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라자 6권 – 제11부 :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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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6권 – 제11부 : 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2화

2

북부의 황량한 모래 바람 속에서 모래 바람 소리와 함께 사막 전사의 옛이야기를 듣는 것은 신비로운 기분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홀 안은 여전히 캄캄하고, 운차이의 얼굴은 오른쪽 반만 보였다. 오른쪽 볼은 붉게 물들어 있고 왼쪽 볼은 새카맣다. 그리고 그 왼쪽 볼 위로 운차이의 왼쪽 눈이 빛났다.

“그리고 잠시 후, 소년은 지칠 대로 지쳐 목을 축이다가 낙타를 보게 되었지. 소년은 목을 축였는데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서는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어. 소년은 거의 발작하듯이 외쳤지.

‘저걸 좀 보라구! 저, 저것! 난 도저히 못 참겠어. 낙타는 말보다 훨씬 빠르단 말이야! 다리도 더 길고 힘도 더 강해! 그런데 등에 저 커다란 혹이 달려 있어서 빨리 달 리지 못한단 말이야!’.”

샌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낙타가 말보다 빠르다고?”

“더 빨라. 네가 만일 자이펀에 가게 된다면 낙타 경주를 구경하도록. 말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질풍처럼 달리는 낙타를 보게 될 테니.”

“그렇게 빨라?”

“빨라. 하지만 말처럼 그 속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낙타의 단점이다.”

“음. 그래?”

“어쨌든 소년은 목이 꽉 막힐 듯이 화가 나서 그렇게 외쳤지. 그러자 낙타는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지.

‘소년. 난 빠르게 달릴 일이 없는걸.’

‘그럴 일이 있어도 빨리 달리지는 못할 거잖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안 그래?”

‘지금 빨리 뛸 필요가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빨리 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영원히 그럴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

소년은 벌컥 화를 내고 싶어졌지. 하지만 낙타는 자신의 일을 찾아 걸어가 버렸지. 무려 세 번에 걸쳐 바보 취급을 당한 소년은 몹시 화가 나게 되었다. 하지만 추장 의 명령은 무시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항상 불만스러운 소년은 계속해서 나아갔지.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소년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황량한 모래 벌판에 섰 지. 사막 중에서도 완벽하게 모래만 있는 사막 말이야. 그리고 소년은 모래 언덕 위에 서서 모래 때문에 깔깔해진 목을 축이고는 말했지.

‘이봐. 뭐, 여기까지 왔으니 말은 해야겠어. 온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질문하다간 나도 당신만큼이나 나이를 먹게 되겠지. 난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지쳐 쓰러질 때 까지 질문하진 않겠어. 너에 대한 한 가지 질문을 하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이 모래! 도대체 이 많은 모래가 왜 있는 거야? 모래 위에선 곡식도 자라지 않아. 그 위에선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어. 전갈들도 사실 이런 날씨엔 돌아다니지 못한다구. 선인장도 이런 모래사막에선 살 수 없잖아. 도대체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되지 못하는 이런 모래가 왜 이리도 많이, 그것도 넓게 쌓여 있는 거지? 하는 일이라곤 태양의 열을 흡수하여 지글지글 타오르는 일밖엔 없잖은가.’

소년은 대충 이런 식으로 질문했지.”

그리고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샌슨이 먼저 말했다.

“야, 그거 그렇다. 음.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사막이 뭐라고 대답했어?”

“너 바보냐? 사막이 대답을 해?”

운차이는 몇 마디 평범한 말로도 상대로 하여금 평생 동안 들어왔던 그 어떤 욕설보다도 더 심한 욕설을 들었다고 여기게 만들 수 있는, 참으로 독특하고도 싸가지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샌슨은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야! 전갈도 말하고 쥐도 말하고 낙타도 말하는데 사막은 왜 말 안하냐!”

그러자 운차이는 정말 저렇게 불쌍한 작자는 처음 본다는 식으로 샌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점잖게 말했다.

“사막엔 입이 없다.”

샌슨은 목구멍에서 괴이한 소리를 내었고 나와 길시언은 킥킥거리기 시작했지만 운차이는 그 모두를 무시하면서 계속해서 말했다.

“사막이 무슨 대답을 하나. 모래만 가득가득 쌓여 있는데. 소년 역시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지. 소년은 불만에 가득 차 있었지만 최소한 북부의 머저리처럼 사막이 대 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만스러워하진 않았지.” 샌슨의 목이 졸린 듯한 신음소리. “소년은 잠시 증오스러운 눈으로 고요한 사막을 쏘아본 다음 그대로 몸을 돌려 지금 껏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샌슨은 시비를 걸듯이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

탁탁, 위이이잉. 바람이 불 때마다 창문이 움직이는 달그락 소리.

“사막이 움직여버렸지.”

“움직였다고?”

“그렇다. 움직였지. 소년은 길을 잃었어. 돌아오는 길을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된 거야.”

“태양이나, 어, 그림자 같은 것을 보면 되잖아?”

“북부 머저리 같으니…………. 태양이나 그림자를 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 길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지. 사막엔 길이 없다. 조금만 빗나가도 터무니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걷게 되는 것이 사막이야.”

“그래?”

“그렇다. Kahnat도 없고, 아, 우물도 없고 바위도 없는 완전한 모래 사막에선 누구도 길을 찾을 수 없다. 대상들도 그런 곳으로는 다니지 않는다. 소년은 화를 버럭 버럭 내면서 걸어갔지. 눈에 익은 선인장이나 바위 등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런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지. 주로 되지도 않는 욕설들이었어.”

샌슨은 운차이의 말에 벙긋거렸다. 모래밭 한가운데서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걸어가는 소년의 모습이라. 흠.

“그렇게 미친 듯이 걸어가다가, 소년은 아까 만났던 낙타와 마주치게 되었지. 낙타는 지치고 초라한 몰골을 한 소년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소년. 그 주머니를 버리는 것이 어때?”

‘뭐라구?”

낙타의 말에 소년은 손에 들고 있던 젖 주머니를 바라보았지. 낙타는 바로 그 주머니를 가리킨 거야.

‘그걸 버리면 몸이 가벼워질 테니 더 빨리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말도 안 돼. 더 빨리 걸으려다가 목이 말라 죽을지도 몰라. 이 주머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약속한다구.’

‘그런가?’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지. 소년은 낙타를 쏘아본 다음 계속해서 걸어가기 시작했어. 최소한 아까 마주쳤던 낙타를 만난 이상 방향은 똑바로 잡은 셈이거든. 그래서 소 년은 다시 기운을 차려 걸어가게 되었지. 그러다가 소년은 어느 모래 언덕을 돌아가다가 방울소리를 듣게 되었지. 소년은 당황했어. 방울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방울 뱀이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소년은 다시 생각해 보았지. 아까의 그 방울뱀은 쥐를 포식했지. 방울뱀은 보통 식사를 하고 나면 소화하기 위해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 거든. 그래서 소년은 그냥 걸어갔지. 그때 모래 언덕 위에서 쥐가 나타나서 말했지.

‘이봐.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물론 들려!’

‘아, 그래?’

소년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지. 소년은 기분 나쁜 얼굴로 쥐를 쏘아본 다음 계속 걸어갔어. 역시 방울뱀은 공격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몹시 기분이 상했지. 게다가 지쳤기 때문에 손에 든 주머니는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졌지. 소년은 그것을 버리고 싶어졌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어. 애초에 버릴 수 없는 것이면 고민도 없었을 테 지만. 그렇게 기진맥진하여 나아가던 소년은 뜨거운 모래밭에서 걸어가고 있는 전갈을 만나게 되었지. 전갈은 소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지.

‘이것 봐. 왜 그것을 들고 다니는 거지?”

‘뭐야? 목이 말라 죽어버리라는 말이야?’

‘어차피 그것은 모두 네 입 속으로 들어갈 것이잖아. 그러니 다 마셔버리고 걸어가면 되는 거 아냐? 왜 힘들게 그것을 들고 다니는 거지?’

‘지금은 목 마르지 않아!’

‘그래? 목 마를 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거로군. 그렇다면 좀더 조심하는 것이 좋겠군.’

‘무슨 뜻이지?’

‘그 주머니는 새고 있어.’

소년은 놀라서 주머니를 바라보았지. 과연 아래쪽에서 낙타젖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 얼마 남지도 않은 낙타젖을 그렇게 낭비해 버린 데 대해서 소년은 크게 낙심 했지. 소년은 일단 주머니를 거꾸로 들었지. 거꾸로 들면 잡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주머니야. 그래서 소년은 그것을 가슴에 안다시피 한 채 기진맥진해서 걸어야 했지. 사막의 모래들이 붉게 변할 때 소년은 마침내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지. 소년은 쓰러질 것 같았지만 힘들게 다리를 움직여 추장의 천막으로 걸어갔어. 담배를 피우면서 기다리던 추장은 소년을 바라보다가 말했지.

‘무엇을 보고 뭘 깨달았느냐?’

‘사막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도 가도 모래, 모래뿐이었어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어요.’

그러자 추장은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지.

‘그런가? 이상하군. 낙타와 쥐와 전갈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예? 아, 그 어리석은 동물들 말인가요?’

그러자 지혜로운 추장은 말했지.

‘그 동물들의 이야기는 좀 다르던데. 그 동물들은 네가 마치 낙타가 매달고 다니는 혹처럼 무거운 주머니를, 전갈이 꼬리를 돌보듯이 소중히 끌어안은 채, 방울뱀 소 리의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그래요. 하지만 사막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막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글쎄. 내 생각에 사막은 낙타와 전갈과 쥐를 보여준 것 같은데.’

그러자 소년은 아무런 말도 못하게 되었지.”

운차이는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다시 침착하게 파이프 물부리를 물었다. 샌슨은 어느새 일어나 앉아서는 생각에 잠긴 표정이 되어 있었고 길시언은 팔베개를 한 채 드러누워 있었다. 난 여관 건물의 벽을 두드리는 모래바람 소리를 들었다. 탁, 타다다닥, 휘이이잉.

샌슨이 툭 튀어나오듯이 질문했다.

“그 이야기가 전하려는 바가 뭐야?”

운차이는 구슬픈 표정으로 샌슨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 미친 녀석으로 만들고 싶은가? 전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그냥 그 주제를 말해 버리지 왜 기다란 이야기를 하느냔 말이야.”

“어, 그런가?”

운차이는 다시 한번 홀의 시커먼 공간을 파르스름한 담배 연기로 물들인 다음 말했다.

“낙타 이야기를 들으니 그 이야기가 생각났을 뿐이야.”

“흐음.”

재미있는 이야기로군. 칼이 있었다면 저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레인트가 들으면 뭐라고 할까? 전갈이라……………. 낙타? 흐음. 방울뱀. 갑 자기 몸이 부웅 떠올라 저 열사의 사막으로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 드는군, 그래.

휘이이잉!

길시언은 바람 소리의 끝자락에 붙여서 말했다.

“이만 자둡시다. 험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러자 샌슨은 난로에 장작 하나를 던져넣은 다음 다시 드러누웠다. 나 역시 모포를 머리 위까지 끌어올렸다. 흐음. 한 두어 달쯤 전에 누군가 헬턴트 영지의 초장이 후보인 나 후치 네드발이 북부의 어느 여관 홀 바닥에서 포근한 표정으로 잠들게 될 거라고 말했다면 난 상대의 정신 상태를 의심했겠지. 핫하! 우스운 거야, 인생이 란. 모두들 운차이가 말하는 낙타처럼 혹 하나씩을 매달고 그저 걸어가는 것인가?

내 혹은 뭘까?

쾅쾅쾅!

이건, 음. 그렇지. 델하파의 항구다. 거기서도 누군가가 아침부터 문짝이 부서져라 두드려대었지. 하지만 여긴 델하파가 아니잖아.

쾅쾅쾅!

“젠장! 어느 녀석인지 모르지만 내 아침잠을 깨울 정도로 급하지 않다면 그 짓 그만둬!”

샌슨의 졸음에 겨운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간신히 현실 감각을 되찾고는 누군가 우리가 누워 있는 여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리고 그럴 경우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일어나 문을 열고 내다보아야 될 것이다.

난 양식이 없어. 제발 그만두자구.

쾅! 콰과광! 쾅쾅! 쾅! 쾅!

아주 리듬감 있는 노크 소리로군. 눈을 떠보니 내 오른손 둘째 손가락이 노크 소리에 맞춰 땅바닥을 두드리는 모습이 보인다. 탁, 타다닥탁, 탁탁, 탁, 탁. 제기랄. 아 무래도 일어나야 되겠는걸.

난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여관 정문까지 걸어가는 길이 참으로 멀게 느껴지는군. “으아아!” 무슨 소리지? 괜찮아. 설마 누군가를 밟지는 않았겠 지. “내 다리!” 음. 샌슨. 잠꼬대를 이상하게 하는군. 꼭 내가 샌슨의 다리를 밟은 것 같잖아.

“밖에 누구요! 그런데 나에게 이 질문을 할 권리가 있냐고 묻지는 말아요.”

왜냐하면 난 이 건물의 주인은 아니니까. 문을 열자 곧 맹렬한 바람이 불어닥쳐서 나는 머리를 홱 젖혔다. 잠시 후 힘들게 다시 앞을 바라보니 검푸른 새벽 하늘을 배 경으로 서 있는 시커먼 그림자가 보였다. 자세히 보자 그 그림자는 커다란 망토 같은 것을 뒤집어쓴 남자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에는 기다란 막대기………… 창인가? 어쨌든 그런 것을 들고 있었는데, 남자는 뭐라고 마구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도 몇 명의 다른 남자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 사람들 역시 뭐라 고 떠들고 있었다. 난 머리를 휘젓고 나서 말했다.

“잠깐, 잠깐만. 나 잠에 취해서 그러는데, 좀 천천히 침착하게 말해 주겠어요?”

남자는 내 의견을 받아들여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오크요!”

“아, 그러세요? 전 인간이에요.”

남자는 한 대 맞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고 등 뒤에서는 운차이의 것으로 짐작되는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밖의 남자는 자기 얼굴에 떠올랐던 표정을 나 또한 떠올리게 만들었다.

“여기 괴물 초장이와 괴물 눈알이라는 사람 있소?”

등 뒤에선 목이 걸린 듯한 켁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것도 아마 운차이인 것 같다.

칸 아디움의 외성은 여덟 개의 거대한 성탑과 그것들을 잇는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따라서 도시의 모양은 전체적으로 기다란 팔각형의 모습이었다. 기단부는 조금 돋아올라 있었지만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고 성벽 위의 갤러리와 지상은 성탑 내부에 있는 나선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황량한 북부의 외진 곳에 있는 성 치 고는 상당히 튼튼한 규모였다. 어쨌든 성탑 내의 나선 계단을 따라서 성벽 위의 갤러리에 올라가자마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마치 전선으로 돌아온 것 같군.”

그러자 길시언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스름한 새벽 공기, 그 축축한 대기 사이로 병사들의 그림자들이 성벽 위에 돋아난 혹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병사들 중에서 특히 큼직한 덩치를 가진 사내의 그림자가 보인다. 사내는 흉벽에 몸을 기댄 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그림자가 독특했다. 길시언은 곧장 그 에게 물었다.

“제대 군인이오?”

사내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우리들을 쓰윽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이 그 사람들인 모양이군. 나는 아넨드 라이스터 중위. 12연대 강행 정찰 부대 소속. 상이 군인. 1년 전 퇴역했지. 자이펀 장교를 두 명 잡았거든. 그리고 이

건 그때의 추억이고.”

아넨드 씨는 오른팔 상완 부분에서 묶여 있는 소매를 흔들어보였다. 그래서 그림자가 이상하게 보였던 모양이군. 길시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훌륭한 군인이셨군요, 라이스터 중위. 난 길시언이오. 그 팔에 대해서는 유감이오.”

“아, 괜찮소. 덕분에 1계급 특진에 퇴역. 나쁘진 않았다고 생각하오. 그리고 아넨드라고 부르시오.”

아넨드 씨는 씨익 웃고는 다시 황야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도끼를 들어 흉벽의 요철 돌을 탁탁 두들겼다. 만일 오른팔이 남아 있었다면 오른손에 대고 탁탁 두드렸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성벽의 싸늘한 돌에 손을 짚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높다란 성벽에서 내려다보자 황야보다는 먼저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푸르스름하면서 동시에 누르스름한, 그리고 보라색이며 불그스름한 가로줄들. 다채로운 새벽 하늘이었다.

황야에는 밤새 솟아나기라도 한 듯이 모닥불이 잔뜩 피어 있었다. 얼핏 봐도 모닥불의 숫자는 삼사십 개가 넘어보인다. 그리고 그 옆에서 춤을 추는 것인지 뭘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괴성을 지르며 위로 들어올린 무기를 흔들어대는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네리아는 눈곱을 떼어내면서 졸리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오크야.”

뒤따라 올라온 제레인트는 아래쪽을 바라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는 미소를 지은 채 네리아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아니, 아주 많은 오크군요.”

“네. 그러네요. 굉장히, 엄청나게, 끔찍하게 많은 오크네요.”

네리아는 톡 쏘듯이 그렇게 말했지만 제레인트는 여전히 웃으며 밖을 쳐다볼 뿐이다. 하긴 오크 대부대에 의해 포위된 도시에 갇힌다는 것은 진귀한 경험에 속하는 것이긴 하며 그래서 제레인트는 신기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옆에 있는 경비 대원들이 모두 입을 꽉 다문 채 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벽 위에서는 저렇게 미소 짓지 않아줬으면 하는데. 어쨌든 지금 이 성벽 위에서 기분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제레인트 혼자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아넨드라는 저 한쪽 날개의 전투 천사 역시 짜 릿한 긴장감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뒤따라 올라온 아프나이델은 새벽의 추위에 벌벌 떨다가 말했다.

“저, 아넨드 씨. 전 아프나이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저놈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는 말입니까?”

아넨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뒤를 바라보며 외쳤다.

“이봐, 대장!”

그러자 잠시 후 그런 대로 투구와 갑옷을 제대로 차려입은 데다가 오른손엔 롱소드도 들고 있는 남자 하나가 걸어왔다. 남자는 얼굴을 찌푸린 채 걸어오더니 아넨드 를 향해 말했다.

“이봐, 아넨드. 자네 고함소리는 이스트 그레이드 전역에 울리겠군. 그 도끼 발등에 떨어뜨리기 전에 어서 내려가게.”

“뭐야? 이 목수 녀석이! 난 네녀석이 여기서 대팻밥이나 날리고 있을 때 전선에서 자이펀 놈들을 수도 없이 베어넘겼어. 네가 그까짓 돌려가면서 해먹는 경비 대장이 된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에게 잘난 척하는 것은 못 봐줘.”

그 그럴듯한 복장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품위가 격하되어 버린 남자는 진저리를 쳤다. 그러자 레니는 고개를 돌리고 킥킥 웃었다. 그 남자는 레니를 바라보고는 헛기 침을 하고 나서 말했다.

“그래, 당신들이 그 여행자들이오? 나는 칸 아디움의 경비 대장 라스 크레블린이오.”

칼은 어제의 피로도 가시지 않은데다가 새벽에 높은 성벽을 달음박질쳐 올라오느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땀을 닦아내며 라스 대장에게 말했다.

“나는 칼 헬턴트라는 여행자입니다. 크레블린 대장. 사태를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사태? 간단하오.”

크레블린 대장은 롱소드를 들어 바깥의 모닥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아침 경비 대원들이 성벽 위로 올라왔을 때는 이미 저 지경이었소. 아, 우리는 외딴 곳에 위치한 도시라 밤새도록 경비를 세우지는 않소. 성문은 잠가두지만. 어쨌든 급하게 성문의 폐쇄를 강화하고 예비 경비 대원까지 모조리 소집시켜 성벽 위에 배치시킬 때쯤이었던가, 갑자기 저편에서 화살이 날아왔지.”

“화살이라구요?”

샌슨의 질문에 크레블린 대장은 품 속을 뒤지더니 구겨진 종이 하나를 꺼내었다. 종이라. 오크들이 어디서 종이를 구했을까? 음. 하긴 무기도 만들고 갑옷도 만드니 종이도 어떻게 만들 수는 있겠지. 여행자들에게 훔쳤을 수도 있고. 난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이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칼은 라스 크레블린 대장에게 종이를 받아들고는 눈을 찌푸렸다. 그러자 아프나이델은 중얼거리더니 허공에 조그마한 빛덩어리를 하나 만들어내었다. 크레블린 대 장은 놀란 눈으로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고 활을 뽑아든 채 갤러리에 도열해 있던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자이펀 전선에서 피 흘리며 싸웠던 용맹한 상이 군인 아넨드 씨는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아, 고맙소. 아프나이델.”

칼은 아프나이델에게 감사하고는 그 종이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다리가 짧아서 가장 늦게 올라온 엑셀핸드가 이마를 닦으며 말했다.

“원, 제기랄! 그놈의 계단 높기도 하다. 이봐. 거, 뭐라고 적혀 있나?”

“글씨가 너무 지저분해서 읽기도 힘들군요. 에……………, ‘우리는 오크다.’ 허 참. 척 보면 오크인 줄 모를까 봐. 음. 어쨌든 읽겠습니다. ‘우리는 휴다인 계곡에서 인간들을 따른다왔다.’ 따른다왔다? 따라왔다는 말인가 보군요. ‘우리는 복수를 한다. 너희들은 괴물 초장이와 괴물 눈알을 내놓는다. 내놓지 않는다면 이 도시를 막살내겠다?” 아, 박살내겠다는 말인가 보군요.”

제레인트는 칼이 읽는 동안 계속해서 낄낄거리더니 말했다.

“하하하! 그, 그래도 그건 아마도 오크 중에서 가장 문학적 소양이 우수한 녀석이 썼을 겁니다. 하하하!”

별로 우습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제레인트의 밝은 태도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미소를 지었다. 우리에게 화를 낼 권한이 있는 크레블린 대장마저도 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당신들 중에 괴물 초장이와 괴물 눈알이 있단 말이오? 아, 먼저 근래 우리 마을에 들어온 외부인들은 당신들뿐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겠소.”

난 칼을 한 번 쳐다본 다음 앞으로 나섰다.

“시치미 떼진 않겠어요. 제가 괴물 초장이입니다.”

크레블린 대장은 눈썹을 찌푸리며 날 바라보더니 말했다.

“괴물 같은 초를 만드는 사람? 아니면 초를 만드는 괴물 같은 사람?”

“후자지요. 크레블린 대장님. 물론 가끔 실수해서 괴물같이 생긴 초를 만들기도 하지만.”

“원참. 이런 꼬마를 노리다니. 그럼 누가 괴물 눈알이오? 당신들 중에 눈빛이 날카로운 자는 보이지만 눈이 괴물 같은 자는 안 보이는데?”

운차이는 냉랭하게 말했다.

“놈들은 날 그렇게 부르오.”

크레블린 대장은 운차이를 바라보았지만 운차이는 저 아래쪽 황야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 하늘이 점점 밝아지는 데 따라서 황야의 색깔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 다. 검은색 흙탕물처럼 막막하고 깊이감이 없던 황야가 천천히 음영을 드러내면서 그 윤곽의 황폐함을 우리들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오크들이 피워놓은 모닥불은 작았다. 그것이 오크들의 거친 살결을 따스하게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침침한 적의와 자신감을 표현하는 데는 부 족함이 없었다. 발갛게 된 볼을 맹렬히 문지르고 있던 레니는 그 광경을 보며 부르르 떨고 나서는 불안한 눈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크레블린 대장은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뭐요? 왜 오크들에게 쫓겨다니는 거요? 저 녀석들의 지저분한 동굴을 털었다는 것은 웃기는 말이 될 테고. 모습들을 보아하니 황야에서 오크 몇 마리쯤 베어 넘긴 모양인데. 맞소?”

칼은 고개를 끄덕여 간단히 긍정을 표시했다. 그러자 크레블린 대장은 턱에 꺼끌꺼끌하게 나 있는 수염을 긁었다. 아마 면도도 하지 못한 채 뛰쳐나온 모양이다. 크 레블린 대장은 말했다.

“그래. 어쩌실 생각이오?”

“그렇지 않아도 우리는 오늘 떠날 작정입니다. 저 포위진은 도시의 반대편에도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가 반대쪽으로 달아나버리면 되겠습니까?”

그러자 크레블린 대장은 당장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보시오. 편지를 읽었잖소? 당신들이 나가지 않으면 저놈들이 이 도시를 친다고 하지 않았소. 이 상황에서 당신들만 살자고 달아나버린다는 것은 너무하지 않 소?”

그러자 칼의 안색도 좋지 않아졌다.

“아니, 말을 그렇게 하실 일이 아니지요. 저 친구들은 우리를 쫓는 것이니 우리가 떠나면 우리 등 뒤를 따라오지 않겠소? 우리는 저 친구들을 끌고 사라져주겠다는 겁니다.”

“보시오! 당신들은 모두 말을 가졌지 않소! 그러니 당신들은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가벼운 문제가 아니란 말이오. 저 녀석들이 저런 대부대를 유지하려면 보급은 중요한 문제일 거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소?”

“보급이오?”

“그렇소! 저 녀석들이 당신들을 뒤쫓는 것은 유감이지만, 그것 때문에 엉뚱한 우리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말도 안 되지 않소? 당신들이 달아나면 저 녀석들은 이곳에 서 분탕질을 친 다음에야 당신들을 추적할 거란 말이오!”

난 화가 나서 뭐라고 말하려 했다. 그때 칸 아디움의 새벽 공기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북부 인간들의 멋진 우정이군.”

서리가 묻어나는 운차이의 말이었다. 우리들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그를 바라보자 그는 가볍게 뒷말을 이었다. “오크에게 쫓기는 인간을 다른 인간들이 쫓아내려고 애쓴다라. 맞아. 원래 인간들은 그런 식으로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크레블린 대장은 움찔하더니 곧 불타는 눈으로 운차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처럼 말들이 튀어나왔다.

“보시오! 난 모험가 떨거지들을 좋아하지 않소.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저 계곡에서 이 미궁으로! 그렇게 제멋대로 날아다니다가 지칠 때쯤 되면 시체에 몰려드는 파리처럼 도시에 찾아들어서는 먹을 것과 침대를 요구하고, 난동을 부리고! 우리의 발랄한 십대들을 헛된 몽상에 빠지게 만드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소. 누구나 그 나이에는 그러는 법이니까. 하지만 꽁무니에 재앙과 질병을 달고 다녀서 땀흘리며 일하는 견실한 사람들을 위협하고 그 터전을 위협하는 것은…………! 그런 작자들에게 내가 왜 호의를 베풀어야 된다는 거요?”

우리는 멍한 눈으로 크레블린 대장을 바라보았고 크레블린 대장은 옆에서 아넨드 씨의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얼굴을 붉힌 채 우리들을 쏘아보았다. “웅변술은 언제 그렇게 익혔지? 라스.”

아넨드 씨의 말에 크레블린 대장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이 성벽 위에서는 크레블린 대장이라고 불러! 그러기 싫다면 당장 내려가서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침대 속에 그 병신 같은 몸을 처박든지…………, 미안하네.”

참 보기 싫은 광경임에는 틀림없었지만, 크레블린 대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범위 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아넨드 씨에게로 몰렸다. 아넨드 씨의 얼굴은 창백 해져 있었지만 그는 이를 악물며 웃음을 지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이봐. 아넨드. 실수였네. 그저 홧김에 나온 말이야. 본심이 아니라네.”

“괜찮습니다. 크레블린 대장님.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넨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도끼를 어깨에 둘러메더니 성벽 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크레블린 대장은 그를 붙잡을 듯하다가 관두고는 입술을 좀 깨물었다. 잠시 후 그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친구는 당신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요. 당신들이 내 부아를 돋운 덕분에, 이 일이 잘 끝나면 저 친구에게 술 한 잔 멋지게 대접해야 될 것 같으니.”

그러자 네리아가 당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게 왜 우리 책임이지요? 이건 당신이…………….”

“네리아 양.”

“칼 아저씨. 이건 말도 안 되는…”

“조용히 해요. 네리아 양.”

네리아는 볼이 부어서는 팔짱을 낀 채 뒤로 물러났다. 칼은 피로한 음성이지만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에게 원하는 바가 뭐요?”

크레블린 대장은 마치 칼을 흉내내듯이 피로한 음성으로 말했다.

“체면 차리기도 싫고, 그래 봐야 속보이는 짓이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저 오크들이 우리 도시에 대해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도록 해줄 방법이 있겠소?” “흐음. 당신들은 어떻게 도와주겠소?”

크레블린 대장은 매몰차게 대답했다.

“우리가? 우리가 왜. 꽁무니에 오크들을 달고 온 것은 당신들이오. 난 이 도시의 경비 대장이지 뜨내기들의 경비 대장이 아니오.”

그러자 느닷없이 풍부하게 울리는 음성, 그것도 화가 난 기색이 분명한 약간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도 한 영지의 안보를 책임지는 경비 대장이지만, 지금 말씀은 받아들일 수 없군요.”

보라! 헬턴트 영지의 경비 대장 샌슨 퍼시발이 앞으로 나섰다. 크레블린 대장은 험한 눈초리로 샌슨을 바라보다가 보통 사람들의 얼굴이 있어야 할 위치에서 가슴을 발견하고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새벽 공기 속에서 더욱 위압적으로 거대해 보이는 샌슨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뭐요? 경비 대장이라구?”

“샌슨 퍼시발. 헬턴트 영지의 경비 대장입니다.”

“어? 모험가들이 아니란 말이오?”

“천만에요. 우리는 헬턴트 영지의 공무로 출발한 일행입니다. 중간에 몇 가지 사건이 생기긴 했지만 이 모든 사태는 결국 헬턴트 영지의 공무의 연장입니다. 어르신 께서도 경비대장이라면 공무 사절의 여행에서 다른 영지가 당연히 베풀어야 할 조력의 의무에 대해 무지하다고는 말씀하시지 못할 테지요.”

“어, 나, 난 그런 거 모르겠소. 당신들이 정녕 그렇다면 왜 우리 칸 아디움의 시장을 접견하여 조력을 요청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어스름한 새벽 공기. 그리고 황야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샌슨은 다부진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의 장대한 어깨는 성벽보다 굳건해 보였고 단단한 두 다리는 첨탑과도 같았다.

“이 도시에는 용무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식사와 잠자리뿐이며 그런 사소한 문제 때문에 다른 영지 책임자의 관심을 끌어볼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곤경에 빠진 것이 분명한 이 시점에서, 칸 아디움의 시장은 헬턴트 영지의 전권 대리인이신 여기 칼 헬턴트 공에게 모든 종류의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 니다.”

“공이라구?”

이 질문은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나왔다. 크레블린 대장과 칼에게서. 칼은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샌슨을 바라보았다.

“이보게, 퍼시발 군. 내가 언제부터 공이라고 불릴 수 있게 되었지?”

“그야 국왕 전하께서 칼 헬턴트 공에게 현명함의 기사라는 칭호를 내리신………….”

“으랏찻차! 여보게, 퍼시발 군! 그 우습지도 않은 칭호를 꼭 거론해야 되겠나!”

샌슨은 아무런 대답없이 그저 칭찬을 기다리는 소년처럼 빙긋이 웃었을 뿐이다. 네리아까지 나서서 자신은 ‘밤바람의 레이디’임을 밝히고 나자 레니는 그만 크게 웃 어버렸다. 어쨌든 칼은 마땅찮은 얼굴로 헬턴트 영지 전권 대리인의 증명서와 국왕 전하께서 하사하신 훈장까지 내보여야 했고, 그러자 크레블린 대장의 무릎은 그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활발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 이, 외딴 곳에서 귀하신, 귀하신 손님들을 맞이하게 되, 되어….. 저,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길……”

길시언이 자신이 왕자임을 밝히지 않은 것은 크레블린 대장의 심장 상태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건 그렇고 별로 보기에 유쾌한 광경은 아니군. 우리는 모 두 일치 단결하여 싸늘한 시선으로 크레블린 대장을 바라보았고 크레블린 대장은 황급히 말했다.

“어, 어서 시청으로 가시지요. 즉시 시장님께서 여러분들께 격에 맞는 대접을………….”

“아니오. 나는 여기서 오크들을 보며 생각 좀 해봐야겠소.”

“아니, 당치도 않습니다! 귀하신 분들을 이런 성벽 위에 모셔두다니요. 어서 내려가셔서 초라하나마 아침 식사부터 하시고………….”

“아, 우리 꽁무니를 따라온 재앙의 무리를 두고는 밥맛이 나지 않을 것 같군요. 게다가 우리들만 살자고 떠나버릴 수는 없으니 대책도 강구해야 되겠고. 그러자면 저 친구들을 노려보고 있어야 되지 않겠소?”

칼의 차분한 말에 크레블린 대장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제레인트와 네리아는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크레블린 대장은 눈에 띄게 허둥대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이봐! 누가 가서, 아, 아냐. 내가 직접 가겠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헬턴트 공. 즉각 시장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이봐! 그룬!”

“예! 대장님.”

“성벽의 지휘를 맡아라! 난 시장님을 모셔오겠다.”

“알겠습니다!”

크레블린 대장은 칼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았다. 그는 성벽에서 굴러 떨어져 목뼈를 부러뜨릴 정도의 걸음걸이로 성탑을 향해 달려갔다. 엑셀핸드는 그 모습을 보 면서 혀를 찼다.

“어, 우습게 들릴진 모르겠지만, 막장에서 뼈가 굵은 드워프의 머리로는 말이야, 어떤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라는 것은 많은 세월 동안 그 사람을 겪어오면서 자연히 우러나오는 것이라 생각되는데.”

칼은 미소를 짓더니 손에 든 훈장을 장난스러운 동작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이까짓 번쩍이는 쇳조각 하나에 저렇게 태도가 바뀌는 모습은 보기 언짢으시겠지요.”

“정확하네.”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칼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훈장을 주머니 속에 아무렇게나 쑤셔박았다. 잠깐, 내 훈장은 어디 놔뒀더라? 잘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칼은 다시 성벽 바깥을 바라보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지혜로워 보이고 근엄해 보이는 중년 독서가 옆에서는 작지만 다부진 드워프의 노커 가 허연 수염을 흩날리며 도끼를 짚은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총명해 보이는 이마를 가진 젊은 프리스트와 젊은 얼굴에 어울리지 않은 깊은 그림자를 가진 마법사가 그 옆으로 벌려서서 묵묵히 아래를 노려보고 있었으며 그 옆으로는 건장한 두 명의 전사 샌슨과 길시언이 도열해 있었다. 꽤나 멋진 장면이었다. 이스트 그레이드의 새 벽, 높은 성벽 위에 지금 전설적인 장면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군 그래. 괴물 초장이가 끼어들 만한 자리를 찾아보다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의 병사들은 그들의 대장이 놀라서 목뼈를 부러뜨릴 정도로 고귀한 인물들과 같은 성벽 위에 있다는 것이 몹시 부담된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운차이는 그 모든 사람들과 조금씩 떨어져서는 흉벽 위에 걸터앉은 채 아래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여기서 가장 긴장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면 운 차이가 바로 그 사람일 것이다. 병사들은 모두 흉벽 뒤에 웅크리고 있었고 다른 일행들은 굳은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운차이는 태평하게 앉아서는 잔치 구경이라도 하듯이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그때 레니가 조그맣게 기침을 했다. 엣취. 그러자 운차이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내게 말했다.

“네리아와 레니에게 여관에 돌아가서 기다리라고 전해 줘.”

“라는군요.”

그러자 네리아는 방긋 웃고서는 언제나 그러하듯 운차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흐음. 네가 나 걱정해 주니?”

그러자 운차이는 여전히 흉벽 위의 조각이라도 된 것처럼 딱딱하게 앉아서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리아가 아니라 레니를 걱정하는 거라고 전해 줘, 후치.”

“라는군요.”

네리아는 의외로 별 대답을 하지 않고는 대신 생긋 웃으며 레니를 이끌었다.

“가자. 레니 피가 튀고 비명이 울려퍼지고 하는 일은 남자들 몫이라고 생각들 하라지, 뭐.”

레니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남자들 일 맞는 거 같은데요.”

“그런가? 흐음. 그러고 보니 나도 좀 조신하게 행동해야 되겠네. 이 여행이 끝나면 곧 멋진 남편과 아들이 생길 테니까…

샌슨은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까는 왜 굴러 떨어질 뻔한 거냐?”

“몰라도 돼!”

난 그렇게 고함질러 주고 나서는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칼은 관자놀이를 짚은 채 말했다.

“골치 아프군. 아까의 그 편지는 결국 이런 말이잖아. 우리가 더 달아나면 대신 이 도시를 공격하겠다. 규모가 좀 큰 인질극이군.”

칼은 그렇게 머리 아픈 표정을 짓더니 샌슨에게 고개를 돌렸다.

“퍼시발 군. 저들의 인원이 얼마쯤 되지?”

“예. 어두워서 정확히 판단하긴 어렵습니다만 적어도 250에서 270마리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 정도면 썩 정확하네, 퍼시발 군. 고맙네. 휴우…………, 300여 마리의 오크라. 록크로스 해변에서 루트에리노 대왕과 대적했던 오크와 같은 숫자로군.”

칼은 그런 식으로 샌슨의 계산을 간단히 확대해 버렸다. 샌슨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 도시의 경비대와 협조하여 모두 물리치면 어떨까요?”

“보게, 퍼시발 군. 우린 지금 전쟁놀이를 할 시간이 없네. 그리고 아까의 경비 대장의 모습이라든지 저 경비대원들의 모습을 봐선………. 이 도시 전체를 샅샅이 둘러 봐도 저기 아넨드 씨보다 더 우수한 전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듯하이. 이 친구들이 우리 영지의 경비 대원들의 반만큼만 활약할 수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겠네만.”

하긴 그렇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지금 성벽 위에 몰려 있는 병사들은 활을 들고 있는 허수아비에 비해 딱 한 가지 점에서만 나아보였다. 그들은 허수아비와는 달리 웅성거릴 수 있는 재주가 있었다. 그것도 불안스럽게. 길시언은 성벽을 주욱 둘러보고는 말했다.

“이 도시는 황량한 이스트 그레이드에 위치하니까요. 전쟁이나 재난에서 떨어져 있는 도시입니다. 따라서 경비 대원들의 허리가 굵다고 해서 그 바지가 흘러내리 지…………, 미안합니다. 임마!에, 하지만 성 자체는 그런 대로 견고해 보입니다.”

“예. 그리고 저 오크들이 공성 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겁니다. 시민들의 불안도 문제고 경비 대원들의 수준

도…………. 튼튼한 성을 만드는 것은 성벽의 두꺼움이 아니라 그 성벽을 지키는 자들의 굳건한 마음이라던가요.”

“예, 허즐릿의 말이군요. 물론 그 굳건한 마음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었지요.”

“꽉꽉 들어찬 식량 창고와 병기고라지요.”

길시언과 그렇게 농담 비슷한 말을 주고받은 다음, 칼은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뭔가 해볼 만한 것이 있겠습니까?”

“예?”

“대단한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저 이빨이 멋진 친구들의 주의를 좀 끌어보고 싶습니다. 효과는 없어도 좋습니다.”

“주의를…… 끌면 됩니까?”

“예. 회담을 좀 가지고 싶습니다.”

아프나이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성벽 위의 병사들에게 미리 놀라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싶은데요.”

그러자 길시언이 곧장 고개를 돌려 외쳤다.

“보시오. 그룬 씨라고 했소?”

그러자 라스 대장에게 지휘권을 인계받은 그 병사가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그룬 크라이첵 상병입니다.”

“난 길시언입니다. 지금부터 여기 마법사께서 마법을 쓰실 테니 병사들로 하여금 당황하지 말도록 지시해 주시겠습니까?”

“마법이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룬 크라이첵은 즉시 명령을 옆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꼼짝도 하지 말고 엉덩이를 단단히 고정시켜랏!’그 명령이 빠르게 옆 으로 전달되고 나자 아프나이델은 고개를 숙이고 캐스팅을 시작했다. 우리 가까이에 있던 병사들 중 일부는 활을 내려놓을 만큼 놀라서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음. 내가 언제부터 마법을 별 경이감 없이 바라보게 되었지? 아프나이델은 갑자기 두 손을 하늘로 들어올리며 외쳤다.

“메이저 이미지!”

잠시 동안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새벽 하늘은 여전히 푸르스름한 공허로서 존재하였고 쥐죽은 듯 조용한 성벽 위의 침묵도 여전했다. 우리는 고개를 갸 웃거리며 다시 아프나이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프나이델은 얼굴이 벌겋게 된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그때였다.

“크라라라라라!”

거의 뽑을 뻔했다. 거의 바스타드를 뽑아들 뻔했단 말이다. 새벽 하늘 그 어두컴컴한 구름 저 위에서 하늘을 울리게 하는 포효 소리가 울려왔다. 병사 하나가 겁에 질 린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입 닥쳐!존!”

그룬 상병은 이를 악물고 외쳤지만 그 역시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높은 성벽 위에서 바라보느라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구름들 사이로 기다랗 고 거대한 입(?) 하나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길게 이어지는 콧등과, 마침내 눈, 그리고 그 위의 뿔…………. 그리고 탄탄하면서도 우아하게 휘어진 목이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드, 드, 드…………!”

병사들은 거의 혼란상태에 빠졌고 그래서 그룬 상병은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병사들을 진정시켜야 되었다. 성벽 이곳저곳만이 아니라 우리 등 뒤의 도시에서도 비명소리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꺄아아!”

하늘로부터 내려온 그것은 마치 신의 머리가 내려와 지상의 버러지들을 굽어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목은 계속 내려오기 시작했고 그 주위의 구름들은 갈가리 찢 겨 흩어졌다. 천천히 갈라지던 구름들은 마침내 무서운 속도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맹렬한 구름의 소용돌이. 그리고 황야에서는 거친 바람소리. 구름의 소용돌 이 가운데에서 그 목은 계속해서 내려왔고 마침내 그 목 뒤로 강인한 어깨, 거대한 날개 등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날개가 나올 때 구름들은 폭발하듯이 파악 찢겨 흩 어졌고 소용돌이 자체가 하늘의 모든 공간으로 흩어져버렸다. 구름들이 하늘의 모든 방향을 향해 날아가 버리자 그 거대한 몸이 전부 드러나게 되었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 위용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크라라라라라!”

그것은 마침내 구름 아래로 내려온 블루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운차이는 피식 웃었다.

“기억력이 좋군. 지골레이드잖아.”

자신도 모르게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롱소드의 칼자루를 꽉 쥐고 있던 샌슨은 그제야 이마를 닦았다. 그래. 저것은 지골레이드의 모습이었다. 다만 아프나이델의 상 상력이 보태어져서 터무니없이, 거의 산덩어리만큼이나 과장되게 표현된 블루 드래곤이었다. 제레인트는 좀더 잘 보기 위해 성벽 위로 몸을 불쑥 내밀다가 중심을 잃 을 뻔했고 그룬 상병이 그를 붙잡았다.

“아, 고맙습니다. 상병님.”

“처, 천만에요. 프리스트 님. 그, 그런데 저것은 환상, 환상 맞습니까?”

“물론입니다.”

“오, 테페리여…………”

그러자 제레인트는 반색했다.

“테페리를 믿으십니까?”

그룬 상병은 이 시점에서 자신의 신앙이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인가 하는 눈으로 제레인트를 바라보았다. 나는 앞으로 좀 나아가서 황야를 바라보았다.

황야에서는 난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오크들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거나 무기를 집어던지고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질 러대는 용감한 오크들도 몇 마리 보였지만 대개의 경우 달아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주저앉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참을 수 없는 함성이 쏟아지 는 광경이었다.

“최고예요! 나의 톱메이지!”

아프나이델은 겸연쩍게 웃으며 손을 내렸다. 그는 칼을 바라보았다.

“주의를 끈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칼도 저 굉장한 광경에 매혹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잠시 멍한 눈으로 아프나이델을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굉장하군요. 아프나이델.”

“천만에요. 그런데 어떻게 할까요? 아, 물론 저것은 환상이므로 브레스를 뿜어 오크들을 태우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런 환상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랬다가는 들킬 확률이 높습니다.”

칼과 아프나이델이 침착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가운데에도 그룬 상병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병사들을 안정시켜야 했다. ‘이 자식아! 정신 차려! 저건 환상이야! 어서 일어나지 못해? 헤이! 너희들 사귀나? 남자들끼리 껴안고 뭐하는 거야? 어……………, 자넨 돌아가서 갈아입고 오는 것이 좋겠군. 괜찮아! 소문내진 않겠네. 이봐! 명령 이다! 성벽 경비대원 지크가 바지를 적셨다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말 머리에 뿔이 날 때까지 군 기밀이야! 괜찮아! 환상이라구. 저기 마법사님께서 만든 환상이야. 오! 정말 저게 환상일까? 누가 나에게 저건 환상이라고 말해 줘!’ 길시언과 샌슨도 성벽을 따라 달리며 그를 도와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칼은 그 모습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적시고는 말했다.

“음. 내가 말하는 대로 말하게 할 수 있습니까?”

“예. 그의 목소리는 잊혀지지 않는 것이니까요. 얼마든지 그 목소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후 황야를 온통 뒤덮은 그 지골레이드의 환상은 폭풍 같은 목소리로 외치게 되었다.

“이 쓰레기 같은 조그만 놈들!”

“으아아아!”

비명소리가 엉뚱한 곳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성탑에서 갤러리로 나오는 계단에서 무릎을 꿇거나 혹은 엎드려 있는 사람들 몇 명이 보였다. 그중에는 시장 님을 모시러 간다고 달려간 라스 대장의 모습도 보였는데 라스 대장은 자신의 검을 성벽 아래로 팽개치고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엎드려 있었다. 우리가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그들은 고개를 들더니 황급히 손짓을 하기 시작했다.

“뭐, 뭣들 하는 겁니까! 어서 숨어요!”

음. 황당스럽군. 제레인트는 키들거리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눈앞에 손가락을 세워서는 익살스럽게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계단에 넘어져 있던 사람들은 놀란 눈으 로 제레인트를 보았다.

“마법입니다. 걱정 마시고 올라오세요.”

그러자 계단에 있던 사람들은 의혹에 싸인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때 다시 한번 천공의 지골레이드가 벽력 같은 고함을 질렀다.

“기특한 녀석들! 크핫하하! 불까지 준비했구나! 그 질긴 고기를 씹기 좋게 구워야겠군!”

아이고, 맙소사. 난 못마땅한 눈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칼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날 바라보았다.

“이봐, 네드발 군. 너무 세련된 협박을 사용하면 저 친구들이 못 알아들을까 봐 그런 거야.”

“그래도 너무 조야해요.”

“그럼 어떻게 할까?”

옆에선 아프나이델이 웃으며 날 쳐다보았다. 잠시 후 지골레이드는 이렇게 외치게 되었다.

“그 냄새 나는 몸이 귀하다고 생각되면 즉시 땅에 쓰러져라, 버러지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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