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69화
“글쎄요. 제가 해약을 지니고 있긴 하지만 해독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독전의 말로는 사흘이면 된다고 하였으나, 아마도 그것보다는 약간의 시차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나흘에서 닷새쯤? 여하튼, 그 이상은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그들은 한시 바삐 위험한 이곳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행여나 동천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으므로 어린아이들처럼 시일을 앞당겨 달라고 보채지는 않았다.
“알겠소. 그럼 잘 부탁하오.”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헌데…….”
잘 나가던 동천이 돌연 표정을 바꾸며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의 행동 하나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명호월은 이 새끼가 왜 갑자기 이러나 했다.
“무슨 일이오. 혹, 문제라도 생긴 것이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허! 답답하구려! 속 시원히 좀 말씀해주시오!”
동천은 똥줄이 타는 듯한 그들의 표정을 잠시 즐기다가 심각한 척 대답해주었다.
“음! 다름이 아니라 오늘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지길, 두 분께서 흑마궁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본교에 건네주신다면 해독을 해드리고 거부할 시에는 계속 가둬 놓으라는 명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두 분께서 정보를 제공해주시지 않는 한 저도 어쩔 도리가 없음이니 이것 참!”
이명호월은 빤히 보이는 어린놈의 수작에 냉큼 쳐죽이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는 것을 느꼈다. 그런 문제라면 당장에라도 해결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두월은 신중하게 말했다.
“끄응, 확실히 어려운 문제구려. ……좋소! 그 대신, 내 약소전주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독이 조금씩 해독될 때마다 그에 맞게 정보를 들려주겠소이다. 부디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소.”
체질상 감질나는 것을 싫어하는 동천에게 대놓고 이해해 달라고 말하다니! 그들은 미래의 검은 그림자를 발견하지 못한 듯 위험한 발언으로 줄다리기를 하자고 요청해왔다. 잠시 어처구니가 없었던 동천은 빙긋 웃으며 그들의 요청을 수락해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선배님들만 믿고 상부에는 그렇게 일러두겠습니다.”
“믿어주어서 고맙소.”
“하하, 이제 한배를 탔으니 믿어야지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강두월도 껄껄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지당하신 말씀이외다. 다시 한번 감사 드리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그럼 시술은 정확히 한 시진 후에 시행할 터이니 그때까지 돌아가셔서 편하게 쉬고 계시길 바랍니다.”
“알겠소이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그들은 밖에서 대기 중인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돌아갔다. 동천은 그제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감히 이 몸과 흥정을 해? 그냥 확 불쏘시개로 똥구멍을 지져줄 까보다.”
그래도 정보를 빼내는 문제는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자 생각 이상으로 날뛰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쳇, 지조 없는 늙은이들! 그래도 명색이 충성을 맹세한 곳인데 지들 목숨 챙기려고 정보를 술술 불기로 하다니!”
똑같은 상황이라면 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못할 인간이 아니었던 동천은 절대로 자신은 저들처럼 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새삼 다짐했다. 그렇게 구시렁거리며 밖으로 나온 그는 마지못해 경계를 서고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 무게를 잡고 말했다.
“이보게. 혹시, 이곳에 잡아 놓은 사슴이 있는가?”
뜬금없는 사슴 이야기에 긴장한 사내는 동천의 눈치를 봐가며 대답했다.
“사슴은 없고 아까 주방에서 보니까 손질을 한 토끼 몇 마리는 있었습니다요.”
“음, 이보게. 너는 지금 이 몸이 토끼를 원한다고 보는가?”
이야기 중에 반말이 섞여 나왔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징조였다. 다행이 눈치가 빨랐던 사내는 재빨리 엎드려 빌며 소리쳤다.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소인이 당장에 뛰쳐나가 냉큼 사슴을 구해 바쳐 올리겠습니다!”
그제야 활짝 웃음꽃이 핀 동천이 그를 손수 일으켜주며 말했다.
“그래주겠는가? 그럼 부탁하네. 주의할 점은 꼭 산채로 잡아와야 한다는 것이고, 내일 아침까지는 잡아와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구석진 곳에다 숨겨놓아야 한다는 것일세. 그냥 우리에 가둬놓듯 먹이도 좀 주고 말야.”
“예, 알겠습니다! 꼭 명심하겠습니다!”
시키는 것도 더럽게 많다고 생각한 사내는 이래서 사람들이 약소전주와 엮이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후회의 한탄을 곱씹으며 서둘러 물러갔다.
“하하, 어서들 오십시오. 자, 편히 누우시고요.”
동천이 해독 시술을 빙자하여 인체실험을 한지도 오늘로서 사흘째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파리한 얼굴에 힘이 없는 듯한 이명호월의 모습은 누가 봐도 눕기 싫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늘이 사흘째인데 역시 어렵겠소?”
“이틀동안 침술과 기공치료만 해주었소! 해약이 있기는 있는 것이오?”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던지 침묵하던 강비월까지 가세하고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독 기운을 조금씩 덜어내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 양이 너무도 미미했고, 치료라는 명목 하에 엄청난 고통과 메스꺼움을 유발시켰으니 시술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치료를 제대로 하는 것인지 의심만 불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강비월의 말처럼 해약을 주지도 않았고 말이다.
‘어쭈, 이것들이 풀어주니까 지들 처지도 모르고 슬슬 기어오르네? 뭐 하긴 해약을 한번도 먹여준 적이 없으니 발광을 할 만도 하지.’
의외로 순순히 인정한 동천은 품속에서 작은 목갑을 꺼냈다. 자연히 이명호월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고 동천은 목갑을 열어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손가락 마디보다 약간 작은 듯한 검은 단환이 보였다.
“이것이 바로 그 해약입니다. 실은 이 약을 드시기 전에 몸이 먼저 받아들일 수 있게끔 체질을 변형시켜야 해서 시술만 했던 것인데 이렇게까지 조급해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이제 체질개선은 되었으니 너무 노여워 마시고 한 알씩 집어서 꼭꼭 씹어 삼켜 드시기 바랍니다.”
그 말을 듣고 헛기침을 한 이명호월은 그런 건 일찍 좀 말해주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누가 뺏어갈 새라 냉큼 집어서 입안에 넣고 씹었다.
“욱?”
“커헉?”
딱 한번 씹었을 따름인데 입안에서 썩은 구린내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쓰디쓴 악취가 혀를 녹일 것만 같은 강렬함을 발산했다. 살아오면서 별의 별 단환을 다 먹어봤어도 이런 최악의 단환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단환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혀가 마비되었는지 ‘어버버!’ 소리만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들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던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아마도 몸 안의 독과 상충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역할 것입니다. 참고 삼키셔야만 하니, 입안에서 침과 완전히 섞여질 정도로 개어서 삼키시기 바랍니다. 이건 중요한 것으로서 침이 제대로 섞이지 않으면 위가 뚫릴 수도 있으니 꼭 제 말대로 하십시오. 알겠습니까?”
토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 판에 되려 입안에서 형체가 없어질 정도로 개어서 삼키라고 말하자 그들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밀가루처럼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동생인 강비월은 ‘그냥 토하고 죽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었으니 얼마나 지독한 고통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으리라.
“웁! 우웁! 꿀꺽! 크어어!”
‘에이, 시끄러.’
겨우 삼킨 그들이 죽겠다고 난리가 났는데 그 와중에서도 동천은 시끄럽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 표정은 순간적이었고 이명호월로서는 동천의 표정을 살펴볼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힘드실 테지만 잘 참으셨습니다. 이제 이틀 정도만 더 드신다면 말끔히 나으실 수 있을 겁니다.”
‘헉? 이, 이걸 이틀 간 더?’
‘차라리 죽여라!’
그렇게 격려 아닌 격려를 해준 동천은 두 형제의 얼굴에서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깊은 절망의 그림자를 잠깐(?)동안이지만 엿볼 수 있었다. 동천은 할 말을 잃은 그들에게 말했다.
“목갑 안을 보셨다시피 총 여섯 알 중에 두 알을 드셨으니 하루에 한 알 꼴입니다. 먹기가 힘들다는 것을 듣긴 들었는데 이 정도까지 힘들어하실 줄은 몰랐지만 이틀만 눈 딱 감고 참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입안에서 계속 헛구역질이 넘어왔지만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고작 이틀만 참으면 된다는 소리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살려고 먹는 것인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허허, 알겠소이다. 처음이라 당황했던 것이지, 다음부터는 이런 추태를 보여주지 않고 삼킬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소이다.”
동천은 노력 안 하면 니들이 어쩔 거냐는 생각을 가졌지만 천만다행이라는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셔야지요. 헌데, 정확히 어떠한 맛을 느끼셨습니까? 그 맛의 정도에 따라서 현재 두 분의 해독 정도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약소전주의 목소리에서 심각성이 느껴지자 그들은 아직도 입안에서 맴도는, 생각하기도 싫은 구린 썩은 내를 음미하기 시작했다.
“음! 이렇게 역한 냄새는 내 생전에 처음이었소. 거기에다 썩은 걸레 냄새와 무언가 익숙한 구린내가 느껴졌는데……. 아? 방귀 냄새인가? 어쨌든 그랬소이다.”
“나는 방귀 냄새보다는 똥 냄새인 것 같았소이다, 형님.”
비교적 정확한 평가에 동천은 ‘시궁창 물이 약했나?’ 라고 생각했다. 사실 동천이 해독약이라고 준 것은 엊그제 사슴을 산 채로 잡아오라고 시켰던 사내가 잡아온 어린 사슴의 똥이었다.
그래도 가공처리(?) 없이 그냥 먹이면 탄로 난다는 것은 알았던지, 똥 냄새 좀 가시라고 시궁창 물에 잠깐 담갔다가 햇볕에 말린 뒤 다시 담그고 꺼내기를 반복했던 사슴 똥이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어제부터 먹였어야할 똥이었지만 사슴을 잡아온 사내가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고 육질이 더 야들야들한 새끼 사슴을 잡아왔던 것인데 이 어린 사슴이 긴장을 했는지 똥을 싸지 않아서 어제 저녁에야 겨우 똥을 얻어낼 수 있었다. 당연히 사슴을 잡아온 사내는 동천에게 구타를 당했다.
“음! 대변 냄새까지 난다는 말씀입니까? 이거 중독 증상이 심각하군요. 그 독에 중독되면 약의 맛이 상당히 구린 법인데 대변 냄새로까지 느껴진다니……. 이거 정말 심각한데요.”
자고로 사람 목숨이 달린 일만큼 사기 치기 쉬운 순간이 없었다. 덜컹, 심장이 내려앉은 그들은 언제 고고한 척 굴었냐는 듯 파랗게 질린 얼굴로 동천에게 매달렸다.
“그, 그 정도란 말씀이오?”
“설마 이미 늦어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우웁! 이 퇴물들이 감히 어디에다 똥 냄새를! 아주 주둥이를 꿰매버릴 까보다!’
원인 제공자는 생각 않고 결과만 보는 동천이었다. 그는 재빨리 그들을 진정시켰다.
“자자, 우선 자리에 다시 누우십시오. 다행히도 치유할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른 것은 아닙니다. 그 대신 치료시간이 2배정도 늘어날 것 같은데… 이해해주실 수 있겠지요?”
살 수 있다는데 어찌 이해고 자시고 따질 수 있겠는가. 그들은 목이 빠져라 고개를 끄덕였고 가식적인 웃음을 건넨 동천은 침통을 꺼내 시술을 시작했다.
박심에게 하던 것을 그들로 바꿔 실험하는 중인지도 모르고, 이명호월은 심하게 아프거나 뼈를 쑤시는 듯한 고통들이 모두 독을 치료하기 때문에 생겨난 고통인줄로 착각했다. 그렇게 한 시진정도 침으로 가지고 논 동천은 늙은이들이 헐떡거리며 힘겨워하자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다 뒈지면 묘비명도 개 쪽일텐데 아직 죽으면 쓰나? 힘들 내쇼, 침술은 이제 그만할 테니까. 큭큭!’
“기공치료로 넘어가겠습니다.”
부르르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들의 몸이 절로 떨렸다. 침술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지만 이건 내부적으로 독이 휩쓸고 지나가기 때문에 뼈와 장기가 녹아나는 듯한 고통이 찾아들었으니 당연할 수밖에.
“커윽!”
“큭! 으악! 악!”
일단 단전 주위의 독을 분리시킨 후 그들의 장기 하나 하나에 알맞게 투입시켰다. 그리고 독의 기운에 따라서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시간을 몸으로 체득했다.
동천이 이명호월처럼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잠깐만 한눈을 팔아도 독이 주입된 곳이 녹아버리기 때문에 이때만큼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간이 가장 오랫동안 버티네? 위는 어제 잠깐 시기를 놓쳐서 구멍이 뚫릴 뻔했으니 오늘은 넘어가기로 하고. 이제 좀 쉬어 볼까나?’
시시각각 변하는 그들의 몸을 관찰하며 긴 시간을 보낸 그는 더 이상은 피곤해서 무리였던지 조용히 이명호월의 수혈을 찍었다. 그리곤 그들의 품을 뒤져서 무공서적들을 꺼내들었다.
“어디 보자! 이 몸이 어제 어디까지 읽어주셨더라?”
태천비록(太天秘錄)이라고 쓰여진 무공기서를 중간부터 읽기 시작한 동천은 바닥을 뒹굴며 건성으로 익히는 듯 보였지만 사실은 한자 한자 공을 들여서 읽고 외우는 중이었다.
태천비록은 상하권으로 나뉘어진 비급이었는데 상권은 동생이 하권은 형이 지니고 있었다. 상권은 이미 다 외워서 하권을 보는 중이었지만 간혹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 상권을 들여다보면 빠른 이해가 가능했다.
아무래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는 것보다는 직접 보고 확인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에이! 이 몸이 별로 안 좋아하는 검법이 주를 이뤄서 아궁이에다 쳐 넣으려고 했는데, 그나마 신법이 괜찮아서 봐준다!”
아무리 뛰어난 무공이라도 배우는 당사자가 기초가 부실하면 대성할 수 없듯이 지극히 뛰어난 신법을 소유하고 있는 동천은 예전에 역천이 참고하라고 갖다줬던 신법의 기초들을 베개로 사용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아쉽게도 그는 신법에 대한 사고관의 폭이 비좁았다.
그래서 요새 몇몇 신법들을 접하면서 내공의 소모가 적어지고 실력까지 늘게 되자 나중에 본교로 돌아가면 암흑대서고를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기도 했다.
탁!
소리나게 책을 덮고 난 동천은 읽는 것도 심기를 소모해서인지 배도 고프고 해서 마지막 한번의 분량만을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혹시나 헷갈리지 않도록 두어 번 확인까지 하면서 상권과 하권을 맞게 돌려주었다.
“으그그극! 아, 뜻깊은 일을 했더니 역시 좀 힘들군! 이제 이 늙은이들을 깨워서 돌려보내 볼까나?”
기지개를 켠 동천은 그들의 수혈을 풀어준 후 진기를 흘려보내 자극시키는 방법으로 이명호월을 자연스럽게 깨웠다. 그들은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치료 와중에 기절했던 것이라고 착각하며 멋쩍은 얼굴로 잠에서 깨어났다.
“으음, 추태를 보이지는 않았나 모르겠소.”
잘도 안다고 씨부렁거린 동천은 고개를 내저으며 살며시 웃었다.
“아닙니다. 다행이 치료가 성공적이어서 독을 많이 뽑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가 보라는 듯 파랗게 물든 손수건을 가리켰다. 이어 그는 자세히 확인하지 못하도록 불로 태워버렸다. 다행이 독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던 이명호월은 안도의 한숨만 내쉴 뿐 가까이 다가갈 생각조차 없었다.
“고맙소이다! 내 이 은혜는 절대로 잊지 않겠소!”
‘잊기만 해봐.’
우려먹을 것을 다 우려먹고도 아직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돌아가 쉬시면서 흑마궁의 정보를 써주시는 것, 잊지 말아주시고 말입니다.”
강두월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를 말씀이외까. 염려 붙들어 매시구려.”
“하하,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안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참! 혹시 사슴고기 좋아하십니까?”
강두월은 눈을 약간 치떴다.
“사슴고기요?”
“예, 수하들이 근처에서 길을 헤매던 어린 사슴을 잡아왔다 기에 적당히 소금을 뿌려서 통 구이를 만들라고 시켰습니다. 양은 충분하기에 원하신다면 조금 떼어드리고 싶어서 물어봤던 겁니다.”
원하던 것(똥)을 얻어 필요가 없어지자 시식 좀 하게 잡아죽이라고 미리 언질을 준 상황이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지 혼자 다 먹을 수도 있었지만 나눠먹는 미덕을 보여주었다.
달리 생각하면 ‘네가 먹은 해약의 출처가 바로 이놈의 똥구멍이다.’ 라며 골탕먹이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동천은 순수하게 그들의 저하된 체력을 보강해주고자 권해준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참으로 비참해지는 이명호월이었으니 믿어주기로 하자.
“허허, 권해주시는데 마다하면 예의가 아니지요.”
“약소전주, 생각해주셔서 감사하외다. 고맙게 먹겠소이다.”
동천은 이명호월이 점잖은 척 대답했지만 침이 고여서 꿀꺽 삼키는 그들의 목젖을 확인하고는 내심 자신이 이들을 너무 굶겼구나 자책했다. 음식은 제때에 주었지만 그 수준이 낮은 편이어서 고기를 준다는 소리에 환장을 하는 눈빛들을 보였던 것이다.
‘쯧쯧, 불쌍한 늙은이들……. 좋아! 내가 인심 썼다! 오늘 사슴고기 원하는 만큼 풀어줄 테니까, 그거 배터지게 먹고 내일도 힘내자고! 알았지? 아자! 아자아자! 힘내 영감들!’
결론은 오늘 잘 먹고 내일 웃는 낯으로 생체실험에 참여하라는 소리였다. 역시나 본인들은 몰랐지만 비참해지는 이명호월. 그렇게 하루해는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