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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720화


“흐야아압!”

환청인 양 물이 갈리듯 촤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 신군이 방어진을 뚫고 비호처럼 뛰어들었다. 냉현과 흑혈이살로서는 막고자 하면 막을 수도 있는 공격이었지만 내상을 우려하여 길을 내어준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억?”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것은 동천이었다. 화정이의 뒤에서 안전하게 숨어 있었는데 졸지에 정면으로 부딪히게 되었으니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겁을 한 그는 재빨리 화정이의 영향권까지 다가간 후 벽 쪽으로 붙은 뒤 위급해지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했지만 허무하게도 상대는 그와 화정이를 지나쳐 무안신군의 옆으로 안전하게 합류했다.

“……”

동천이 어정쩡하게 서있건 말건 상대는 무안신군의 안위를 물었다.

“괜찮은가, 무안?”

“나는 괜찮소. 하지만 현제와 좌무양이 저 연놈들에게 당했소!”

마라신군이 당한 것은 그도 보았지만 설마 척마신군까지 당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연주신군(聯珠神君)은 두 눈을 크게 치떴다.

“뭐, 뭣이? 자네가 있었음에도 좌무양이 당했다는 말인가?”

무안신군은 침통한 신색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저 강시 계집을 따라왔을 땐 이미 죽어있는 상태였소! 무슨 비열한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놈의 말로는 자기 혼자 그를 상대하여 살해했다고 하더이다!”

“으음!”

연주신군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짓는 한편 분노도 함께 느꼈지만 근처에서 척마신군의 시신으로 보이는 시체를 발견했음에도 굳이 다가가 확인해 볼 생각까지는 없었다.

좌무양의 경우 나머지 4대신군들과는 달리 외지에서 움직이는 시간이 길었으므로 그들과 그다지 친분을 유지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그럴만한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말이다.

“본의 아니게 전력의 손실이 컸지만 우리 둘이서 이곳만 잘 사수한다면 승산은 충분할 걸세. 아마도 우리가 지나온 저 통로는 연합세력의 놈들이 쫓기고 있는 상황일 것이니, 앞뒤로 포위하여 압사시키는 꼴이 되는 셈이지!”

그의 말대로 그가 무안신군과 합류한 뒤에 나타난 자들은 열에 일곱이 연합세력의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동천과 화정이가 통로로 사라질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잘 모르는 눈치였는데, 냉현 일행까지 전장에서 이탈하자 ‘어어?’ 하면서 너도나도 통로로 후퇴한 것이었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작정 통로를 택한 것이 아닌, 수적인 열세라면 비좁은 곳이 적들을 상대하기에 용이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기도 했다.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저 강시가 보통이 아닙니다. 현제가 그냥 방심해서 당한 것이 아닙니다.”

무안신군이 반대의 의견을 피력한 그때 그들을 향해 연합 세력의 인물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써 뒤쪽에서 적들이 압박해오자 조금씩 그들 쪽으로 밀려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쥐새끼 같은 놈들! 어딜 갔나 했더니 여기에 숨어 있었구나!”

가슴을 길게 베인 혈각주 초무강이 두 눈을 부라리며 그들에게 뛰어들었다. 혼자가 아닌 요림주가 동행했는데 그녀는 외관상 흐트러진 모습은 보였어도 검상을 당한 흔적은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어진 연주신군은 무안신군의 말에 가당치 않다는 대답을 해주려다 신형을 고치고 공간을 확보하고자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 건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함세. 불리해지면 영주께서 피할 곳을 마련해주시기로 하였으니.”

“으음, 그렇게 합시다.”

무안신군은 당장에 저 어린놈(동천)을 요절을 내주고 싶었지만 나중을 기약하며 싸움에 임했다.

한편, 화정이에게 자신의 근처에서 떠나지 말고 늙은이 둘을 견제만 하라고 전음을 보내준 동천은 난데없이 나타난 혈각주와 요림주가 그들을 맡아주자 얼씨구나 냉현 쪽으로 붙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강소홍 쪽이라고 해야겠지만.

“소문주님,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강소홍은 자신이 지나온 통로 쪽을 예의주시 하다가 동천의 인사를 듣고는 반갑게 화답했다.

“아! 운이 좋았을 따름이에요. 그보다 척마신군은 어떻게 되었나요?”

순간 동천의 얼굴이 약간 어색하게 변했다. 다행이 어둠이 짙게 깔린 상황이어서 강소홍의 화후로는 그 부분까진 잡아내지 못했다.

‘어랍쇼? 그놈이 이 몸을 공격하며 쫓아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었단 말야? 어허! 얘가 첫날밤도 못 치르고 평생 과부로 지내고 싶나, 지아비 될 분을 나 몰라라 하네?’

알고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동천에게 상당히 안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강소홍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사대신군과 그들의 수하들이 개입했을 때 단지 수하들만을 상대함에 있어서도 신경을 분산시킬 틈이 없었다. 1대 1로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었지만 협공을 하자 도무지 빠른 시간에 승부를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행이 수하인 숭의겸과 섬살대주 을목평이 잘 견제를 해주었고 합류한 만독문의 수하들이 그들을 도왔기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녀가 동천을 구하러 가지 않았던 이유는 그와 개인적인 친분은 있었으나 목숨을 걸만한 가치는 없다고 여겼고, 또 부리나케 도망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저자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뒤에 화정이가 따라간 것도 있었고 말이다.

“무얼 그리도 생각하고 있나요?”

그제야 동천이 상념에서 깨어났다.

“하하, 아닙니다. 다행히 화정이가 도와주러 왔는지라 협공을 하여 그를 처치할 수 있었습니다. 저기 보이는 것이 그의 시체입니다.”

말하는 와중에도 기분은 별로였지만 그는 곧 사내는 대범해야 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떠올리곤 대범하게 용서해주기로 했다.

‘아! 난 역시 대범해!’

그가 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앞뒤로 중간에 놓이게 된 그들 일행은 확실히 좁은 곳에서의 방어가 효과를 보는지 한결 편하게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무안신군과 연주신군 쪽은 당장에 흑혈이살을 투입해도 밀어낼 수 있을 듯이 보였지만 혈각주와 요림주의 자존심 싸움이라고 봐도 될 듯한 용호상박이자 그들의 체면을 생각하여 섣불리 나서려는 자가 없었고, 반대편은 환마교의 총사인 관덕청의 주도 아래 일종의 저지선을 마련하여 잘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덕분에 손을 놀리고 있는 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력을 보충했으며 그들과 다를 바 없었던 강소홍은 동천의 말에 사뭇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단하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아직은 자신의 실력을 내비치는 것이 시기상조라고 여긴 동천이 화정이를 끌어들이자 그가 의도한 바대로 그녀는 내심 화정이가 혼자 처치한 것이라고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죽립은 언제 분실했나요? 기어코 쓰고 다니고자 하시는 것 같던데.”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깜짝 놀란 동천은 훤히 드러난 머리를 매만지다가 뒤늦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척마신군에게 치우도법을 전개하기 전에 그가 살아날 확률을 7할 이상으로 잡고 있었던 동천은 이후의 공격방법을 은형포단으로 결정한 상태였다.

하지만 은형포단으로 가짜 벽을 만들자면 최대한 벽에 달라붙어야 하는데 죽립 때문에 굴곡이 심할 것 같자 치우도법을 전개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죽립을 풀어 바닥에 떨어트렸었던 것이다.

“아아, 그게 말이죠. 척마신군과 너무도 치열하게 싸우다 보니 죽립의 턱끈이 끊어졌었나 보네요. 하하,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계속 잊고 있을 뻔했는데 감사합니다.”

인사를 받을 것까지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동천은 주위의 상황을 무시한 채 그녀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냉현이 알게 모르게 노려보고 있음을 감지하곤 더러워서 그만 두었다.

‘재수 없는 새끼. 나중에 질질 짜며 잘못했다고 빌게 만들 테다.’

냉현이 할 소리를 하고 있던 동천은 말이 나온 김에 죽립을 되찾고자 척마신군 쪽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를 기쁘게 했지만 문제는 죽립이 떨어진 곳이 두 신군과 혈각주 등이 싸우고 있는 영향권 내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젠장! 저렇게 격렬하게 싸우는데 끼여들기도 뭐하고, 달리 생각하면 저렇게 격렬하니 죽립의 안위(?)가 걱정이 되고……. 으음, 가? 말어? 가? 말어?’

그렇게 쓸데없는 곳에 심력을 낭비하는 순간! 동천의 뇌리를 강타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아! 척마신군은 고수가 아니던가!’

척마신군 -> 고수 -> 무공비급 -> 내 꺼. 라는 이상한 공식이 성립 된 동천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무림인들이 무공비급을 지니고 있을 리 만무하지만 대게 무림인들은 머릿속으로 모호하게 기억하는 것보다 직접 서책을 펼쳐 눈으로 읽고 또 읽는 것이 훨씬 빠른 진전을 보인다는 것을 알기에 대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진본이든 사본이든 비급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이런 사지에까지 지니고 올 리 만무하지만 후계자가 없는 무림인들은 종종 자신의 품에서 비급을 떼어놓는 법이 없었다. 동천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

‘조금만. 조금마아안. 조금……. 아? 됐다!’

슬금슬금 움직여 죽립을 회수한 그는 근처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와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석자 정도의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척마신군의 시체를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껄끄럽게도 죽립이 떨어진 곳까지는 괜찮았는데 더 안으로 들어가자니 변수가 많다는 것이 그의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순간 그의 손은 어느새 척마신군의 품을 뒤지고 있었다.

‘헉? 심봤다아아!’

척마신군의 품속에서 두툼한 서책이 느껴졌다. 재빨리 꺼낸 그는 내용을 확인할 사이도 없이 둘둘 말아 소매 속으로 집어넣었다.

헌데, 이제 뒤로 물러서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때 콩알 보다 약간 큰 빛줄기가 섬전처럼 동천의 가슴을 향해 쏘아져 오는 것이 아닌가?

“화, 화정!”

그 빛줄기를 보는 순간 동천은 피하기란 요원함을 직감했다. 긴장을 하고 전 내공을 끌어올린 상태였어도 겨우 피할까 말까 였는데, 무릎을 굽히고 시체의 품속이나 뒤지는 와중에 그것을 어떻게 피한다는 말인가.

하여, 그는 본능적으로 화정이를 불렀지만 채 다 부르기도 전에 가공할 빛줄기는 바로 그의 눈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으헉? 제, 젠자아앙!’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하니 억울하기도 하고, 괜히 눈에만 뜨일까봐 화정이를 세워두고 온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제일 억울한 것은 그 수많은 부인 예정자들(?)을 놔두고 장가 한번 못 가보고 죽는 것이었으니, 의외로 그런 것에 집착이 강했던 동천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겠다는 듯 있는 힘껏 눈을 부릅떴다.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을 먹은 순간 그가 체감하는 시간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으며 종래에는 섬전과도 같았던 날카로운 빛줄기가 자신의 1자(30Cm) 앞에서 정지한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뭐지?’

의문점이 머릿속을 지배하자 동천은 고개를 갸웃거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이었고 그의 고개는 여전히 정지된 상태였다.

어떻게 생각하면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빤히 바라만 보다가 죽어줘야 하는 신세인가 싶었지만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억겁의 흐름 마냥 느리고 또 한없이 느리기만 했다.

‘이, 이건 어쩌면 기회다! 분명히 피할 방법이 있을 거야! 하지만 어떻게? 오오, 하늘님! 이 불쌍한 어린양이 묻노니, 피할 방법이 없을까요? 예? 없을까요? 진짜 없을까요? 없어? 씨팔, 없으면 다야? 니가 그러고도 하늘이야?’

간만에 지가 불러 놓고 성질을 낸 동천은 마음이 흐트러져서 인지 시간의 흐름이 다시금 되돌아가려는 듯한 불길함을 감지했다. 생사가 달린 그로서는 당연히 급박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안 돼! 난 아직 죽을 수 없어! 썅!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단 말야아 아!’

그때였다.

콰우우우우!

그의 허리띠에서 보일 듯 말 듯한 막이 형성되더니 정확히 빛줄기의 바로 앞까지 생성되었다. 그리곤 그걸 기다렸다는 듯 시간은 원래의 흐름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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