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73화
화정이가 힘 조절을 못해서 또다시 다리를 부러뜨리자 동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부릅뜨며,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한종도를 안됐다는 듯이 바라본 동천은 자신의 명령이 떨어지질 않아서 계속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화정이에게 그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동천이 뭐라 하기 전에 진악이 스스로 나서서 탈골된 관절을 맞추려 했다.
“자.. 잠시만 그러고 있게…”
한종도가 발악을 못하도록, 점혈을 한 진악은 얕은 개울가에 올려놓은 통나무가 정확히 절반 정도 부러진 형상을 하고 있는 한종도의 다리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번 것은 소전주가 다리를 주무르는 강시를 급히 제지시키지 않아서 그 피해 정도가 아까의 노반보다 월등히 컸다. 잠시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여러 각도(角度)에서 쳐다본 진악은 이내 결심을 하고는 손을 놀렸다.
“우두둑! 우둑.. 드그극!”
한 번 비틀고, 들어 올려서 재빠르게 잡아당기는 진악의 손놀림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한종도는 고통은 물밀듯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발버둥을 치려던 그는 자신의 몸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식시켜줄 수 있는 하나의 기관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흐으으으…. 으악! 으엑! 나 죽어-유!!”
유난히도 목청이 컸던 한종도의 비명에 동천은 양쪽 귀를 얼른 틀어막았다.
“에이씨.. 이 새끼야! 시끄러! 입 안 다물어?”
그러나, 아파서 죽을 것 같은 놈이 동천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리가 없었다.
“살려…. 끄어어어… 케엑!!”
결국은 동천에게 아가리를 한 대 얻어맞은 한종도는 더 이상 고통(苦痛)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기절한 것이었다. 동천에게 맞아서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간 한종도를 지켜보던 동천은 아직도 다리를 붙잡고 낑낑거리는 진악에게 눈길을 돌렸다.
“더러운 새끼.. 콧물까지 흘렸잖아? 야, 다 맞췄냐?”
“아.. 아닙… 좀 더.. 조금만…. 휴우.. 이제, 다 됐습니다. 저 강시가..”
그때, 동천이 진악의 말을 잘랐다.
“화정이야. 동화정. 이름이 있으니까 다시 한번 강시라고 부르면 너도 여기 있는 자식들과 똑같이 만들어줄 테니까, 그리 알아.”
자신의 소전주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것에 식은땀을 흘린 진악은 황급히 조아렸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방금 말이 중단됐었는데요. 화정이가 부러진 다리를 계속, 주무르는 바람에 맞추는 데 좀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수고스러우시더라도 다리가 부러지면 얼른 멈추라고 명령을 내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별 어려운 부탁이 아니기에 동천은 그러겠다고 했다.
“야, 다음 놈 불러오면서 얘들 치울 녀석들도 데려와.”
“알겠습니다.”
그 후로부터 무려 열여섯 명이 더 들락거리고 나서야, 화정이가 강약 조절을 무난히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대기자가 세 명이 남아 있었는데 그만 가봐도 좋다는 말을 듣고 그들이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진악은 이번 일을 계기로 비약적(飛躍的)인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지금 이렇게 편히 안마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똑똑똑…
‘응? 소연이가 왔나보군..’
지금 이 시간에 자신에게 올 사람은 소연이밖에 없었으므로 동천은 화정이에게 계속 안마를 받으며 말했다.
“뭐야?”
“주인님. 가실 시간인데요..”
소연의 말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던 동천은 돌아누워서 화정이에게 허리 안마를 받았다. 허리에 시원함보다는 무겁다는 느낌이 더 컸지만 세가의 장할아버지는 동천이 허리를 밟아줄 때마다 ‘어~ 시원하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동천도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정화에게 갈 것을 생각하니 동천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싫다. 사정화 그년이 보기 싫다..’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튀어나오는 말은 현실을 직시했다.
“알았어.. 밖에 마차나 준비시켜.”
“예..”
소연이가 나가고 나자 동천은 화정이에게 그만하라고 말한 뒤 마지못해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놓은 옥피리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소교주가 준 거지만 이미 자기 거나 다름없는 물건이니까 옥피리를 어디에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서는 뭐라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가기 싫지만… 에이!”
소연의 안내를 받으며 밖으로 걸어나간 동천은 어느새 마차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동천은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른 마차 대기에 의아해서 소연에게 물어봤다.
“야, 네가 미리 대기시켰냐?”
소연은 고개를 저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이 둔한 계집애가 그럴 리가 없겠지.. 역시, 나는…’
동천이 자신의 생각이 들어맞아서 자신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있을 때, 소연이 뜻밖의 말을 했다.
“제가 아니고요. 도연이가 미리 대기시켜놓은 거예요.”
“어? 걔가?”
“예. 제가 주인님 방으로 걸어가는데 벌써 마차가 서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마부 아저씨께 가서 물어보니까, 그 아저씨가 도연이라는 아이가 시켜서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동천은 잠깐 동안 눈을 크게 떴다.
‘호오..? 좀, 의외인데? 전혀 표정이 없는 자식이라서 대가리가 빈 놈인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준비성이 있는 놈이네? 에이.. 알게 뭐야. 지금 사정화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데 쓸데없는 부분까지 파고들지 말자.’
“그런데.. 도연이는 어디 있냐?”
“여기 있습니다.”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본 동천은 뒤에서 무표정하게 서있는 도연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이 잠시 당황했다는 것을 상기시킨 동천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야, 다음부터 내 뒤로 올 때는 기척을 내 임마! 알았어?”
“알겠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동천은 도연이 준비해온 마차로 타고 가기가 싫어졌다.
“걸어 갈란다.”
동천의 말에 소연은 깜짝 놀라서 물어보았다.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마차가 있는데 왜….”
“너.. 새가 왜 날아가는 줄 알아?”
느닷없는 동천의 질문에 소연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저런 질문을 했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답을 해야 했기에 소연은 또 맞을 각오로 조심스레 대답했다.
“날개가 달렸으니까요…..”
말을 하면서도 소연은 동천의 손을 쳐다보았다. 만약에 동천이 손가락이라도 까딱! 한다면 피해 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원래, 동천이 원하던 대답은 ‘날아가고 싶으니까..’였는데, 소연이 자신이 원하는 답의 방향과는 다르게 말하자 할 수 없고 생각했다. 다시 질문하기도 귀찮았던 동천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답을 조금 고쳐서 말했다.
“그래.. 내 말이 그거야. 새는 날아가라고 날개가 있는 거야. 그리고, 사람은 걸어가라고 다리가 있는 거고.. 나는 다리가 있다. 너도 다리가 있고… 에.. 그렇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말의 방향이 새 나간다는 것을 알아챈 동천은 얼른 말을 마무리 지었다. 소연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동천을 보았다.
“뭐야.. 불만있어?”
“예?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나요. 호호.. 잘 갔다 오세요…”
소연은 억지로 웃으면서 손을 황급히 저었고, 도연은 자신이 대기시켜 놓은 마차를 주인이 타고 가지 않는다고 하자 앞으로 나서서 안내할 준비를 했다.
“걸어서 가신다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 너, 거기 지리(地理) 알아?”
“예. 이미 한 달 전에 이곳의 지리는 윗분의 명령으로 모두 숙지(熟知)했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 계시면 말만 하십시오. 제가, 금지(禁止)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모셔다 드릴 수가 있습니다.”
‘응? 금지(禁止)? 처음 들어보는데? 무지하게 궁금하네? 그러나.. 저 녀석에게는 물어보고 싶지 않다.’
자신의 궁금함을 꾹.. 참은 동천은 나중에 사부님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얼른 가자.”
“예. 따라오십시오.”
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도연이 앞서 나갔고 뒤에 있던 소연은 약왕전 대문까지 따라와서 배웅해줬다.
“잘 다녀오세요.”
“그래. 화정이 잘 가르쳐.”
가기 싫어서 괜히 늑장 부리고, 전혀 신기하지도 않은 것을 신기한 척 하면서 구경하다가도… 그렇게 절반쯤 걸어가던 동천은 순간적으로 수련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럼, 나 갈 테니까 시간 맞춰서 와야 해. 알았지? 나야 뭐, 상관은 없지만 아가씨께서 기다리시면 네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으-악! 큰일났다. 야, 시간 없으니까 빨리 달려서 안내해!”
앞서가던 도연은 갑자기 들려오는 주인의 당황 섞인 목소리에 얼른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이상은 없고, 다만 빨리 가라는 재촉이었다는 것을 안 도연은 명령이기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빠르게 달렸다.
시간이 급박하다고 생각한 동천은 앞서 달려가는 도연의 모습이 굼벵이 같다고 느껴져서 소리쳤다.
“달려.. 빨리 달려!”
“그러고 있습니다…”
그 속도가 그 속도인데 빨리 달린다고 하자 열불이 난 동천은 얼른 쫓아가서 꿀밤 한 대 먹인 뒤, 다시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