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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90화


내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지만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동천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일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사정화는 냉현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긴, 성격이 그 지랄이니 좋아할 턱이 없겠지.’

그렇게 따지자면 동천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성격에 관해서는 전혀 고려치 않았다.

자신은 정말로 착하고 마음이 넓은 분이라고 굳게 믿는 인간에게 무얼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아가씨를 뵈옵니다.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동천이 사람들 앞이라 나름대로 격식을 차리며 말했다.

그러자 사정화는 말석에 비어 있는 자리를 권했다.

“네 바로 옆자리에 앉아.”

“예, 아가씨.”

동천이 대답하자 뜻 모를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던 냉현이 씨익 웃고는 입을 열었다.

“왔는가. 듣자하니 발굴단의 감독에 힘을 쓰고 있다고?”

‘알면서 왜 묻냐?’

웃기는 자식이라고 생각한 동천은 낮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제 경험이 일천하여 아가씨께서 배려차원에서 감독관을 맡도록 지시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요.”

냉현은 말했다.

“하지만 자네의 본분은 의술이지 않은가.”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재 타 문파들과의 분란이 적어진 관계로 본전의 부전주님께서 지휘봉을 잡고 계셔도 무난한 상태인지라 여러 가지 경험들을 쌓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냉현은 약소전주가 말은 잘하자 빙그레 웃는 속내로 싸늘한 비웃음을 흘렸다.

‘흥! 주둥이로 먹고 사는 것은 여전하군. 아주 당장에라도 목을 꺾어버리고 싶을 정도야.’

그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약소전주를 빈정거려봤자 별로 이득 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그랬군. 어쨌든 노력은 한다니 기특하구먼.”

어투는 부드러웠지만 진실 된 속뜻을 못 알아들을 동천이 아니었다.

그는 당연히 화가 났으나 표정으로는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에 감사하다는 대답을 해준 후 시선을 아래로 내려 깔았다.

상대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사정화는 바로 입을 열었다.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으니 끊긴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하지. 혁 당주.”

혁필상을 부르는 소리에 잠시 앉아 있던 그는 다시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회의의 물꼬를 텄다.

“현재 발굴의 진행정도는 아까 말씀을 드렸듯이 7할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발굴이 가까워질수록 홀로, 혹은 몇몇의 무리로 활동하는 고수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는 보고입니다.”

혈각주 초무강이 물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보시오.”

고개를 끄덕인 혁필상은 말했다.

“아시다시피 정사 연합세력이 철통같은 방어를 하고 있는 관계로 뚫고 들어오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연합세력일지라도 극과 극을 달리는 세력이 협조관계를 이루는 것인 만큼 빈틈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간파한 자들이 종종 자신의 무력만을 믿고 침투를 시도하는 일이 종종 있는데, 현재 그 정도가 상당히 심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것 같긴 하더군. 요새 잠들만 하면 소란스러워지는 것 같더니 그것 때문이었나?”

“그렇습니다, 아수부전주 님. 안쪽으로까지 침투한 자들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이 일은 바깥쪽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던 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허허, 꽤나 귀찮게들 했기 때문입니다.”

혁필상이 그렇게 말하자 몇몇 인물들이 지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이 요 근래에 들어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잡은 자들의 수는?”

“의외로 적습니다. 발각이 되면 바로 도망들을 치는지라 10여명 안팎이지요. 본교도 그렇지만 다른 세력들 또한 무리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적게 잡힌 탓도 있습니다.”

당연한 것이 상대가 너 죽고 나 죽자로 나서지 않는 한 각 파에서는 전력을 보존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제 곧 발굴이 끝난다면 대규모 혈전이 벌어지리라고 예측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신경쓸 것 없어. 어차피 그런 것들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대비에만 철저하면 되니까. 다음.”

사정화의 간단한 결론으로 칩입자들의 문제가 마무리되자 혁필상은 다음 안건을 꺼내기에 앞서 은근히 냉현 쪽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다음은 애매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만독문에 관한 사항입니다. 겉으로는 무림맹과의 입장 때문에 중립을 표방한다고 했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정파에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더불어 본교와는 남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요.”

그러자 이제까지 조용히 앉아 있던 강소홍이 말문을 열었다.

“자신 있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아주 틀린 말씀은 아닌 듯이 보이는군요. 허나, 남보다 못한 관계라는 부분에는 쉬이 동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심기 불편한 반론에 빠르게 머리를 굴린 혁필상은 굳이 반목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 부분에 관해서는 과격한 표현이었음을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만독문에서는 정파 쪽에 정보를 건네줄지언정, 본교 쪽에는 그 어떤 사소한 정보조차 흘려주지 않고 있음을 아셔야 할 듯 싶습니다.”

“그랬군요. 그렇다면 반대로 귀교에서는 본문에 먼저 정보를 건네준 적이 있나요?”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혁필상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생각해보니 그쪽에서 손을 내밀기만 바랬을 뿐 자신들이 먼저 다가간 적은 없었던 것이다.

“대답해주시죠.”

기어코 답변을 받아내려는 듯 강소홍이 확고한 음성으로 다그치자 혁필상은 어쩔 수 없이 대답해주어야만 했다.

“만독문 측에서 스스로 정보를 건네주지 않았듯, 본교에서도 먼저 정보를 건네준 적은 없습니다. 하오나…….”

혁필상은 자신이 대답해놓고도 이건 아니라는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사실 언뜻 보면 이 사건은 전적으로 암흑마교의 실책이었지만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것은 일종의 자존심의 문제로서 먼저 정보를 구하는 행위는 정사 구분 할 것 없이 상대방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것이다, 라는 인식들을 가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혈맹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암흑마교의 위세가 드높은 상황에서 그들이 먼저 굽히고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즉, 암흑마교의 관점에서는 니들의 정보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대비할 전력이 된다는 생각에 아쉬울 것 하나 없었고, 되려 자신들의 처지도 모르는 만독문의 전력을 내려다보며 분노했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혁필상이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하, 혈맹들끼리 누가 먼저고 누가 후에 인지 다툴 것이 무에 있다고 이러는 것인가! 그 문제라면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하지!”

안 좋은 분위기를 감지한 냉현이 재빨리 끼여들어 분란을 종식시켰다.

혁필상은 닥치라면 닥쳐야 하는 위치였기에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강소홍은 어느 정도 건진 것이 있기에 냉현의 말을 따랐다.

덕분에 장내가 조용해지자 사정화가 입을 열었다.

“소교주 님의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만독문과 관련된 일은 조치가 필요한 만큼, 강 소문주와 소교주께서는 확실히 매듭을 지어주길 바래요. 어느 쪽에 설 것인가를 말이죠.”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목소리가 끝을 맺자 냉현이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문제로 온 것이나 다름없음이니 맡겨만 주십시오.”

냉현의 말이 전부 진실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만독문에 관해서 만큼은 사실이었다.

중간에 만독문의 움직임을 간파한 암흑마교에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아지자 수세에 몰린 강소홍을 도와주고자 냉현이 직접 움직여 사건을 해결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래서 소식을 접한 사정화가 만독문에 관해서는 이제껏 침묵을 유지했던 것이고 말이다.

“믿겠어요. 다음.”

‘믿기는 개뿔이…….’

혁필상은 동천이 내심 투덜거리는 가운데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예, 다음은 보급 물자의 지연에 관한 내용입니다.”

“문제가 있는 것이오?”

“그렇게 까지는 아니지만 발굴장소가 워낙에 튼튼한 방비를 자랑하다 보니, 뚫기를 실패하거나 엄두를 내지 못하는 자들이 화풀이 격으로 보급선을 침탈하고 있기에 생각 보다 적은 물량이 확보된 상황입니다.”

“아니, 그놈들을 가만히 놔뒀단 말이오?”

“그럴 리가요. 전부 다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만 신분이 확인 된 상태이거나 되는 족족 추적에 들어가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흐음!”

초무강과 혁필상의 대화가 끝난 듯 하자 지켜보던 사정화가 물었다.

“보급품을 노리는 자들이 많아?”

혁필상은 대답했다.

“우려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그러다 왕창 털리면 잘못했다고 빌 거면서 늙은 게 입만 살았다고 동천은 생각했다.

‘어휴, 늙은 것들이 잔꾀만 늘어 가지고……. 아아! 앞으로 본교가 어찌 되려고 젊은 인재가 이리도 부족하다는 말인가! 역시, 이 몸이 나서야만 하는 것일까? 과연 그런 것일까?’

그렇게 헛소리를 나불대는 사이, 굵직굵직한 사안들이 처리되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사소한 이야기들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자연히 따분해진 동천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고, 사정화를 잠깐 쳐다보던 그는 이러다 걸리면 나중에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분하게 앉아 있는 강소홍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역시 그녀는 눈에 확 뜨이는 아름다움은 아니었지만 계속 보고 있자니 가슴이 설레고 묘한 흥분을 자아내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 몸에 베어드는 듯 했다.

‘음음! 저런 아름다움도 있어야 옆에 끼고 살만 하지.’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앞서가도 한참이나 앞서간 동천은 기분이 좋은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자 문득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주위를 살펴본 근처의 사람들은 동천의 헤벌쭉한 모습에 짐짓 모르는 척 전방을 주시했고, 예외로 강소홍만이 따끔거리는 시선을 느끼곤 그곳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자연스레 둘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말이 없는 가운데 잠시 그 흐름이 이어지자 동천의 게름직한 웃음에 부담을 느낀 강소홍이 마침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절 그렇게 계속 쳐다보는 거죠?』

전음이 날아오자 눈을 반짝인 동천이 회답했다.

『아이고, 누님. 본지 좀 되었다고 이 동생을 잊으신 겁니까? 하하, 말 놓으세요.』

안 본 사이에 능글맞은 성격만 더 늘어났다고 생각한 강소홍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자 옆에서 즉각 반응이 왔다.

“왜 그러시오. 이 안건이 마음에 안 드시오? 아니면 피곤하기라도?”

갑작스런 냉현의 물음에 당황한 강소홍은 죄 지은 것도 없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동천 쪽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언제 자신을 쳐다보았냐는 듯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딴청을 피웠다.

무언가 억울해지는 순간이었으나 그런 심정을 겉으로 드러낼 만큼 그녀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그런 게 아니라,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신경이 분산된 것 같아요. 심려 끼쳐드려 죄송해요.”

냉현은 그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를 감쌌다.

“하하, 아니외다. 그래도 먼 길을 오느라 피곤한 것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오. 오늘은 이만 하고 푹 쉬도록 하시오.”

말을 우회적으로 돌리긴 했지만 냉현은 이쯤에서 회의를 끝내자고 은근히 권유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오늘의 자리는 냉현과 강소홍의 도착을 환영하는 자리였으므로 중요한 사항은 이미 다 넘어간 상태이니 쉬게 좀 해달라는 일종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자연히 사람들의 시선은 결정권자인 사정화에게 넘어갔고 그녀는 담담하게 혁필상을 바라보며 결정을 내렸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만 끝내기로 하지. 집법당주는 외곽의 경계와 천마동의 경계를 제외한 모든 교도들에게 오늘 하루는 푹 쉬도록 일러둬.”

“존명!”

해산 명령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하나 둘 자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잠시 후 냉현을 위해 잔치를 벌이느라 다시금 모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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