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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703화


“주군, 안 좋은 소식이 둘 있습니다.”

전체적인 지휘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나타난 장환은 굳어진 얼굴로 제갈여휘에게 말했다. 제갈여휘는 작은 석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들릴 듯 말 듯한 가는 숨을 내쉬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둘이라……. 그렇다면 오대신군이 출동하고도 기세를 잡지 못한 것이 아니면 암흑마교 쪽에서 도발을 걸어온 것. 그리고 2차 후발대가 우리의 뜻과는 어긋난 상황에 처한 것. 그 셋 중에 하나는 안 좋은 소식에 껴 있겠군. 그래, 어떠한 일인가?”

“오대신군과 암흑마교 쪽의 도발 건입니다.”

“허허, 암흑마교 쪽이야 이제 슬슬 무언가를 느끼고 본영(本影)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자 할 것임은 미리 예측했던 바이지만 오대신군 쪽의 경우는 실로 의외로군. 자세히 설명해 보시게.”

장환은 고개를 끄덕인 후 보고를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미리 침투해 계시던 척마신군께서는 변절자임이 드러나는 바람에 몰리는 상황이었지만 나머지 사대신군께서는 휘하의 수하들을 이끌고 합류하시어 전세가 크게 역전하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라신군께서 암흑마교의 강시에게 숨을 거두시는 상황이 발생하자 상황이 묘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갈여휘는 눈을 살짝 치켜 떴다. 무언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만, 마라신군이 초혼강시에게 당했다고?”

장환은 깊게 가라앉은 얼굴로 긍정을 표했다.

“예, 보고를 받은 저조차 믿을 수 없었지만 조요경(造妖鏡)으로 이미 확인을 한 상태입니다.”

“이건 정말 예상 밖의 타격이군. 그럼 협공을 한 자는 누구인가.”

제갈여휘는 당연하다는 듯 물었지만 장환은 침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 강시……, 혼자였습니다.”

그러자 처음으로 제갈여휘의 얼굴에 ‘당황’ 이라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가 아는 상식에서의 초혼강시는 절대로 마라신군을 능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단하군! 비밀병기였다는 이야기인가? 그래서 현재 그 강시 하나로 인하여 전세가 역전이 되고 있다는 뜻이고?”

장환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그 당시에 척마신군께서 강시의 주인을 쫓아 통로의 안쪽으로 들어가시자 마라신군님을 살해한 그 강시는 통제권이 약해졌는지 싸움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했을 따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신 무안신군께서 마라신군님의 복수를 위해 자리를 이탈하시는 사태가 발생하여 예상외로 싸움이 길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각자의 자리를 맡아 단숨에 밀어버렸어야 할 오대신군 중 3명이 그 역할을 이행하지 못했으니 결과가 지지부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오대신군들 중 누군가 죽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그들을 상대할 적들의 수장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지만 애초에 서로의 실력이 비등하다면 당연히 숫자가 많은 쪽이 유리한 법이었다. 동귀어진의 수가 아닌 이상 각각의 검진을 형성하게 될 오대신군을 제거하기란 요원한 일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가 직접 상황을 주시했어야 하는 건데, 그 동안 내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로군.’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일 것이라 자신했던 그였기에 장환이라면 충분히 지휘를 내리고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결정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후회를 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장환은 지금의 보고를 듣기 전까진 맡은바 실력 이상의 깔끔한 진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까지만 경험을 쌓게 해주고 그 후에 본좌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자 하였는데 하는 수 없게 되었구나. 음, 그 강시의 존재는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서둘러 조기 진화부터 시켜야겠군!’

내심 단호한 결단을 내린 제갈여휘는 일단 보고를 마저 듣고 그 이야기를 거론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은 듯 하니 걸어가며 이야기함세. 암흑마교의 도발은 어떻게 된 것인가.”

장환은 이제 지휘권이 넘어가리라 예측했지만 덤덤하게 받아들인 후 주군을 따라 신형을 옮겼다.

“애초에 그들은 정파 쪽에는 관심을 끊고 오로지 마도의 무리들만 합세하여 처리를 하기로 본영과 협약을 맺었던 것인데, 본영이 통보도 없이 정해진 몇몇 기관들을 다시 바꾸어 그들까지 함정에 노출되자 딴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깊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본영이 이렇게 나온다면 자신들도 생각을 바꾸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중입니다.”

“허허, 정확히는 자신들의 소교주가 신변에 위협을 받고 있으니 눈먼 함정들의 수위를 낮추거나 작동을 멈춰달라는 뜻이로구먼. 그래, 그래서 뭐라고 해주었는가?”

“가르쳐주신 대로 마지막 공사 때 아무래도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듯하여 몇몇 함정을 보강했던 것인데, 급하게 마무리를 짓느라 미처 설계도가 전달되지 못하고 누락된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마도인들의 수를 봐서 수위를 낮추거나 아예 작동을 멈추겠다는 다짐을 해주었습니다.”

이 부분은 마음에 들었는지 제갈여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는가? 허허허!”

여기에서 잠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리라. 바로 암흑마교가 정파는 고스란히 살려주기로 합의를 했으면서 정작 같은 마도는 전멸을 시키는데 협력을 하겠다고 말한 부분에서 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마도의 고수들이 죽어나간다면 마도의 세력이 한풀 꺾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종래에는 정파의 득세가 예상되는 부분이었으니, 이건 협약을 맺은 오련영의 입장에서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답은 간단했다. 암흑마교로서는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진실 된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부교주 파의 전멸이었다. 체면상 내부 분열을 대놓고 선전할 수 없었던 만큼, 두리 뭉실하게 다른 마도인들까지 제거 대상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제 다 왔군. 들어가지.”

“예, 주군.”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 제갈여휘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냉소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그래서 그가 어렵사리 내린 결론은 교주파인 냉소천이 암흑마교를 완전히 장악한 뒤 나아가 전 마도를 통합하려는 거대한 야욕을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부교주 파의 일정 세력을 제거하고자 그 엄청난 공사비용을 쏟아 부었을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여하튼 제갈여휘는 암흑마교가 아무리 날뛰어 봤자 승자 없는 싸움이 될 것이라 여기고, 그들이 지닌바 모든 힘을 소진할 때까지 마도계를 마음껏 휘저어 놓기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래야 오련이 웅크리고 있던 날개를 펴고, 저 하늘로 비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까.

“영주(影主)님을 뵙습니다.”

긴 통로를 지나 다른 석실로 들어온 제갈여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흑의를 걸치고 있는 사내가 인사를 하자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상황은 대충 들었네만 어떻게 되었는가.”

“아, 그것 말이로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촤륵, 촤르륵!

사내는 천장에 달려 있는 수백 개의 쇠줄 가운데 하나를 골라내어 힘껏 잡아 당겼다. 그러자 전면에 드러난 커다란 거울이 좌우 측의 조그마한 거울들의 빛을 받아들여 일단의 장소를 비추었다. 사람의 눈을 통해 보는 것보다야 확실히 감도가 떨어졌지만 누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놀라운 장치였다. 단점이라면 고정된 공간만을 비춘다는 것과 지속력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거울을 통해 보이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제갈여휘는 좌우 측의 거울들이 더 이상 빛을 발산하지 못하여 전면의 큰 거울이 어두워지자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살며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 작동 전까지 조요경에 비친 상황은 어떠했는가.”

사내는 무언가 안 좋은 일이라도 벌어진 것이라고 여겼는지 긴장하며 대답했다.

“듣고 오셔서 잘 아시겠지만 마라신군님의 죽음과 더불어 척마, 무안신군 두 분께서 자리를 이탈하셨습니다. 그 이후 척마신군께서는 조요경의 범위 바깥으로 사라지시는 바람에 행방이 묘연하고 무안신군께서는 강시와 몇 합을 겨루셨는데, 그 강시가 피하기만 하는지라 분개를 하시다가 척마신군께서 쫓아가신 통로로 그 강시가 따라 들어가자 더불어 그곳으로 사라지셨습니다. 그리곤 장내는 다시 비등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헌데, 무슨 문제라도…….”

제갈여휘는 말했다.

“시체는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 있어서 그런다네.”

“헛, 그런 일이!”

“축적은 아직 멀었는가?”

“고, 곧 됩니다. 아! 되었습니다. 잠시만…….”

좌우 측의 거울들이 새하얗게 빛나자 사내는 다시금 쇠사슬을 잡아당겨 빛을 가운데로 모았고, 이어 드러난 광경은 그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적막한 지하 동공의 모습이었다. 다들 어디로 갔는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즐비한 시체들과 거동이 불가한 중상자들뿐이었던 것이다.

“흐음!”

“주군, 이건…….”

장환이 굳은 얼굴로 말끝을 흐리자 제갈여휘는 그를 상대하는 대신에 조요경을 담당하는 사내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곳과 가장 가까운 좌측 구역을 비추어 보게.”

사내는 일단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는지 안정을 되찾아 힘차게 대답했다.

“옛,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축적이 되어야 가능합니다!”

너무 안정을 되찾아 옆에 있던 장환이 눈살을 찌푸렸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에 묵인해주었다. 그렇게 초조한 시간이 흐른 후 수많은 작은 거울들이 다시금 하얗게 빛을 발하자 사내는 미리 골라둔 쇠사슬을 힘차게 내렸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뭐가 뭔지도 모를 정도의 쇠사슬들이었지만 사내는 아주 손쉽게 원하는 장소를 골라낼 수 있었다.

“허허, 역시 이동하는 중이었군.”

사람들이 거의 지나간 후에 보여진 것이었는지 서둘러 달려가는 일단의 무리들만이 조요경에 포착되었다. 전부다 아군들의 모습으로서 아마도 쫓아가는 중이리라.

“제 놈들 스스로 막힌 곳을 향했으니 곧 청소가 되겠군요.”

주군의 말뜻을 좋게 해석한 장환은 다 해결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제갈여휘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지 않네. 저곳은 동공만큼 트인 곳이 아닌 협소한 곳이네. 방어적인 입장에서는 그만큼 상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질 것이니 유리한 쪽은 바로 적들이란 말일세. 흐음, 아무래도 저 문을 열어야만 할 듯 싶군.”

뜻밖의 결정에 장환이 흠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곳은 아직 열려서는 안 되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은…….”

“좀 더 잡아둬야 하는 것은 아네만 저곳에서 괜한 피해를 늘릴 필요는 없네. 일단 문을 열고 나서 적들이 그곳으로 빠진다면 동공만큼은 아니어도 포위 공격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이니, 재빨리 다른 통로들을 막아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든 후 남은 사대신군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게끔 하면 되는 것이야.”

장환은 반박할 여지가 없자 자신도 모르게 수긍하는 자세를 보였다.

“음, 그렇군요. 좋은 방법인 듯 합니다.”

사대신군이 전부 건재하다 면야 틀린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척마신군까지 명(命)을 달리 한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제갈여휘는 자신의 계책에 이미 보이지 않는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조요경이 원거리의 상황을 적들 몰래 알려 줄 수 있는 대단한 기물임에는 이견(異見)이 없지만 볼 수 있는 곳보다 볼 수 없는 곳이 훨씬 많았던 만큼, 그것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금기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실례로 척마신군이 죽은 장소 역시 조요경의 시선에 닿지 않는 곳이었으니 보이는 것만 맹신했다간 큰 코 다치게 되는 것이다. 뭐 제갈여휘야 약관도 안 되는 어린놈에게 그 노련한 척마신군이 당할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했던 것이지만 차후에 그가 진실을 알았을 땐 이미 배 떠난 후의 일이 되리라.

촤르륵! 촤륵!

그 와중에도 사내의 손은 본분을 다하고자 바쁘게 좌우로 움직였다.

“나요? 허허! 나요 라고?”

“그렇소. 문제라도 있소?”

어이가 없어 하는 무안신군과는 다르게 시종일관 담담한 시선을 내비치고 있는 동천이 대꾸하자 순간 무안신군의 몸에서 거칠 것 없는 살기가 터져 나왔다.

“네가 그 알량한 강시를 믿고 노부를 가지고 노는구나! 죽는 게 그리도 소원이라면 내 그렇게 해주지!”

주위를 질식시킬 듯한 기세였다. 바로 그 기세로 그가 한 발 내딛으려는 찰나 동천의 입이 슬며시 열렸다.

“척마신군은 실로 고수였소. 그런 그가 당신들 중에 서열 5위라니. 허면, 화정이에게 패한 마라신군은 서열이 어떻게 되오?”

멈칫!

실로 교묘한 흐름에 끊고 들어왔음인지 무안신군이 어정쩡한 자세로 동작을 멈추었다. 무시할 수도 있는 질문이었지만 어쩐지 상대의 목소리에서 호소력 비슷한 느낌이 전해져 오자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멈추게 된 것이었다. 그는 내딛는 것도 아니고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도 아닌 자세로 서 있다가 이내 결심한 듯 발을 거두어들인 후 대답을 해주었다.

“척마신군의 바로 위다.”

“그렇구려. 그럼 당신은?”

그 질문에 무안신군은 씨익 웃었다. 그러나 결코 기분이 좋아 웃음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마라신군의 바로 위지.”

잘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딱 맞춰 내력이 회복되자 더 볼 것도 없이 이쯤에서 말장난을 끝내기로 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서열 5위에서부터 3위까지 차례로 올라가며 죽는 상황이 벌어지겠구려. 음, 잘 하면 1위까지 모두 사이 좋게 차례를 지키며 죽거나.”

참으로 치욕적인 말이었음에도 무안신군은 유연하게 받아들였다. 그가 한없이 착해서 봐주는 것도 아니고 인내심이 남달라 참고 있는 것도 아닌, 아까 웃음을 내보인 이유가 바로 이런 상황을 예측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신의 예측이 사실로 드러나자 자신 있게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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