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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91화


“얌냠, 맛있다. 헤헤.”

“야, 누가 안 빼앗아 먹으니까 게걸스럽게 좀 먹지마. 남들이 보면 이 몸이 널 굶기는 줄 알잖아.”

“응! 그럴 게. 쩝쩝!”

이것저것 바쁘게 집어먹는 화정이에게 주의를 준 동천은 꼴에 좀 컸다고 먹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것은 동천 자신이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소의 식사 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평소의 분량대로 먹되 천천히 양껏 먹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옆에 있던 소연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요, 주인님. 저희가 정말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어도 되는 거예요?”

냉현을 위한 조촐한(?) 잔치는 상석, 중석, 하석으로 마련되어 있었다.

제일 윗자리에 마련된 상석(上席)은 최하 한 기관의 2인자까지였고, 중석(中席)은 그 이하로 당주급까지.

그리고 마지막인 하석(下席)은 향주를 위시한 말단들을 위한 자리였다.

그렇게 따졌을 때 동천은 상석의 끝자락이나마 빌붙어 앉아 있을 수 있는 위치였지만 괜히 이런 자리에서 냉현과 마주쳤다간 먹다가 체할 것만 같아서 일부러 중석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렇다면 왜 방금 전에 소연이 곁에 있어도 되는 거냐고 물어 보았던 것일?

답은 간단했다.

술을 마시며 즐기는 가운데 양쪽에 여인네를 끼고 있는 인간은 동천이 유일했던 것이다.

자연히 주변여건에 신경이 쓰였던 소연으로서는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에그, 얘가 또 앞서가네? 야, 여기서 술시중을 드는 애들이 너 혼자 뿐이냐? 주위를 둘러봐. 널린 게 술 따라 주고 있는 계집들이라구.”

주인님이 핀잔을 주자 소연은 수줍게 말대답했다.

“그, 그래도요.”

동천이 방금 전에 말했듯이 술시중을 드는 여인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상석이나 중석에는 몇몇 요림의 여인들이 술시중을 들어 주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 수가 원하는 사람에 비해 현저히 적었던 관계로 옆구리가 허전했던 사람들은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여인들에게 술시중을 받고 있는 동천을 질투와 부러움이 뒤섞인 시선으로 힐끔힐끔 훔쳐보았고, 소극적이었던 소연은 그 시선들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좌불안석하는 중이었다.

“그래도는 개뿔~. 화정이는 먹으러 온 애니까 열외로 치면 되는 거야. 뭐 너도 먹으러 온 거잖아?”

동천의 물음에 소연은 은근슬쩍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라고는 말 못하지만……, 그래도 화정이랑 연화를 관리도 할 겸, 주인님과 말상대를 해주며 가끔 술이라도 따라드릴 겸, 겸사겸사 온 거예요.”

“쳇, 그냥 먹으러 왔다고 해.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말고.”

사람이 다 자기 같은 줄 아는지 동천은 소연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소연은 억울했지만 사람들의 이목 때문에 그저 ‘아닌데…….’ 라는 말만 반복할 따름이었다.

“약소전주님, 그간 발굴단에 참여하시느라 힘드신 줄로 압니다. 모름지기 피로회복에는 술이 제격이오니 피로를 푸실 겸 여기 이 술 한잔을 받아주시지요.”

대각선으로 앉아 있던 아수전의 1당주 초철산이 그래도 안면을 튼 사이라고 술병을 내밀었다.

동천은 과일주가 아니면 잘 안 마셨고 사내가 따라 주는 것은 더더욱 안 마시는 성격이었지만 초철산이 자신의 노고(?)를 알아준다고 생각했는지 흔쾌히 받아들여주었다.

“오오, 그렇게 생각해주었는가? 하하, 고맙네.”

쪼르르륵!

동천이 술잔을 내밀자 투명한 빛깔의 물줄기가 서서히 고이는 듯 하더니 이내 잔을 가득 메웠다.

그것을 주저 없이 들이킨 동천은 쓴맛을 인내하며 맛이 좋다는 말들을 늘어놓았고, 초철산은 감탄했다는 얼굴로 다시 한번 술을 권했다.

“역시 영웅호걸이십니다! 자자, 한잔 더 하시지요.”

영웅호걸이라는데 마다하면 동천이 아니리라.

“하하, 좋구나! 자, 어서 따르시게! 꿀꺽꿀꺽! 캬아~!”

체면 때문인지 마시기는 잘 마셨지만 소연이 보기에는 이대로 놔뒀다간 괜히 엉뚱한 사건에 휘말릴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하여, 초조하게 지켜보던 그녀는 초철산이 다시 한번 더 권하려는 듯 보이자 살짝 웃으며 그들의 중간에 끼여들었다.

“주인님, 이제 그만 마시세요. 원래 예전부터 음주는 자제하셨잖아요.”

“응? 아, 그거? 자제야 했지. 그렇지만 이 몸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셨고, 또 성인이 되셨으면 술도 좀 마실 줄 알아야 하고, 도박도 좀 하실 줄 알아야 하고, 기루에도 좀 가봐야 하고, 에 또…, 어쨌든 그래야 하지 않겠냐? 음, 그러니까 이 문제는 한낱 아녀자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니라. 에 헴!”

취기가 조금 돌았는지 불필요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더군다나 남이 말리면 더 하고 싶어하는 성격이 조금(?) 과했던 동천은 은근히 더 말려주기를 바라고 있었으면서도 괜히 한번 튕겼다.

당연히 난감했던 소연은 분위기를 탄 주인님을 말릴 수 없을 듯이 보이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뒤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 그럼 저도 같이 마실래요!”

푸우우웁!

입안을 헹구느라 물을 반쯤 들이켰던 동천은 기겁을 하며 마시던 것을 죄다 뱉어냈다.

그 물줄기는 공교롭게도 초철산의 얼굴로 날아갔지만 동천의 관심사는 오로지 소연이었다.

“뭐? 너 미쳤냐? 어딜 감히 하녀 주제에 주인님과 동석에서 술을 마시려고 그래? 떽! 정 마시고 싶으면 나중에 약왕전에 돌아가서 화정이 하고나 같이 처마셔!”

술에 취한 소연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었던 동천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고, 옆에서 한창 먹던 중인 화정이는 자신의 이야기가 나와서 귀를 쫑긋거렸지만 분위기가 영 아니자 못 들은 척하고 먹던 거나 계속 먹었다.

소연은 기가 죽어서 찔끔거렸고 말이다.

“잘못했어요. 그럴려고 한 게 아니라 전 어디까지나 주인님의 몸을 생각해서…….”

“아아, 됐어. 됐으니까 반성하는 의미에서 조용히 연화하고나 놀아 줘. 야! 넌 그만 좀 처먹고!”

“으응, 나 안 먹었어. 안 먹었어, 동천.”

괜한 불똥에 얻어맞은 화정이는 양손에 쥐고 있던 접시와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언제 먹어댔냐는 듯 다소곳이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입가에 번들거리는 기름기만 아니었다면 속아넘어갔을 정도로 새치름한 모습이었다.

“에그, 내가 너한테 뭘 더 바라겠냐. 그냥 먹던 대로 먹어라.”

지금 이 순간에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지 화정이의 얼굴이 대번에 환한 웃음꽃으로 바뀌었다.

“와아! 정말? 고마워 동천! 쪽! 쪽쪽!”

“야! 얼굴에 기름기 묻잖아!”

자신의 비단결(?) 같은 피부가 더러워지자 인상을 찌푸린 동천은 재빨리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주위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얼굴에 기름범벅이 되어도 좋으니 자기에게도 해주었으면……, 하며 침을 꼴딱 삼켰다.

여하튼, 그 덕분에 술을 권하려다 더러운 물세례까지 받고 어정쩡하게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던 초철산은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웃는 낯으로 술병을 내밀었다.

“약소전주님, 배우지 못한 아랫것들의 잘못일 뿐입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여기 이 한잔 술로 말끔히 날려버리시지요.”

‘아~ 이 새끼,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자꾸 술을 권하네? 팍! 주둥이를 날려버릴 까보다.’

절로 주먹이 나가려는 것을 애써 잠재운 동천은 상대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로 정중히 거절했다.

“되었네. 충분히 마셨다 치고 자네의 성의만 받겠네.”

“그러시겠습니까? 하하,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무안하지 않게 손을 거둔 초철산은 웬일로 저놈이 생각해주는 척 하나 했지만 곧 자신의 얼굴에 물을 뿌린 사건 때문에 그러는 것이리라 착각하곤 내심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주위에 고위급 인사들이 있는데 하급자에게 막대할 동천이 아니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아울러 나중에 따로 만나면 손을 좀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인 것도 말이다.

그르릉, 그르릉.

소연이 목을 긁어주자 기분이 좋은지 호연화가 은근한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약간 알딸딸한 기분에 취하여 안주를 집어먹던 동천은 흰 배를 내밀고 뒤집어져 있는 호연화를 바라보며 개가 아니라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구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다가 곧 미물의 삶을 부러워한 자신을 반성했다.

‘그래! 기왕지사 부러워하려면 교주의 삶을 부러워하자! 사나이 동천, 꿈을 크게 갖는 거야! 그래서 이 몸이 교주로 등극하는 거지! 음, 그런데 교주가 되려면 저항이 만만치 않을 텐데? 흐흐, 그렇다면 이 몸이 천재적인 기지와 능력을 발휘하여, 중얼중얼…….’

이상한 쪽으로 반성이 진행되는 가운데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사람들은 약소전주가 저 혼자 음침한 얼굴로 히죽거리는 모습이 보이자 아예 관심을 끊었고, 화정이는 그 사이에 만족할 만큼 먹고 배를 두드렸다.

비워진 접시는 바로 갈려서 식탁 위의 음식은 언제나 푸짐했기에 화정이가 혼나는 일은 없었다.

“응? 인간들이 많이 빠졌네? 어디들 갔나?”

교주가 되어서 백도를 치는 와중에 정신을 차린 동천은 뒤늦게 자신의 주위가 썰렁함을 깨닫고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소연이 대답해주었다.

“아, 그건요. 다들 몸이 피곤하거나 일이 바쁘다고 하시면서 먼저들 돌아가셨어요.”

말을 안 해도 동천과 같이 술 마시기 싫어서 자리를 이동한 것이리라.

그래도 예의상 반 시진 정도는 앉아 있어 주었는데, 동천의 망상이 그 시간보다 길었기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진 다 빠져나갔던 것이고 말이다.

“참나, 누군 안 피곤하고 안 바쁜가? 하여간 요즘 인간들은 정신상태가 글러먹었다니까?”

소연은 어쩔 수 없이 수긍을 해줘야만 했다.

“호호, 그러게 말이에요. 모두가 주인님만 같으면 본교가……, 으음, 본교가……. 으으음!”

차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던지 소연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물론, 단지 주인님의 비위를 맞춰주고자 하는 상황이었다면 거짓말 정도야 눈 딱 감고 해줄 수도 있었지만 암흑마교가 주인님 같은 사람들로 꽉 찬다면 세상이 망하고 천지가 뒤집힐 거라는 공포심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던 것이었다.

당연히 동천으로서는 못 마땅한 상황이었고 말이다.

“야, 이야기하다가 중간에 끊는 건 뭐고 그 뒤에 으음은 또 뭐냐?”

험악해진 얼굴로 눈을 부라린 동천이 노려보자 당황한 소연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 그건요, 그저 주인님과 같은 인재가 한 하늘 아래 2명 이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이걸 계속 말해야하나 하지 말아야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거예요. 호, 호호호!”

동천은 미심쩍은 눈초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아닌 것 같은데……. 뭐 믿어주지.”

‘휴우, 다행이다.’

꼬투리 없이 바로 넘어가는 뜻밖의 모습에 안도한 소연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주인님이 대충 넘어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냉현과 강소홍이 그들 쪽으로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벌써들 자리에서 일어나신 겁니까?”

아랫사람의 예의로서 동천이 먼저 아는 척을 해주자 냉현은 약간의 냉소가 섞인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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