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동천(冬天) – 686화


그러자 동천이 하는 짓거리를 암암리에 주시하고 있었던 관덕청은 정말로 자신에게 찾아오는 암흑마교의 어린놈을 바라보며 저걸 배짱이 좋다고 해야하는 건지, 아니면 겁 대가리를 상실했다고 해야하는 것인지 잠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누구인가!

대내외적으로 환마교의 2인자라고 하면 서러울 정도의 위세를 지녔고 무림에서의 배분을 따져봐도 까마득한 대선배에 해당했으며 한 문파와 비교했을 시 태상문주의 지위와 동급이었다.

또한, 그의 현재 모습이 어디 연륜과 지위로 유지되는 것이랴?

무력 면에서 비교해도 동급 최강! 당연히 그의 입장에서는 새파란 어린것이 어렵지 않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습이 반가울 리 만무했지만 나이는 그저 아무렇게나 먹는 것이 아니라는 듯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죽립으로 자네의 자신감을 고취시킬 수는 있어도 진실된 자신감을 채워 줄 수는 없다네. 그래도 죽립을 고집하겠는가?”

아까 전의 소란으로 암흑마교를 주시하고 있었던 관덕청은 동천이 왜 죽립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각 파의 무림인들이 따로 떨어져서 간다고는 하나, 지리적인 특성상 거리를 두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동천과 집법당주 혁필상의 대화는 고수들에게 있어서 바로 옆에서 떠들어 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의미에서 관덕청이 간접적인 어투로 동천을 꾸짖었던 것이고 말이다.

‘환마교가 요새 개판이라던데 영감이나 신경 써.’

별걸 다 가지고 지랄한다고 생각한 동천은 짜증이 일어났지만 겨우 참고 대답해주었다.

“송구하오나 그것이 갑자기 바꿀 수 있는 것이었으면 이 자리에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사정을 알고 계신 듯하여 청컨대, 이 까마득한 후배를 위하여 너그러이 배려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관덕청은 그래도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동천의 모습에 불쾌한 마음이 상당량 가시는 것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고작 죽립 하나였을 뿐인데 공연히 신경만 날카로워져 있었던 듯도 싶었다.

“허허, 그렇게 마음이 심약해서야 되겠는가.”

그 순간 암흑마교 쪽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들을 지었지만 다행이 아무도 그쪽을 주시하는 이가 없었다.

어쨌든 관덕청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음, 그래도 존장(尊丈)의 예를 갖추는 것이 기특하여 죽립을 건네줄 터이니 다음에 다시 보았을 때에는 좀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게나.”

“감사합니다, 총사님.”

그래도 준다니 다행이지 그것도 안 주면서 가르치려고 들었다면 아주 뒤엎어 버리려고 했던 동천이었다.

그는 운 좋은 줄 알라고 내심 씨부렁거리며 기어코 죽립을 가져와 썼다.

그것을 본 혁필상과 당주들은 역시 저놈은 뭘 해도 될 놈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동천이 하는 짓거리의 대다수가 더럽고 비열한 짓이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뭘 그리도 쳐다보시오?”

자신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는 혁필상 등에게 동천이 묻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둘러쳤다.

그렇게 별일 아닌 죽립 사건이 마무리되자 일행들은 때를 맞춘 듯 정파 무림의 본거지에 당도했다.

당연히 그들은 동천의 일에 관심을 끊었으며 앞으로의 일을 예측하는 동시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허허, 이렇게 대단하신 분들이 오실 줄이야. 빈도는 몸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형식적으로나마 보고를 올리기 위해 비영대주 군소후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멀뚱히 서서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은 심히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각 파를 대표하여 온 자신들인데 바깥에다 세워 놓고 기다리게 했으니 어찌 불쾌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불만이 표출되려는 찰나에 무당의 좌장로(左長老) 자운진인(紫雲眞人)이 빠르게 다가와 예의를 갖춰주자 진노하려던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수가 있었다.

“무림맹의 대표는 자운진인이셨던 모양이구려. 위명이 쟁쟁한 분을 만나서 반갑소이다.”

자운진인의 인사에 가볍게 읍으로 받아준 관덕청이 입을 열자 자운진인은 가볍게 웃음을 짓고 난 후 대답했다.

“무량수불! 실은 빈도보다 훌륭하신 분들이 많았으나 어찌하다 보니 빈도가 이번 사안을 맡게 되었소이다. 자, 여기에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드시지요.”

긴 말 필요 없이 시기 적절하게 마도의 무리들을 이끌자 나머지 대표들은 말도 한마디 못해보고 얼떨결에 자운진인의 안내를 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그들의 마음 속은 불편하기 그지없었으나 겉으로는 평상심을 유지한 채 자운진인을 따랐고, 동천은 생각 이상으로 커서 자꾸 흘러내리는 죽립을 고쳐 쓰며 자신에게 죽립을 건네준 환마교도를 무지하게 욕했다.

‘이 새끼는 먹은 살이 대갈통으로 가나, 뭐 이 따위로 죽립이 큰 거야?’

그러면서도 동천은 주위를 살피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아직은 제갈세가의 인물들이 눈에 뜨이지 않았다.

곳곳에 제갈세가의 깃발이 펄럭이기는 했으나 동천과 일면식이 있는 자는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허허, 참으로 어려운 자리를 마련했소이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정파 쪽에서는 취불개 영산호를 필두로 제갈세가의 2장로 백수사(百秀士) 소강(燒康). 그리고 점창파의 대장로 일검광휘(日劍光輝) 양만정(陽滿精). 만독문의 외호법 산약독수사(散藥毒秀士) 백수범(白垂氾). 황룡세가의 좌태상 만한상(滿罕祥) 등등……, 쟁쟁한 인물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는데, 막사 안으로 들어간 마도의 인물들은 자운진인의 간단한 소개로 서로들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동천은 의외로 자신이 알고 있는 인물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지만 미리 앞일을 내다보고 죽립을 구했던 준비성 덕분에 크게 당황하거나 곤란해하는 일을 겪지는 않았다.

‘아따…, 뭐 이렇게 아는 인간들이 많은겨? 이거 열에 대여섯은 안면이 있는 얼굴들이네? 허 참! 죽립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 곤욕을 겪을 뻔했구나.’

오랜만에 멀쩡한 생각을 한 듯 보였지만 그 뒤로 자신은 혹시 천기를 내다볼 줄 아는 것은 아닐까? 라는 식의 헛생각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유인즉슨, 바야흐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자기 주장들을 피력하기에 앞서, 먼저 서로가 보유하고 있는 천마지가의 개수를 정확히 집고 넘어가야 할 듯 보이는데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떠하오이까?”

“진솔한 이야기가 오고 가려면 응당 그래야만 하겠지요. 허허.”

자운진인의 의견에 혁필상이 냉큼 대답해주었다.

어차피 드러내야할 일이었으니 다른 이들 보다 먼저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흠! 좋소.”

“저희 쪽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환마교의 관덕청은 자신이 해야했을 대답을 혁필상에게 간발의 차로 빼앗겨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고, 혈사교의 장소량은 주도권 자체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으므로 편안하게 대답했다.

자운진인은 그러한 은밀한 기류를 느꼈지만 짐짓 모르는 척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좋소이다. 그럼, 먼저 말을 꺼낸 본맹의 천마지가 개수부터 말씀을 드리겠소이다. 본맹은 5장의 천마지가를 보유하고 있소이다.”

그 뒤를 이어 오련의 대표로 나선 황룡세가의 좌태상 만한상이 입을 열었다.

“본련 또한 5장의 천마지가를 보유하고 있소이다.”

이어서 만독문의 외호법 산약독수사 백수범이 말했다.

“본문은 3장의 천마지가를 지니고 있소이다.”

“흐음!”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마도 쪽에서 희미한 침음성이 들려왔다.

정파 쪽에서 보유한 천마지가의 개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마냥 침묵을 지킬 수 없다는 듯 이번에도 혁필상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허허, 본교에서는 4장의 천마지가를 보유하고 있소이다.”

그 뒤를 장소량이 대답했다.

“본교 또한 4장의 천마지가를 보유한 상태입니다.”

끝으로 관덕청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아까 밝혔듯이 본교는 2장을 보유하고 있소이다. 허허!”

관덕청의 웃음은 약간이지만 공허한 듯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운 좋게 비집고는 들어왔다지만 영향력이 가장 약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자운진인은 모두의 이야기가 끝나자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정파 쪽에서 13장. 마도 쪽에서 10장이 되는 상황이구려. 허면, 총 32장이나 되는 천마지가 중 9장이 모자란다는 이야기인데…….”

그때 혁필상이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제지를 하고 나섰다.

“허허, 진인께서 뭔가 착각하시고 계신 듯 합니다.”

“음? 착각이라니요? 무슨 말씀이시오?”

자운진인의 의문 섞인 물음에 혁필상이 대답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만독문과 본교는 혈맹의 관계가 되는 사이외다. 이는 기정사실로서 곧 본교의 소교주 님과 만독문의 소문주 님의 혼례가 치러질 예정이지요. 허면 만독문 측에서 지니고 있는 천마지가 3장은 응당 우리 쪽에 포함을 시켜야 되는 것이 아니겠소이까.”

마냥 억지는 아니자 자운진인을 포함한 정파 쪽에서 곤혹스러운 표정들을 짓기 시작했다.

사실 만독문은 진본이라 여겨지는 천마도해만 지니고 무림맹에 찾아왔었는데, 그 천마도해의 여부를 밝히고 싶지 않았던 무림맹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던 8장의 천마지가 중 3장을 만독문에게 잠시 양도한 상태였다.

이런 회담에서 오련을 위시한 만독문까지 내세운다면 여러모로 유리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량수불! 하지만 본맹과 함께 일을 추진한 만독문이외다. 이제와 귀교와 친분이 깊다고 하여 편가르기를 한다면 만독문 쪽에서는 본맹에 잠입하여 정보를 빼내 가는 파렴치한 문파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음이니, 신중하게 의견을 제시하기 바랍니다.”

제법 잘 넘어가고자 했으나 혁필상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누가 귀맹의 정보를 빼내어 갔다는 말입니까? 본교는 그러한 상황을 조장한 적이 없을뿐더러, 애초에 이러고 싶지는 않았으나 진인께서 편가르기를 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셨기에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약간의 억지성 발언을 했었던 것일 뿐이외다.”

천마지가의 보유량으로 주도권을 거머쥘 생각을 말라는 소리이자 자운진인은 다소 굳은 얼굴을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의 열쇠는 당연히 만독문!

하지만 현재 그쪽에서 얼마나 난감해하고 있는지는 자운진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섣불리 거론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제 밥그릇 챙기기에 열을 올리는 중인들을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던 취불개 영산호가 혁필상에게 말했다.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여, 이놈아. 넌 밥 먹으러 왔다가 똥 마려우면 먹으면서 싸니?”

혁필상은 같잖은 비유로, 그것도 더럽게 비유하여 황당하게 하는 취불개의 말에 항의했다.

“아니 그 무슨 해괴망측한 말씀입니까! 이것과 그것의 차이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어? 이게 어따 대고 소릴 질러?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자식이 어디에서 감히! 우씨, 너 몇 살이야? 너 몇 살인데 존장도 못 알아보고 그따위야? 아~, 나 오늘 뚜껑 열리네? 야 임마, 니 애비 에미가 어르신을 보면 그따위로 행동하라고 가르쳐 주디? 엉? 그래?”

한 성깔 하는 취불개의 막 나가는 소리에 기가 막혔던 혁필상이 입을 쩍 벌리고 당황하자 자운진인은 재빨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정인을 불렀다.

영산호가 폭발하면 진정시킬 사람은 조정인 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혹시나 해서 대기시켰던 것인데 정말로 그러한 일이 벌어지자 바로 조정인을 불렀던 것이다.

“자자, 진정하십시오. 하하, 자라나는 새싹을 그렇게 밟으셔야 되겠습니까.”

“으아! 실눈아 이 몸의 말씀 좀 들어봐라. 아니, 이 몸은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고작 60살 정도 처먹은 자식이 이 몸을 열 받게 하잖아! 이게 말이 돼? 내가 진짜 70살만 넘었어도 그러려니 넘어갔어! 그런데 고작 60살 정도 처먹은 자식이…….”

울분을 토해내는 영산호의 목소리는 조정인이 데리고 나간 시점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더니 종래에는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

잠시 침묵이 돌았고 그것을 깬 것은 자운진인이었다.

그는 약간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허, 허허!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게 실례를 했소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취불개 어르신께서는 다혈질이십니다. 너그러이 이해들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험! 그러지요.”

“그럽시다, 허허!”

사실 취불개의 성격에 관해서는 정사(正邪) 모두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이었는지라 언짢기는 했어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되려, 일이 빨리 터져 귀찮은 혹을 떼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개무시를 당한 혁필상의 입장에서는 심한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래도 용케 잘 참고 넘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런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하면 유리했지 절대로 불리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음, 어쨌든 그분에 관해서는 넘어가기로 합시다. 만독문의 문제 또한 정파 쪽에서 크게 휘두를 생각을 않는 한 본교 측에서도 거론을 하지 않겠소이다.”

의외로 쉽게 포기하는 혁필상의 태도에 자운진인은 내심 껄끄러우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빨리 대답했다.

“오오, 참으로 포용력 넘치는 말씀이시외다. 무량수불!”

이는 자운진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의아해한 부분이었는데 사실 혁필상은 만독문을 거론하긴 했어도 끝까지 물고늘어질 생각이 없었다.

그쪽도 생각이 있어서 무림맹과 함께 한 것인데 자신이 들쑤셔 놓으면 난감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는 앞서 말했듯이 정파 쪽이 너무 휘두르지 않게끔 조치를 취해 놓은 것일 따름이었다.

“허허! 추켜세워 주셔서 감사하외다. 그럼 이야기를 계속 할까요?”

“물론이외다. 그렇게 하지요.”

그들의 이야기는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저녁까지 계속 되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