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98화
신나게 잠을 퍼질러 자던 동천은 소연이 자신을 급히 깨우자 신경질을 내며 때릴 듯하다가 멈추고는 연신 하품을 해댔다.
“아아함..! 쩝.. 한창 신나게 자고 있는데 깨우고 지랄이야.”
소연은 죄송하게 생각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급한 일이어서요..”
동천은 아직도 잠이 깨지 않았는지 눈을 거의 감다시피 했다.
“급한 일이 뭔데.. 혹시, 저녁밥이 준비가 안된대?”
“그게 아니라요. 도연이가 크게 다쳐서 지금 약전에 있어요.”
“뭐?”
동천은 잠이 다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도연이 크게 다쳤다는 말에 얼른 머리를 굴렸다.
<크게 다쳤다. -> 적어도 일주일은 쉰다. -> 내가 수련을 하는데 간섭받지 않는다. -> 오오.. 그렇다면….?>
“헤벌레~~”
동천이 실없이 웃음을 짓자 소연은 이상한 생각에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던 동천은 그런 소연의 행동을 보고 얼른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뭐라고? 도연이 다쳐? 어떻게 다친 거야!”
이제서야 소연이 생각했던 정상적인 분위기로 흘러가자 그녀는 울상을 지으며 여태까지 있었던 일을 낱낱이 말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데려왔구요. 도연을 업게 해서 약전에 데려다 놓았어요..”
말을 들으면서 시종일관 얼굴을 붉히던 동천은 이야기가 끝나자 거세게 탁자를 내리쳤다.
콰앙-!
“…….”
동천은 입술을 지그시 악물며 고개를 수그렸다. 그걸 본 소연은 가슴이 찡~하니 울리는 것을 가슴 깊이 느꼈다.
<아.. 겉으로는 도연이를 구박했지만 진심은 그게 아니셨구나.. 역시, 주인님은 착한 분이셔….>
동천은 고개를 수그린 것도 모자라 일어서서 몸을 돌렸다. 소연에게 등을 보이자 이제까지 악다물어져 있던 동천의 입꼬리가 서서히 말아 올려졌다.
<이히히! 그놈 참, 쌤통이다! 큭큭큭.. 웃긴데 표정 관리하느라고 죽는 줄 알았네…>
동천은 속과는 달리 겉으로는 울분을 참는 것처럼 말했다.
“결국에는… 내가 나서야 하는가..”
소연은 주인님이 침울해하자 자신만이라도 웃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다.
“호호! 안 가셔도 돼요.”
동천은 의아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왜?”
“아까 깜빡하고 말을 못했는데요. 사정화 아가씨의 집에서 큰 쥐가 나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무사들이 와서 자기들이 잡는다고 그랬어요.”
자신이 할 일이 없어지자 동천은 김이 다 빠졌다.
“칫.. 그러냐? 난, 그 쥐새끼가 진짜로 그렇게 큰놈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응? 맞아!”
동천은 손뼉을 치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야! 가서 그 죽은 쥐새끼를 이리로 가져와.”
소연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예에?”
그 끔찍하게 생긴 쥐를 가져오라는 말에 소연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동천은 이럴 때 점잖게 말하면 소연이 버틴다는 것을 알기에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소연에게 다가갔다.
“못 들었냐? 이리로 가져오라고.. 가서, 인부를 시키든지 해서 낼름 이리로 가져와. 누가 먼저 채가기 전에.”
“그.. 그걸 누가 건드려요. 더러운 건데…”
동천은 더 이상 못 참겠는지 소연에게 윽박질렀다.
“빨랑가!”
“아.. 알겠습니다.”
소연은 기가 죽어서 쪼르르.. 달려나갔다. 동천은 화가 났지만 도연이를 생각하자 금세 화가 풀렸다. 동천은 방안에서 서성거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저녁놀이 아름답게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동천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역시, 하늘님은 내편이야… 히히!>
“저기요..”
“앗? 깜짝이야! 너, 왜 안 가고 다시 와!”
속으로 희희낙락거리고 있었던 동천은 갑자기 뒤에서 소연이 부르자 기겁하며 뒤돌아보았다. 소연은 주인이 놀라 하는 것 같자 죄라도 지은 양 행동했다. 그녀는 애꿎은 치맛자락만 두 손으로 비비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요.. 마차를 타고 가도 되나요?”
자신이 놀랐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났는지 동천은 눈을 부릅떴다. 자연히 그에 따라 동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고울 리가 없었다.
“뭐야, 그 따위 것 때문에 다시 온 거냐?”
동천이 쪽팔림을 무마하기 위해 인상을 쓴 거지만 알 리가 없는 소연은 감히 주인의 눈과 마주 대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한껏 수그리며 대답했다.
“예..”
자신의 행동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자 동천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타고 가.”
“알겠습니다.. 얼른 다녀올게요.”
소연은 동천의 눈치를 보며 얼른 달려나갔다. 이번에는 달려나가는 소연을 끝까지 주시한 동천은 대문 밖으로 나갈 때까지 보고 있다가 안 보이게 되자 어깨를 으쓱! 했다. 아울러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훗! 하인을 다루는 것도 힘이 드는구나..”
끝까지 제가 놀랐다는 것을 인정 안 하는 동천이었다.
소연은 그 쥐 때문에 고생을 해서 그런지 쳐다보기도 싫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주인님이 시키는 일이니 가기 싫어도 가야 하는 것을. 소연은 신분상 동천의 전용 마차를 타고 갈 수 없었지만 마부는 소전주님이 허락했다는 소연의 말에 별말 없이 태워주었다. 원래는 확인증이나 소전주에게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러 가야 했지만 그랬다가 재수가 없으면 변을 당하는 수가 있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태워준 것이었다.
“쥐가 무사히 있어야 할 텐데…”
아까는 그 쥐를 누가 가져가냐고 말을 했지만 생각해보니 더러운 동물이긴 해도 워낙, 괴이한 쥐였기 때문에 어떤 괴짜가 가져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이이-잉… 덜컹.
얼마 안가 마차가 멈추고 마부가 문을 열어주었다. 소연의 신분상 마부와 친하지 않는 이상 이런 대접(待接)을 받을 수 없었지만 소연의 뒷배경이 그 무시무시한 소전주였으므로 감히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약왕전 하인 세계에서 소연과 도연의 위치는 전주님을 모시고 있는 매향이나 초향들보다 한 단계 더 높게 평가되고 있었다. 그들 중 소연이 도연보다 더 높게 평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소연이 동천의 강시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결정적으로 여태까지 맞는 일이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그런 소연을 다른 하인들은 은근히 존경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만하면 여태까지 동천의 횡포가 어떠했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저씨, 고마워요.”
마부는 그 무슨 말이냐는 듯 두 손을 저었다.
“하하! 이 정도쯤이야.. 뭐가 대수라고 그러냐. 어서 들어가 보아라. 소전주님께서 일을 시키셨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한 소연은 정원의 초입에서 검은 무복을 입고 있는 사내 둘을 보았다. 쥐를 자신이 들고 갈 수 없었으므로 마부 아저씨를 시키려고 했던 소연은 마침, 사람들이 서 있기에 그리로 다가갔다. 부동자세로 서 있던 두 무사들 중 한 사내가 소연이 다가오자 손을 들어 제지했다.
“누구냐. 여기에 외인은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
아까 소연이 나가고 나서 온 사람들이었으므로 소연을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소연은 밝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아까 전에 오셨던 분들 다음에 오셨군요? 저는요. 약왕전에서 왔구요. 소전주님의 심부름으로 죽어있는 쥐를 가지러 왔어요.”
마차에 약(藥)이라는 글씨가 쓰여있고, 그 글씨가 금색으로 칠해져 있기에 그들은 군말 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암흑마교에서는 소속된 곳과 지위를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마차의 문에 소속 문파의 첫 글자를 새겨놓았다. 그리고 신분에 맞춰 금, 은, 동, 철. 이렇게 네 개로 구분해놓아 사람들이 실수가 없도록 해놓았다. 안으로 쉽사리 들어간 소연은 사정화의 집 문 앞에 또 두 명의 사내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두 번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소연을 지나가게 해주었다. 이들은 아까 소연을 봤으므로 그냥 보내준 것이었다. 소연은 제일 먼저 수련의 방으로 들어갔다.
“수련아. 있니?”
소연이 방문을 두드리며 말하자 잠시 후 안에서 그 물음에 응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나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