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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70화


드러나는 조각들.

“약소전주님, 당문에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명호월에게 사슴 고기를 먹인지 이틀이 지났다. 그들이 해약이라고 믿고 있던 사슴 똥도 오늘 아침에 다 먹인 상태였다. 이제 슬슬 완치를 시켜주지 않으면 의심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은밀히 수소문했던 당문의 인물이 도착했다고 하자 동천은 역시 하늘님은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조용히 이곳으로 모시게.”

“예, 알겠습니다.”

사내가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서운 눈빛에 흑의를 걸친 마른 체형의 노인이 소리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상대가 얼마나 기척이 없었던지 노인을 안내해준 사내가 ‘이곳입니다.’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동천이 감지력이 없었더라면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을 정도였다. 결론은 상대가 고수라는 소리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바로 약왕전의 약소전주입니다.”

동천의 정중한 인사에 노인도 나름대로 예의를 차려주었다.

“반갑소. 당문의 좌장로 당찬이오. 남들은 본노를 섬독전수라고 부른다오.”

그에 관해서는 이미 조사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일명 당문의 파수꾼. 나쁘게 말하면 집 지키는 개라고 불리는 노인이었다. 방긋 웃음진 동천은 당찬의 소개가 끝나자 먼저 형식적인 말부터 꺼냈다.

“손녀사위 분의 일은 정말 안되었습니다.”

꿈틀!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거론하자 순간 당찬의 얼굴에 스산함이 어렸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족사가 들춰지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교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더더욱 그랬고 말이다.

“순수한 호의로 받아들이겠소. 허나,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구려!”

누가 봐도 자신의 경고를 가볍게 여길 시에는 무력이라도 불사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동천은 순수(?)하게 애도를 표해준 것인데, 그걸 가지고도 지랄이자 정말 성깔이 더러운 늙은이라고 생각했다.

“아,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사과 드립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명호월을 쫓고 계시다고요?”

“그렇소.”

“그럼 지금 이곳에 그들이 잡혀있다는 것도 알고 계시겠지요?”

츠파팟!

기다렸다는 듯 당찬의 안광에서 묘한 빛 무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살기를 갈무리한 듯한 섬뜩함 마저 느껴지는 싸늘한 눈빛이었다.

“그래서 노부가 이곳이 암흑마교임을 알고서도 찾아온 것이 아니겠소!”

‘시팔, 깜짝이야. 늙어서 내세울 것이 눈알밖에 없나, 왜 애꿎은 이 몸에게 살기는 뿌리고 지랄이지?’

동천은 자신이 어리고 경험이 없어 보이자 상대가 유리한 상황으로 이끌고자 위협을 가했던 것은 아닐까 추측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봤자 이곳은 자신의 안방이었다. 상대를 초대한 사람 또한 자신이었다. 겁먹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무언가 마음에 거슬리는 부분이 계신 것 같은데, 저희도 한가해서 당문의 좌장로님을 모셔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으시다면 안전하게 고개 밑까지 모셔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흥! 지금 노부를 협박하는 것이오?”

눈가에 작은 경련을 일으킨 당찬은 확실히 처음보다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동천은 자연스럽게 미소하며 대답했다.

“후후, 당치도 않으십니다. 연륜으로 보나 뭐로 보나 좌장로님께서 한참이나 위이신데 제가 감히 허튼 짓을 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이유 모를 분노를 자제해주십사 부탁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상대를 만만히 볼 수가 없음을 깨닫게 된 당찬은 아무래도 자신이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이자 우위를 점할 수 없다면 평등한 조건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굳었던 표정을 풀었다.

“좋소. 노부가 필요 이상으로 무례를 범했음을 인정하오. 아마도 요 근래에 다 잡았던 잡종들을 허무하게 놓친 나머지, 신경이 예민해졌던 상태인 듯 싶소이다.”

그러자 동천은 나직이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쳇, 진작에 그럴 것이지. 다시 한번만 그랬단 봐라. 협상이고 뭐고 확 뒤집어엎을 테니까.’

어쨌든 그는 말했다.

“하하,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제가 다 민망할 따름입니다. 자아! 그럼 저희 쪽에서 그들을 인계하는 조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잠깐! 한가지 조건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조건이 있단 말이오?”

동천은 무언가 잘못 된 듯 하자 살짝 안색을 굳혔다.

“응? 저희 쪽에서 접선을 시도할 때 접선자가 아무 말도 없었습니까?”

“금시초문이오!”

너무도 단호한 대답에 동천은 약간 당황하는 눈치를 보였다.

“이런 멍청한 놈을 봤나! 아? 좌장로님을 일컫는 게 아닙니다. 사실 저희 쪽에서 4가지 조건을 제시하기로 했었는데, 임무를 맡은 자가 이런 일에 신참이었던지 긴장을 하여 미처 그 부분을 언급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잠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떠올린 당찬은 이내 안색을 굳히며 절대로 수긍할 수 없다는 눈빛을 내비쳤다.

“그건 그쪽의 잘못이외다. 내용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많은 조건을 수락해줄 수는 없으니 대폭 줄여서 요구해주시길 바라오! 또한, 노부가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운 조건은 현실적으로 이 자리에서 해결하기에는 무리라는 것도 감안해주시고 말이오!”

“으음!”

기세가 오른 당찬의 요구와는 대조적으로 심각해진 얼굴이 된 동천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당찬이 4가지 조건을 다 수용해주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하자고 대답해주는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한참을 끙끙거리던 동천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확실히 저희 쪽에서 크나큰 실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도 혼자서 결론을 내리기가 버거운 상황입니다. 하여, 신속히 자체회의를 거친 후 돌아올 터이니 잠시만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당연히 당찬은 흔쾌히 허락해주었다.

“음, 어쩔 수 없구려. 그렇게 하십시다.”

‘어린놈 치고는 배짱과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아이는 아이로군. 애초에 접선자의 실수를 거론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4가지의 요구조건이었다고 해도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 한 들어주게 되었을 텐데. 허허허!’

누가 뭐라고 해도 상대방이 미리 언질을 주지 못한 잘못이 있었다. 아무리 상대가 열쇠를 쥐고 있다지만 무뢰배들의 협상이 아닌 이상 잘못한 쪽에서 부담을 떠 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내심 뜻밖의 행운에 기분이 좋아진 당찬은 기운 없이 나가는 약소전주라는 청년을 바라보며 안 됐다는 듯한 얼굴을 내비쳤다. 아마도 상대는 이번 일로 큰공을 세워보려다가 되려 망신만 당하고 말 팔자리라!

그렇게 생각되어지고 있던 동천은 그곳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서 요리사가 차려주는 간식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얌냠! 4가지 조건은 개뿔……. 크큭! 그 늙은이 지금쯤 아주 신나서 입이 찢어지고 있겠지? 큭큭큭!”

이명호월의 처리문제는 동천이 직접 사정화에게 인계를 받은 사항이었다. 이건 교주나 부교주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그의 권한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그 말인즉, 애초에 그가 생각한 요구조건은 4가지가 아니었고 방금 전에 그가 보여주었던 실수는 다 연막작전이었다는 것이다.

“꺼윽! 아, 맛있다. 자아~, 이제 곧 돌아가서 2개로 압축되었다는 말씀을 좀 드려 볼까나? 프하하하!”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고자 난감한 얼굴로 돌아간 동천은 첫째, 은자 2만냥을 인도할 것. 둘째, 사천당가가 소유한 사업채 중에 몫 좋은 곳의 주루를 자신의 명의로 인도할 것. 이 2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당찬은 은자 2만냥이야 당문에서 내건 이명호월의 현상금이었으니 순순히 허락했지만 주루를 인계하라는 두 번째 조건에는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무슨 저의로 주루를 달라는 것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본문의 영역에서 버젓이 자리를 잡고 세력을 넓혀보겠다는 속셈인가? 아니면 그저 동태를 살피는 수준에서 간혹 교내의 인물들이 쉬며 거쳐갈 수 있도록 중간거점을 만들겠다는 속셈? 으음, 워낙에 간교한 마교도들이다 보니…….’

그냥 돈 좀 벌어보겠다는 속셈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던 당찬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하니 개인의 잇속을 차리고자 주루를 원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재촉이 이어지자 상념에서 깨어난 당찬이 꺼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주루 정도는 넘겨줄 수도 있소이다. 하지만 본문의 영역이니 만큼 암흑마교가 버젓이 들어서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구려. 안 그렇소이까?”

미처 그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던 동천은 자연스럽게 수긍했다.

‘응? 것도 그러네? 뭐 그렇다면 야…….’

당찬에게는 어려운 문제였지만 동천에게는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쉬운 문제였다.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떼돈을 벌게 해주는 주루만 있다면 어디든지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좌장로님께서 걱정하시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쪽에서도 사정이 있는 것인데, 역시 어렵겠습니까?”

당찬은 상대가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보이자 옳다구나 쐐기를 박았다. 그는 역시 경험이 부족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소. 아무래도 본문의 영역으로는 힘들 것 같으니, 조금 외곽지역이긴 해도 성도(成都)에서 약간 떨어진 인수(仁壽) 지역이라면 어떻게든 손을 써봐 주도록 하겠소이다.”

말이 약간이지 인수는 성도에서 수백 리 길도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였다. 하지만 동천은 돈이 목적이었으므로 내심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끄응, 좋습니다. 허나 그만큼 벌이가 괜찮은 곳이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주시길 바랍니다.”

“허허, 여부가 있겠소이까.”

기분 좋게 대답한 당찬은 상대가 일이 뜻대로 안 되자 수입이라도 챙겨보려는 듯 몫이 좋은 곳을 계속 강조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기루 인계가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당찬과 당문이 노리는 것은 이명호월과 더불어 덤으로 얻어질 수 있는 천마도해의 존재였다.

극비로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흑마궁이 이명호월을 받아준 이유가 시중에 나도는 지도들과는 질적으로 틀린 상급의 천마도해를 흑마궁주에게 바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문은 이명호월을 집중적으로 추적했기에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지만, 다른 세력들은 그들을 주시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턱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까지 얻는다면야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지!’

이명호월도 무인인 이상 따로 사본을 만들어두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쉽게 드러날 곳에 숨겼을 리도 만무했고 말이다. 여하튼 당찬은 남아도 크게 남아도는 거래에 성공했다고 자신하며 말했다.

“허면, 인계 절차는 어떻게 하시겠소?”

“좌장로님께서 돌아가실 때 저희 쪽에서 사람을 하나 딸려 보낼 예정입니다. 무턱대고 훗날에 찾아가서 요구하는 것은 본교의 취향이 아니므로, 좌장로님께서 안면을 익히신 자에게 제 명의로 인계를 해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당찬은 일단 마음을 굳히자 시원시원하게 진행시켰다.

“좋소이다. 모두 수용하기로 하겠소! 그리고 은자 2만냥은 그때 같이 건네주는 것으로 합의를 봅시다!”

드디어 자신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자 동천은 속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에헤라 디야~ 얼쑤! 하늘님이 보우하사! 아이고, 좋아라!’

그렇게 합의는 이루어졌다.

“형님, 갑자기 이렇게 우리를 풀어주다니. 무언가 꿍꿍이 속이 있는 것 아닙니까?”

“기분 나쁜 소리 말거라. 상대로서는 해독도 다 해주었고 흑마궁의 정보까지 충분히 얻어냈으니, 이제 우리의 존재가 귀찮아져서 쫓아낸 것이 분명하다.”

“으음, 그게 사실이라면 반길 만한 일이지만…….”

아침까지만 해도 좀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던 약소전주가 느닷없이 찾아와 독을 해독해주었다. 그러더니 정중히 떠나달라며 축객령까지 통보했다. 이는 분명히 반길만한 일이었지만 어째서 기분이 더러운 것일까?

그들은 독의 존재를 몸으로 감지할 수 있는 고수였기에 해독이 되었다는 약소전주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 자체가 너무도 급작스러웠다.

더군다나 불안한 것이 소량이지만 아직 독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독이 완전히 배출되어야만 금제가 풀리게끔 손을 써 뒀다고 말해준 부분이었다. 내공이 없는 그들은 이류무사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기에 마냥 불안했던 것이다.

“어쨌든 하루 정도만 버티면 여독(餘毒: 남은 독)이 대소변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버텼다가 후일을 도모하기로 하자.”

“예, 형님!”

그렇게 힘차게 대답하는 강비월의 눈앞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살을 에이는 듯한 살기와 터질 듯이 무거운 기도. 바로 당문의 좌장로 당찬이었다.

“흐흐, 어딜 갔나 했더니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허헉? 네, 네가 어떻게?”

기절할 듯이 놀란 이명호월 형제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와 마주쳤으니 이제 자신들은 다 산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저앉을 듯 하다가 순간적으로 정신을 되찾았다. 아직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암흑마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우리들이다! 어떻게든 되돌아가기만 한다면!’

꼴에 형제라고 둘이 동시에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대화가 없어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기억에도 없는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후다닥 왔던 길로 되돌아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따름이었다.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그들이 초고수인 당찬을 따돌릴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아, 안 돼! 여기에서 이렇게 잡힐 수는 없다아아!”

“헉? 이 보시오! 이리 와서 우리를 좀 구해주시오! 이봐…, 컥?”

절규에 찬 구조의 목소리였다. 심장을 후벼파듯 쏟아지는 아우성이었다. 목책으로 이어진 입구에 서서 그들의 애타는 비명소리를 듣고 있던 박심은 절로 오한이 들고 등골에서는 쉴새 없이 진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의 귀로 약소전주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악마의 소성(笑聲)처럼 들려왔다.

“이 몸에게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잘 봤지? 음, 저렇게 되는 거야. 아마도 끌려가면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할 정도로 고문을 받을걸? 너 또한 당문에게는 아니지만 이 몸의 손에서 저렇게 될 운명이었고.”

후드드득!

파랗게 질리다 못해 하얗게 변해버린 박심의 얼굴에서 억수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소리였다.

‘으으! 저렇게 되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는 것이 낫겠다!’

동천은 그렇게 벌벌 떠는 박심에게 이어 말했다.

“하지만 네가 생각 이상으로 재주가 뛰어나서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이제 이곳을 나서면 절대로 네가 본교의 인물임을 나불대고 다니지 말 것이며, 당가의 늙은이에게 주루를 인계 받으면 그저 죽은 셈치고 그곳에서 이 몸의 다음 지시를 기다려라. 네 임무는 은밀히 자금을 축적하는 것으로서 그렇게만 알고 지낸다면 자금을 빼돌린다거나 흥청망청 지내지 않는 한 풍족하게 지내도록 허락해줄 터이니 말이다. 내 말, 잘 알겠느냐?”

“예, 옛! 절대로 허튼 짓 않고 명령에 충실하겠습니다!”

그제야 동천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그래. 이 몸의 이름이 새겨진 인감도장 잘 간수하고, 그 날의 수익은 그 날에 꼭 전장(錢莊)에 입금시키도록 하고!”

“예! 꼭 명심하겠습니다!”

“하하, 그놈 참. 목소리를 들어보니 이제야 좀 믿음이 가는걸? 자아, 어서 슬슬 따라가 보거라. 당가의 늙은이에게 대여해준 마차는 네가 몰도록 손을 써 놨으니까.”

“존명! 이 미천한 박심! 무사히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박심은 단 한순간도 같이 있기 싫었던 듯 서둘러 전방을 향하여 몸을 날렸다. 동천은 그렇게 멀어지는 박심의 뒤에서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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