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716화
‘쳇, 아직까지 살아 있잖아? 뒈졌으면 좋았을 걸.’
새로 나타난 노인들 중 1명과 냉현, 그리고 흑혈이살은 팽팽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노인 혼자서 냉현들을 상대하는 것은 아니었고 복면인들 대여섯과 흑의인들이 기회를 보며 퇴로를 차단하는 중이었다.
‘뭐 안심하고 사용할 수는 있겠군.’
저런 상황에서 자신을 살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었기에 동천은 양손으로 독공을 집중시켰다. 사위가 어두워서 이 정도면 바로 근처에서 싸우는 상황이 아닌 이상 들킬 염려가 없었던 것이다.
“크흡! 뭐, 뭐냐 이건!”
확실히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른 독공의 위력은 대단했다. 동천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부여잡고 비틀거리는 흑의인에게 대답했다.
“왜 그런지 몰라? 흠, 이 몸도 모르겠는걸? 파하하!”
죽는 마당에 놀림까지 당했다고 생각한 흑의인은 억울했는지 눈조차 감지 못하고 쓰러져 숨을 거두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자신만 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지만 마지막에 숨이 끊어질 때 생각해보니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이노옴! 감히……, 쿨럭! 꺼어억…….”
벌써 10명 이상이 똑같은 상황에 처하며 피를 토하고 죽자 혼잡한 상황임에도 동천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드디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바쁜 아군이 아니라 어느 정도 여유를 보이고 있는 적들이었는데 운이 나빴던지 그 사람들 중에는 동천이 상대하기에 버거운 자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이건, 독이로구나.”
바로 지척에서 칼부림이 일어나든 말든 한쪽 무릎을 굽히고 동천에게 당한 시체들을 조사하던 노인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작은 소리였지만 동천이 듣기를 바랐던지 그의 귀에는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흠칫한 동천이 그를 바라보자 노인은 천천히 일어나 담담한 시선으로 물었다.
“본좌는 마라신군(魔拏神君)이라 한다. 만독문도는 아닌 것 같은데 어디 소속이기에 이런 악독한 독을 사용하느냐.”
동천은 대답했다.
“화정아, 저 영감 죽여!”
“응? 응!”
새하얀 동선(動線)을 그리며 마라신군에게 달려온 화정이는 주저 없이 일장을 내질렀다. 놀란 마라신군은 서둘러 손을 내밀었고 쾅! 소리와 함께 두어 걸음을 물러섰다. 아울러 그는 미약한 내상을 입고 놀람이 가시지 않은 눈으로 화정이를 쳐다보았다.
‘대단하다! 어디에서 이런 젊은 기재가……. 가만, 혹시 이 아이가? 음, 어디 한 번 확인을 해봐야겠구나.’
긴 듯 하지만 찰나간의 생각을 정리한 마라신군이 입을 떼려는 순간 화정이는 한 걸음 물러났던 신형을 탄성으로 극복하고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그의 얼굴과 옆구리를 노렸다.
“억? 감히!”
분노로 물든 마라신군의 반격이 일어났다. 화정이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하고 흘린 그는 연속으로 삼장(三掌)을 내뻗어 화정이의 명치를 후려쳤다.
펑!
첫 번째 장이 성공하자 화정이가 비틀거렸다.
퍼엉!
더욱 강력한 두 번째 장이 같은 부위를 타격하자 상체를 뒤로 휘청거린 화정이의 얼굴에 묘한 찡그림이 떠올랐다. 그리고 세 번째 장이 펼쳐지는 가운데 화정이의 양손이 기묘하게 휘날렸다.
피리리릿!
마치 돌개바람과도 같은 파공음이 마라신군의 손을 타고 돌며 완맥을 잡아갔다. 그는 내지르는 공격 방향과 알 수 없는 흡입력이 더해져 자신의 손을 잡아끌자 ‘헛!’ 하는 격한 숨을 들이킨 뒤 저항을 포기하는 대신에 화정이가 이끄는 반대 방향으로 팔을 회전시키며 그대로 전진하여 공격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채 시전이 되기도 전에 화정이에게 손목이 잡히는 게 아닌가.
“이, 이건……. 단금영엽(短禁影葉)?”
단금영엽은 상대방을 붙잡고 제압하는데 쓰이는 금나술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이 무공은 만독문의 대당주인 단묘(短猫) 민소희(旼少希)의 성명절기 중 하나였다.
화정이와 손속을 섞고 나서 ‘이 아이가 미리 보고를 받았던 초혼강시인가?’ 하고 의심한 마라신군은 암흑마교의 강시가, 그것도 초혼강시가 단금영엽과도 같은 난해한 무공을 시전 했다는 것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었데, 그 원류가 만독문의 무공이기까지 하자 이게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한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제 곧 자신에게 위기가 닥쳐 올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헤에, 잡았다. 영감, 간다아!”
자신의 팔목을 부러지듯 움켜쥔 화정이가 남은 손을 이용해 큰 동작으로 뒤로 젖혔다가 패앵! 소리와 함께 화살처럼 꽂혀들자 어쩔 도리가 없었던 마라신군은 방어를 포기하고 11성의 내공을 끌어올려 혼신의 힘을 다해 화정이의 얼굴을 가격해 들어갔다.
“요망한 것! 인세에서 사라지거라!”
쩍!
정확하게 화정이의 안면공격을 성공시키자 그녀의 고개가 둔탁하게 뒤로 제켜졌다.
‘크윽, 성공인가?’
마라신군은 공격한 손이 되려 빠개질 듯한 충격과 함께 욱신거리자 초조한 마음으로 초혼강시임을 확신한 상대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에게는 애석하게도 이내 고개를 원상태로 돌려놓은 화정이는 벌겋게 손자국이 찍힌 얼굴로 울먹였다.
“히잉! 아프잖아, 영감아.”
“이, 이럴 수가! 초혼강시가 맞기나 하는 것인가?”
그가 알고 있는 초혼강시라면 자신의 11성 공격에 안면이 함몰되어 뒤로 넘어갔어도 벌써 넘어갔어야 정상이었다. 헌데, 충격은커녕 손자국만 보이는 것이 다였고 그것도 모자라 서서히 자국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 마라신군은 소리를 내지르며 화정이의 전신을 폭풍처럼 두드리기 시작했다.
“으허어어업!”
퍼퍼퍼퍽! 퍼퍼퍼퍼! 퍼퍼퍽!
미친 듯이 때리고 있는 중인 마라신군은 잡혀서 도통 빠질 생각을 않는 왼손은 재빠른 판단으로 포기했다. 대신에 그는 나머지 손과 발을 이용하여 그야말로 숨쉴 틈 없이 화정이에게 타격을 가했다.
그런 그의 연속공격이 어찌나 과격했던지 주위의 동료들까지 손을 놓고 지켜볼 정도였으니 그 기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대충은 짐작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소용이 없었던 것일까? 마라신군의 그 현란한 공격은 허무하게도 화정이의 단 한방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방이었다.
뻐억!
“크아아악!”
눈앞이 번쩍 했다고 느끼는 순간 마라신군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정신을 끈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화정이는 실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뒤로 날아가는 상대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이 앞으로 넘어지게 만들었다.
그런 뒤 엎어진 그를 바로 뉘이고는 기왓장 10장을 깨는 자세로 주먹을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더니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목표지점은 마라신군의 얼굴로서 일명 ‘때린대 또 때리기’ 를 시전 하려는 것이었다.
뻑! 뻐억! 퍼억!
아무도 그녀를 제지할 생각을 못했고, 안면이 짓이겨진 마라신군은 바닥에 패대기쳐진 개구리가 무색할 정도로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사지를 꿈틀거렸다.
기절하여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노인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지만 딱히 그녀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그녀는 그저 주인님의 명령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분명히 죽이라고 했으니 죽을 때까지 내려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본의 아니게 공포를 조성하여 유독 그녀의 주위에만 적막이 찾아들고 있을 때 분노를 갈무리한 듯한 음성이 그녀에게 들려왔다.
“멈추어라!”
다른 오대신군 중 한 명이 뒤늦게 사태를 인지하고 요림주 금요랑과 싸우다 말고 급히 화정이 쪽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간발의 차이로 화정이의 주먹이 약간 빨랐다.
퍼걱!
“와∼, 끝났다!”
“이, 이런! 현제(顯弟), 이보게 현제!”
볼일을 끝낸 화정이가 제지하지 않아서인지 마라신군을 빼내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무안신군(無顔神君)은 두개골이 부서지고 도저히 얼굴의 형상을 알아 볼 수 없는 의형제의 몰골을 바라보며 슬픔과 분노를 느꼈던지 벌떡 일어나 죽일 듯이 화정이를 노려봤다.
“빠드득! 내 네 년을 기필코 찢어 죽이고야 말리라!”
부아아앙!
그의 검에서 서슬 퍼런 검기가 쏟아져 나왔다. 실로 범상치 않은 공격이었건만 화정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의 주인을 찾았다.
“어? 또 다른 영감이네? 동천 쟤는……. 어라? 동천? 동천?”
그 시각, 화정이가 찾는 동천은 뒤로 연신 후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익! 나이 처먹고 그렇게 할 짓이 없냐?”
“닥쳐라, 이놈! 네놈이 감히 본좌의 대계를 망쳐놓다니!”
“으왁? 말로 하자고! 아, 젠장할!”
만일에 아까 동천이 곁에 있었더라면 마라신군이 처음 나가떨어졌을 때 고이(?) 모셔놨다가 위급한 상황에서 인질로 써먹고자 남겨두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화정이와 마라신군이 격돌한 직후, 그는 척마신군(斥魔神君) 좌무양(左舞洋)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여기저기가 쩍쩍 갈라져 피가 흐르고 낭패한 몰골이 가득했던 척마신군은 어떻게 해서든 복수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기겠던지 집요한 공격들을 따돌리고 동천에게 당도했던 것이다.
쉭, 쉬익! 파바박! 파앙!
쉴 새 없는 공격이 이어지는지라 동천은 도저히 공격할 틈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빠른 발을 앞세워 뒤로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현재 모든 내공을 신법에 사용하고 있는 이 마당에 얼마간이라도 회수하여 공격으로 전환하고자 했다간 그대로 당할 것만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저런 미미년만큼 속 좁은 새끼 같으니라고! 쳇, 뭐 좋다 이거야. 조금만 더 따라오라지? 아주 지옥을 경험하게 해 줄 테니까!’
비록 수세에 몰리고는 있었지만 동천이 아무 생각 없이 뒤로 도망친 것은 아니었다. 바로 치우도법을 펼치고자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독공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생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초반에 좀 여유가 있었을 때 척마신군에게 시험해 봤는데 동천의 독공은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위험을 감지한 척마신군의 육체가 본능적으로 호신강기를 일으키자 허무하게 흩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대로 동천의 독공을 탓할 것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내공에서 밀린 탓이었으므로 절대 실망할 게재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쥐새끼 같은 놈! 어디까지 도망을 쳐볼 작정이더냐! 흥! 그래봤자 이제 곧 있으면 뒤가 막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느냐?”
비릿하게 미소한 척마신군의 조롱 아닌 조롱에 동천은 지지 않고 대꾸했다.
“뭐라고 했더라? 아, 척마신군님이라고 했죠? 으음! 한 서너 명의 시정잡배들을 잡고 좋다고 니가 지은 외호인가요? 아아, 안 봐도 뻔해요. 너는 늙어서 인생 그렇게 살고 싶나요? 예? 예?”
“저, 저, 저!”
너무도 화가 나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지 공격하는 것까지 잊어버린 척마신군은 부들거리는 손가락으로 동천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리고 동천에게 이 짧은 기회는 반격을 가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어느새 동천의 두 눈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