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81화
어제 힘을 쓴 것도 있고 해서 걸신(乞神)이 들린 듯이 음식물을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밥을 먹은 동천은 사부님이 오라던 시간이 훨씬 넘어갔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른 달려갔다. 동천은 사부에게 놀라운.. 아니,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응? 햐.. 너, 진짜로 그거 다했냐? 오호? 놀라운데?”
동천의 눈이 안 커질래야 안 커질 수가 없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런, 제자의 얼굴이 재미있게 비쳤는지 역천은 대소를 터뜨린 후에 어리둥절해 있는 동천에게 말했다.
“내가 1천 회를 부르면 네가 한 3백 회만 하고 그만둘 줄 알아서 늘려 잡아 1천 회를 부른 건데, 네가 그걸 다 할 줄 몰랐다는 얘기다. 어쨌든 수고했구나.”
다리에 힘이 빠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1천 회를 해서 동천에게 득이 되면 득(得)이 됐지, 실(失)이 되진 않겠지만 왠지 허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개새끼….”
느닷없이 튀어나온 제자의 욕에 역천의 눈은 퉁방울만 해졌다.
“에엥?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예? 제가 뭐라고 했나요?”
도연을 생각하다가 무심결에 나온 말인데 동천은 그것을 인식(認識)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역천은 갑작스레 튀어나온 제자의 욕설에 당황해서 물어봤는데, 정작 제자는 무슨 말이냐는 듯이 물어보자 더욱 황당한 마음이었다.
“네가, 방금 전에 개새끼라고 그러지 않았느냐?”
그제서야 혼자 생각하던 것이 자신의 입에서 말로 튀어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동천은 얼른 사부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아하? 난 또 뭐라구.. 헤헤! 그 말은요. 아까 올 때, 개 한 마리를 봤는데 갑자기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말로 튀어나온 거예요.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 말이 왠지 믿음이 안 갔지만 역천은 말없이 넘어갔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은 제자가 알아서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모른 체했다.
“알았다. 그건 그렇고, 네가 1천 회를 했다면 어느 정도 틀은 잡혔을 게 분명하니.. 여기서 다시 한번 시전해 보아라. 아직도 미진한 곳이 있으면 이 사부가 교정시켜 주마.”
사부가 말없이 넘어간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쉰, 동천은 고개를 끄덕인 뒤, 신법을 시전했다.
쉭! 쉬-쉭!
사부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계속 같은 행동만 반복을 한(사실, 아는 게 이 동작밖에 없다.) 동천은 자신이 어림잡아서 생각해도 한, 2백 회는 넘어간 것 같기에 서서히 짜증을 냈다. 물론, 겉으론 표현은 안 했다.
‘으으.. 힘들다. 사부–! 뭐하시는 겁니까.. 아….’
서서히 지쳐가는 제자를 말없이 지켜본 역천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힘들지? 좋다. 그만해라.”
사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동작을 멈춘 동천은 고개를 숙이고는 거친 숨결을 내뱉었다.
“헉-헉..! 이제.. 그만해도 되죠?”
역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만하면 됐다. 제자야. 너는 방금 전까지 신법을 계속 시전하면서 무엇을 느꼈느냐.”
아무 생각 없이 다리만 움직였던 동천이 그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한 동천은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이를 본 역천은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이 보았다. 아무리 쥐어짜도 동천의 머리에선 나올 게 없었다.
“음.. 음…. 그게..,, 헤헤! 저는 아직, 모르겠는데요.”
역천은 자신이 제자에게 버거운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하하! 내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했나 보구나.. 좋아. 이 사부가 너의 움직임을 보고 느낀 것을 말해주마. 동천아.. 너는 신법을 시전할 때, 왠지 생각보다 진기의 양이 많이 흘러나간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느냐?”
아까는 몰랐는데 사부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아닌 거고…
“그러고 보니… 제 내공 정도에서 이렇게 빨리 지치는 게 아닌데 생각 외로 빨리 지치는 것 같았어요.”
역천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래! 바로, 그거다. 왜 그렇게 빨리 지치는지 알 수 있겠느냐?”
잘 따라주는 제자의 답변(答辯)에 기분이 좋아진 역천은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생각 없이 다리만 놀렸던 동천이 사부의 질문에 대답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글쎄요.. 제가 너무, 열심히 했나보죠. 헤헤..”
제자의 대답이 좀 싱겁게 나왔지만 어찌어찌 대입하고, 억지로 끼워 맞추면 그 말도 맞는 답이기에 역천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어느 정도 맞긴 맞았다. 자.. 답을 가르쳐주마. 너의 문제는 호흡 조절의 실패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호흡 조절?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호흡 조절(呼吸調節)이란 말이 별로 가슴에 와닿지 않은 동천은 그게 뭐야? 하는 식의 표정으로 멀뚱히 사부를 쳐다봤다.
“응? 제자야. 왜 그런 눈으로 보냐?”
“그게 아니라요.. 호흡 조절이 뭐,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는데요?”
“그래? 후후! 좋다. 그럼, 호흡 조절의 차이를 이제부터 너의 몸으로 직접 확인시켜 주마.”
그냥 말로 가르쳐주면 되지 왜 하필이면 자기보고 또 하라는 건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동천은 잠자코 고개만 끄덕여주었다. 이를 지켜본 역천은 제자의 표정에서 진지함을 발견하고는(물론, 잘못봤다는 얘기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제자를 보았다.
“흐흐흐.. 이번에는 신법을 시전할 때, 앞으로 한 발 내디디며 숨을 가볍게 들이켜라. 그리고 분광을 시전할 때는 단전에 힘을 주면서 숨을 내뱉고, 다시 신형이 합쳐지는 사이에 짧게 숨을 내쉬면 한 동작이 끝나게 된다. 자.. 이 사부가 가르쳐준 대로 다시 한번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아라.”
정말로 그대로 하면 효과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사부가 시켰기에 동천은 속으로만 씨부렁거렸다. 한 번 숨을 길게 내쉰 동천은 다시 신법을 시전했다.
‘어? 느낌이 좀, 다른데?’
보통 때의 버거운 느낌과는 달리, 한결 가벼워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자신의 몸놀림에 동천은 놀라워했다. 자연히 신이 날 수밖에 없었다. 재밌다는 얼굴로 신형을 움직이는 제자의 모습에 역천도 따라 흥겨워했다.
“좋다! 그래! 그거야! 잘한다, 제자야!”
사부의 칭찬에 신이 난 동천은 너무, 흥이 겨운 나머지 호흡을 흐트러뜨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서웠다.
“흡! 크윽…!”
움직이다 말고 동천은 오른쪽 가슴께를 쥐며 창백해진 안색으로 멈춰 섰다. 동천의 입가에서는 가느다란 핏물이 흘러내렸다. 갑작스레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멈춰버린 제자의 모습에 흠칫했던 역천은 잠시,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아… 제자야. 한 가지를 까먹었다. 호흡 조절 시 그 순서를 역행하거나 시기를 놓치면 몸에 막대한 역류가 일어나게 된단다. 이는 비단 귀영 신법 뿐만이 아니라, 다른 무공들에도 다 통용되는 거니까, 방금 전의 고통을 또 당하고 싶지 않거든 이를 염두에 두거라. 알겠느냐?”
역천이 자세하게 말해줬지만 동천은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서있는 그대로 기절을 한 것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역천은 놀라서 다가가 진맥을 한 뒤, 죽은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프다고 엄살을 떨어서 이틀 동안 놀고먹은 동천은 도연이 밖에서 사부님이 기다린다는 말에 재빨리 옷을 갖춰 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역천은 동천이 만들어 논(?) 기초 체력 단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많이 기다리셨어요?”
역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도 방금 왔어. 그동안 몸조리는 잘했느냐?”
사부가 한 번 쓰윽.. 둘러보면 자신의 상태를 아주 간단히 알아볼 수 있기에 동천은 몸 상태만큼은 쉽사리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헤헤.. 주신 약이 너무 신통방통해서 금방 나았어요.”
이에 역천은 웃음을 지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기초 체력장을 거닐었다. 꼼꼼히 살펴본 역천은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뒤에서 서있는 동천에게로 다시 다가온 역천은 제자에게 물어보았다.
“제자야. 이 사부가 왜 너에게 이곳을 파라고 했는지 알겠느냐?”
자신도 그것이 궁금했었는데 그 궁금했던 것을 도리어 자신에게 물어보자 동천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자가 별 생각 없이 대답해서 물어본 재미가 없어졌지만 역천은 내색 없이 대답해주었다.
“좋다. 잘 들어라. 너는 이제부터 네가 잘 파서 다듬은 곳을 경공의 수련용으로 활용해야 한다. 즉, 경공을 수련할 때 꼭, 이곳에서 해야 한다는 말이지..”
듣고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여기서 경공을 시전하는 건 땅이 좀 물렁하다는 것 빼고는 그냥 맨땅과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쉬울 것 같기에 좋아서 말하려던 동천은 다시 재빠르게 이어져 나오는 사부의 말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꼭! 꼭꼭꼭!! 물이 차있어야 한다.”
동천은 사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다.”
동천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러니까 말 그대로인 건 아는데 좀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구요.”
답답해하는 제자의 모습에 역천은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나직이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편안히 경공을 익힌다면 그건, 별 쓸데없는 경공이 되어버린다. 즉, 본문의 경공술은 도주용인 만큼. 여러 가지 상황에서 무사히 도망갈 수 있는 훈련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 수련의 첫 번째로 진흙탕 속에서 몸놀리기이다. 이제 알겠느냐?”
사부의 말에 조금 생각에 잠겨있던 동천은 이내 그 말을 가볍게 넘겼다.
“아아.. 그런 말씀이세요? 난 또, 뭐라고. 까짓것 하죠 뭐. 언제 할까요? 지금 해요?”
직접 해보지 않아서 쉽게 생각했는지 동천은 수련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런 동천의 모습에 역천이 생각하길 자신은 정말로 제대로 된 제자를 둔 행복한 사부라고 생각했다.
“오오! 너의 그 의지가 이 사부를 뜨겁게 달구는구나.. 좋다! 잠시만 기다려라. 도연아, 그거 가져와라.”
“예.”
여태껏 뒤에서 조용히 시립해있던 도연은 역천의 명령에 고개를 숙이고는 잠시 뒷마당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쿵.. 쿵… 쿠-웅…
뭐, 이런 소리였다. 이를 이상히 여겨 동천이 가보려 했지만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역천은 웃음을 참으면서 이를 제지시켰다. 잠시 기다리자 드디어 꺾여지는 모서리 부분에서 그 의문의 소리를 발했던 물체가 “쿵!” 소리와 함께 약간 보여졌다.
‘뭐야? 시커먼 게 왠지 기분 나쁘게 생겼네?’
동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열심히 그 물체를 보고 있을 때 도연이 모서리 바깥쪽으로 나와서 그 시커먼 물체를 힘들게 들어 올리며 주춤주춤.. 걸어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도연이 들고 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