. 제갈연과 동천을 떼어놓으려는 속셈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정말로 노닥거릴 만큼 한가한 그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크윽!”

강진구의 입이 거칠기는 했어도 그는 의리를 모르는 인간은 아니었다. 비록 장난 식이었다지만 제갈연을 보호해주기로 약조를 했던 만큼 어떻게 해서든지 그 임무를 완수할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갈등하던 그는 하는 수 없이 한발 물러서기로 했다.

“동천아. 아니, 동철아. 모용 공자님의 말씀대로 근 시일 내에 꼭 황룡표국에 들리겠다는 약속을 하거라.”

동천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므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이번 일이 잠잠해지면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갈 테니까.”

“그래, 믿겠다!”

이제 헤어지는 분위기이자 제갈연도 동천에게 한 마디 건넸다.

“저도 아쉽지만 다음에 또 보게 되었으면 해요. 제갈세가에도 꼭 들려주시길 바래요.”

“하하, 알겠습니다.”

“어서들 갑시다!”

어쩐지 신경질적인 모용현상의 다그침을 끝으로 그들은 재빠르게 장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동천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간간이 뒤를 돌아보는 강진구와 제갈연에게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진구 아저씨도 많이 늙었네? 예전에 잠깐 보았을 때 부인도 있다던데 애는 있나? 흐음! 그건 그렇고, 제갈연이 도연을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녀석이 아직 당도하기 전에 제갈세가를 나왔던 모양이로군. 근데 걔는 예나 지금이나 수줍음을 참 잘 탄단 말야?’

수줍음에 관해서 생각하니까 갑자기 소연이 생각났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화정이하고 호연화도 잘 있나 모르겠고……. 쳇, 그나저나 무언가 일급 정보라도 낚아채야 돌아갈 때 떵떵거리며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이제 어떻게 하지?”

아까 까지만 해도 그들을 따라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위험부담이 너무도 컸다. 오련의 진영에는 황룡세가의 인물들이 많았기에 동천으로서는 쫓아가기가 심히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뭐 어떻게는 되겠……, 응?”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놀라서 물러서려던 동천은 상대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눈살을 찌푸리며 폼을 잡고 말했다.

“이제껏 미행한 것이냐?”

섬살부대주 약산(藥山)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송구하옵니다. 그것이 아니오라 을목 대주님께서 약소전주님의 안전을 염려하시어 소신을 딸려보내신 것입니다.”

동천은 그에게 물었다.

“설마 그거 알려주려고 나타난 것은 아니겠지?”

그것 때문에 나타난 것 맞았다. 덕분에 내심 당황한 부대주는 서둘러 다른 말을 꺼냈다.

“무, 물론입니다. 대주님께서는 약소전주님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하시어 자세한 경위를 알아오라고 명하시기도 했습니다.”

“뭐야? 그거라면 내 따로 금면마제님께 사정을 설명해주겠다고 을목 대주에게 신신당부를 해주었을 터인데?”

진땀을 흘린 약산은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을목 대주를 계속 팔아 넘기기로 했다.

“소인은 그저 대주님의 명령으로 약소전주님의 뒤를 따라나선 것뿐입니다. 부디, 넓으신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아아, 은혜를 베풀건 은행나무침대에서 드러눕건 간에 지금 이 몸은 다른 문제로 심경이 복잡하니까 잠시만 내 눈앞에서 꺼져주겠나?”

말투가 틀려진 것으로 보아 계속 버텼다간 구타를 당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약산은 있어 달라고 해도 이곳에 있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존명!”

스스슥!

정말 빠르게 장내에서 벗어난 약산의 행동은 동천이 무의식적으로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게끔 만들 정도였지만 그게 다였다. 동천이 그것 가지고 감탄을 한다느니 호기심을 갖는다느니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어쩐다?”

그냥 돌아가기에는 큰 부담이 되었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또 막막했다. 잠시 그 문제로 고민하던 동천은 아까 모용현상이 무심코 꺼냈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아, 그렇구나! 하하, 그걸 말해주면 되는 거야! 섬살부대주!”

“옛! 부르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

“자네는 이 길로 우리측이 기습한 거점으로 돌아가서 오련의 지원군은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에서 몰려오고 있으니 병력이 모자라다 싶으면 서둘러 본진으로 후퇴하라고 금면마제님께 전하게!”

흠칫한 약산은 그 말이 사실이냐는 눈빛으로 동천을 바라보았다. 동천은 그 즉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우리가 되려 협공을 당하길 바라는가?”

“아닙니다! 즉시 출발하겠습니다!”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한 약산은 고개를 숙여 사죄한 뒤 전속력을 다 해 돌아갔다.

그러자 이제야 되었다고 생각한 동천은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팔짱을 꼈다.

“큭큭큭! 역시 이 몸은 천재라니까? 파하하하! 캬하하하하!”

허리가 꺾여져라 상체를 뒤로 젖히고 웃어 제키던 동천은 어느 순간인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얼레, 난 왜 안 따라간 거지?”

휘이이이잉!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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